▲ 올 배추는 풍년입니다. 남은 배추는 누나와 여동생 김장입니다 ⓒ 김동수
"여보세요."
"김장 담아야 하는데 비가 자꾸 와서 큰일이다. 배추를 뽑을라고 하는데 고마 비가 자꾸 온다. 우짜고."
"어쩔 수 없잖아요."
"내일 올 수 있나."
"시간이 안 됩니다."
"그럼 네 동생하고 뽑을게."
어머니는 한 달 전부터 김장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성격 자체가 뒤로 미루는 것을 참지 못하는 분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지난주 내내 비가 하루 건너 뛰고 내리는 바람에 배추 뽑을 시간도 없으니 아침마다 전화를 하셨습니다. 내려가 함께 배추를 뽑아야 하는데 시간이 나지 않아 동생과 어머니가 그 많은 배추를 다 뽑았습니다.
"배추는 다 뽑았는데 소금물에 저려야 하는데 우짜노."
"시간 내 가겠습니다."
"저 많은 배추 우짤지 모르겠다. 누나하고, 니 동생꺼는 안 뽑았다."
"시간 내 가겠습니다."
"금요일 쯤 할낀데."
"시간 내 간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 알았다."
하지만 제수씨가 전화를 해 동생과 함께 하겠다며 내려오지 말라는 바람에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직장일도 바쁜 제수씨 배추 절임까지 하니 정말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미안했습니다. 수고했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제수씨 수고했습니다"고 해야겠습니다.
▲ 집에 도착하니 제수씨가 이미 반 이상 김장을 담갔습니다. 대단한 제수씨입니다. 막둥이 추워 벌벌 떨면서 숙모가 담그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 김동수
배추 뽑는 일, 절임하는 일까지 어머니와 동생네가 다 해놓고 아내와 저는 가서 김치만 담그면 됩니다. 일요일 오후 예배를 다 마치고 부리나케 갔습니다. 그런데 제수씨가 이미 김장을 반 이상 담갔습니다. 정말 미안했습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아주 편안하게 담갔습니다. 딸 아이가 자기도 한 번 담가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엄마 나도 담그고 싶어요."
"네가 담겠다고.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빨리 담고 푹 쉬어야겠다."
"옷에 양념 묻히면 안 된다. 그런데 옷을 왜 그렇게 입고 왔니. 김치국물은 잘 씻기지 않는다."
"그냥 두세요. 잘만 담는데. 옷에 좀 묻어면 어때요."
"참 딸이라고."
"예쁜 딸이 김장 담겠다는데 좋지 꾸중할 필요가 있나요. 나중에 씻으면 돼요."
"아빠 나 잘 담그지."
"당연하지 우리 예쁜 딸."
▲ 딸 아이가 나섰습니다. 처음이 김장을 담그는데 아빠보다 낫습니다. ⓒ 김동수
김장 담글때 제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김치를 옹기에 담는 일입니다. 김치 냉장고가 아무리 좋다고 하지만 옹기만 못합니다. 해마다 옹기에 담는 일은 제 차지입니다. 벌써 10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옹기가 좋은 이유는 숨구멍이 있습니다.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면서 아주 잘 익혀줍니다. 옹기에 담은 김치는 입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습니다.
▲ 옹기에 담는 김장이 최고입니다. ⓒ 김동수
▲ 팍팍 눌러줘야 바람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 김동수
그리고 조금씩 눌러주어야 합니다. 옹기가 공기를 잘 통하게하지만 김치 사이사이는 공간이 되도록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겨울도 옹기에 담은 김치를 통해 밥 한그릇 뚝딱할 것입니다. 어머니 걱정은 김장 담글 때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짜고 네 누나 김치를 갔다 줘야 하는데 우짜노."
"오늘 저녁일이잖아요. 그럼 집에 없는데 어떻게 가지고 갈 수 있어요."
"그래도."
"집에 없는데 어떻게 갖다 줄 수 있어요."
"그럼 언제 갖다주노."
"누나가 시간나면 그 때 갖다주면 되잖아요. 옹기도 여러개 있고, 김치냉장고도 있잖아요."
"너희도 딸 키워바라. 어미 마음이 그런지."
"저도 아이가 셋이예요. 엄마같이 안 그래요."
"나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노."
"어머니 지금 누나가 집에 없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갖다줄 수 있어요."
"알았다. 그럼 나중에 갖다주면 되겠네."
▲ 어머니 김장 담그는 데 한 달 전부터 걱정입니다. 오늘도 얼마나 말씀이 많던지. ⓒ 김동수
담근 김치를 누나에게 갖다 줘야 한다는 어머니. 대단하십니다.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이 쉰 살이 넘은 딸이 혹시나 김장김치를 먹지 못할까봐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걱정이 태산이라 조금 타박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고, 잘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한 달 전부터 김장 걱정을 하신 우리 어머니 이제 김장 끝났습니다. 김장 걱정은 들었는데, 또 다른 걱정거리가 어머니 머리를 또 지배합니다. 그럼 동생과 제수씨 마음 고생이 많을 것입니다. 제수씨 생각할 때마다 죄송하고 고맙다는 말밖에 해드릴 것입니다. 어머니 이제 걱정 그만하세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