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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년 동안 틀에 갇혀...한국 언론은 '환각 상태'

[2011 국가보안법 ③] 국가보안법과 언론 보도

등록|2011.12.05 18:08 수정|2011.12.05 18:08
1948년 12월 1일, 대한민국 법률 제10호로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은 여러 변천을 거쳐 올해로 63년째를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저지른 악행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에 역행한다는 비판은 치명적입니다. 심지어 미국 등 주요국들로부터 폐지권고를 받았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와 국가보안법긴급대응모임은 12월 1일을 맞아 'NO! 국가보안법, STOP! 국가보안법' 기치 아래 국가보안법 대응주간을 설정하고 12월 9일까지 연속 기고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 국가보안법 제정 63주년인 1일 오후, 국가보안법 강화와 폐지를 각각 주장하는 1인 시위자 두 명이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연합뉴스


국가보안법은 세계인권선언에 반하는 반인권적인 악법이다. 국가보안법이 지배해온 지난 60여 년 동안 양심과 언론 자유, 민주주의는 처참하게 유린돼왔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961년~2008년 2월까지 1만4000여 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이는 매년 298건이 기소된 것으로, 거의 하루에 한 건 꼴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발생한 셈이다.

국가보안법은 이승만 정권이 지난 1948년 12월 1일 제정된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좌익 활동과 반정부 활동을 탄압할 구실로 만든 법이다. 실제로 개인의 사상과 이념을 제한하고, 정권수호를 위한 반민주적인 악법이었다.

이 법은 탄생 당시부터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우려되면서 일종의 한시법이자 형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적 성격으로 만들어졌다. 이승만 정권이 1958년 12월 날치기 통과시킨 국가보안법 개정안은 간첩의 개념을 확대하고 허위 또는 왜곡된 사실의 유포를 막는다는 미명 아래 실질적으로 언론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독소조항을 담고 있었다.

4·19혁명으로 등장한 제2공화국은 언론에 대한 간섭을 배제하고 언론자유를 제한 없이 보장한다는 방침을 언론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러나 당시도 역시 반공주의에 국한된 언론자유였다.

박정희 군사 쿠데타와 그의 피살에 이은 전두환 정권까지 27년간 동안 이 땅의 민중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군인 정치인들은 공포정치를 자행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휘둘렀다. 그런 상황에서 제도언론은 정권이 양산하는 갖가지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해 발표문을 받아쓰는 식이었다. 언론은 '국가보안법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을 뿐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그 존폐문제 등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보안법이 일상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모든 공식 언론매체는 국가보안법을 철저히 의식하고 그에 저촉되지 않는 제작 작업을 해왔으며 실질적으로 '국가보안법 통치'의 하위기구 역할을 해왔다. 조중동이 특히 앞장선 '국가보안법 보도'는, 언론의 기본적인 취재 보도 원칙을 외면한 것으로 대북 공세 차원에서 반복되는 말 폭탄, 말 흉기의 성격을 지닌다. '카더라'식의 근거 없는 보도가 춤을 추고 나중에 오보로 밝혀져도 정정, 사과 보도하는 일은 거의 없다.

국가보안법에 종속된 언론... 반북 이데올로기의 '악취'

제도언론의 보도 행위가 국가보안법의 틀이 허용하는 공간 속에서 장기간 이뤄지면서 전체 사회의 의식 구조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 우선 북한은 국내법으로 보면 국가가 아니며, 국제법에 따르면 국가라는 이중적 의미가 언론에 의해 일상적으로 반복되면서 대북 시각이 매우 혼란스럽다.

북한은 유엔에 가입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어엿한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국가보안법은 이를 부인한다. 북한은 단지 불법집단일 뿐이다. 7·4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선언이 나왔지만 남한의 실정법 체제보다는 하위개념의 수준에서 머물 뿐이다. 수구세력과 족벌언론은 국제적 수치이면서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국가보안법 존속을 주장하면서 그 폐지를 외치는 세력에 대해 색깔론으로 덧칠한 왜곡된 논리를 흉기처럼 휘두르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지배가 장기화되면서 이 법에 종속된 언론에 의해 확산된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 악취는 대단히 심각하다. 남한 사회의 일상사에서 북한은 완전히 배제되고, 통일 방식은 남한 주도의 통일 외에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북을 평화통일 추진의 동등한 파트너로 제시하다가는 자칫 친북, 종북으로 몰리기 때문에 상상력이 극도로 제한된 방안만이 제기될 뿐이다.

그 결과 남한 사회에서 통일과 그 이후를 상상하는 미래는 금단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수출 위주의 취약한 경제 구조, 청년실업 등의 해결책의 하나가 남북 경제 공동체의 추진이라는 방안은 거의 공론화되지 않는다. 남과 북은 의식 세계 속에서 완전히 분리된 상태다. 언론의 국가보안법에 예속된 보도 행각으로 전체 사회는 국가보안법의 틀 속에서 심각한 환각 상태에 빠져 있다.

국가보안법에 예속된 언론 보도 속에서 북한은 절대 국가가 아니며 존재해서는 안 될 불법집단, 그래서 반드시 박멸해야 할 존재다. 전쟁터에서 적이라 해도 그의 장점을 칭찬하는 식의 열린 사고를 절대 불허하는 것이 국가보안법이고 언론은 이런 논리의 확산에 기여한다.

북한이라는 존재는 가증스런 악마로 언론에 의해 강조된다. 이런 식의 언론 보도는 남한 내부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남한 사회에서 통일과 그 이후를 상상하는 미래학은 활성화되지 못하거나 궁극적 세계 평화를 위한 세계정부의 추진 등은 발을 붙이지 못한다. 남한의 적지 않은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국가보안법의 틀 속에 갇혀 질식 상태다.

계속되는 국가보안법 사건... 언론은 정부 발표만을 앵무새처럼

국가보안법은 북한에게 위해를 가한다기보다 남측 내부의 힘을 약화시키고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무서운 족쇄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회의 언론과 정치권 등은 이런 문제의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여지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을 철폐되어야 한다. 수구세력과 족벌언론이 국가보안법 수호를 외치는 것은 이 사회의 병폐를 더 심화시키는 반사회적 행위다.

오늘날 과거 정권하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을 받은 사건이 재심을 통해 연이어 무죄로 판결이 나는데도 한나라당 정권은 간첩 신고액을 두 배로 올리면서 국가보안법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실질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이명박 정권은 과거 정부 시절 합법적 절차를 거쳐 남북 교류 사업을 했던 시민사회단체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21세기 공안통치다.

한나라당과 족벌신문들이 합창하는 '종북 타령'은 자기들의 입맛이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남한 사회에서 치명적인 반국가 행위로 몰거나,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키려는 현대판 마녀 사냥이다. 국가보안법이 지난 반세기 이상의 긴 기간 동안 남한 사회의 살인적 흉기였다는 것은 최근 들어 국가보안법으로 형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잇따라 무죄판결이 이어지는 것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현 정권은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터뜨리는 공안 사건을 기소 이전 단계에서 공식 발표해 실질적인 '여론재판'을 자행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언급되는 개개인의 인권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명백한 피의사실 공표죄다. 또한 공안당국은 사건 수사를 장기화하면서 당사자들을 심리적, 경제적으로 괴롭히는 간교한 방식을 쓰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2008년 '촛불' 이후 자행한 국가보안법 사건 대부분이 무죄 판결로 결론이 나고 있지만 국정원들을 앞세워 국가보안법 탄압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제도언론은 군사정권하의 '보도지침 언론'처럼 정부 발표만을 앵무새처럼 보도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매개로 한 권언합작이 조건반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방송독립포럼 공동대표, 언론사회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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