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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넘어갈 듯한 고통...이게 그놈의 사랑 탓이다

[서울 자전거여행 2] 북악산하늘길에서 만나는 풍경들, 김신조루트, 정릉, 흥천사

등록|2011.12.14 10:19 수정|2011.12.16 21:12

▲ 북악산하늘길의 정상, 북악팔각정에서 내려다본 평창동. 그 너머 안개 속에 희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북한산. ⓒ 성낙선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먼저 언덕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자전거를 얼마나 오래 또 얼마나 열심히 타게 될지는 바로 그가 지나다니는 길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언덕들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다. 서울만큼 언덕이 많은 도시도 드물다. 자전거를 타려고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그 언덕들을 피해 가고 싶은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면, 처음부터 자전거 타는 일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서울에서는 언덕을 사랑하지 않고 자전거를 사랑하기가 무척 힘들게 되어 있다. 언덕을 멀리 하게 되면, 그만큼 자전거를 멀리 하게 되는 날 또한 빠르게 다가온다. 언덕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자전거에 이별을 고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 아리랑고개. 북악산하늘길을 오르는 길목.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정릉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 성낙선

자동차를 타고 다닐 때는 서울이 그렇게까지 언덕이 많은 도시인 줄 몰랐다. 자동차 의자에 편히 앉아 기어를 변속하고 가속 페달을 밟아대는 것만으로는 언덕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언덕처럼 본질적인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언덕은 숙명이다. 어떻게든 넘어서야 할 운명이다.

그러니 결국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은 언덕과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넘어섰을 때의 그 짜릿한 기분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사랑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넘어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그 느낌을 알지 못한다. 머리로 이해한 사랑이 몸으로 겪어서 아는 '처절한 사랑'을 알 턱이 없으니 말이다.

▲ 사이좋게 북악산하늘길을 오르는 자전거여행자들. ⓒ 성낙선


북악산하늘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행복감

'자전거'만큼이나 '언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자전거대회가 있다. '서울랠리'다. 서울랠리는 서울 시내에서 펼치는 자전거경주다. 청계천 광장에서 출발해 '북악산하늘길(북악스카이웨이)'을 달려서는 그 도로의 정상까지 누가 가장 빨리 올라가는가를 겨룬다. 서울 시내를 지나가기는 하지만 진짜 경기는 사직공원 옆 오르막길인 인왕산로로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이 경기의 가장 큰 매력은 서울에서 가장 높고 긴 '언덕'을 오른다는 데 있다.

이 경기는 비록 시간을 다투는 경기이기는 하지만, 결승점 도착이나 등수에 연연해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시간이나 등수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북악산하늘길을 끝까지 오르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사실 이날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이 그동안 자전거를 얼마나 열렬히 사랑해 왔는지를 증명하는 날이 되는 셈이다.

6킬로미터에 가까운 비탈길을 끝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이 길을 오른다. 그 경기가 그 사이 연기와 중단을 반복하면서도 지금까지 6회째를 이어오고 있다. 최후의 순간에 숨이 넘어갈 듯한 고통을 맛보면서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그게 순전히 그놈의 '사랑' 때문이다.

▲ 북악산하늘길. ⓒ 성낙선


서울에서 아름다운 도로 중에 하나로 꼽히는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행복감 또한 이 대회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 중에 하나다. 이제 이 높고 긴 언덕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으레 한 번쯤 다녀가야 하는 여행길 중에 하나가 되었다. 대회와 상관없이 북악산하늘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그들이 걸어서 올라가는 것도 힘든 길을 굳이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이유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언덕에서 시작해 언덕으로 끝난다. 지독히 사랑하지 않으면, 지독히 괴로울 수도 있는 여행길이다. 북악산하늘길을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서울랠리가 벌어지는 길이고, 또 하나는 아리랑고개에서 시작해 정릉 서쪽 산비탈을 넘어가는 길이다. 두 가지 길 모두 난이도가 비슷해 어느 길을 택하든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좀 더 여행다운 여행을 원한다면, 정릉과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는 게 어떨지 싶다.

▲ 정릉. 정자각 뒤로 신덕왕후의 능이 높게 올려다 보인다. ⓒ 성낙선


왕비가 된 어머니, 비참한 최후를 맞는 아들들

정릉 역시 앞서 다녀온 태릉과 마찬가지로 절대 권력을 둘러싼 투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잘 보여주는 곳이다. 정릉은 조선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가 잠들어 있다. 태조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째 부인이 신의왕후고, 둘째 부인이 신덕왕후다. 신의왕후가 살아 있었다면, 그가 조선 최초의 왕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왕후가 조선 개국 1년 전에 사망하면서,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가 조선의 첫 번째 왕비가 된다.

신덕왕후로서는 뜻하지 않은 영예를 누리게 된 셈이다. 그렇지만 그 영예가 그가 낳은 아들들에게까지는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운명에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다. 신덕왕후에게는 방번과 방석, 두 명의 연년생 아들이 있었다. 야심이 많았던 왕후는 태조와 신하들을 설득해 정실부인이 낳은 여섯 명의 아들들을 제쳐두고 자신의 둘째 아들인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하게 만든다.

처음엔 첫째 아들인 방번을 태조의 후계자로 내세웠다가 그 뜻이 관철되지 않자, 대신 방석을 왕세자 자리에 앉힌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때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정도전과도 손을 잡았다. 물론 신의왕후의 장성한 아들들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신덕왕후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방석이 왕이 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그 산들은 어쩌면 애초 넘을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험난한 여정을 앞을 두고 신덕왕후가 갑자기 숨을 거두면서 왕세자 방석과 연줄이 닿아 있는 이들의 운명은 더욱 암울해진다. 신덕왕후가 숨진 후 2년 뒤 신의왕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세자인 방석을 비롯해 방번과 정도전 등을 모두 죽인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이방원이 정종으로부터 왕권을 넘겨받아 조선 제3대 왕에 오르는 태종이다.

▲ 흥천사 극락보전. 다포식 팔작지붕에 문살 문양이 무척 화려한 건물이다. ⓒ 성낙선


아들들이 비운을 겪은 것과 달리 신덕왕후는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까지 태조의 애틋한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태조는 경복궁에서 가까운 곳(지금의 중구 정동)에 능을 쓰게 하고, 수시로 찾아가 실의를 달랬다고 한다. 능 옆에는 원찰인 흥천사를 세워 왕비의 영혼을 위로했다. 당시 흥천사는 170여 간이나 되는 큰 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비를 향한 태조의 사랑도 거기까지다. 방원이 왕위에 오르고 태조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왕후의 뒤를 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왕이 되고 나서도 태종의 분노는 그칠 줄 모른다. 신덕왕후는 후궁으로 지위가 격하되고, 능은 버려진다. 능은 도성 밖으로 밀려나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뒤로, 한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마저 사라진다. 그 후 신덕왕후가 다시 왕비의 지위로 복위할 수 있었던 것은 현종 때가 되어서다. 신덕왕후의 능이 도성 밖으로 옮겨가면서 흥천사 역시 쇠락의 길을 걷는다. 이 절이 정릉 근처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온 것은 1794년이다. 당시 절을 옮기면서 절 이름을 신흥사라 했다가 조선 말기인 1865년에 다시 이름을 흥천사로 바로잡았다.

▲ 북악산하늘길.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숲속다리. 이 다리가 김신조루트로 이어진다. ⓒ 성낙선


이렇게 쉬었다 가면 언제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지금의 흥천사에서는 조선 초기의 영광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낡고 쇠락한 여느 절 중에 하나로 보일 뿐이다. 겉보기엔 절이 간직한 역사 역시 그리 깊어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흥천사는 '대방'이 절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등 조선 말기의 사찰 양식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극락보전과 명부전 같은 건물은 제법 오래 돼 각각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6호와 67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 지붕 위로 아파트들이 높게 올려다 보이는 게 조금 답답해 보인다. 알게 모르게 그늘이 짙어 보이는 절이다.

▲ 정릉에서 흥천사 가는 길. ⓒ 성낙선

정릉에서 흥천사로 가려면 아파트 공사 예정지로 변한 주택가를 관통해야 한다. 흥천사로 가는 길 역시 꽤 긴 비탈이다. 길 중간에 머리 위로 북악산하늘길이 지나간다. 그 길 밑을 통과해 언덕을 하나 오르내리면 그 길 끝 오른쪽으로 흥천사 일주문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면 흥천사 오른쪽 옆으로 북악산하늘길과 만나는 좁은 마을길이 하나 나온다. 그런데 그 길 옆의 마을이 지금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오래 전 산비탈을 깎아 이곳에 집터를 닦았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담이 허물어지고 대문이 뜯겨나간 집들 위로 가지가 무성한 아름드리 느티나무들만 남았다. 그 나무들이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시절을 상상해 본다. 아름다웠을 풍경이다. 이제 이곳에도 이러저러한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설 것이다. 생각만 해도 삭막하다. 사람들이 떠난 뒤 이 나무들이 이곳에 얼마나 더 오래 버티고 서 있을지 걱정이다.

▲ 흥천사 옆 철거가 진행 중인 마을. 낙엽이 쌓인 지붕 위로 높게 솟은 느티나무들. ⓒ 성낙선

좁은 마을길을 빠져나오면 북악산하늘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산을 오른다. 그나마 흥천사에서 한 번 쉬고 일어난 뒤라 숨이 덜 가쁘다. 그래도 힘든 건 속일 수 없다. 노인전문병원 앞을 지나면서 속도가 부쩍 떨어진다. 아리랑고개에서 내처 달려왔다면 이 구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헐떡여야 한다. 다행히 그 지경까지 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 겨우 1킬로미터 구간을 달렸을 뿐이다. 갈 길이 멀다. 고비는 더 많다.

중간 지점에 정자가 나온다. 정자가 없어도 쉬어가고 싶은 판에, 정자를 보게 되면 더욱 더 견디기 힘들다. 그런데 오늘은 쉬어 갈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김신조 루트를 따라 '호경암'까지 걸어서 갔다 올 생각이다. 자전거를 정자에 묶어두고 북악산하늘길을 머리 위로 가로지르는 '숲속다리'를 건넌다. 오랜 세월 일반인들의 통행이 금지됐던 이 길이 지난 2010년 시민들을 위한 산책로로 개방됐다.

김신조 루트는 1968년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남파된 무장게릴라들이 지나갔던 길을 말한다. 이 길은 김신조 무리의 퇴각로에 해당한다. 당시 김신조 무리는 자하문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정체가 드러나자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하며 달아난다. 그러던 중 게릴라 일부가 호경암에서 군경과 치열한 총격전을 벌였던 것이다.

▲ 쓸쓸한 분위기를 물씬 자아내는 겨울나무. ⓒ 성낙선


북악산하늘길, 도전하고 또 도전하게 만드는 길

▲ 김신조루트. 총탄 자국으로 뒤덮인 호경암. ⓒ 성낙선

그때의 상황이 호경암에 50여 발의 탄흔으로 남아 있다. 탄흔이 어찌나 크고 많은지 당시 이곳에 총을 집중적으로 난사한 흔적이 역력하다. 바위에 엄청난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이 사건은 호경암에만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 미친 여파는 대단하다.

이때 국가 방위를 튼튼히 한다는 목적으로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안보를 빌미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거의 모든 활동에 철퇴를 가한다. 국가안보가 정권 안보를 위한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그로 인해 이 땅의 민주주의가 입은 상처는 지금도 치유하기 힘들 만큼 깊고 크다. 무모한 도발을 감행한 북한의 지배 권력이나, 그걸 빌미로 제 욕망을 실현하는 데 전력을 다한 남쪽 권력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안보는 누구를 위한 안보인지가 중요하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정권이 내세우는 안보는 특권층을 위한 '가짜 안보'일 가능성이 높다. 천안함이 침몰하고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진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다. 두 가지 사건 모두 결국 국민을 위하는 안보, 평화를 지향하는 '진짜 안보'가 무엇인지를 무시한 탓이다.

김신조루트에서 되돌아 나와 다시 북악산하늘길을 오른다. 이제부터 정상까지 더 이상 쉬어갈 일이 없다. 힘들어도 참아야 하고, 괴로워도 견뎌야 한다. 어떻게 보면 참 팍팍한 길이다. 그렇다고 그 길이 무작정 힘들고 괴롭기만 한 것도 아니다. 고통을 넘어서 때때로 쾌감이 밀려온다. 언덕 위에서 쉼없이 페달을 굴리는 나를 발견하는 것처럼 유쾌한 것도 없다. 길을 오르는 도중에 몇 차례 더 고비를 맞는다.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견딘다.

▲ 북악산하늘길 정상, 북악팔각정. ⓒ 성낙선

북악산하늘길은 자전거여행자로 하여금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길이기도 하다. 처음엔 중간에 쉬어가는 일 없이 단번에 정상까지 오르는 것에 도전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그게 가능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얼마나 빨리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지 도전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한계에 다다라 더 이상 시간을 단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때부터는 또 다른 목표에 도전하게 된다.

바로 도전하지 않는 여행에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전거여행자는 결국 처음에 자전거를 타려고 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내 일상에 도전은 사라지고 다시 자전거 타는 일만 남는다. 사실 자전거여행자인 나는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오르내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서울에 언덕이 없었다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내 일상이 이렇게까지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북악산하늘길'은 '북악스카이웨이'라고도 불리며, 공식 도로명은 '북악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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