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그녀는 왜 변기 위에서 잤을까
[내 인생의 꼼수④] 회사에서 부리는 얄팍한 꼼수를 소개합니다
'꼼수' 열풍입니다. 평생 한 번 가보지도 못한 내곡동이 익숙해졌고, 관심 없었던 디도스(DDoS)가 뭔지도 알게 됐습니다. 블록버스터급 꼼수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 초대형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어떤 꼼수들이 숨어 있을까요.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일상 속의 크고 작은 꼼수를 모아 봤습니다. [편집자말]
▲ 평소에는 이보다 더 하지만, 나름 정리된 바탕화면이다. ⓒ 박수현
잔꾀, 얄팍한 술수를 부린다는 의미의 단어, '꼼수'. 왠지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척이나 나와 친근한 단어가 됐다. 왜냐고? 바로 내가 꼼수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체를 들썩이게 한 <나는 꼼수다>와는 차원이 다른 진짜 얄팍한 꼼수! 나만의 꼼수는 일터에서 벌어지는 소심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혹시라도 이 기사를 상사분들이 읽을까봐 지금도 손이 덜덜 떨리기도 하지만.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다. 이런 신입에게 얼마나 많은 일을 맡기겠는가. 물론 일이 많지는 않지만, 바쁠 때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분주하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일이 없는 한가한 시간! 선배님들, 상사님들 모두 정신없이 바쁘신데 막내 혼자 한가롭게 있는 것은 정말 민망한 일이다. 그 민망함을 피해 보려고, 몇몇 꼼수를 생각해 냈다. 적어도 '저도 지금 좀 바빠요'라는 분위기는 풍겨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 꼼수는 바로 '서류 쌓아놓기'. 일을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 찾아놓았던 여러 자료들과 인쇄물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놓은 보람을 이때 느낄 수 있다. 책상 위에 서류들을 잔뜩 쌓아놓고 정리하면서 뒤척거리면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 가끔 눈에 들어오는 서류들은 밑줄 치면서 읽으면 상식도 늘고, 일도 하는 것 같아서 일거양득이다.
또 다른 꼼수는 바로 '바탕화면에 파일 늘어놓기'다. 파일을 폴더에 넣어 정리하지 않고 모두 다 바탕화면에 깔아 놓으면 일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바빠 바탕화면을 일일이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또, 파일을 찾기 편하도록 일부러 바탕화면에 깔아 놓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중간 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바탕화면에 파일을 깔아 놓는 것도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다. 무질서 속에서 나름의 체계를 세워놔야 한다. 무분별하게 파일을 열거하지 않고 비슷한 업무별로 묶어 놓으면 매우 편하다. 파일들을 정신없이 늘어만 놨다가는 정작 필요할 때 빨리 찾지 못하는 불상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변기도 때론 안락의자가 될 수 있어요
▲ 화장실에서 숙면을. 무조건 쉬어야 한다. 1초가 아깝다. ⓒ 김지현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졸음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무실 안 내 자리는 사면초가를 방불케 한다. 회사의 막내에게는 보통 개방된 곳의 자리나 상사분들이 둘러싸고 있는 곳으로 자리가 배정되기 때문. 그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없다. 항상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는 몰려오는 졸음을 쫓거나, 졸음에 굴복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만하면 이 두 가지를 모두 누릴 수 있다. 이럴 때면 나는 유유히 화장실로 향한다. 가급적 사람이 붐비지 않는 화장실을 택하는 것이 좋다. 함께 막내로 들어와 회사생활을 함께 하고 있는 내 동기는 이런 방법을 이용해 가끔 화장실에 가서 5분 정도 숙면을 취하는 자체휴식을 취하곤 한다. 어느 날, 잠깐의 숙면을 취하고 온 그녀는 졸음과 한바탕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변기 뚜껑을 닫고 변기 뒤쪽에 있는 선반에 머리를 대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아직 나는 그런 경지(?)까지는 오르지 못해 숙면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화장실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나름대로 졸음을 쫓는다.
나는 화장실에서 쉬다 오는 방법뿐만 아니라 또 다른 휴식 방법을 쓴다. 바로 복사실로 복사하러 가는 것. 내가 일하는 곳은 복사실이 사무실과 좀 떨어져 있다. 덕분에 복사실은 복사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쿨하게 쉬는 장소도 된다.
복사실에 가면 꼭 내가 코피스족이 된 듯한 기분이다(코피스족은 카페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업무를 보는 직장인을 의미하는 신조어).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보고 싶었던 책이나 자료들을 복사하면서 잠깐이나마 곤두섰던 촉수를 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복사할 일도 생기지 않거니와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이 꼼수를 부리지 않은 지 오래다.
주위를 살피고 감행한 산책... 참 괜찮네!
앞서 고백한 나의 꼼수들이 좀 소극적인 그것이라면, 지금부터 이야기할 꼼수는 좀 대범(?)한 편에 속한다. 바로 밖으로 나가는 것. 밖으로 나갈 때는 실내에서 신고 있던 실내화를 신고, 반드시 서류를 챙겨야 한다. 돈도 지갑에 넣어가기보다 필요한 금액만 따로 주머니에 넣고 나가길 권한다.
이렇게 몰래 나가 무엇을 하느냐고? 나는 주로 회사주변을 산책한다. 가끔 간식도 사 먹지만 남들 일할 때 혼자 달콤한 것을 먹는 게 양심에 찔려 그만뒀다. 밖에 나가 시원하게 바람을 쐬며 회사 주변을 한 바퀴 걷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고 굳었던 몸도 어느 정도 풀려 다시 일할 기분이 샘솟는다.
물론 회사에 다시 들어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도록 숨을 가라앉혀야 한다. 사무실 사람들에게 서류를 들고 다른 부서에 다녀왔거나, 복사실을 다녀왔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매번 가슴이 벌렁벌렁하다.
은밀하고 신속해야 할 꼼수... 때로는 좀 위험하다
▲ 이럴 때만큼 동기가 고마울 때가 없다. ⓒ 김지현
회사 안에서 동기와 딱 붙어 다니는 것은 썩 좋지 않은 습관이다. 그러나 동기만큼 회사 생활의 고충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렇기에 가끔 동기와 나누는 수다는 정말 꿀맛이다. 퇴근 후 저녁에 따로 만나는 방법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업무 중간에 잠깐 수다를 떨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
물론 메신저가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모니터 속 대화는 뭔가 시원한 맛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차를 두고 나가 밖에서 몰래 만나는 방법을 택했다. 3~5분 간격으로 시간차를 두고 화장실에 가는 척 나간다. 그리곤 우리만의 비밀 회동 장소에서 만나 약 10분 정도 수다를 떨다가 다시 시간 간격을 두고 자연스레 사무실에 복귀하면 된다. 그저 화장실을 좀 오래 다녀온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처럼 짤막한 휴식은 업무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중간에 부서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대략 난감'이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다. 나는 먼저 사무실을 떠난 동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급작스럽게 비밀 회동이 의결된 터라 휴대전화를 챙기지 못한 채 부랴부랴 나왔다. 그런데 5분이 넘도록 동기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놓고 온 상황이라 사무실 내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 다시 사무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돌아가는 길목에서 상사분들과 마주친 게 아닌가. 상사분들의 눈빛이 냉랭하게 느껴졌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따끔하게 느껴지는 메시지가 뇌리에 스쳤다.
'뭐야. 넌 왜 거기서 나오는 거냐?'
물론 내가 찔려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 강렬한 메시지를 받고 머리가 멍해졌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동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금쪽같은 시간을 날린 게 아쉬워 메신저로 대화를 걸었다.
"언니! 어떻게 된 거야?"
"미안…. 좀 위험해서 못 나갔어."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나가려고 하는데 상사분들이 복도에 서 있는 거야! 지나갔다가 좀 늦게 들어오면,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볼까봐 다른 부서 가는 척했어. 너 휴대폰도 놓고 가서 문자도 못 보내고…. 미안. 흑흑."
"헐…. 나 아까 들어올 때 마주쳤는데…."
하마터면 꼼수 부린 게 걸려서 찍힐 뻔했다. '입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꼼수질이냐'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 생활은 꼬일 게 분명하다. 그래도 다행히 들통 나진 않았고, 지금은 이런 위험한 꼼수는 부리지 않는다.
다양한 나의 꼼수들. 이들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나마 잠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통로가 돼 주곤 한다. 이런 꼼수들마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내일은 뭐 하지?'라며 머리를 굴리고 있지 않을까. 물론 내 일터에서의 소소한 꼼수를 보며 '이 사람은 대체 뭘 믿고 이러느냐'고 혀를 찰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꼼수 속에서도 일만큼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 일하다가 지친 마음을 달랠 때 사용하는 꼼수들. 무조건 '한심하다'고 손가락질 받아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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