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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기후변화라고요?

[주장] 정부는 빈곤층을 위한 난방대책부터 내놔야

등록|2011.12.21 17:46 수정|2011.12.21 17:46
조용한 오후의 사무실, 갑자기 관리실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에너지 관리공단에서 동절기 난방온도 확인을 위해 각 사무실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몇몇 직원이 후다닥 난방조절기 온도설정을 확인하러 달려간다.

지난 12월 15일에 구청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제목은 '에너지 사용제한 안내문'. 공문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최근 동절기에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저온 현상이 맞물리면서 2009년이후부터 겨울철에 연중 최대 전력피크치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금년 동절기에는 난방전력 사용량의 증가로 예비전력 수준이 안정적 전력공급이 가능한 400만 kW 이하의 기간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1월 2~3주간은 100만 kW 이하의 전력위기 상황까지도 예상되고 있습니다. … 이 공고에 따라 귀 건물은 난방온도 재한대상이며, 위반시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됨을 알려 드립니다. (최고 300만원)"

이 공문을 받은 날, 날씨가 무척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사무실은 보통 실내 난방온도를 23~24도 사이로 설정해 놓는다. 이 공문을 받고 설정온도를 20도로 바꿔 봤다. 그랬더니, 실내에 냉기가 퍼진다. 그래도 민간부문은 20℃ 이하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알고보니 공공기관은 난방온도를 18℃ 이하로 유지해야 한단다.

공문을 다시 읽어보니 정부에서 하는 정책이 한심하고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그것도 겨울 들어 다짜고짜 난방온도를 냉방 수준으로 내리라고 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니…. 공문에는 '연중 최대 전력피크치가 발생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과연 그것이 무조건 기후변화 탓일까.

잠시 다른 얘기를 하려한다. 최근에 수돗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일이 있었다. 이 일이 발생한 두 아파트 게시판에는 공문이 한 장 걸려 있었다. '최근 이상기후로 인하여 한강 상수원에 악취유발물질이 대량 발생하였다'는 내용의 공문이었다. 뭐든 만만하면 '기후변화'를 운운한다.

지난 1992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 당시,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무슨 문제만 생기면 기후변화를 운운한다. 혹시 클린턴 처럼 "문제는 기후변화야, 이 멍청아"라고 말하면 뭐든 게 해결되는 걸로 알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나라 전기값이 유난히 싼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기업이 사용하는 전기가 굉장히 싸다고 들었다. 기업에게는 발전단가에도 못 미치는 값으로 전기를 제공한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 전기 수요가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전기료를 올리니 마니 논란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시민들에게 난방온도를 낮춰라, 안 그러면 벌금을 물리곘다며 안내문을 전달하는 것이 전부인가.

정부가 그토록 소통을 원한다면 시민들에게 정확한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 함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자고 제안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혹시 정부는 시민들을 벌금 얘기가 나오지 않으면 시책에 따르지 않는 수준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또한, 에너지를 절약하지 않으면, 안 그래도 좁은 땅덩이에 밀집된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있는 원자력 발전소도 이번 겨울 들어 자주 고장났다고 한다.

예비전력이 부족하면 대규모 정전사태도 있을 수 있으니 차라리 정부가 '다같이 내복을 껴입고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자'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지구를 위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함께 노력하자고 말하는 것이 더 낫겠다.

정부는 무조건 기후변화탓만 할 것이 아니라 추운 겨울 난방시설이 없어 각종 질병에 시달리거나 죽는 빈곤층을 위한 대책부터 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난방비가 비싸 부탄가스로 난방을 하다 손자를 잃은 한 가족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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