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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모래톱은 아이 위해 남아야할 유산입니다

[여행] 안동, 병산서원에 다녀왔습니다

등록|2011.12.22 20:11 수정|2011.12.22 20:11
들썩 들썩, 흔들흔들, 저희를 태운 차는 이리저리 움푹 패인 길을 지나면서 요동을 칩니다. 그때마다 차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이쿠! 어이쿠! 저절로 장단을 맞추게 되지요. 이렇게 안동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으로 넘어가는 길은, 완전히 자연 친화적인 길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길은 포장을 하지 않고 이대로 놔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병산서원을 만나러 갈 때는, 이런 길이 더 좋습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막 파헤쳐지고 있는 '병산리습지'를 보면서 지나왔기에 씁쓸한 기분은 쉽게 가셔지질 않습니다. 그 넓고 광대한 습지는 각종 공사장비에 위해 파헤쳐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조금 더 지나면 이곳의 지형이 완전히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손대지 말아야합니다. "방치하는 것이 제일 잘 보존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병산서원에 가까워지면, 또 멋진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서원 앞에 펼쳐진 모래톱이지요. 광활한 모래가 펼쳐진 모습을 보면 누구라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모래톱으로 내려 갈 수 있습니다. ⓒ 방상철


사적 제 260호인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선조 8년(1575)에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온 곳이라고 합니다. 류성룡은 선조 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이지요. 그가 죽은 뒤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패를 모시고 사당을 세웠다고 합니다. 또한 이곳은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존속된 곳 중 하나라고 합니다.

저희 일행은 일단 모래톱보다는 서원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모래를 밝고 강가로 먼저 가기를 원했지만, 어른들이 우르르 몰려가니 할 수 없이 뒤따라왔죠. 처음 보이는 문이 "복례문"입니다. 자세히 보면 이 복례문 뒤로 만대루가 살짝 보입니다.

▲ 병산서원의 정문격인, 복례문 ⓒ 방상철



▲ 복례문을 지나면 바로 만대루가 나옵니다. ⓒ 방상철




▲ 만대루로 올라가는 계단이 참 인상적입니다. 통나무를 그대로 가공한 모습이지요. ⓒ 방상철




만대루는 상당히 넓습니다. 누군가 그랬지요. 여기에 200명이 다 앉아도 자리가 남는다고 말이죠. 안타까운 것은 지금은 못 올라가게 해놨다는 것입니다. 좀 일찍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누구나 이 누각에 올라서 낙동강변을 한 없이 바라봤을 텐데요.

만대루 뒤로는 동재와 서재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고, 그 중앙에 입교당이 만대루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 입교당에서 앉아서 만재루를 보면, 그 사이로 보이는 풍경 또한 장관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 한 없이 입교당에 앉아서 그 풍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 입교당 마루에 앉아 만대루를 바라보면, 누각기둥을 통해 보이는 낙동강 풍경이 여행객의 발을 묶습니다. ⓒ 방상철




입교당 뒤로 돌아나가면 보호수로 지정된 배롱나무가 하얀 속내를 드러내고 멋들어지게 서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서애 류성룡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비록 문은 굳게 잠겨있지만, 잠시 그의 넋을 위로하면서 고개를 숙여봅니다.

▲ 사람이 만들었겠지만, 마치 자연의 일부 같은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 방상철




자! 이렇게 병산서원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면 사람들이 한번씩 궁금해서 들어 가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통시'라고 불리는 화장실입니다. 이제는  '머슴뒷간'이라고 더 알려져 있죠. 어느 교수님이 책에 그렇게 적은 이후로 아마, 그렇게 불리나봅니다. 또 누구는 '골뱅이 뒷간'이라고도 하더군요. 생긴 모습을 따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죠.

그런데, 이 화장실이 멋있다고 다들 칭찬이 자자합니다. 하지만 전 약간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 머슴뒷간은, 추측하건대, 서생을 따라온 머슴들이 사용한 화장실이라고, 말들을 하더군요. 추운 겨울날 볼일을 보려고 바지춤을 내리면, '휭' 한 바람에 상당히 추웠을 겁니다. 문이 없으니 당연히 바람이 잘 들어오겠죠. 또 비나 눈이 오면 어찌합니까? 지붕도 없는 곳이라 사용하기 힘들었을 듯합니다.

▲ 서원을 빠져나오면 보이는 건축물인데, 일명 '머슴뒷간' 이라는 곳입니다. 서원과 같이 지어졌고, 최근에 보수를 했다고 합니다. ⓒ 방상철



▲ 그 안을 보니 이렇게 돼있습니다. 궁금해도 안은 들여다보지 마세요. 깨끗하진 않습니다. ⓒ 방상철




진짜로 저곳이, 예전에 머슴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이었을까요? 아무리 머슴이라고 하지만, 화장실까지 저렇게 지어야했을까? 정말이라면, 공부하는 서생들도 맘이 편치 않았겠죠? 아! 모르겠습니다.

이제 아이들과 강변으로 내려가 볼 시간입니다. 사내놈들은 어느새 조약돌을 한주먹 주워서 주머니가 볼록해지도록 집어넣고 새하얀 모래를 밟고 강가로 내달립니다. 저도 아이들 뒤를 쫓으며 이곳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을 지새웠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그 옛날, 공부하던 서생들도 이 모래에서 놀았을 것이고, 그들의 머슴들도 그랬으면 좋았겠고, 현대 들어서는 이곳을 답사하는 사람들이 이 모래톱에서 놀았을 겁니다. 그리고 미래 저 아이들도 모닥불을 피워놓고 반대편 여자아이들의 불그레한 얼굴을 보며 연애를 걸어볼 수도 있을 겁니다.

▲ 아이들 주머니에선 끊임없이 조약돌이 나옵니다. 많이도 주웠네! ⓒ 방상철




풍덩, 풍덩! 아이들이 날리는 돌조각이 강물에 떨어집니다. 먼 훗날 저들이 이곳에 다시오면 지금의 이 모습을 기억하겠죠. '아! 내가 그때 이곳에서 이렇게 놀았다'라고 추억에 잠길 겁니다. 그때도 아무런 변화 없이 지금 이대로, 이곳이 지켜지길 기원해보며, 아들 주머니에서 조약돌을 하나 빼앗아 멀리 멀리 날려봅니다.  "풍~~~~덩!"

덧붙이는 글 12월 11일 다녀왔습니다. 이 글은 제 블로그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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