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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도 분식점도 없는 학교... 보내야 할까요

기다리던 시골학교 입학문자... 신난 아내 "여보 과외 걱정 말래요"

등록|2011.12.25 19:37 수정|2011.12.25 21:22

▲ 아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시골학교에서 온 반가운 문자메시지입니다. ⓒ 황주찬


지난 21일 오후 3시, 아내가 시골학교로부터 면접 보러 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아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소식입니다.(관련기사 : 7살 큰아들에게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다가오는 성스런 탄생엔 비할 바 아니지만 아내에겐 올해 최고 기쁜 소식입니다. 아내는 당연히 아들에게 자랑스레 말했죠. 그런데 큰애 표정이 의외로 무덤덤합니다.

큰아들 : 엄마, 규현이형하고 같은 학교 다니면 안 돼요?
엄마 : 왜? 시골학교 가면 맘껏 놀 수 있는데….
큰아들 : 형이랑 학교 다니면 장난감도 실컷 가지고 놀 수 있잖아요.
엄마 : 시골학교 가면 3일은 산에서 논대…

사촌형이 다니는 아파트 옆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겁니다. 아내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곧 아들 마음이 왜 바뀌었는지 알아챘습니다. 사촌형과 같이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말은 핑계입니다. 학교 앞 문방구가 큰애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온갖 장난감이 아이 마음을 확 바꿔 놓은 거죠. 눈치 빠르게도 녀석은 시골가면 휘황찬란한 장난감 구경도 못할 거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산에서 직접 만들어 놀던 장난감은 원시적 도구에 불과했던 걸까요?

"엄마, 사촌형이랑 같은 학교 다니면 안 돼요?"

▲ 아파트 옆 초등학교 실내체육관입니다. 추운날씨에 많은 이들이 고사리 손을 잡고 입학원서 내러 이곳에 들렀습니다. ⓒ 황주찬

22일 오후, 추운 날씨인데 아파트 옆 초등학교가 시끌벅적합니다. 오늘은 큰애 또래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원서를 쓰는 날입니다. 면접도 있답니다. 제가 괜히 긴장됩니다. 많은 이들이 고사리 손을 잡고 초등학교 실내체육관으로 종종걸음을 놓습니다.
시골학교와 더불어 이곳에 원서를 내러 온 저와 아내도 뭇사람 속으로 힘차게 걸어갑니다. 생애 최초로 면접이란 걸 하게 될 큰애는 어린이집에서 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학교 앞에선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뭔가를 열심히 나눠줍니다. 태권도 도장을 비롯해 온갖 학습지 선생님들이 다 모였습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 부모 손에 정보를 던져 주느라 정신없습니다. 앞으로 아들이 지게 될 세상 짐이란 생각에 씁쓸함이 앞섭니다. 실내는 의외로 따뜻합니다. 아파트별로 나눠진 종이 글씨 앞에 책상 두 개가 놓여 있습니다. 원서접수와 면접을 위한 자리입니다.

▲ 큰애가 어린이집에서 만든 원시적 장난감(?)입니다. 서서히 화려한 장난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 황주찬



뒤늦게 도착한 큰애가 접수를 마치고 면접을 준비합니다. 엄마와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큰애는 꽤 커 보이는 실내체육관 구경에 온 신경을 쏟다가 가끔 앞선 아이 면접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그러나 그 시간도 길지 않습니다. 이내 딴청을 피웁니다.
다행히 아내가 손을 꼭 잡고 있어 다른 곳으로 줄달음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다 아내가 한눈파는 사이 느슨해진 손을 재빨리 빼냅니다. 유심히 봐뒀던 물건을 향해 힘차게 달려갑니다. 산에서 익힌 나무타기 실력을 맘껏 발휘할 물건을 찾은 것입니다.

배구시합 심판대처럼 보이는데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습니다. 아들은 맨 꼭대기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아 주변을 둘러봅니다. 잠시 후, 접수받던 선생님이 뒤를 휙 돌아보더니 위험하다며 내려오랍니다. 한바탕 호통을 들은 아들은 겸연쩍은 듯 황급히 그곳을 탈출합니다.

곧 아내 손에 잡힌 아들이 다시 면접순서를 기다립니다. 이윽고 면접 보는 선생님 앞에 앉았습니다. 선생님은 아들에게 준비된 종이를 펼쳐 보이며 숫자를 읽어보랍니다. 큰애가 어리둥절해 하자 이번엔 글씨 쓴 종이를 꺼냅니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라 말합니다. 큰애는 목소리도 우렁차게 '방긋 웃는 꽃잎마다'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에 아들 얼굴이 붉어집니다.

▲ 선생님 꾸중에 고개를 푹 숙입니다. ⓒ 황주찬


"글을 잘못 배웠군, 통째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지."

글이 좀 더 있었는데 첫째 문장만 읽은 겁니다. 선생님은 글씨도 아는데 숫자는 왜 모르냐며 다시 숫자가 적힌 종이를 펼쳐듭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읽어보랍니다. 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숫자를 또박또박 읽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선생님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에 또다시 고개가 숙여집니다.

"다시 읽어보니 잘 읽네. 선생님을 속였어… 혼나야겠네."

참, 난감합니다. 분위기가 어색해졌습니다. 큰애 표정도 좋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왜 그랬냐며 물었더니 숫자는 어느 걸 읽으라는지 몰랐답니다. 다른 건 눈치가 빠른데 왜 이런 일엔 서툰지 속상합니다.

문방구도 분식점도 없는 시골학교... "여기까지 걸어와야 해요?"

▲ 시골학교 교문을 나서면 이런 풍경이 펼쳐집니다. 문방구, 분식점이 없습니다. 큰애는 이런 모습에 실망한 걸까요? ⓒ 황주찬


그렇게 아파트 옆 초등학교 입학원서를 써내고 다시 차를 몰아 시골학교로 향합니다. 오늘은 두 군데를 들러야 합니다. 아파트 옆 초등학교 입학원서 쓰는 일과 시골학교 신입생 면접이 1시간 간격으로 이어집니다. 아내가 기대했던 곳이라 귀찮다는 말도 못하고 재빨리 아들을 챙겨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실은 시골학교에서 문자온 대로라면 아내만 가면 될 일입니다. 그 학교에서는 굳이 아이들은 안 와도 된답니다. 대신 아이들 부모가 꼭 참석해서 학교 운영방침을 들으라는 겁니다. 어쨌거나 큰애와 아내를 싣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시골학교에 도착했습니다.

건물로 사라지는 아내를 보고 주변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문방구도 없고 분식점도 없습니다. 마냥 펼쳐진 너른 들판이 있을 뿐입니다. 아들 녀석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시간은 어느새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 세 시간을 채워갑니다. 한참을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넣었더니 아내가 이내 끊어 버리네요. 아직도 면접이 끝나지 않았나 봅니다. 이윽고 장장 세 시간의 면접을 마친 아내가 건물에서 나왔습니다. 차에 오른 아내가 지치지도 않은지 저에게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냅니다.

"과외 걱정 할 필요 없대요. 학원 보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학교 선생님들이 다 알아서 해주신대요. 그리고 일주일에 3일은 산에 간대요. 아이들 체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라네. 거리가 조금 멀어서 그렇지 아파트 옆 초등학교보다 이곳이 훨씬 낫죠?"

별말 없이 뒷자리에서 조용히 듣던 큰애가 한 마디 합니다.

"엄마, 그런데 너무 멀지 않아요? 여기까지 걸어와야 돼요?"

아들은 이곳까지 걸어 올 일이 큰 걱정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아내는 쪼들리는 살림에 가슴을 짓누르는 사교육비가 큰 걱정이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큰애가 시골로 학교를 다니게 됐습니다. 봄이면 너른 들판에서 모내기도 하고 산에도 간답니다. 쉬는 시간에는 운동장에서 맘껏 공도 차겠지요. 등굣길이 좀 먼데 저와 큰아들이 부지런을 떨면 그뿐입니다. 무엇보다 기쁜 건 아내 머리를 짓누르던 그 무언가가 가벼워졌다는 겁니다. 그 일 있은 후, 아내 목소리가 밝아졌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제 마음도 조금 가벼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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