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무차별적인 깔때기의 시대가 왔다
쫄지마 40~50대, 우리는 아직 청춘이다.
'서울말은 끝말만 올리면 되는 거 모르~니↑'
나는 개그 보고 웃는 사람들 보고 '왜 웃지?' 심각해지는 진지남이다. 개그맨들에게는 '밥맛'이다. 그런데 매주 듣는 개그맨 허경환의 멘트에는 늘 '빵' 터진다. 그러나 오늘은 웃다가 갑자기 씁쓸해졌다.
이미 '천수'를 다한 한나라당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전라도에서 자신들이 개혁 혹은 진보진영에 있다고 주장하는 민주당 쪽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이 웃는다. 전라도 정치인들은 고향에서 사투리를 쓰다가도 서울만 올라가면 슬그머니 끝말을 올리는 것이 틀림없다. 고향에서는 여당과 별반 차이 없는 그들이 왜 서울만 가면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들에게 진보는 계륵이다.
정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정치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앵앵'거리며 4년마다 늘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그들의 소음을 인내하고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정치는 늘 피하고 싶은 스트레스다.
정치가 싫었다. 정치는 왜 만들어 졌을까? 스스로 진화하던 인간을 급하게 창조한 신이, 창조 이전의 사냥본능을 숨기기 위해 만든 안전장치가 아닐까? 때로는 정치는 전쟁과 콜로세움에서 실패한 신이 인간의 우민화를 위해 새로 만든 놀이 같기도 하다.
정말 싫어하는 캐릭터 1등 정봉주, 2등 김어준
이런 성향상 나는 '나꼼수'를 듣지 않아야 한다. 그런 내가 정봉주의 팬이 됐다. 상식적으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이는 주진우 기자의 팬이 되어야 한다. 비꼬고 독설을 내뱉는 김어준 총수나 남의 이야기는 경청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려는 정봉주 전 의원은 좋아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거기다 별로 호감 느끼지 못하는 정당 소속이다. 그런데 수감을 앞둔 정봉주 전 의원의 눈물을 보면서 그의 '깔때기'에 열광했던 내 안의 것들이 선명해 졌다.
'잘 살았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90년대를 청년기로 살았던 세대의 독특한 인사법이다. 나는 '참교육세대'로 불리는 90년대 세대다. 그동안 나는 '시대는 승리했지만 개인은 좌절당한 100만의 우울한 40대 중 한명'이었다. 늘 시대에 대한 원죄의식 혹은 피해의식으로 한 발짝 물러서서 살았다. 늘 했지만 투표하는 게 지겨웠다.
깔때기 - '나 잘하고 있는 거지?', 늘 확인하고 싶었다.
대인의 풍모 - '나 떨고 있니?', 선택의 순간에 우유부단하고 싶지 않았다.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 '내가 젤 잘나가.', 나를 알지만 그래도 칭찬 받고 싶었다.
어찌 보면 정봉주는 '음유하는 시인'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다. 사실 전사로서 재능은 별로다. 쉽게 마음을 다치고 회복하기 전까지는 잠 못 이룰 사람이다. 겁이 많고 우울하다가도 칭찬을 받으면 금세 '헤헤' 거릴 사람이다. 그런데 잔인하게도 '쉽게 상처받고 소심하고 섬세한 남자인' 그를, 시대는 '전사'로 만들어 놓았다. 그 배후에는 야만의 시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추기고 열광'만하는 우리들도 있었다. 즐겼으면 책임져야 한다. 더 어린 김어준총수의 눈물이 나에게는 걱정하는 형의 눈물로 보였다.
쫄지마 40~50대,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준비도 연습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어른이 되었고 부모가 되었다. '아빠와 결혼 할거야.'가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 할거야.'로 바뀌어 가는 현실은 우울하다. 가끔씩은 아들딸에게 놀아달라고 떼를 써야 한다.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사실 나도 그처럼 때때로 깔때기를 들이대고 싶었다. 남이야 어찌 보든 2NE1의 '내가 젤 잘나가.'도 부르고 싶었다. 중년의 나는 청바지를 입고 싶었고 여전히 잘나가고 싶었다.
'오빠의 시절'이 가고 우리는 의기소침해 졌고 솔직히 쫄았었다. 그런데 내 나이의 중년들이 사고를 쳤다. 그들은 쫄지 않는다. 그럼 나도 '쫄' 필요 없다. 두려움은 온전히 내 안의 것이었다. '아빠 셋'과 '오빠 한명'이 만든 SNS 파르티잔, 온라인 게릴라들의 발칙한 반란이 '야만과 폭력'의 얼굴을 감추고 세상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쥔 그들을 어떻게 휘저어 놓았는지 똑똑히 보았다. 세상의 아빠는 다수고 그들은 소수다. 쫀 것은 그들이다. 김어준총수의 말처럼 그들이 움직이는 것은 쫄았기 때문이다.
쪽수로 맞장을 터야 했던 옛날과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의기소침하고 좌절했었다. '나꼼수'를 통해 알았다. 권력은 오프공간을 통해서만 개인의 삶을 파괴할 수 있지만 이제는 역으로 개인도 SNS를 통해 권력의 시스템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으로 오프라인에 사람이 모이고 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역습이 시작되었다. 아빠의 댓글로부터 세상은 진화를 시작한다.
'나꼼수'가 40~50대에게 준 것은 시간 때우기에 좋은 시사와 풍자나 대리만족이 아니었다. 40~50대에게 '쫄지마. 나 아직 한방 있는 사람이야.'하는 자존감을 심어 주었다. '오빠의 시대'는 갔어도 '아빠 최고!'는 여전히 사그라지는 심지에 다시 불을 '확' 댕긴다. '나는 꼼수다.'를 통해 '은둔과 몽환의 발기부전을 앓던 40~50대'는 '치유의 희망'을 본 것이다.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린 딸아이에게 차안에서 물었다.
"남자친구와 아빠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누구를 선택 할거야?"
"당연히 아빠죠. 아빠는 당연한 걸 묻고 그래요."
요망스런 딸아이의 답변에 '아직까지 딸아이에게 아빠는 최고'라고 속는다. 그래 '아빠의 청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빠 아직 안 죽었다. ㅎㅎ'
나는 개그 보고 웃는 사람들 보고 '왜 웃지?' 심각해지는 진지남이다. 개그맨들에게는 '밥맛'이다. 그런데 매주 듣는 개그맨 허경환의 멘트에는 늘 '빵' 터진다. 그러나 오늘은 웃다가 갑자기 씁쓸해졌다.
이미 '천수'를 다한 한나라당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전라도에서 자신들이 개혁 혹은 진보진영에 있다고 주장하는 민주당 쪽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이 웃는다. 전라도 정치인들은 고향에서 사투리를 쓰다가도 서울만 올라가면 슬그머니 끝말을 올리는 것이 틀림없다. 고향에서는 여당과 별반 차이 없는 그들이 왜 서울만 가면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들에게 진보는 계륵이다.
정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정치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앵앵'거리며 4년마다 늘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그들의 소음을 인내하고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정치는 늘 피하고 싶은 스트레스다.
정치가 싫었다. 정치는 왜 만들어 졌을까? 스스로 진화하던 인간을 급하게 창조한 신이, 창조 이전의 사냥본능을 숨기기 위해 만든 안전장치가 아닐까? 때로는 정치는 전쟁과 콜로세움에서 실패한 신이 인간의 우민화를 위해 새로 만든 놀이 같기도 하다.
정말 싫어하는 캐릭터 1등 정봉주, 2등 김어준
이런 성향상 나는 '나꼼수'를 듣지 않아야 한다. 그런 내가 정봉주의 팬이 됐다. 상식적으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이는 주진우 기자의 팬이 되어야 한다. 비꼬고 독설을 내뱉는 김어준 총수나 남의 이야기는 경청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려는 정봉주 전 의원은 좋아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거기다 별로 호감 느끼지 못하는 정당 소속이다. 그런데 수감을 앞둔 정봉주 전 의원의 눈물을 보면서 그의 '깔때기'에 열광했던 내 안의 것들이 선명해 졌다.
'잘 살았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90년대를 청년기로 살았던 세대의 독특한 인사법이다. 나는 '참교육세대'로 불리는 90년대 세대다. 그동안 나는 '시대는 승리했지만 개인은 좌절당한 100만의 우울한 40대 중 한명'이었다. 늘 시대에 대한 원죄의식 혹은 피해의식으로 한 발짝 물러서서 살았다. 늘 했지만 투표하는 게 지겨웠다.
깔때기 - '나 잘하고 있는 거지?', 늘 확인하고 싶었다.
대인의 풍모 - '나 떨고 있니?', 선택의 순간에 우유부단하고 싶지 않았다.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 '내가 젤 잘나가.', 나를 알지만 그래도 칭찬 받고 싶었다.
어찌 보면 정봉주는 '음유하는 시인'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다. 사실 전사로서 재능은 별로다. 쉽게 마음을 다치고 회복하기 전까지는 잠 못 이룰 사람이다. 겁이 많고 우울하다가도 칭찬을 받으면 금세 '헤헤' 거릴 사람이다. 그런데 잔인하게도 '쉽게 상처받고 소심하고 섬세한 남자인' 그를, 시대는 '전사'로 만들어 놓았다. 그 배후에는 야만의 시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추기고 열광'만하는 우리들도 있었다. 즐겼으면 책임져야 한다. 더 어린 김어준총수의 눈물이 나에게는 걱정하는 형의 눈물로 보였다.
쫄지마 40~50대,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준비도 연습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어른이 되었고 부모가 되었다. '아빠와 결혼 할거야.'가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 할거야.'로 바뀌어 가는 현실은 우울하다. 가끔씩은 아들딸에게 놀아달라고 떼를 써야 한다.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사실 나도 그처럼 때때로 깔때기를 들이대고 싶었다. 남이야 어찌 보든 2NE1의 '내가 젤 잘나가.'도 부르고 싶었다. 중년의 나는 청바지를 입고 싶었고 여전히 잘나가고 싶었다.
'오빠의 시절'이 가고 우리는 의기소침해 졌고 솔직히 쫄았었다. 그런데 내 나이의 중년들이 사고를 쳤다. 그들은 쫄지 않는다. 그럼 나도 '쫄' 필요 없다. 두려움은 온전히 내 안의 것이었다. '아빠 셋'과 '오빠 한명'이 만든 SNS 파르티잔, 온라인 게릴라들의 발칙한 반란이 '야만과 폭력'의 얼굴을 감추고 세상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쥔 그들을 어떻게 휘저어 놓았는지 똑똑히 보았다. 세상의 아빠는 다수고 그들은 소수다. 쫀 것은 그들이다. 김어준총수의 말처럼 그들이 움직이는 것은 쫄았기 때문이다.
쪽수로 맞장을 터야 했던 옛날과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의기소침하고 좌절했었다. '나꼼수'를 통해 알았다. 권력은 오프공간을 통해서만 개인의 삶을 파괴할 수 있지만 이제는 역으로 개인도 SNS를 통해 권력의 시스템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으로 오프라인에 사람이 모이고 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역습이 시작되었다. 아빠의 댓글로부터 세상은 진화를 시작한다.
'나꼼수'가 40~50대에게 준 것은 시간 때우기에 좋은 시사와 풍자나 대리만족이 아니었다. 40~50대에게 '쫄지마. 나 아직 한방 있는 사람이야.'하는 자존감을 심어 주었다. '오빠의 시대'는 갔어도 '아빠 최고!'는 여전히 사그라지는 심지에 다시 불을 '확' 댕긴다. '나는 꼼수다.'를 통해 '은둔과 몽환의 발기부전을 앓던 40~50대'는 '치유의 희망'을 본 것이다.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린 딸아이에게 차안에서 물었다.
"남자친구와 아빠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누구를 선택 할거야?"
"당연히 아빠죠. 아빠는 당연한 걸 묻고 그래요."
요망스런 딸아이의 답변에 '아직까지 딸아이에게 아빠는 최고'라고 속는다. 그래 '아빠의 청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빠 아직 안 죽었다. ㅎㅎ'
덧붙이는 글
내년 3월 건강하게 우리곁으로 돌아 올 아빠 정봉주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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