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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이름은 박유환. 네 이름은 뭐니?"

[인터뷰] <천일의 약속> 이문권 역 박유환 "연기의 매력,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등록|2011.12.26 09:31 수정|2011.12.27 00:10

▲ 그룹 JYJ 박유천의 동생이자 SBS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 이문권 역의 배우 박유환이 22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를 방문,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알츠하이머 증세가 악화된 이후 고모는 아줌마, 남편은 아저씨가 된 이서연에게 남동생 문권이는 그냥 끝까지 문권이었다. 점점 바보가 되어가며 무너지는 자존감의 부스러기들을 고스란히 동생에게 퍼붓고 모질게 대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누구보다 애틋한 동생이었나 보다.

종종 가슴 아픈 상황에 처한 주인공보다 그 곁에서 슬퍼하는 사람을 보면서 더 먹먹해질 때가 있다. <천일의 약속>(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 이문권은 극중 본인의 삶보다 '동생'으로서만 부각되어야 했던 인물이었고, 이를 연기한 박유환(21)은 오로지 누나를 위해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임무 안에서 욕심 내지 않아 더 빛났다. JYJ 멤버 유천의 동생으로 더 잘 알려져 있던 박유환은 이문권을 통해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누구보다 슬프게 울 줄 아는 '지구상에 없는, 화성인 동생'을 연기해냈다.

올해 초, 데뷔작인 MBC <반짝반짝 빛나는>의 나이 많은 조카를 둔 어린 삼촌 한서우에서 이문권이 되며 깊어진 내면 연기를 보여준 박유환을 22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났다. 18층에 위치한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창문에 얼굴을 맞대고 "와, 여기 되게 무섭다!"라고 감탄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해맑은 이문권' 버전이었다.  

▲ "<반짝반짝 빛나는>의 한서우가 보이면 실패한 거라는 생각으로 문권이를 연기했어요. 다음 작품 할 때는 이문권을 버리고 새로운 인물을 담아야죠. 누구나 그 사람만의 삶이 있으니까 쉽게 못 담는 것 같아요." ⓒ 이정민


"형이 알츠하이머 걸렸다고 생각했더니 눈물이!"

- 이문권은 결국 이서연의 기억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사람이 됐어요. 그런 각별한 인물을 연기한 소감부터 듣고 싶어요.
"알츠하이머에 걸린 누나가 있는 문권이를 연기하면서 어쩌면 평생 못 느껴볼 감정을 느껴봤어요. 제가 연기에 큰 매력을 갖는 이유가 내가 살면서 못 느낄 감정들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캐릭터 때문이거든요. 물론 감정신이 많아서 어려운 캐릭터이긴 했죠. 우는 연기가 많지만, 매번 우는 이유도 다 달랐던 것 같아요."

- 이서연은 동생을 의지하면서도 가장 매몰차게 대했는데, 그런 남매 사이가 이해되던가요?
"우리가 대부분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한테 화를 많이 내게 되잖아요. 문권이는 그걸 다 받아들이는 동생이에요. 누나한테 힘든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으려고 하면서, 누나가 살고 싶게끔 하는 인물이죠. 문권이는 저랑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유천이 형이랑 각별하거든요. 드라마 초반에는 누나가 알츠하이머에 걸렸을 때의 감정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형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고 생각하니까 어떤 감정인지 알 것 같았어요. 너무 슬펐죠. 형이 이 사실을 아냐고요? 아마 모를 걸요.(웃음)"

▲ "정을영 감독님은 말씀은 차갑게 하시지만, 정이 되게 많고 따뜻한 분이란 걸 이번 촬영하면서 느꼈어요. 많이 챙겨주고 아들 같이 생각해주셔서 좋았죠. 김수현 작가님도 신마다 문권이의 감정에 대해 알려주시고, 잘 하고 있다고 격려도 해주셨고요. 저는 신인인 만큼 대사를 틀리지 않도록 외웠어요. 김수현 작가님 대본은 쪽대본이 아니라 2~3주 일찍 나오니까 그럴수록 더 좋은 연기를 기대하실 테니 부담도 있었죠." ⓒ 이정민


- 수애 씨와의 연기는 어땠어요? 실제로 10살 이상 차이 나는데.
"촬영을 하는 내내 저는 수애 누나의 본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평상시에도 이서연으로 사는 누나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구나' 감탄했죠. 처음 만났을 때는 누나가 너무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 어려웠어요. 첫 촬영 때 누나가 먼저 '우리는 남매인데 아직 어색한 것 같다'고 연기를 맞춰보자고 해서 조금씩 가까워졌고, 이제 진짜 남매가 된 것 같아요. 촬영장에서 수애 누나를 많이 괴롭혔어요. 신마다 감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조언을 얻으려고요. 누나도 바쁜데 귀찮았을 거예요.(웃음)"

"쑥스러워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 연기로 풀었어요"

- 문권이는 울기도 참 많이 울었어요. 온 얼굴이 다 빨개지면서 울던데, 무슨 생각하면 그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어요?
"어릴 적 힘들었을 때도 생각했고, 형을 생각해도 슬프고. 처음엔 그렇게 몰입했는데 후반부에는 수애 누나 얼굴만 봐도 슬펐어요."

- 이미 본인 안에 내재된 슬픈 감정들이 있나 봐요.
"저는 많다고 생각해요. 워낙 눈물이 많은 아이였어요. 8살 때 미국으로 간 지 얼마 안 되어서 가족 안에 트러블도 있었고, 학교에 가면 인종차별도 심했어요. 그때부터 되게 조용한 아이로 살았어요. 말도 안 하고, 사람에 대한 공포증도 심했죠. '인터넷이 안 된다'고 전화로 고쳐달라는 말도 절대 못했어요. 지금도 어디다가 전화해서 말하는 거 잘 못해요."

▲ "감정신만 찍으면 땀이 막 나요. 원래 그런 건가요? 평상시에는 괜찮은데 감정신만 찍으면..." ⓒ 이정민


- 그나마 6살 차이나는 형이 있어서 든든했을 것 같아요. 혹시 힘들 때 한국에 오고 싶지는 않았어요?
"한국에 오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살았으니까 '그냥 여기가 내 집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집에서 형이랑 가장 많이 놀았어요. 같이 힘드니까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죠. 형은 언제나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 내가 받아야 할 스트레스를 형이 대신 받았어요. 그땐 몰랐는데, 형이 가수 데뷔한다고 한국으로 혼자 떠났을 때 빈자리를 느꼈어요. 형이 없다보니 모든 힘든 일이 다 나한테 오더라고요. 그때 좀 많이 힘들었어요. '내가 왜 형이 해야 하는 일을 겪어야 하지?' 원망도 했는데, 어렸으니까."

- 먼저 연기를 시작한 유천 씨는 동생의 연기를 보고 뭐라고 평가하던가요?
"형은 항상 모니터를 해주는데, 잘 한다고 했다더라고요. 우리 둘이 같이 있을 때는 무뚝뚝해서 그런 얘기 잘 안 해요. 그냥 '수고 많았다' 이런 식이지. 가족 안에서는 조용한 편이에요. 애교도 안 부리고. 근데 쑥스러워서 표현을 못 하는 거지, 마음속으론 그렇지 않으니까. 그래서 연기할 때는 다 표현했어요. 형한테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이 연기에 섞여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 "<천일의 약속> 촬영하면서 아기(극중 서연이 낳은 딸)를 난생 처음 안아봤어요. 어떻게 안는지 몰라서 대기실에서 안는 연습도 했는데, 아기가 되게 무겁더라고요. 하루 종일 안고 있으니까 팔에 알 배겼어요. 그래도 문권이는 누나가 아픈 만큼 더 열심히 하는 아이니까." ⓒ 이정민


-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원래 꿈이 없었어요.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였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형이 출연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선준 역)을 보고, 유천이 형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내 자신이 싫은 게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으로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게 연기자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인 것 같아요."

- 연기를 하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원래 사람들 앞에 위축됐던 본인의 성격도 좀 더 강하게 바뀌었겠어요.
"맞아요. 연기할 때만큼 편해져요. 리허설 할 때는 자신감이 없는데, 카메라 돌고 큐 사인 떨어지면 자신감이 생겨요. 자유롭다고 해야 하나. <반짝반짝 빛나는> 할 때 한서우라는 역이 워낙 선배들에게 '야, 야' 반말해야 하는 역이었잖아요. 처음엔 그게 힘들었는데 김형범 선배님이 '나를 중학생으로 보고 더 심하게 해'라고 하니까 그때 느꼈어요. 연기할 때만큼은 뭐든 다 되는구나. 다만 아쉬웠던 건, 드라마가 끝나기 전까지는 평상시에도 극중 역할처럼 서로를 대하는데, 그때는 그럴 수 없었다는 것? 선배님들에게 평상시에도 '야, 인석아!' 할 수도 없고.(웃음)"

- 실제로도 유천 씨의 동생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천일의 약속>에서도 동생 캐릭터였는데 혹시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나요?
"그런 건 연기하다 보면 바뀐다고 생각해요. 다른 역을 맡아서 소화해내면 되죠. 아직 21살이니까 현재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지금 나이 많은 역할을 못하듯이, 나이 들면 지금의 어린 역할 못하잖아요. 연기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유심히 보게 됐어요. 택시 기사가 운전을 하고 지나가면 '아, 저 사람은 저런 삶을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고. 나중에 제가 택시기사 역할 맡을 수도 있잖아요. 정말 연기하면서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 "손발이 오그라들어도 내 연기는 꼭 모니터 해요. <반짝반짝 빛나는> 할 때는 남들이 잘 한다해도 못하는 것들만 보여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끝날 때쯤에 첫 회를 다시 한 번 보니까 변화의 과정이 보이더라고요." ⓒ 이정민


- 올 한해를 정리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요?
"얻은 것은 꿈. 없던 꿈이 생겼고,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촬영할 때만큼은 행복하니까. 잃은 것은 잠. 원래는 잠이 되게 많았는데 안 피곤하다면 거짓말이죠.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주연 배우는 하루에 2시간 자면서 촬영하고 스태프들은 모든 사람들이 찍을 때까지 일해야 하잖아요. 내가 힘든 건 힘든 게 아니에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촬영장에 들어가면 재밌고 즐거워요. 심각한 신 찍으면 촬영장이 우울한데, 나 혼자 웃고 있으니까 스스로도 '어, 나 왜 이러지?'.(웃음) 연기하다가도 저를 보고 수애 누나가 웃어서 감독님한테 혼난 적도 있어요. 그러다가 감독님도 웃게 되죠.

아, 저번에 수애 누나가 옷을 입고 욕조에 들어가 있다가 박차고 나오는 장면을 찍을 때 정말 웃겼어요. 내가 수건을 들고 누나를 빨리 쫓아가야 했는데 미끄러운 바닥에 벌러덩 넘어져서 완전 '빵!' 터졌죠."

- 트위터를 보니 '혼자 놀기'의 진수던데... 대체 "안녕, 내 이름은 박유환. 네 이름은 뭐니?" 이런 멘션은 왜 남기는 거예요? 자주 쓰는 '뿝뿝뿝'이라는 말은 또 뭐고.
"하하. 심심할 때 트위터를 하곤 해요. 그냥 모두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렇게 쓰면 많은 분들에게 답이 와요. 그럼 '아, 이름이 이거구나'하는 거죠. 심심할 때 혼자 외계어 쓰는데 재밌어요. 그나저나 제 트위터까지 보시다니. 앞으로는 '뿝' 말고 '뿡'이라고 써야겠다!"

▲ 박유환은 올해 MBC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데뷔해 <계백>, SBS <천일의 약속>까지 3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 이정민


박유환은 스타의 스타를 의미하는 '오마이스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아직도 미용실 같은 곳에서 연예인을 보면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익히 알려진대로 그의 이상형은 배우 이청아. 이청아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라니 "부끄럽다"며 웃었다. 그러더니 "여러 사람에게 전하는 말을 남겨도 되냐?"면서 말을 이었다.

"요즘 느낀 건데, 작품 할 때는 선배님들과 친하게 지내다가 작품이 끝나면 각자 스케줄이 있어 뵙기 힘든 것 같아요. <반짝반짝 빛나는>의 김형범 선배님, <계백>의 조상기 선배님! 휴대폰으로만 연락을 주고 받는데 너무 보고 싶어요. 꼭 한 번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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