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 "북한 동포에게 베품 행해야"
예수님 오신 날 성당에 간 법륜스님... 종교 간 화합은 이런 것
12월 25일 아침, 성탄절 미사를 드리러 관악구에 있는 쑥고개 성당에 찾아갔습니다. 김홍진 신부님이 주임 신부로 있는 이곳 쑥고개 성당의 성탄절 미사는 조금 특이하고 남달랐습니다. 법륜스님을 비롯해 50여 명이 넘는 불교수행공동체 정토회 신도들이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서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큰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특히 성당 측에서 마련한 법륜스님의 강론이 예정돼 있어 더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성탄절에 성당에서 스님이 하는 강론이라…. 지금껏 보지 못한 이색적인 풍경이었기에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과연 스님은 성당 신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요? 생생하게 전해 드립니다.
먼저 김홍진 신부님이 각종 의식에 맞춰 성탄 미사를 시작했습니다. 웅장하고 경이로운 성가대 노래와 함께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신부님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예식이 중반에 다다랐을 무렵 신부님이 법륜스님을 무대 위로 올라오게 했습니다. 신부님은 "오늘은 특별하고 소중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라며 "법륜스님과 정토회 신도님들을 소개합니다"고 법륜스님에게 강론을 청했습니다. 큰 박수를 받으며 강단에 올라온 법륜스님은 성당을 가득 메운 그리스도인들에게 20여 분간 강론을 했습니다.
법륜스님, "북한 동포들도 굶주림에서 벗어나길..."
"아기 예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함께 기뻐합니다.
성인의 탄생 모습이 신비롭게 묘사된 것은 신앙적으로 보면 그대로 믿을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 분 평생의 삶을 상징적으로 묘사해 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분 평생의 삶이 그 분을 잉태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표현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마리아께서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누가복음 1장에 보면 '마음이 교만한 자를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부자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주린 자를 배부르게 하셨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애기를 가진 엄마의 마음을 씨앗으로 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다 '돈, 돈'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자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재물은 본래 그 무엇도 내 것이 아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재물을 움켜쥐고 아등바등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은 나라의 발전을 위해 국가와 국민이 한 곳에 힘을 모아 밀어줬는데도 그것을 개인의 것인 양 착각하고, 때로는 위법적인 행위까지도 일삼으며 대를 이어 상속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것을 바로 잡아줄 때 '부자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주린 자를 배부르게 하셨다'는 말씀이 성취될 것입니다. 이 한 구절만 읽어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참뜻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부자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닌 줄 알고, 세상으로 환원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가난한 자라 하더라도 불평 불만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더 가난하여 추위에 떨고 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에게 베품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셨다'는 구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출세 아닙니까. 곧 선거가 다가오는데 모두 출세하려고 난리지 않습니까. 국민에게 봉사하라고 선출했더니 그 권력이 자기 것 인양 휘두르고 온갖 부정을 저지를 때, '그것은 자신의 권세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우쳐 내리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비천하게 대우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자나 노숙인, 외국인노동자, 또 북한으로 보면 2천만 인민들이 매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그들이 사람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로 비천한 자를 높이는 것입니다.
세 번째. '교만한 자를 흩으셨다'는 말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나 인기가 많기를 원합니다. 어디를 가나 자기를 우러러보고 자기를 알아보기를 원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교만해지기가 쉽지요. 안하무인이 되기 쉽습니다. 바로 그런 자의 생각을 흩어 남녀노소·인종·민족·종교에 관계없이 같은 사람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어쩌면 엄마가 이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삶을 사는 자식이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태교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그 아이의 심성을 결정합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탄생일을 맞아 우리는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을 다시 한 번 새겨보고 우리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와 우리 민족이 좀 더 평화롭기를, 그리고 하루 속히 남북이 통일돼 추위에 떠는 북한 동포들의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으면 합니다. 인권 침해 속에서 살아가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이 하루 속히 개선되고,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근원적인 해결책인 '통일'을 어서 빨리 완성했으면 합니다. 어떻게든 심화된 양극화를 완화해 함께 더불어 잘 살아가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었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오신 뜻을 믿음으로만 아니라 몸으로 실행할 수 있는 우리가 됐으면 합니다.
올 겨울 북한 동포들이 추위에서 벗어나고, 굶주림에서 벗어나서 오늘 우리들처럼 크리스마스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모두 해 주시고, 기도뿐만 아니라 작은 행동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만 서는 이 자리에 제가 서서 주제넘게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비록 종교의 형식이 다르다 하더라도 가르침의 내용이 같다면 우리가 함께할 수 있고, 우리들의 자비와 사랑의 마음이 같다면 형제자매로서 함께 손잡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쁜 성탄을 축하하고 함께 기뻐합니다."
짧은 강론이었습니다. 성당을 가득 메운 신도님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줬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들은 스님의 강론은 이색적인 풍경이었지만, 그 내용과 마음은 그대로 잘 전달됐나 봅니다. 박수를 치며 환하게 웃는 신도님들도 보였습니다.
다름 너머 화합의 장으로 나아가야
법륜스님의 강론을 들은 김홍진 신부님도 이에 뒤질세라 농담을 던졌습니다.
"스님 강론을 들으면서 여러분이 보인 태도 중에 딱 두 가지가 내 마음에 안 들었어요. 하나는 제가 강론할 때는 꾸벅꾸벅 졸더니, 오늘 스님이 말씀할 때는 아주 초롱초롱하게 듣고 있었고(웃음), 또 한 가지는 제가 이곳에서 강론을 1년 가까이했는데 한 번도 박수를 못 받아 봤는데 오늘 스님 말씀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잖아요. 너무 하지 않아요?(웃음)"
그러자 신도님 모두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신부님의 마음에 답례를 해줬습니다. 정말로 박수를 한 번도 못 받아 보신 건 아닐 겁니다. 웃자고 받아친 농담이었겠죠. 신부님이 성탄 축하 예식을 진행하고, 스님이 강론하며 서로 주고받는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신부님은 여기에 덧붙여서 종교 간의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스님이 하는 법문이나 신부님이 하는 강론, 내용이 어때요? 같죠? 같은 겁니다. 문화와 역사 종교적 태생은 다르지만,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불교의 가르침은 (비록 형식은 다르다 할지라도) 내용은 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의 마음과 자비의 마음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형식은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씀에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법륜스님과 김홍진 신부님은 오래전부터 종교를 넘어서서 북한동포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환경생태운동 등 많은 사회활동에 대해 함께 교감하고 활동해왔습니다. 부처님과 예수님도 동시대에 살았다면 아마 이런 모습으로 더없이 친한 벗으로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같은 혼란스런 시기에는 사회적 갈등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종교인들이 이렇게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희망의 빛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진보와 보수가 싸우고, 남한과 북한이 대립하는 시대에 서로 모양과 형식이 다른 종교인들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희망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법륜스님과 김홍진 신부님은 서로 손을 맞잡고, 정토회 신도들과 쑥고개 성당 신도들도 서로 손을 맞잡았습니다. 그리고 가요 <만남>을 함께 불렀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종교의 벽을 넘어 하나 되는 순간을 평생 못 잊을 것 같습니다.
법륜스님과 김홍진 신부님. 두 분이 마주 잡은 손처럼 2012년 한국 사회도 '서로 다름'이 갈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 속에 풍요로움이 되길 기도합니다. 개인도 갈등을 줄이고 화합으로 나아가고, 우리 사회도 양극화 문제를 해소해 복지국가로 거듭나고, 북한 문제도 원만히 해결해 통일된 대한민국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스님과 신부님이 함께 손을 맞잡고 기도했으니 그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당 측에서 마련한 법륜스님의 강론이 예정돼 있어 더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성탄절에 성당에서 스님이 하는 강론이라…. 지금껏 보지 못한 이색적인 풍경이었기에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과연 스님은 성당 신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요? 생생하게 전해 드립니다.
예식이 중반에 다다랐을 무렵 신부님이 법륜스님을 무대 위로 올라오게 했습니다. 신부님은 "오늘은 특별하고 소중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라며 "법륜스님과 정토회 신도님들을 소개합니다"고 법륜스님에게 강론을 청했습니다. 큰 박수를 받으며 강단에 올라온 법륜스님은 성당을 가득 메운 그리스도인들에게 20여 분간 강론을 했습니다.
법륜스님, "북한 동포들도 굶주림에서 벗어나길..."
▲ 성탄절 미사에 참석한 법륜스님. 신부님과 스님이 성당에서 함께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세계에 이런 성탄 미사 풍경이 과연 있었을까 모르겠네요. ⓒ 이준길
▲ 신부님이 들려주는 성탄축하 말씀을 환하게 웃으며 경청하고 있는 법륜스님. ⓒ 이준길
▲ 크리스마스날 성당에서 강론을 해주고 있는 법륜스님. ⓒ 이준길
"아기 예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함께 기뻐합니다.
성인의 탄생 모습이 신비롭게 묘사된 것은 신앙적으로 보면 그대로 믿을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 분 평생의 삶을 상징적으로 묘사해 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분 평생의 삶이 그 분을 잉태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표현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마리아께서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누가복음 1장에 보면 '마음이 교만한 자를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부자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주린 자를 배부르게 하셨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애기를 가진 엄마의 마음을 씨앗으로 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다 '돈, 돈'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자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재물은 본래 그 무엇도 내 것이 아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재물을 움켜쥐고 아등바등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은 나라의 발전을 위해 국가와 국민이 한 곳에 힘을 모아 밀어줬는데도 그것을 개인의 것인 양 착각하고, 때로는 위법적인 행위까지도 일삼으며 대를 이어 상속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것을 바로 잡아줄 때 '부자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주린 자를 배부르게 하셨다'는 말씀이 성취될 것입니다. 이 한 구절만 읽어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참뜻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부자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닌 줄 알고, 세상으로 환원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가난한 자라 하더라도 불평 불만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더 가난하여 추위에 떨고 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에게 베품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셨다'는 구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출세 아닙니까. 곧 선거가 다가오는데 모두 출세하려고 난리지 않습니까. 국민에게 봉사하라고 선출했더니 그 권력이 자기 것 인양 휘두르고 온갖 부정을 저지를 때, '그것은 자신의 권세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우쳐 내리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비천하게 대우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자나 노숙인, 외국인노동자, 또 북한으로 보면 2천만 인민들이 매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그들이 사람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로 비천한 자를 높이는 것입니다.
세 번째. '교만한 자를 흩으셨다'는 말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나 인기가 많기를 원합니다. 어디를 가나 자기를 우러러보고 자기를 알아보기를 원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교만해지기가 쉽지요. 안하무인이 되기 쉽습니다. 바로 그런 자의 생각을 흩어 남녀노소·인종·민족·종교에 관계없이 같은 사람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어쩌면 엄마가 이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삶을 사는 자식이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태교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그 아이의 심성을 결정합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탄생일을 맞아 우리는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을 다시 한 번 새겨보고 우리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와 우리 민족이 좀 더 평화롭기를, 그리고 하루 속히 남북이 통일돼 추위에 떠는 북한 동포들의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으면 합니다. 인권 침해 속에서 살아가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이 하루 속히 개선되고,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근원적인 해결책인 '통일'을 어서 빨리 완성했으면 합니다. 어떻게든 심화된 양극화를 완화해 함께 더불어 잘 살아가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었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오신 뜻을 믿음으로만 아니라 몸으로 실행할 수 있는 우리가 됐으면 합니다.
올 겨울 북한 동포들이 추위에서 벗어나고, 굶주림에서 벗어나서 오늘 우리들처럼 크리스마스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모두 해 주시고, 기도뿐만 아니라 작은 행동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만 서는 이 자리에 제가 서서 주제넘게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비록 종교의 형식이 다르다 하더라도 가르침의 내용이 같다면 우리가 함께할 수 있고, 우리들의 자비와 사랑의 마음이 같다면 형제자매로서 함께 손잡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쁜 성탄을 축하하고 함께 기뻐합니다."
짧은 강론이었습니다. 성당을 가득 메운 신도님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줬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들은 스님의 강론은 이색적인 풍경이었지만, 그 내용과 마음은 그대로 잘 전달됐나 봅니다. 박수를 치며 환하게 웃는 신도님들도 보였습니다.
다름 너머 화합의 장으로 나아가야
▲ 법륜스님의 성탄 축하 '강론'을 듣고 기뻐하는 쑥고개 성당 신도님들. ⓒ 이준길
"스님 강론을 들으면서 여러분이 보인 태도 중에 딱 두 가지가 내 마음에 안 들었어요. 하나는 제가 강론할 때는 꾸벅꾸벅 졸더니, 오늘 스님이 말씀할 때는 아주 초롱초롱하게 듣고 있었고(웃음), 또 한 가지는 제가 이곳에서 강론을 1년 가까이했는데 한 번도 박수를 못 받아 봤는데 오늘 스님 말씀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잖아요. 너무 하지 않아요?(웃음)"
그러자 신도님 모두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신부님의 마음에 답례를 해줬습니다. 정말로 박수를 한 번도 못 받아 보신 건 아닐 겁니다. 웃자고 받아친 농담이었겠죠. 신부님이 성탄 축하 예식을 진행하고, 스님이 강론하며 서로 주고받는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신부님은 여기에 덧붙여서 종교 간의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스님이 하는 법문이나 신부님이 하는 강론, 내용이 어때요? 같죠? 같은 겁니다. 문화와 역사 종교적 태생은 다르지만,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불교의 가르침은 (비록 형식은 다르다 할지라도) 내용은 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의 마음과 자비의 마음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형식은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씀에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법륜스님과 김홍진 신부님은 오래전부터 종교를 넘어서서 북한동포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환경생태운동 등 많은 사회활동에 대해 함께 교감하고 활동해왔습니다. 부처님과 예수님도 동시대에 살았다면 아마 이런 모습으로 더없이 친한 벗으로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나란히 앉아서 웃고 있는 법륜스님과 김홍진 신부님 ⓒ 이준길
요즘 같은 혼란스런 시기에는 사회적 갈등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종교인들이 이렇게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희망의 빛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진보와 보수가 싸우고, 남한과 북한이 대립하는 시대에 서로 모양과 형식이 다른 종교인들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희망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법륜스님과 김홍진 신부님은 서로 손을 맞잡고, 정토회 신도들과 쑥고개 성당 신도들도 서로 손을 맞잡았습니다. 그리고 가요 <만남>을 함께 불렀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종교의 벽을 넘어 하나 되는 순간을 평생 못 잊을 것 같습니다.
▲ 불교수행공동체 정토회와 쑥고개 성당 신도들이 종교를 뛰어넘어 서로 손을 맞잡고 '만남'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습니다. ⓒ 이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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