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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 온다고요? 그럼 하셔야 할 게 있죠

'수무푼전'의 자영업자들은 세상이 막막해집니다

등록|2011.12.28 12:25 수정|2011.12.29 15:20
"요즘 같은 불경기에 매장 임대료도 안 나와요. 당분간 아는 분과 매장 한 칸을 반반 쓰기로 했어요. 백만 원 정도는 줄일 수 있겠지요. 그러다 못 버티면 접어야지 별수 있나요."

임대한 매장을 계약 만료 전에 빼려다 여의치 않아 몇 달 동안 임대료만 물고 있었다는 사장은 주말을 이용해 매장을 비웠다. 손때 묻은 책상 등 부피 큰 짐 대부분은 버리고, 반 칸에 얹혀살 수 있는 짐만 챙겨간다는 그 사람이 떠나자 내려진 셔터 위에 '임대 문의'라는 선간판이 걸린다.

겨울 성수기에는 중개인에게 웃돈을 줘야 매장을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옛말. 창고로 쓸려면 임대료 없이 관리비만 내고 사용하라는 곳도 있다. 열 평이 채 되지 않는 매장 임대료가 백여만 원. 관리비는 50여만 원. 150여만 원 매장 임대 비용조차 감당할 여력이 없는 나 홀로 사장들은 십수 년 해온 장사를 아예 접거나, 임대료 반반 내고 매장을 같이 쓰는 등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눈물겹다. 자영업자에게 유난히 혹독했던 2011년. 내가 십수 년째 밥벌이 하고 있는 이곳 도매시장에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수무푼전'의 자영업자들

▲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금융당국이 고강도 압박에 나서 대부분 시중은행이 신규 가계대출을 중단한 지난 8월 18일 서울 중구 충정로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이 은행관계자와 상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꼽았다는 사자성어, 수무푼전(手無分錢). '가진 돈이 한 푼도 없다'는 뜻이다. 따라가도 뛰어가도 멀어져만 가는 술래 놀이같이 물가는 멀리 도망가고, 헐레벌떡 따라가는 서민들의 발걸음만 분주하다.

텅텅 빈 주머니.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수무푼전의 신세가 된 서민들의 살림살이. 그것은 일자리를 구할 길 없는 청년 백수의 모습이고, 하루 종일 앉지도 못하고 상품 바코드를 찍어야 하는 비정규직 마트 계산원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4년 전 747공약에 열광하며 이명박 정권의 아군을 자처했던 자영업자의 모습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영업자 대출이 160조 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한국의 가계부채액이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 당시 미국의 가구당 부채액을 넘었다는 기사, 주택담보 대출자의 55% 이상이 이자율 상환에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연체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은 빚더미에 올라앉은 영세 자영업자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사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매장을 임대하고 수천만 원을 인테리어 공사로 시작한 자영업. 사장들은 투자자금으로 빚을 낸 대출금을 갚기는커녕 임대료와 관리비, 직원 인건비 지급의 압박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다 못해 카드 대출, 신용 대출을 받게 되고 끝내는 수천, 수억 원의 빚을 지고 거리에 나 앉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세 자영업자의 모습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새벽 4시에 문을 열고 밤 12시가 넘어서야 문을 닫는 동네 슈퍼는 다 어디로 갔을까? 대형 마트 삼겹살 가격 전쟁에 날마다 고기 가격을 따라 내리던 동네 어귀의 식육점은 언제 사라졌을까?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값을 깎아 줄 수는 없지만 포인트를 쌓아 주겠다는 '신호등' 앞 서점은 왜 문구점으로 바뀌었을까?

열 집 시작해 한 집 살아남기도 힘들다는 식당은 치킨집이 망한 자리에 또 들어서고, 동네 옷 가게에는 '성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업 세일'이라는 붉은 글씨가 붙어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영업자는 올해 40만 명이 늘었다고 한다.

폐업과 창업의 반복, 잘못된 경제 정책의 반증

▲ 청년창업1000프로젝트 ⓒ 서울산업통상진흥원 누리집 갈무리


올해 들어 커피 전문점이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다. 상권이 형성된 곳에는 골목 하나에 몇 군데의 커피 전문점이 있기도 하다. 식당이 문을 닫은 곳에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고, 안경점 자리에는 리모델링 공사 며칠 뒤에 커피 전문점이 들어섰다.

40만 명이나 늘어났다는 자영업자 대부분은 이들처럼 주로 도소매업, 음식 전문점, 커피 전문점 등 생계형 창업을 하고 있다. 40~50대 퇴직금에 집을 담보로 시작한 창업.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는 특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투자액 상당수를 날리고 빚더미에 올라앉는 기존 자영업자와 다르지 않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매장 임대비도 감당하지 못해 빚더미 장사를 접고 막막한 거리로 나서는 이가 있는가 하면, 또 한쪽에서는 '그래도 이것밖에 할 것이 없다'며 집을 담보로 대출받고 은행 융자받아 커피 전문점을 개업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명박 정권 4년 동안 자영업자는 끝없이 도산했다. 하지만 또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마치 불빛을 보고 몰려드는 불나방처럼 말이다. 그렇게 몰려든 대부분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 빈자리에 또 다른 자영업자가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자영업자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한 집 건너 한 집으로 생기는 식당 때문에 폐업이 속출하고, 제 살 갉아먹기식 출혈 경쟁은 종국에 자영업 전반을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분석이다. 현상에 대한 분석은 나름 맞는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나라 경제를 진단하는 경제 전문지, 수많은 경제학자들, 경제 관료들이 자영업자가 많아진 원인을 지적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월급쟁이의 삶이 싫증 나서, 폼나는 사장 소리를 듣고 싶어서, 장사를 해 보겠다는 농담 이상의 진단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 깊게 살펴보면, '자영업자의 줄도산과 새로운 자영업자의 탄생'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는 국가의 잘못된 경제정책, 노동정책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40대, 기업들은 한창 일할 나이의 사람들을 명예퇴직시켰다. 기업 경쟁력의 첩경인 것처럼 여겨진 인원 감축과 비정규직 전환 정책 때문에 밀려난 사람들이 갈 곳은 과연 어디일까. 한편, 청년 실업에 대해 어떤 대안도 없어 보이는 정부는 '청년 창업'이 노다지를 캐는 일인 것처럼 부추기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솔직히 보기에도 딱하고 민망하다.

정부의 저임금 정책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자영업자를 양산하고, 과잉경쟁을 유발했다. 끝내 사람들은 빈털터리로 비정규직, 일용직의 줄에 서게 됐다. 그러면서 '과당 경쟁은 자영업자 스스로가 만들어 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

잠이 안 온다고요? 푸념처럼 들립니다

▲ 이명박 대통령, 최근 '서민과 청년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는 말을 남겼다. ⓒ 청와대


그뿐 아니다. 물가가 폭등할 때, 주범은 늘 시장상인이었고, 기름값 폭등을 야기시킨 것은 동네 주유소였다. 정부는 기름값 안정을 위해서는 대형마트에 주유소를 유치해야 한다고 했고, 소비자의 선택권과 시장 원리 때문에 대형 자본과 영세 상인들의 갈등에 개입할 수 없다고 했다.

대형 마트와 가격 경쟁에 밀린 동네 정육점이 문을 닫고, 대형 인터넷 서점에 설 자리를 잃은 골목 서점은 문방구를 업종을 바꿔야만 했다. 물가 폭등이 다단계 유통 구조 때문이라는 말하는 정부는 대형마트와 대형 자본이 영세상권을 유린할 때 이를 방조 내지는 동조헀다.

원가의 50%가 넘는 유류세만 봐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수천만 원의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정유회사는 손질없이 동네 주유소를 없애고, 정부는 대형 마트에 주유소를 허가해 기름값을 잡겠다는 발상을 내놨다. 자영업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이런 물가 정책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묻고 싶다.

자영업자 대출, 주택담보 대출, 카드 대출 등 서민 가계 대출이 내년 경제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가정 경제. 수년의 적자 행진에 더 이상 갈 길을 잃은 듯하다. 정부는 대기업의 돈잔치를 보면서도 '아직 우리 경제는 건전하다'고 말했다. 서민들의 삶은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이 바닥에 팽겨쳐져 있다.

나이 마흔에 '명퇴'당해서 식당을 창업했지만, 몇 년새 투자금 전체를 잃고 또다시 비정규직의 세계에 들어 가야 하는 자영업자의 현실을 두고, 정부는 취업에 목매기보다는 청년 창업의 길을 가라고 청년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그것은 청년을 위한 길도, 자영업자를 위한 길도 아니다.

서민의 어려움과 청년 실업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말했던 이명박 대통령. 절박한 심정의 표현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서민의 어려움과 청년 실업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연관 관계없이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정부의 저임금 노동정책과 기업하기(만) 좋은 정책들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났다. 결국, 이는 돈 한 푼 없는 서민들을 양산했고, 청년들을 실업의 절망이 빠트렸다. 남 이야기하듯 '서민과 청년을 생각하면 잠 안 온다'는 위로성 멘트는 진정성 없는 푸념이나 신세 한탄처럼 들린다.

노동자가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자영업자가 웃을 수 있는 세상.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얻고 서민들이 대출의 악순환에서 탈출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 좀 해보기 바란다. 대자본의 횡포에 눌린 노동자, 자영업자, 서민들에게 정부는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잠 못 이루는 이 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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