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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김병인 작가 "친일 의도? 전혀 없었다"

원작과 현재 영화 많이 달라... "전쟁 스펙터클에 너무 많은 시간 할애"

등록|2011.12.30 17:09 수정|2011.12.30 18:27

▲ <마이웨이>의 두 주인공 타츠오와 김준식. 두 사람이 우정과 교감을 나누는 노르망디 전투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SK플레닛주식회사


흥행 난조에 '왜색 논란'까지 불거졌다.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강제규 감독의 280억 프로젝트 <마이웨이>가 28일 <미션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에 이어 일간 박스오피스 3위까지 추락했다. 배우 박중훈이 자신의 트위터에 "친일이니 넌센스니 하기보다 마음을 너그러이 가지자"고 응원에 나선 것도 28일이다.

이에 <마이웨이>의 원 각본을 쓴 김병인 작가가 입을 열었다. 김병인 작가는 자신의 첫 시나리오를 가지고 2007년 할리우드 배급사 워너브러더스로부터 직접 투자배급 결정을 받아낸 바 있으며, 최근 <마이웨이>의 원작인 소설 <디데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마이웨이>는 그의 각본에서 출발해 결국 강제규 감독의 각색 과정을 거쳐 지금의 영화로 탄생했다.

김병인 작가는 29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왜색논란과 흥행 난조에 대해 "이렇게 세게 얻어맞을 줄은 몰랐다"면서도 "원작자이자 4년 동안 감독님을 겪은 사람으로서 친일 의도는 전혀 없었다. 강 감독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원작은 한국인 김준식(장동건)과 일본인 타츠오(오다기리 죠)의 감정변화가 자세히 묘사되면서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지만, 각색 과정에서 이러한 감정선이 약화됐다는 것. 김 작가는 "아무래도 소재가 역사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대립했던 두 인물이 친구가 되어가는 변화 과정이 중요한데, 전쟁 스펙터클에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한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초반부 노몬한 전투에 등장하는 쉬라이(판빙빙) 역할에 대해서는 "원작에는 원래 없는 인물이다. 중국 쪽 투자와 함께 나중에 생긴 캐릭터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병인 작가는 워너브러더스가 투자배급을 철회했던 2010년 이후 각색 작업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다음은 김병인 작가와의 일문 일답이다.

-<마이웨이>가 어제(28일) 흥행 3위로 추락했다. 또 일부에선 왜색 논란까지 일고 있다.
"아무래도 역사적으로 민감한 문제인데, 그걸 건드렸다는 게 치명적인 것 같다. (왜색은) 아니라고 해도 재미없다는 평도 있던데, 그래도 이렇게 세게 얻어맞을 줄은 몰랐다."

-예고편의 일본해 표기라든지, 오다기리 죠의 사인 사건도 개봉 전 악재로 작용했다.
"원작자로서, 강 감독을 4년 동안 겪은 사람으로서 친일의도는 전혀 없었다. 강제규 감독은 분명 영민한 분이다. 대중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데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분이 친일로 비판받을 실수를 했겠는가. 다만 몇몇 부주의한 부분에 대해 억울하게 느낄 수는 있을 것 같다. 감독님이 두 인물의 관계를 극대화하겠다는 뚜렷한 목표에 치중하다보니 친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그렇다면 원작은 어땠나.
"지금과는 분명 다르다. 초반 (타츠오의 할아버지가 죽는) 폭탄테러도 강 감독이 극단적인 설정을 추가한 거다. 극적으로 보자면, 지금처럼 직접 때리고 치고받는 게 갈등도 높이고 화해했을 때 카타르시스도 높은 교과서적인 설정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교과서적으로 따르기보다 더 세심하게 표현했어야 했다. 원작 또한 준식의 아버지를  의병활동 중 사망한 인물로 설정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대립과 라이벌 의식이 더 크다. 

-구체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타츠오가 임전무퇴의 정신을 보여주지 않나. 그 보다 제국주의의 허구성을 스스로 깨닫는 부분이 중요한데, 정작 그 부분이 간과돼서 '일장기 휘날리며'처럼 보여 지는 거다. 준식과 타츠오가 죽일 듯이 대립하다가 4분의 3 지점에서 갑자기 화해를 한다. 관객들 입장에서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데, 제국주의를 무조건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으니 친일영화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 그런 의도가 전혀 아니었는데."

-만약 원작대로 갔다면 관객들의 시선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영화는 표현 방식을 달리했지만, 소련 수용소 장면이 무척 중요하다. 수용소 소장이 타츠오에게 일본군이 포로교환 협상을 포기했다고 얘기해 주지 않나. 그 장면은 아군이든 적군이든 인간을 중시하지 않고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는 제국주의의 허점을 짚은 거다. 헌데 영화에서는 어물쩍 넘어가는 느낌이다. 

또 포로수용소에서도 둘이 탈출을 번갈아 시도하고, 또 개고생을 하는 부분이 길게 묘사된다. 타츠오가 제국주의의 망상에서 깨어나 인간적인 고뇌를 하면서 김준식이 인간적인 연민을 보낸다. 그런데 그 감정이 산을 넘는 신으로 압축이 돼버렸다. 그런 변화 지점을 간단히 묘사하니까 관객 입장에서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 초반부 노모한 전투 장면에 등장하는 쉬라이 역의 판빙빙 ⓒ CJ엔터테인먼트, SK플레닛주식회사


"좋은 액션은 따귀를 한 대 때려도 가슴이 철렁한 것"

-다른 캐릭터들은 어떤가. 종대(김인권)의 성격 변화가 강조됐는데.
"원래 없었던 인물이다. 수정된 대본의 대사수를 세어본 적이 있다. 중반 이후 분량이 없음에도 준식이나 타츠오보다 대사가 많더라. 원작은 전쟁도 길고 시공간도 길고 넓어서 인물을 최소화했다. 그래야 두 인물의 연민과 변화의 곡선이 이해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는 종대뿐만 아니라 준식의 친구들과 일본인 부하 등 두 그룹을 대립시켜 갈등을 높였다."

-판빙빙이 맡은 쉬라이 역할은 어떤가. 역할이 너무 작다는 얘기도 들린다.
"역시 원래 없던 인물이다. 노몬한 전투는 지역 특성상 허허벌판에서 싸웠다. 영화처럼 저격이 가능한 형태가 아니었다. 당시 정황상 본토에서 일본과 전쟁하느라 정신없는 중국 병사가 홀로 저격 했을리도 없다. 판빙빙은 중국에서 10% 정도 투자를 받으면서 참여한 걸로 안다. 판빙빙이 마케팅에 참여도 했는데 기대만 잔뜩 올린 것 같기도 하다."

-강 감독은 캐스팅 불발에 대해 손예진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던데, 원래 어떤 캐릭터였나.
"이연희가 연기한 김준식의 여동생 역할을 맡기려 한 걸로 안다. 이전 시나리오 버전엔 동생이 베를린까지 간다. 독일이 일본과 동맹국이니 두 남자 주인공이 베를린에서 투항해 동생과 지내는 장면이 가능하다는 거다. 하지만 스태프들도 그렇고 여성이 들어오면 후반부 두 남자의 감정선이 흐트러진다는 판단이 많아 수정된 걸로 안다."

-그럼에도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화면과 기술력'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큰 규모로 잘 찍었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은 액션은 따귀를 한 대 때려도 가슴이 철렁한 장면이라 생각한다. 화려하고 다양한 앵글은 좋은데, 조선인이 남의 나라에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하는 전쟁을 과연 화려하게 그려야 하는가. 전쟁의 비애나 슬픔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게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었다. 또 한일 관객들을 모두 설득하려면 대립된 두 인물이 어떻게 친구가 되느냐하는 변화 과정이 포인트다. 그런데 전쟁 스펙터클에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한 건 아닌가도 싶고."

- 원작자로서도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4년 동안 일하며 일본을 경험했던 당시 워너브러더스 사장이 원작을 굉장히 좋아했다. 한일간 민감한 부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통해 일본인들이 일본을 바로 알자는 사회적 운동이 일 것 같다며 의욕을 보였다. <마이웨이>를 한일 대중들이 좋아하고 만족스러워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영화가 인물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담지 못했다면, 원작의 기본 의도나 워너가 봤던 가능성이 증발된 거니까…. 그게 가장 아쉽다."

▲ <마이웨이> 기자시사 당시 강제규 감독(좌측부터)과 배우 장동건, 오다기리 죠, 판빙빙, 김인권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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