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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의 마지막 메시지 "2012년을 점령하라!"

블로그에 남긴 김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유지... "살아서 싸워라"

등록|2011.12.30 12:03 수정|2011.12.30 12:03

▲ 30일 타계한 김근태(64)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블로그 '김근태, 희망을 말하다' (화면캡쳐) ⓒ


군부독재 정권 당시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수년째 파킨슨병을 앓아 온 김근태(64)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30일 오전 타계했다. 그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기고 간 마지막 유지는 무엇일까?

그가 지난 10월 18일 자신의 블로그 '김근태, 희망을 말하다'(http://gtcamp.tistory.com)에 쓴 마지막 글의 제목은 "2012년을 점령하라"였다. 그는 올해 미국 금융자본가들의 부패와 탐욕, 경제적 불평등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난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시민 정치 참여 독려

그는 "미국인들은 왜 월가를 점령하자고 외치고 있을까"라고 자문한 뒤, "무엇보다 1%를 향한 99%의 분노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라고 자답했다. 그는 이어 "드디어 미국인들이 기존 정치를 불신하고 스스로 정치를 시작했다"며 "너무나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감탄했다.

그는 "미국의 티파티나 한국의 뉴라이트의 공통점은 적극적 참여와 정당과의 연계"라며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강조한 뒤, "미국보다 금융이 정치에 비해 권력이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굳이 증권사가 많은 동여의도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면서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 청와대가 있는 종로를 점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며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병마와 싸워온 그는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라는 자신의 절규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김 고문은 지난 11월 '뇌정맥 혈전증'으로 병원을 찾기 전까지 거리를 떠나지 않고 '민주화 운동의 대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3차 희망버스를 타고 직접 부산에 내려갔고, 야권통합을 위해 숨 가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살아라. 살아서 싸워라. 싸워서 바꿔라."

지난 9월 초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떠나보내며 병중에 있던 김 고문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은 이렇게 끝난다.

그는 "이소선 여사를 추억하고 마는 것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일 뿐 진정한 추모가 아니다"라며 "이소선 정신을 실천하여 세상을 바꾸는 것, 바꾼 세상을 하늘의 이소선 여사에게 보여 드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추모의 정"이라고 말했다. 이 글은 이제 눈물을 뒤로하고 세상과 등을 진 그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지'가 됐다.

다음은 김근태 상임고문이 블로그에 남긴 글 전문이다.

2012년을 점령하라

세계는 격동하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그리스 구제금융으로 상징되는 잔혹한 유럽의 여름, 월가를 점령하자는 뉴욕의 가을, 그리고 월가점령에 대한 다른 도시들의 공감, 급기야 10월 15일 전 세계 곳곳에서 월가점령시위 동참...

월가점령시위가 확산되자 미국의 언론, 학계,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보수 쪽에서는 폭도라는 말까지 사용해가면 월가점령운동을 폄하하고 있고, 진보 쪽에서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알리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역사의 순간으로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월가점령에 나선 사람들이 폭도로 여겨지지도 않고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가 당장 붕괴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양 진영의 주장이 워낙 강력하고 방대하게 쏟아져 나오는 관계로 자칫 생각과 판단의 길을 잃을 확률이 높아졌다. 월가점령운동에 대한 양극단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차분히 묻고 냉철하게 대답해야 한다. 우선 미국인들은 왜 월가를 점령하자고 외치고 있을까. 그리고 전 세계 곳곳에서 왜 월가점령에 공감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1%를 향한 99%의 분노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1%인지 5%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처럼 전 세계가 공감한다는 것은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제패했었다는 증거다. 선진국과 후진국, 강대국과 약소국, 민주국가와 비민주국가의 구분 없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세계적 대세였던 것이다.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손인 월가의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희생도, 반성도, 징벌도 없는 불공평함에 분노한 것이다. 금융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월가의 과도한 권력을 견제하지 못한 오바마와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티파티의 압력에 굴복해 길을 잃은 공화당과 의회에 대한 절망의 몸짓이기도 하다.

드디어 미국인들이 기존 정치를 불신하고 스스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들은 티파티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마지막 발악에 맞서 어깨에 어깨를 걸고 있다. 너무나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는 냉혹해서 그들이 공화당을 장악한 티파티 정도의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면 미국은 한 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부자감세가 중지되거나 약간 다시 오르거나 다음 선거에서 오바마가 재선되거나 일뿐이다. 이런 사실을 2008년 촛불집회를 했던 우리는 너무 잘 안다. 2008년의 촛불국민들은 2009년엔 조문행렬을 이었고 지금은 희망버스를 타야한다.

흔한 말로 정치권의 위기, 야당의 위기, 민주당의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비난은 비난일 뿐 비난이 승리는 아니다. 방법은 두 가지다. 미국 티파티나 한국의 뉴라이트처럼 경선에 뛰어들어 직접 후보를 내거나 특정 후보를 지지해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 정치결사체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전자가 쉽고 확률도 높다. 비호감일지 모르지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미국의 티파티나 한국의 뉴라이트의 공통점은 적극적 참여와 정당과의 연계다.

우리는 미국보다 사정이 낫다. 미국보다 금융이 정치에 비해 권력이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굳이 증권사가 많은 동여의도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 청와대가 있는 종로를 점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이소선 여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 이소선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한다.
전태일의 어머니요 노동자와 약자, 소외된 모든 영혼의 어머니로 앞으로도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다.
그러나 왠지 모르겠지만 이소선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이런 눈물과 끝 모를 그리움 속에서 이소선 여사의 명복을 빈다.

전태일 열사가 불이었다면 이소선 여사는 물이었다.
전태일이라는 거대한 불덩이가 70년대의 하늘위로 쏟아질 때 이소선이라는 장대한 물줄기도 땅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전태일이라는 불길이 지난 자리마다 이소선이라는 물이 흘러들었다. 그을리고 상처 난 몸과 마음속으로 흘러 새살이 돋게 하고 더 강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셨다. 오늘날까지 전태일 정신이 살아있는 것도 이소선 어머니가 살아 계셨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소선 여사는 '살아남의 자의 슬픔'에서 머물지 않고 '살아남의 자의 기쁨'을 만들어 내셨다. 늘 사랑스럽게 슬프고 아픈 우리들을 감싸 주셨다.

돌이켜 보면 이소선 여사는 단순히 전태일의 어머니가 아니다.
40년 동안의 한결같은 삶을 볼 때 오히려 전태일이 이소선의 아들로 보일 정도다. 통찰과 용기로 깃발을 드는 전태일의 불같은 정신이 있다면 낮은 곳으로부터 스며들어 종국엔 모든 것을 삼킬 수 있는 물의 정신이야 말로 이소선 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0년을 꾸준히 한 길을 가는 힘. 40년을 꾸준히 낮게 임하고 높게 꿈꿀 수 있는 실천과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명과 삶을 모든 가치 판단의 중심에 두는 이소선 정신은 환경과 복지, 반핵과 평화 등 미래 가치와 맞닿아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넓고 깊은 마음으로 하늘 너머의 하늘까지 다 품었던 이소선 여사가 몹시 그리울 것이다. 그 그리움만큼 이소선의 마음, 이소선의 정신, 이소선의 길이 명확해질 것이다. '살아남의 자의 슬픔'을 말하기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긴박하다. 이소선 여사께서는 늘 '슬픔'대신 우리에게 삶을 긍정하고 꿈을 쟁취하라고 하셨다. 그렇기에 이명박 정부라는 현실을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이소선 어머니의 길이 아니다. 슬픔과 분노에 긍정과 꿈을 보태야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긍정하는 연대의 길과 보다 많은 평등과 자유의 길을 찾아 우리의 땀과 열정을 바쳐야 한다. 이소선 정신을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정치적으로 민주대연합일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정규직/비정규직 차별문제의 해결이 될 것이다.

이소선 여사를 추억하고 마는 것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일 뿐 진정한 추모가 아니다.
이소선 정신을 실천하여 세상을 바꾸는 것, 바꾼 세상을 하늘의 이소선 여사에게 보여 드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추모의 정이다. 이소선 여사는 말씀하셨다.

"살아라. 살아서 싸워라. 싸워서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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