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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①] "검찰 약화가 여검사 증가 때문이라고?"

[신년 인터뷰] '정치검찰' 비판하며 사표 낸 백혜련 전 검사

등록|2012.01.02 21:36 수정|2012.01.02 21:36
"사회정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검사가 맞았다"

▲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흔들리는 점을 비판하며 검찰을 떠난 백혜련 전 대구지검 수석검사가 2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최근 자신이 개원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 대학 때도 검사를 꿈꿨나?
"전혀 아니다."

- 고려대 재학시절 노동운동그룹과 연결된 학생운동그룹에서 활동했던 걸로 아는데.
"노동운동그룹과 연결된 것은 아니고, 제가 학생운동을 끝내고 노동운동까지 했다."

- 학생운동을 하던 당시 어땠나? 
"그때는 사회변혁 의지가 충만했다."

- 어떤 생각이 충만해 있었나?
"그때는 일하는 사람이 정당한 대접을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노동운동으로 옮겨갔는데 어디에서 했나?
"안산에서 했다."

- 노동운동은 얼마 동안 했나?
"2년 정도 했다.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 결혼한 이후에 사법고시를 준비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당시 사회변혁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세 가지 길을 선택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방송 등 언론계에 진출하거나 고시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그렇게 많이 선택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대학교수를 하려면 연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저는 불가능했다. 언론사의 경우 면접에서 배경이 많이 작용하고, 여자의 경우 얼굴도 많이 봤다. 그래서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런 것들에 비해 고시는 자기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적절했다."

- 80년대 학생운동출신들에서 고시는 금기 아니었나?
"그때는 모든 관(기관)에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제가 고시를 시작했을때 굉장히 많은 사람(운동권)들이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시 금기'는 없었다."

- 사시를 준비할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그때는 다들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시기여서 크게 반대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 분위기가 그렇게 바뀐 데는 소비에트의 몰락과 한국사회 운동그룹의 고민 등도 작용한 것 같은데.
"그렇다. 그래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운동 외에) 다른 영역을 생각한 것이다. 나는 고시를 공부해서 거기(법조계)서 역할을 찾아보겠다고 나선 것이고, 남편도 시민운동 분야를 선택한 것이다."

- 남편도 사시를 반대하지 않은 건가?
"사실 제가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맘을 먹고 있었는데 남편이 저한테 '결혼해서 사시를 공부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했는데 집에 가서 곰곰히 고민해보니 현실적인 생각 같더라. 그래서 결혼하면서 동시에 사시 공부를 시작했다. 옆에 자기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은 굉장히 크다."

- 사시를 준비할 때부터 검사를 염두에 두었나?
"아니다. 그때는 어쨌든 여성으로서 제가 노력한 만큼 할 수 있는 영역이 사시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한 것이다. 검사든, 판사든, 변호사든 구체적인 직역은 생각하지 않았다."

- 그럼 왜 사법연수원 졸업할 때 검사를 최종 선택했나?
"검사 시보 생활을 해보니 검사 직역이 저한테 잘 맞더라. 학생운동할 때도 (추구한 가치의) 기본골격이 사회정의이고, 검사도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직역이다. 그래서 검사가 잘 맞았다. 또 판사가 정적인 반면 검사는 동적이다. 그런 점이 제 성향에도 맞았다."

"드라마 <아현동 마님>의 실제 모델은 아니다"

- 수원지검으로 첫 부임을 하면서 어떤 다짐을 했나?
"초심을 잃지 말자,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다는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 부임해보니 검사생활이 어땠나?
"굉장히 즐거웠다. 수원지검은 사건이 많은 곳이어서 날마다 야근하는 등 격무에 시달렸다. 그래도 그때는 보람있고 즐거웠다. 그때 함께 일한 사람들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 수원지검을 시작으로 김천과 안산, 서울을 거쳐 대구지검으로 왔는데,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이 검사생활에서 부담이 되지 않았나?
"제 (사법연수원 시절) 지도검사가 이경재 현 대구지검장이었다. 이 검사장 옆에서 시보생활을 했을 때 검사라는 직업이 정의롭게, 국민에게 이바지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느껴 검사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들어보니까 검사 임용을 다루는 검찰1과에서 이경재 검사장한테 저에 관해 물어봤다고 한다.

아무래도 운동을 했다는 것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때 이 검사장이 '전혀 문제 없다, 검사 생활 잘 할 것이다'라고 적극 추천해 주었다. 제가 운동했다는 점 때문에 저의 임용을 (검찰에서) 고민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법원에서도 운동했던 사람들을 많이 임용했다."

- 10년 검사생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사건이 있다면?
"삼성물산 재개발과 관련된 비리사건이 제일 많이 기억에 남는다. 제가 고생도 많이 했고, 열정적으로 수사해서 그렇다."

- 그 사건 수사할 때 삼성 쪽에서 로비나 청탁은 없었나?
"저한테 직접 하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은근히 윗분한테 관련 얘기가 돌기도 했다. 제가 운동권 출신이라 삼성을 수사한다는 마타도어가 돌기도 했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다."

- 정치권을 통한 로비나 압력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것은 없었다."

-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근무할 때 <인간극장-8부의 검사들>을 찍었는데.
"<인간극장>팀에서 연락이 와서 찍을 팀을 모집했다.그런데 개인생활이 침해되니까 다들 꺼려 했다. 당시 형사 8부장이 차동언 현 변호사인데 그분이 한번 해보겠다고 해서 촬영하게 된 것이다. 대검에서도 검사생활을 홍보하기 위해 추천했다."

- 그때 형사 8부에서 유일한 여검사 아니었나?
"그런 것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을 좀 많이 받았다. <인간극장-8부의 검사들>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검찰에서도 국민에게도 반응이 좋았다. 저를 격려해준 분도 많았다. 나중에 댓글을 보니까 은행까는 법을 자세히 적어준 분이 있었다. <인간극장>에서 제가 아들에게 은행을 까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가 잘 못까니까 그런 것들 적어주셨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 '8부의 검사들'라는 제목도 눈길을 끌 만했다.
"그거 찍을 때 처음에는 괴로웠다. 카메라에가 계속 따라다녔는데 검사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익숙치 않았다. 1주일 정도 찍었는데 프로그램으로 나갈 정도의 분량이 안 나왔다. 1주일 지나고 나니까 우리도 카메라를 별로 의식하지 않게 됐다. 그 이후 (검사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서 편집했다."

- 그것이 드라마 <아현동 마님>으로 이어진 것인가?
"이번에 제가 언론에 나오니까 <아현동 마님>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저는 제가 그 드라마의 실제 모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임성한 작자가 자기의 시나리오에 검사가 등장하니까 실제 모습을 알고 싶다고 해서 검찰에 왔다. 형사 8부 검사들의 방을 다니며 인터뷰를 했고, 저도 인터뷰를 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썼다. 그런데 <아현동 마님>에 나오는 여검사 이름이 '백시향'이다 보니 제가 <아현동 마님>의 롤 모델이라는 말이 나왔다."

- 실제 드라마에서는 여검사가 노처녀이고, 후배 남검사와 사랑을 한다고 설정돼 있다. 
"그런 설정은 임 작가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다."

"여검사 수는 늘었지만 여전히 검찰 안에서는 비주류"

▲ 정치검찰을 비판하며 사표를 낸 백혜련(44) 전 대구지검 수석검사. ⓒ 유성호

- 검찰은 철저한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계급조직이어서 그런 조직문화의 부작용이 있었을텐데. 
"부작용이 있다. 밑에서 자기 의견을 소신있게 펼쳐 나기기 어려운 구조다."

- 하지만 검찰에서는 수사 효율성 등을 제시하며 반박한다.
"일반적인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장점도 많다. 아무래도 선배들이 경험이 많으니까 사건을 파악하는 능력이 후배보다 뛰어나다. 처음에 (사건) 기록을 접할 때 후배들이 실수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잘 지적해주고 잘 이끌어주는 측면이 있다. 오류를 수정해줄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일반적인 형사사건에서는 많이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게 큰 사건, 정치적 사건으로 가면 결국 상급자의 의중이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문제가 있다."

- 그런 계급조직의 문화 때문인지 판사들 중에는 SNS를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검사들 중에는 없다. 
"맞다. 검사들은 거의 안 하고 있다."

-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SNS를 안 하는 게 익숙한 것인가,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기보다 검사들이 그것까지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 꼭 SNS 같은 것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판사와 검사의 조직문화가 그런 차이를 만든 것 아닌가 싶다. 
"그런 게 있다고 본다. 사실 판사들이 검사보다 훨씬 자유스럽고, 자율성이 있다. 어쩌면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서라도 그런 게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법원도 모든 게 전산화되고 판사들에게도 평점을 먹이는 구조가 되면서 법원도 관료화되고 있다."

-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때문에 고민스러웠던 적이 있었나?
"부장 검사들하고 한두 번 부딪친 적은 있지만 외압이라고 느낄 정도의 것은 없었다."

- 10년간 있었던 인사에 만족하나?
"몇몇 지역을 돌아다닌 것에 만족한다. 그런데 여검사들이 수적으로 많이 늘었지만 아직 이들이 검찰 안에서 주류라고 할 수 없다. 특수부 등 검찰 안에서 좋은 보직에 대한 여검사의 장벽이 아주 높다. 윗분들이 여검사를 발탁하는 정도이지 여검사 능력으로 자유스럽게 그런 곳에 갈 수 있는 구조는 아직 아니다."

- 최근 임용된 여검사가 전체 검사의 50%에 이른다는 점에서 앞으로 바뀔 여지가 있지 않겠나?
"나중에는 여검사 숫자가 뒷받침되니까 바뀔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검사장 한 명도 없다. 또 인사를 할 수 있는 부서에 가 있는 여검사도 없다. 검찰 인사를 하는 검찰1과에 여검사가 있지만 인사담당은 아니다. 결국 핵심 보직에는 여검사의 접근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 검찰 내부에 여검사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있나?
"옛날에는 '대한민국 여검사회'가 있었다. 제가 임용받았을 당시 전국 여검사수가 28명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다 알고 지낼 수 있었다. 연대의식도 소명감도 높았다. 여검사로서 남성들에게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독하게 했다. 하나의 롤 모델이 되어야 한다며 열심히 했다."

- 검찰은 여전히 남성주의 문화가 지배적이다. 
"아직까지 그렇다. 그런데 여검사들이 늘어나면서 검찰이 연성화됐다고 불만을 가진 윗분들이 많다. 검찰 약화현상의 이유가 여검사의 숫자가 늘어난 데 있다는 것이다.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게 보는 분들이 있다."

- 생존경쟁 등의 측면에서 보면 여검사들이 더 독하지 않나?
"그런 여검사들이 많다. 특히 여검사는 도덕적으로 잣대가 엄격하다."

"검찰의 핵심보직에 정치적 입김이 많이 작용한다"

- 검찰 전체 인사가 대체로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개인의사도 많이 반영하지만 검찰 주요 간부, 법무부 등 핵심보직에서는 정치적 입김이 많이 작용한다."

- 검찰 인사권이 법무부장관에 있지만 핵심 보직의 경우 청와대와 조율한다. 핵심 보직의 인사부터 권력과 유착관계가 생겨난 셈이다.
"참여정부에서는 그런 부분을 스스로 최대한 통제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그런 부분을 확 끊겠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예전의 줄서기 문화가 많이 부활했다."

- 일부에서는 각 지검장과 검찰총장은 직선제로 선출하자는 급진적인 주장을 펴기도 한다.
"문재인씨 책을 보니까 직선제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주장하고, 한명숙 전 총리도 그런 부분을 얘기하더라. 하지만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제도이기 때문에 (도입에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 선출되지 않은 검찰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직선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권력이 먼저 정치적 독립성,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상태에서 직선제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직선제를 도입하면 폐해가 생긴다. 직선제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선결조건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검찰의 근간인 형사부가 특수부에 밀린다는 것은 사실인가?
"실제로 검사들이 특수부 등 인지부서를 선호한다."

- 왜 검사들이 특수부 등 인지부서를 선호하나?
"검사들이 작은 사건보다 큰 사건을 해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보직면에서 보직관리가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인사시스템과 직결된다."

- 검사들이 인사에 목맨다는 게 사실인가?
"그것은 확실하다. 인사야말로 검찰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 요즘에는 특수부도 금융조세부(금조부)에 밀리지 않나?
"특수부는 사건도 힘든데 그에 비해 공을 인정받기 힘든 구조다. (특수부에서 다루는 사건의 경우) 정치적 대립도 심하니까 그렇다. 코스닥 기업 등 수사하는 금조부는 그런 논란이 거의 없다. 요즘에는 검사들 사이에서 금조부의 선호도가 가장 높다."

- 그러한 선호부서의 변화는 한국의 권력지형이 정치권력에서 경제권력으로 넘어간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도 볼 수 있다. 정치권력은 계속 바뀌고 있는 반면, 경제권력은 어느 정도 재벌에 의해 고착되고 그 힘이 유지되고 있으니까."

- 검사생활을 더 했다면 꼭 근무해보고 싶은 부서가 있었나?
"저도 (한때는) 특수부에서 사건수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대 악과 한번 싸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수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 어느 한 개인이 수사해서 뭘 밝히는 구조가 아니다. 팀별 수사인 것이다. 거의 위에서부터 수사아이템이 정해져 있어서 자기 역할도 정해져 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러니까 검사의 소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구조가 못된다. 오히려 형사부가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

- 실제 형사부 강화론도 있다.
"형사부가 검찰의 근간 부서다. 정말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형사부 검사들의 기를 살려주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형사부 검사들의 기를 살려주기보다는 검사들 사이에서 특수부 등 인지부서 검사들이 형사부 검사들보다 좀 더 우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그런 것부터 타파해야 한다. 형사부가 검찰의 근간부서라고 하면서 검찰 안에서도 그렇게 대접을 안 해준다."

- 결국 그 문제도 검찰의 인사시스템을 바꾸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 
"형사부에서 열심히 노력한 검사들에게 인사에서도 응분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런 시스템이 안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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