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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시인 고광헌이 신고합니다"

시인 고광헌, 2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시간은 무겁다> 펴내

등록|2012.01.03 20:57 수정|2012.01.03 20:57

시인 고광헌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두 번째 시집 <시간은 무겁다>를 들고 문단에 나타난 시인 고광헌 ⓒ 고광헌



"김경미 시인 문학상 받는 날, 예쁜 축하 화분이 왔는데요, 리본에 쓰인 글이 가슴을 때립니다.

祝 受傷!

상처를 상으로 받으니 축하한다는 건데요, 세상 어떤 시보다 더 시적이더라고요, 가슴속에 죽비가 떨어지데요, 시인은 세상의 모든 상처를 한 상 받아내는 운명이잖아요. 시인에게 상은 그저 아름다운 모욕이겠지요 - '상처를 상으로 받아야 시인이지' 모두

스스로를 가리켜 '중고시인'이라 말하는 시인이 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두 번째 시집 <시간은 무겁다>를 들고 문단에 나타난 시인 고광헌이 그다. 시인에게 있어서 '중고시인'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모욕"일 수도 있는데 그는 왜 스스럼없이 그렇게 여기고 있을까. 그 속내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기에 그럴까.

시인 고광헌은 대학에서 체육학과를 마치고 농구선수로 뛰다가 교사가 되었지만 1985년 이른 바 '민중교육지사건'으로 강제해직된다. 시인은 그때부터 시를 가슴 깊숙이 묻어둔 채 민주교육실천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아 사회운동가로 탈바꿈한다. 그 뒤 언론에 발을 내디뎌 <한겨레신문> 대표까지 맡은 뒤 26년 만에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시의 품'에 안겼다.

시인 스스로 '중고시인'이라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시인이 그동안 시가 벌겋게 녹이 슬도록 그냥 내버려둔 것은 아니다. <시간은 무겁다>란 이번 시집을 읽어보면 시인은 한순간도 시를 놓지 않았다. 반들반들 빛이 나도록 갈고 닦고, 갈고 닦았다. 시인이 스스로 '중고시인'이라 여기는 까닭은 그 빛나는 시들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상처를 상으로 받아야 시인이지'

"시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킨 시간이 멀고 무겁다.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아스라하다. 나는 상처난 시간을 믿기로 한다" -'시인의 말' 모두

시인 고광헌이 1985년 첫 시집 <신중산층 교실에서>를 펴낸 지 26년 만에 이 세상에 내놓은 두 번째 시집 <시간은 무겁다>(창비). 이 시집은 모두 4부에 59편이 '상처를 상으로 받아야 시인이지'란 시처럼, 꾸불꾸불한 한 시대가 이 세상 곳곳을 할퀸 상처에 '시의 붕대'를 부드럽게 들이댄다.

'상처를 상으로 받아야 시인이지', '어머니가 쓴 시', '시간처럼 무거운 물건 보지 못했네', '누님의 우물', '난', '겁에 질린, 취하지 못하는', '채송화', '나무못이 쓴 건축사', '오누이', 'EU의 노동법이 깔린 도로에서 김진숙을 생각하다', '겨울 등고선', '낫', '무국적 한국인', '한라산', '산에서 부르는 출석' 등이 그 시편들.

시인 고광헌은 이번 시집을 펴내며 2만여 명에 이르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중고시인 신고식을 했다. 그는 이번 신고식에서 "한겨레 대표를 그만 둔 뒤 그동안 써 둔 시작메모를 정리해 시집을 묶었습니다. 한겨레 디지털 뉴스자키를 자처하며 소통한 돌아온 '중고시인' 고광헌이 신고합니다"라고 썼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 곳곳에는 스포츠계 기대를 한몸에 받던 농구선수에서 교사, 해직교사, 사회운동가, 언론사 대표 등 여러 가지 일을 거치며 힘겹게 살아낸 한 시인이 겪은 숱한 아픔이 시가 되어 울고 있다. 그는 몸이란 종이에 펜이란 마음을 들고 꾹꾹 눌러 시를 쓴다. 그 시들은 시집을 뛰쳐나와 춥고 어두운 세상을 따스하면서도 환하게 비춘다.

"감악소 담벼락에 뿌린 눈물이 몇동이나 되는 줄 아는가"

시인 고광헌 두 번째 시집 <시간은 무겁다>이 시집은 모두 4부에 59편이 ‘상처를 상으로 받아야 시인이지’란 시처럼, 꾸불꾸불한 한 시대가 이 세상 곳곳을 할퀸 상처에 ‘시의 붕대’를 부드럽게 감는다. ⓒ 창비



80년대 어느날 남산터널 옆

지하실에서 나온 날

"자네,
에미가 산에 간 큰성
살릴라고 십삼년간
감악소 담벼락에
뿌린 눈물이
몇동이나 되는 줄 아는가
......"

어머니,
손을 꼭 잡아 주셨다 - 14쪽, '다시, 어머니가 쓴 시' 모두

시인 고광헌이 이번 시집 제목을 <시간은 무겁다>라고 내건 까닭은 무엇일까. 시인에게 시간이 무거운 것은 나이 탓이 아니다. 그 긴 시간을 거슬러 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켜켜이 쌓인 아픈 기억이 자꾸 시인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빨리 죽지 않는다고 죽음에 맞불을 놓는 어머니에게 시간은 정말 무거운 물건이었다.  

시인 고광헌은 이번 시집에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되짚고, 현재를 통해 과거를 끌어안으며 새로운 미래를 쾅쾅쾅 두드린다. 그가 탄탄하게 다지는 '시의 주춧돌'은 어머니와 고향, 작은 풀꽃들, 남북통일, 민주노동열사들이다. 시인은 그 '시의 주춧돌'을 들고 추운 이 세상에 작은 집을 짓기도 하고, 허리춤이 잘린 한반도를 잇기도 한다.

'다시, 어머니가 쓴 시'는 시인이 '민중교육지사건'으로 남산분실(?)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나왔을 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어머니가 겪은 한 많은 세월과 "감악소 담벼락에 / 뿌린 눈물이 몇동이나 되"는 아픈 삶이 곧 시라는 것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시와 삶이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시인 김용택도 글쓴이와 인터뷰를 할 때 그랬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하면 시가 된다"고. 그렇다. 삶이 묻어나지 않는 시는 참다운 시가 아니듯이 시가 묻어나지 않는 삶도 참다운 삶이라 할 수 없다. 시인 고광헌이 쓴 시가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것도 '시=삶, 삶=시'이기 때문이다.  

몸이 마음보다 먼저 운다

물러날 때를 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모가지

저 삶, 고요하다 -34쪽, '난' 모두

시인이 지닌 '삶=시'라는 생각은 '난'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시인은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꽃잎 모가지를 수직으로 떨구는 난을 통해 고요한 삶을 찾는다. 누가 등을 떠밀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물러나야 할 때를 알아야 참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이 시집 곳곳에 꽃과 들풀을 통해서도 갖가지 삶을 비춘다.

"잘 익은 두견주 되어 / 권농가를 재촉하는 꽃"(나는 참꽃이지)이라거나 "형수가 낳은 딸 다섯 / 닮았다"(채송화), "뒷골목 뒷골목으로 / 걸어다니실 / 주름살투성이 / 그대 웃음 그립다"(해바라기), "수레의 발길이 잦을수록 / 바퀴가 구를수록/ 더욱 안전해지면서 멀리 가는 삶"(차전초) 등이 그러하다.      

"몸이 운다 / 아프다고, 슬프다고 / 고함지른다 / 마음보다 먼저 울어버린다 // 근심 / 가득한 몸 // 더 이상 / 상처를 안고는 살 수 없다고 / 오늘밤 / 조용히 관절 일으켜 세우고 / 울어댄다" -64쪽, '몸에 대하여' 모두

"몸이 운다"! "마음보다 먼저 울어버"리는 게 몸이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절창이다. 이 시에서 말하는 몸은 삶이요, 마음은 그 어떤 간절한 바람이다. 까닭에 몸이 운다는 것은 곧 삶이 운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몸이 마음보다 먼저 울 수밖에 없는 것도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기에 앞서 삶이 먼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광헌 시인에게 있어서 삶, 특히 머리칼을 잘라 가발공장에 팔아 수업료를 낸 어머니 삶은 "평생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수업료"(어머니가 쓴 시)로 남아 있다. "쌀 없는 저녁 밥상 차리러 / 봄나물처럼 달려오는 어머니"(어머니의 달리기)가 있어 지금 시인 삶이 있다. 까닭에 삶이 사라지는 소멸은 너무나 잔인하다.

상처 입은 시간에게 보내는 '속앓이'이자 시로 쓰는 반성문

"가령, / 서울서 아침 먹고 금강산 구경한 뒤 / 점심 먹고 / 대동강변 옥류관에서 / 저녁 먹을 수 있겠지 // 남쪽의 기업인은 / 신의주나 개성에 공업단지를 만들고 / 거침없는 북한의 원자재는 / 북쪽 사람들 / 자본주의 임금노동자로 바꿔놓겠지 // 황해도 사리원이나 / 동해바다 명사십리 부근 / 울창한 소나무숲과 모래사장 옆에 / 호텔이나 콘도를 지을 수도 있겠지" -96쪽, '그런 꼬라지 될 바엔 차라리 통일 안했으면 좋겠다' 몇 토막

시인 고광헌 두 번째 시집 <시간은 무겁다>는 지난 26년 동안 시를 '마음의 감옥'에 가둔 채 면회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깊은 상처를 입고 있는 시간에게 보내는 '속앓이'이자 시로 쓰는 반성문이다. 그 지난 시간에는 "오늘도 / 왜 죽지 않느냐고 / 왜 목숨이 이처럼 질기냐고"(시간처럼 무거운 물건 보지 못했네) 시간과 전쟁을 벌이는 어머니와 고향 형님댁 앞마당에 핀 채송화, 민주노동열사, 분단조국 등이 서로 어깨를 걸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시인 나해철은 "고광헌의 시들은 역시 시란 시인의 삶과 하나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말문을 연다. 그는 "모든 시들이 솔직담백하게 쓰였고, 높은 시적 완성도를 보여준다"라며 "본질적으로 서정시인인 그는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의 현대판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한 시인의 삶과 그것을 살아낸 정신의 거의 모든 것을 이 시집 한 권으로 읽는 즐거움이 크다"고 썼다.

시인 안도현은 "실로 오랜만에 고광헌 시인의 시를 읽는다. 시로부터 멀리 떠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를 꼬불쳐두고 있었다니, 시인이 마치 시의 고향으로 돌아온 빛나는 탕아 같다"며 "건들건들 흘러가는 시행 사이에 놀랍게도 아픈 바늘자국이 많다. 자기 자신 바라보기에 급급한 요즈음 시에는 없는 신산한 삶이 여기에는 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시인 고광헌은 195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8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시 무크지 <시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신중산층 교실에서> <5월>(공저)이 있으며, 판화시집 <빼앗길 수 없는 노래>(공저), 사회평론집 <스포츠와 정치> 등이 있다. '5월시' 동인.
덧붙이는 글 [문학in]애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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