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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목회법 부정하면 서민정치 더 어려워진다

[주장] 정치후원에 대가성 배제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

등록|2012.01.05 12:12 수정|2012.01.05 12:12
청목회법, 비판만 할 일인가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청목회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을 두고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보수언론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 '뻔뻔한 국회', '입법로비 양성화', '불법 쪼개기 후원금을 합법으로 둔갑시키기 위한 파렴치 정치'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일부 진보언론도 '짬짜미 기습통과', '자기면죄부'라며 비판대열에 가세했고, 3일에는 대표적인 시민단체 참여연대도 "정개특위에서 재논의 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는 점이 늘 송구스럽던 터라, 청목회법에 쏟아지는 질타에 변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매를 맞더라도 이 점만은 꼭 말씀드리고 싶다. 청목회법에는 비난만 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청목회법을 만들지 않으면 그만큼 대의민주주의가 왜곡되고 서민정치가 어려워진다. 청목회법 비판에는 정치와 후원의 본질을 왜곡하고, 깨끗한 정치를 어렵게 만들며, 민주주의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복무하는 것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청목회법,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청목회사건의 개요와 쟁점부터 살펴보자. 청목회사건은 2000년 11월 검찰이 국회의원 12명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시작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들이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로부터 입법대가성 후원을 받았다는 혐의다. 현행 정치자금법 제32조(특정행위와 관련한 기부의 제한) 3호는 '공무원이 담당·처리하는 사무에 관하여 청탁 또는 알선하는 일'에 후원을 제한한다. 여기에 청목회원들이 국회의원후원계좌로 입금한 10만 원 세액공제 후원금이 법 제31조(기부의 제한) 2항이 제한하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이라는 혐의도 추가됐다.

이에 여야 정치권은 공히 반발했다. 사회적 약자인 청원경찰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당연한 의무이고, 후원방법도 정치자금법과 선관위가 권장하는 10만 원 세액공제 후원을 공식계좌로 받은 것이므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청목회원들의 10만 원 세액공제 후원금이 대가성이나 단체관련 자금을 금지한 현행 정치자금법에 위반된다며 의원들을 기소했다. 청목회 간부 3명도 청원경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회원들로부터 걷은 후원금을 국회의원 후원계좌에 입금하거나 의원실에 직접 전달한 혐의로 구속됐다.

여야 정치인이 보기에 검찰의 처사는 지나친 것이었다. 그래서 현행 정치자금법 제31조 2항의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을 '법인 또는 단체의 자금'으로 바꾸는 개정안을 마련했고, 지난해 3월 행정안전위원회에 이어 12월31일 법사위를 통과시켰다. 법인이나 단체 자금과 달리 개인들의 후원금은 기부제한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른 조항은 바꾼 것이 없다. 정치개혁 특위에서 오래 논의돼 온 대가성 조각문제나, 통합진보당이 강하게 요구한 공무원노조원이나 교직원노조원들의 정당후원문제도 반영하지 못했다.

청목회법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놓고도 "특정단체가 회원들의 명의만 빌려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쪼개기'를 해도, 단체의 자금이라는 사실이 명확할 때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비난했다. 참여연대도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을 '법인 또는 단체의 자금'으로 수정하면서 기업이 구성원들로부터 정치자금 모금을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았다"며, "기업이 자체 재정으로 직접 기부하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 기부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식의 비판이 납득되지 않는다. 먼저, 단체 자금의 쪼개기 후원 가능성부터 살펴보자. 이 문제를 염려하시는 분들은 청목회나 노동조합을 염두에 둔 비판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알기로 청목회나 노동조합 같은 단체는 구조적으로 법에서 금하는 단체자금 후원이 불가능하다. 민주적인 의결구조와 내부견제세력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불법후원은 의결도 어렵거니와 설사 의결된다 하더라도 반집행부세력에 의해 금방 폭로된다.

기업 자금의 쪼개기 후원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행법이든 개정안이든 기업의 자금을 임직원에게 나눠주고 개인후원금으로 가장하면 정치자금법 제31조(기부의 제한) 2항에 따라 처벌받는다. 참여연대가 지적하는 "기업이 구성원들로부터 정치자금 모금"은 현행법으로도 가능하다. 현행 정치자금법 제16조(정치자금영수증과의 교환에 의한 모금) 1항에는 기업의 간부도 후원회로부터 위임장을 교부받으면 정치자금영수증을 후원금과 교환하는 방법으로 후원금 모금을 할 수 있다.

다만, 업무·고용 그 밖의 관계를 이용하여 부당하게 타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방법으로 기부를 알선하면 정치자금법 제33조(기부의 알선에 관한 제한)에 따라 처벌받는다. 정치인에 대한 대가성 후원도 제32조(특정행위와 관련한 기부의 제한) 3호에 따라 제한된다. 누구나 후원회의 위임을 받지 않고 모금하면 불법이다. 지난해 노동조합 간부 수십 명이 불법후원혐의로 조사받거나 기소된 적이 있는데, 이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핵심원인이지만 위임절차를 소홀히 한 측면도 있다. 정치자금법 제45조(정치자금부정수수죄) 1항은 이 법에서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주고받은 자는 처벌하기 때문이다.

정치후원과 대가성은 대의정치의 본질이다

이제 글머리에서 제기했던 정치후원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필자의 견해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째, 정치후원과 대가성의 관계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정치후원에 대가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지난해 청목회사건이 터졌을 때 어느 정치학자는 "유권자가 정치인이나 정당에 기부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의사표현의 하나이고, 후원으로 인해 국회의원이 입법 활동에 나섰다면 아주 효과적인 대의가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와 후원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아무 관계도 없는 정치인에게 후원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정치인에게 후원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유리한 입법과 예산 배정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누군가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과 지지자 간의 '대변성' 또는 '대가성'은 대의정치의 본질이다. 따라서 정치후원의 대가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다. 검찰도 정치후원과 대가성에 대해 성찰해주시기 바란다. 거액의 음성자금도 아닌 공식계좌를 통한 소액후원금을 대가성을 빌미로 기소하는 것은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는 수긍하기 어렵다.

청목회법도 문제라면 깨끗한 정치 가능한가

둘째, 청목회법을 비판하면 깨끗한 정치가 더 어려워진다. 필자도 밖에서는 몰랐지만 국회의원이 되어보니 정말 힘들다. 엄청난 격무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그런데, 의원들이 말 못하는 '불편한 진실' 중의 하나가 활동비 고민이다. 기본적인 의정활동을 하는 데에도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사무실 유지에만 매달 수백만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후원금은 모으기 힘들다. 연간 한도액 1억5천만 원도 부족한데, 대다수 의원들은 1억원 모으기도 힘들다. 필자는 한도액의 1/3도 넘기기 힘들다. 그래서 의원들은 늘 돈문제로 쩔쩔맨다.

청목회사건이 없어도 어려운데, 검찰의 청목회건 수사로 여의도에는 후원금 씨가 말랐다. 아직 올해 후원금 모금내역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동료의원들에게 물어보면 모두 고개를 내젓는다. 필자의 경우도 비참하다. 때문에 4월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계획중인 필자는 고민이 많다. 비례대표 초선의원이 지역구에 도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설사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지역사무실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라 고민인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청목회법이 의원들의 밥그릇챙기기가 아니라 고뇌의 산물로 보인다. 깨끗한 정치와 서민정치에 대한 방어로 보인다. 검찰이 소액다수후원도 문제 삼는데, 청목회법조차 용납할 수 없다면 무슨 돈으로 정치를 하라는 말인가? 깨끗한 정치, 서민정치를 포기하라는 것인가?

청목회법도 안 되면 서민정치 더 약화된다

셋째, 청목회법을 비판하면 서민정치가 어려워지고 특권정치가 강화된다. 오늘날 한국정치가 비판받는 것은 정치권이 1%에 불과한 재벌과 특권층에 휘둘려 99% 서민과 중산층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청년세대, 여성 중에서 국회의원이 훨씬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대다수가 중산층 이상 이어서 서민대중의 고통을 대변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정치가 활성화되지 않은 현실에서 돈 없는 사람은 지지층의 후원없이는 출마조차 어렵다. 우여곡절 끝에 당선되다 하더라도 후원이 위축되면 제대로 된 활동과 성과를 내기 어렵다.

청목회법을 비판하면 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줄어든다. 서민들이 아무리 고통을 호소하고 시위를 해도 그들의 요구가 정치에 반영되기 어려운 것은, 정치인들이 재벌과 특권층의 자금과 로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서민들도 정치에 좀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서민들이 투표를 빼고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소액다수후원 뿐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민들이 정치인들에게 좀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대의민주주의 발전에 보탬이 된다. 그런데 청목회법이라도 없으면 서민정치는 더 약화되고 특권정치가 더 강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노동조합의 정치후원 위축이다. 2004년 정치자금법 개혁이후 노동조합에서는 간부들의 안내로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10만 원 세액공제 후원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돈 없는 진보정당 의원들의 모금실적이 좋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청목회건과 더불어 수십 개 노조의 간부들이 수사를 받다보니, 작년부터는 노조 간부들이 세액공제후원에 앞장서지 않는다. 공무원노조원이나 교직원노조원들의 정당후원도 검찰수사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는 진보정치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와 서민, 중소기업을 대변해온 필자가 입은 타격도 크다. 서민들의 소액다수후원에 대한 검찰수사의 목표는 서민정치 위축이었던 것이다.

서민정치 강화할 더 나은 정치자금법 만들어야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짐작하시겠지만 필자는 이 글을 쓸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다. 떠들어봐야 욕만 먹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서민을 대변해야 할 진보언론과 시민단체까지 정치권 전체를 비판하는 것을 보고, 매를 맞기로 결심했다. 필자가 보기에 청목회법을 비난하는 것은 소액다수후원을 위축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소액다수후원이 위축되면 민주주의가 위축된다. 이는 민주정치가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복무하는 것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온다. 청목회법을 비판하는 분들은 이 점을 헤아려주셨으면 한다.

물론 청목회법으로 현행 정치자금법의 결점과 한계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청목회법에는 정치권의 자기방어논리가 작동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깨끗한 정치, 서민을 위한 정치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권과 서민들의 노력도 함께 방어된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청목회사건은 과거 재벌들이 보였던 고액 음성자금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서민들이 자신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개선해보려는 정치적 자각에서 비롯된 일이다. 청목회사건과 청목회법에 대한 국민여러분의 넓은 이해를 바라며, 앞으로 정치개혁특위 등에서 더 나은 정치자금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18대 국회의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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