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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인격, 전화 예절

노총각이 노총각들을 위해 쓰는 일기 ⑨

등록|2012.01.09 10:36 수정|2012.01.09 10:36

▲ 엄태웅 주연 영화 <핸드폰> 중 ⓒ 씨네토리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배려를 가져가려고 노력하는 내가 요새 손을 놓아버린 분야가 있다. 다름 아닌 일부 광고·대출업자들의 무작위 전화다.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이들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일단 전화를 걸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낸다. 상대가 지금 전화를 받을 상황인지 먼저 물어보는 등 작은 동의는 안중에도 없다.

그럼에도 얼마 전까지의 나는 지금과는 대처 방법이 좀 달랐다. 바빠도 어느 정도 선까지 들어주는가 하면 정이나 안되겠다 싶으면 "말씀은 감사하지만 제가 지금 해당상품에 대해 관심이 없네요"라며 최대한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을 하고 자연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그냥 막 전화를 끊어 버리거나 신경질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아니다 싶었다. 어차피 서로 마주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기는 하지만, 그들도 먹고살기 위해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할 뿐이고 굳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나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행위를 매우 싫어한다. 그런 것을 누가 좋아하겠느냐마는 나는 정도가 좀 더 심하다.

나느 어지간한 것에는 화도 안내고 잘 참아내는 편이지만, 대화 도중에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상대편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면 유달리 화가 많이 난다. 사람마다 민감한 구석이 다르다던데 나는 이런 쪽을 잘 못 넘기는 듯하다.

그런 나이기에 아무리 광고·대출업자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는 지켜주고 싶었다. 그들도 그렇게 전화한다는 자체가 즐겁지는 않을 텐데 전화 거는 족족 무시를 당하거나 화난 목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지만 최근에는 나도 모르게 이런 배려가 사라지고있음을 느낀다. 상대방들이 너무 예의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기요,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일을 하고있는 관계로 오랜 시간 통화는 힘드네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지금은 필요가 없습니다. 혹시 연락번호라도 문자로 남겨주시면 제가 필요할 때 전화드리지요."

그들의 목소리를 한참 듣다가 이렇게 말을 하지만, 상당수는 중간에 전화를 딸깍 끊어버리기 일쑤다. 한마디로 볼짱 다 봤다는 것이다.

어쩔 때는 너무 화가 나서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기도 한다. 대개 발신 전용 전화인지 통화할 수는 없었다. 자신들은 통화 중 욕을 하거나 막말을 하면서 끊어버릴 수 있지만, 화난 상대방은 대응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런저런 예의 같은 것은 둘째치고 일단 전화번호부터 불확실한데 그런 상황에서 누가 그들을 믿고 거래를 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서로 통화는 가능해야 믿고 뭔가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은 업체가 있겠지만, 이런 경우 대문에 덩달아 욕을 먹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보니 나도 먼저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예전처럼 예의를 갖추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상대편에서 끝까지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려는 상황에서는 나도 최대한 배려를 하면서 정중히 거절하려고 노력한다.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최소한 "수고하십니다" 정도의 말은 남겨주고 전화를 끊고 싶다.

사람들은 의외의 경우에서 기분이 상한다. 큰 문제 같으면 의외로 냉정해져서 문제 해결에 전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지만, 전화 통화 같은 기본적인 생활 범주 안에서 예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속이 좁아져서 화를 내는 경우가 잦은 것 같다.

그래서 일까, 상황이 어려운 경우에서도 서로간 예의를 지키면서 작은 배려가 오가면 뜻밖에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어쩌면 우리는 작은 감정에도 쉽게 기뻐하고 상처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다음 회 예고 : 노총각, 외로움보다 주변 시선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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