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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개천에 금붕어가 노니는 음식점 보셨나요?

[늘그막 백수들의 겨울여행2] 담양 면앙정, 송강정과 대통밥 음식점

등록|2012.01.10 10:46 수정|2012.01.10 10:46

▲ 조선시대 문인 송순이 시를 짓고 교류하던 면앙정 ⓒ 이승철


"분명히 이쪽 어디쯤인데…."
"길에 사람이 있어야 물어보기라도 할 것 아냐?"
"꽤 유명한 유적지인 것 같은데, 왜 이정표도 없지?"

너도나도 투덜투덜한다. 그럴 만도 하다, 손에 들고 있는 관광지도 상으로는 분명히 근처에 와 있었다. 그런데 보이는 것이 없다. 유적지는 고사하고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도 보이지 않고, 찬바람만 쌩쌩 불어댄다. 관할 행정기관에서 만들어 배포한 지도인데, 지도만 보고 찾아가기는 정말 어렵다. 지난 12월 15일, 담양 관방제림을 둘러보고 면앙정으로 가는 길이었다.

"저기 앞에 나타난 차, 경찰 순찰차 같은데?"

그때였다. 맞은편에서 차량 한 대가 나타났다. 경광등이 달린 경찰차다.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잽싸게 차에서 내렸다. 도로를 건너 마주 오는 경찰차를 세웠다. 경찰관은 "면앙정이요? 저 앞에 언덕 보이시죠? 바로 그 언덕 위에 있습니다"라고 한다. 이런 세상에…. 그냥 곧장 조금만 더 갔더라면 만났을 걸. 우리는 언덕 밑 주차장 주변에 있었다.

전망 좋고 풍류와 멋이 넘쳐나는 '면앙정'

언덕 위에 정자 같은 건물이 어렴풋이 보인다. 입구가 선명치 않은 길을 찾아 올라갔다. 계단 길이었다. 길이 꽤 가파르다. 길옆엔 한겨울이 무색하게 대나무 숲이 청청하다. 언덕 위에 올라서니 시야가 탁 트인다. 나지막한 제봉산 자락 끝 안부에 서 있는 정자 한 채, 멀리 바라보이는 산까지 넓은 들이 눈 안에 가득히 안겨온다.

"참으로 멋진 곳에 자리 잡은 정자구먼."
"어허, 이런 곳에서 술잔 들고 앉아 있으면 시 한 수쯤 저절로 나오겠네."
"예나 지금이나…. 풍치 좋은 곳은 가진 자들이 다 차지하고 살았구먼,"

면앙정은 조선 중종 때 이 지방 양반인 송순이 세웠다.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있다. 지방기념물 제6호로 지정된 문화재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퇴계 이황을 비롯한 당대의 학자들과 교류했던 곳이란다. 송순은 이곳에 수많은 학자시인들의 창작 산실을 만들었다. 정자 안에는 이황 외에도 김인후와 임제,·임억령 등의 시편들이 판각돼 걸려 있었다.

▲ 면앙정 옆 대나무 숲 ⓒ 이승철


산으로 병풍을 삼아 들 밖에 둘러 두니
지나다가 구름조차 자려고 들어온다네.
어찌하여 무심히 지는 해는 홀로 넘어 가는고.

소나무 울타리에 달이 떠올라 대나무장대 끝에 닿으니
거문고 비스듬히 안고 바위 가에 앉아 있을 때
어디서 외로운 기러기 홀로 울어 애닲구려.

면앙정시 일곱 수 중에 두 편이다. 그야말로 풍류가 넘쳐난다, 계절이 봄이나 가을이었더라면 덩달아 흥겨웠지 않았을까?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에 찾아온 것이 몹시 아쉽다. 정자 뒤쪽 산자락에 우람한 고목 한 그루. '면앙정 송순 회방례 시연행사' 안내 현수막이 찬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었다.

"다음은 송강정인데 방향이 어느 쪽이지?"
"지도상으론 오른쪽인데 그쪽으로 가볼까?"

운전대를 잡고 길을 묻는 일행의 눈이 나를 보고 있다. 어느새 내가 가이드가 됐다. 오른편으로 조금 달리자 길옆에 경찰 파출소가 보인다. 차를 세웠다. 그리고 파출소로 들어갔다. 엉거주춤 일어난 경찰관. '이렇게 추운 날 웬 영감이 여긴 왜?'라는 표정이다.

▲ 송강정의 본래 아름 죽록정 현판이 붙은 옆면 ⓒ 이승철


"아, 송강정이요? 오른편으로 가시다가 큰길로 올라서서 조금 가시면 첫 번째 신호등에서 다시 우회전해서 조금 더 가시면 왼편에 송강정이 보일 겁니다."

그런데 표정과는 달리 대답이 참 좋다. 친절하고 공손하다. 시골 파출소 경찰관들은 모두 이렇게 친절한 걸까. 자상한 길 안내도 마음에 쏙 든다. 다음에도 길을 물을 때는 경찰관한테 물어봐야 겠다. 그들의 길 안내는 정확했다.

"저기, 왼편 언덕 위에 정자가 보이네요."

주차장엔 노선버스 한 대와 승용차 몇 대가 세워져 있다. 그러나 완만한 경사의 소나무 숲길을 걸어 올라간 송강정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인 팔작지붕 형태다. 정자 옆엔 정철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 유명한 <사미인곡>이 적혀 있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의 '송강정'

▲ 송강 정철 시비 ⓒ 이승철


이 몸이 생겨날 제 님을 따라 생겨나니 한 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하나 젊어 있고 남 하나 날 사랑하시니 이 마음 이사랑 견줄 데가 다시없다
평생에 원하기를 함께 살자 하였더니 늙어서 무슨 일로 혼자 두고 그리워하는고
엊그제 님을 모셔 광한전에 올랐더니 그 사이에 어찌하여 하계에 내려오니
올 때에 빗은 머리 흐트러진 지 삼 년이로세….

문장이 꽤 길다. <사미인곡>은 조선 초기에 나타난 시가와 산문의 중간 형태 글이다. 이 글에는 임금을 사모하는 심경이 담겨있다. 그냥 보면 남편과 이별하고 사는 부인의 심사를 나타낸 글 같다. 그러나 사실은 임금에 대한 자신의 충정을 고백한 내용이다. 그 시대 가사문학의 정취가 배어나는 아름다운 글이다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있는 송강정은 역시 전남 기념물 제1호다. 송강 정철은 조선 선조 임금 때 서인에 속했던 사람이다. 그는 1584년에 대사헌이 됐다. 그러나 곧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인의 탄핵을 받는다. 이듬해에 대사헌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곳 창평으로 돌아와 4년 동안 조용히 은거생활을 했다.

그는 바로 이곳에 조그만 초막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 초막을 죽록정이라 불렀다. 지금의 정자는 1770년,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그때 송강정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송강은 이곳에 은거하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비롯해 많은 시가와 가사를 지었다. 이곳 송강정은 정철 문학의 산실인 셈이다. 정자의 앞면에는 '송강정', 옆면에는 '죽록정'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 금붕어가 노니는 대통밥집 실내 실개천 ⓒ 이승철


"어이쿠 배고파. 그런데 대통밥집은 어디 있는 거야?
"이곳까지 오는 길에도 살펴봤지만 보이지 않던 걸요."

오후 1시가 지나고 있었다. 모두들 배가 고프단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대통밥집도, 죽통밥집도 보이지 않는다. 때마침 주차장의 노선버스가 시동을 걸고 있었다. 운전기사에게 물어봤지만, 대답이 신통치 않다. 그저 담양읍내로 들어가 보란다. 일단 소쇄원 쪽으로 가기로 했다. 담양에선 흔한 밥집이 대나무통 밥집이라지 않았던가.

"앗! 스톱, 바로 저기다. 대통밥집!"

외마디 소린지, 탄성인지, 아무튼 반가운 소리였다. 광주호 댐 근처에서 오르막길로 접어들려는 순간이었다. 길 왼편에 제법 넓은 주차장을 갖춘 음식점이 있었다. 주차장 앞에 커다랗게 써놓은 차림표가 우리 일행의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아니 이게 뭐야? 식당 안에 웬 실개천? 어라! 금붕어까지 있네!"

앞장서 들어가던 일행이 멈춰 섰다. 뒤따르던 일행은 "어라! 정말이네, 이런 식당은 난생처음인 걸"이라며 놀랍단다. 정말 특이한 풍경이다. 식당 안이 제법 넓긴 넓었다. 목재와 흙으로 지은 집, 듬성듬성 굵은 기둥이 서 있고 내부 장식도 조금은 고풍스럽다고 할까.

음식 맛 좋고, 실내에 흐르는 실개천에 금붕어가 여유롭게 노니는 음식점

바닥은 옅은 황토색이었다. 뭔가 단단히 굳게 하는 재료를 섞어 다진 듯한 모습. 바닥에는 어른 머리만한 검은색 굵은 돌을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해 놨다. 그리고 그 아래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깊이는 야트막한데다가 그리 넓지도 않았다. 물은 식당 입구 계산대에서 졸졸 흘러내려 실개천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 실개천에서 노닐고 있는 빨간색 금붕어들이 한가롭다.

▲ 실개천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입구 계산대 ⓒ 이승철


실개천이 흐르는 땅바닥 복도 좌우로 마루가 깔려 있다. 손님들이 음식을 먹는 곳이다. 일행들이 색다른 느낌으로 기분 좋게 음식상 좌우에 앉는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실내를 둘러봤다. 실내는 천정의 목조 지붕이 그대로 드러난 구조다. 천정의 대들보와 서까래 사이엔 역시 연한 황토색 흙으로 곱게 마감처리 돼 있다.

복도와 마루는 시원하게 열려 있는 구조다. 우리들이 앉아 있는 곳과 복도 건너편이 마주 보인다. 그 복도에 장식용인 듯한, 크지 않은 옹기항아리들 몇 개가 놓여있다. 그 옆에는 옛스럽고 멋진 전화기 한 대가 놓여 있다. 그리고 항아리 위에 놓여 있는 커다란 솔방울들이 정겨워 보인다. 두리번거리는 우리 일행들을 향에 건너편에서 웃음 띤 얼굴로 가볍게 목례하는 사람은 이 고장 사람인 듯하다.

화장실 입구에는 지게를 비롯한 농사용 도구들이 진열돼 있었다. 손을 씻고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들이 차려지기 시작한다. 기대했던 대통밥, 대나무를 잘라 만든 그릇에 콩과 밤, 대추 등을 넣어 지은 밥이 향기롭고 고소하다. 반찬은 그리 대단할 것 없었다. 김치와 나물 종류 몇 가지, 지극히 평범한 음식들이다.

▲ 음식점 내부 고풍스런 전화기와 항아리위의 솔방울 ⓒ 이승철


"오우! 생선구이가 맛있네요."
"삼치, 갈치에 고등어까지, 좋은데요."

생선구이들이 나왔다. 신선한 생선을 구워낸 듯. 그리고 또 한 가지,  떡갈비도 모두 맛있게 먹는다. 음식도 맛있지만 시장이 반찬이라지 않았던가. 대통밥집을 찾아다니느라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으니 맛있을 수밖에. 여행의 즐거움 중에 음식 먹는 맛도 결코 소홀히 여길 것이 아니다.

"어험! 어때요? 음식 맛이 끝내주지요? 모두 내 덕인 줄 아세요."
"어, 맛있게 먹었네, 그런데 이만한 값이면 어딜 가도 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건 그려, 사실 음식 값에 비해 메뉴가 대단한 건 아니잖아?"

일행들이 순간 머쓱해졌다. 차안에서 이 음식점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던 일행이다. 그러나 곧 회복됐다. 모두 맛있게 먹었다고 치사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음식 맛은 좋았다. 그렇지만 음식 값이 결코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 맛있게 먹은 대통밥집 점심상 ⓒ 이승철


"우와! 이게 진짜 맛있네요."

후식으로 차 한 잔씩을 마실까 하던 참이었다. 구수한 누룽지가 나왔다. 그냥 누룽지가 아니라 끓인 누룽지였다. 끓인 누룽지와 숭늉 맛이 기막히게 좋았다. 흔히 먹는 그런 누룽지 맛이 아니었다. 구수하고, 고소했다. 또, 뭐랄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이 맛있었다. 아무튼 누룽지 맛에 모두들 반해버렸다.

"아함! 졸려, 여기서 한 숨 푸욱 잤으면 좋겠다."

일행 한 사람이 눈을 스르르 감는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으니 피곤하기도 할 것이다. 더군다나 배고픈 참에 배불리 먹었으니 몸도 마음도 여유로워졌을 터. 본래 배부르면 눕고 싶고, 한 숨 자고 싶은 것도 인간의 속성이다. 그러나 음식점에서 드러누워 잠잘 수는 없지 않은가. 모두 툭툭 털고 일어났다. 다음 코스가 궁금하고 기대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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