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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외교역량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

하영선의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을 읽고

등록|2012.01.11 10:02 수정|2012.01.11 10:03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게 지난해 10월이다. 그 이후 3개월여가 흘렀지만 여전히 한반도는 폭풍 앞 등불이다. 위태롭다. 반도 남쪽은 남쪽대로 정치적 격변기를 겪고 있으며, 북쪽은 옛 최고 권력자가 세상을 떠난 뒤라 어떤 시기보다 그쪽 권력의 선택을 가늠하기 어렵다. 더더욱 한반도가 불안해 뵈는 것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커가고 있으며, 이에 뒤질세라 미국도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학자이자 북핵문제 전문가인 하영선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시대 한국 외교의 철학 없음, 대처능력 없음, 실익 없음 들을 작심하고 비판하고 있다. 허점투성이의 한국 외교는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도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명박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원만히 해 나가지 못하고 있으며, 대북정책마저 실패함으로써 남북 간 긴장을 더욱 높여 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북한 핵 문제 등을 둘러싼 대미 대중 외교 역시 한반도 평화나 남북관계 진전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때, 하영선 교수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문제 제기와 대안은 귀담아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21세기에 우리 문제를 "전 세계의 흩어진 힘에 복합 그물망을 치는 것"이며, "젊은 세대부터 복합 네트워크 사고를 하루빨리 갖추어 늙은 세대까지 확산시키는 것"이라 보는데, 여기서 그의 시각과 문제제기 및 그 해법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역사 속 젊은 그들,이란 책 제목에서 보듯 하영선은 근대 이후 우리 역사에서 열강들 틈에서 '약소국'을 벗지 못하였던 한민족이 살아남는 법을 집요하게 찾아나셨던 정치외교가 또는 사상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러면서 자신의 복합 모델 또는 복합 외교의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물론 복합 외교의 방식이나 해법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250년 전 연암에게서 하영선은 양극단의 시각, 즉 북학이나 북벌론에서 자유로운 자세와 시각으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복합 생존 전략'을 찾아낸다. 다산의 자세는 더 너르고 깊었다고, 하영선은 평가한다. 다산은 일본을 이해하려고 일본 공부를 깊이 하였고, 청에 대해서는 연암보다 더 복잡하게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영선은, 노무현 정부에서 핵심권력을 차지했던 이른바 386 세대 정치인들을, 다산의 성실한 자세를 빌어 강하게 비판한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지구표준을 선도하려면, 어디에서 누구와 표준 경쟁을 벌어야 하는지 알려는 집요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영선의 386 비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수긍할 부분도 있는 듯하다. 여기에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외교에 대한 하영선의 비판적 시각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규수 또한 자기 시대를 앞서갔다고 하영선은 보고 있다. 서양을 무조건 배척하자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정확히 알자"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하영선은 유길준에게서 '19세기형 복합 외교'를 찾아낸다. 중국과 서양 세력을 동시에 품는 양절체제(兩截體制)에서 청국과 일본을 비롯한 서양 제국을 다루는 해답을 유길준이 찾았다는 것이다. 김양수의 시각을 평가하면서, "만약 우리 힘으로만 싸워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면,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이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를 정확히 읽는 것이었다."고 하영선은 이야기한다. 안재홍의 복합론은 그의 시대 상황에서 장점과 한계를 지녔다고 하영선은 본다. 안재홍의 비전은 옳았으나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실패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영선은 성공한 복합 모델을 찾아간다. 우리 시대 복합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거보다는 훨씬 적실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타당한 근거로 그는 내세운다.

우리 시대 복합 모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하루 빨리 해소해야 하는 문제로, 하영선은 보수-진보 이분법을 극복하는 것이라 한다. 세상의 변화를 그러한 이분법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 모델을 자신의 스승인 이용희에게서 찾는다. 이용희 이야기를 통해서, 하영선은, '우리' 만의 민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과, 개별국가를 넘어서서 세계를 위해 문제를 풀겠다는 문제의식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이 책 전반을 통하여 우리의 생존 전략으로서, 앞으로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외교 전략으로서 복합 모델, 복합 네트 워크, 또는 동맹의 복합화를 줄기차게 이야기한다. 그의 얘기 가운데 "미국과 한국 관계는 상징적으로는 오바마와 이명박이라는 정치 지도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 또한 양국 기업들과 같은 여러 조직들이 모두 연결되어 힘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는 우리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스스로에 대한 진단이자 해결해 내야 하는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메시지로 들린다.

한반도 주변 중국의 영향력이 극대화하고, 북한의 변화가 우리를 더더욱 긴장하게 하는 상황에서 하영선의 이야기는 살갑고도 심각하게 들린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외교 역량과 관련하여 우리 시민사회와 국민들의 역량을 다시 따져볼 수밖에 없다. 올해 치르게 될 두 개의 커다란 정치 행사를 앞둔 시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 사회가 미국 사회에 영향을 주기란 어려운 일이기에, 우리는 한국 사회의 내부 역량과 외교 역량을 키워가는 것이 우리에게 실현가능한 일이다. 한국 국민들에게 외교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내부 역량을 키워가는 것, 그리고 국민의 대표자 또는 핵심 권력자들로 하여금 복합 모델과 같은 지혜로운 외교 전략을 구사하게 하는 힘을 실어주는 것이 시급한 때라는 얘기다.

한국 국민들이 정부를 선택하는 잣대를 따져보면, 국민들은 아직도  '먹고 사는 문제'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선택하게 될 대표자, 또는 최고통치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대북관계나 외교적 역량은 묻지도 따져 보려들지도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정치 교육과 외교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며, 단기적으로는 국내 정치의 구조와 문화를 개선해 내어야 하는 이유다. 국제정치 환경에서 우리의 존립은,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문제만큼이나 크고도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 시대 한국 땅을 사는 정치인들과 정파들, 그리고 유권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나와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면서 정치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덧붙임] 하영선, 역사 속의 젊은 그들, 서울:을유문화사, 2011
첨부파일
.image. 역사 속의 젊은 그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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