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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수사발표 다음날, 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 참여정부 마지막 법무비서관 박성수 전 울산지검 형사1부장

등록|2012.01.12 19:09 수정|2012.01.12 19:09

▲ 올 초 검찰에 사표를 낸 박성수 전 울산지검 형사1부장. ⓒ 권우성


지난 2007년 12월 6일 오전 8시 30분. 이날 대통령 관저 소회의실에서는 민정수석 등이 참석한 관계비서관 회의가 열렸다. 전날(12월 5일) 검찰에서 발표한 BBK사건 수사결과와 관련해 청와대의 의견을 정리하는 자리였다. 회의 주재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국가기관인 검찰의 결정에 대하여 진실할 것이라는 추정력은 부여해야 한다. 검찰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인 물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결론이 달라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검찰을 공격하거나 불수용 의견을 밝히는 것은 국가를 운영하는 처지에서 부적절하다. 정치적으로 다소 아쉬움이 있을 수 있으나 감정에 치우치면 안된다. 다만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검찰수사에서 다소 미진한 점이 있었던 것은 아쉽다. 청와대에서 별도의 의견을 밝힐 필요는 없다."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은 참여정부 마지막 법무비서관인 박성수(50) 전 울산지검 형사1부장의 수첩에 고스란히 기록됐다. 인터뷰를 위해 9일 만난 박 전 부장검사는 "부실수사였다고 멘트를 날려야 할 당시 여당에는 불리한 발언이었지만 노 대통령은 끝까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켜주었고, 신뢰와 존중을 아끼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참여정부 '독립성 보장' 이용해 검찰 스스로 권력화됐다"

놀랍게 느껴지는 이 발언을 기록한 박 전 부장검사는 2005년 9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과 법무비서관을 지냈다. 하지만 한때 '정의로운 검찰총장'을 꿈꾸었던 그는 지난 4일 검찰에 사표를 냈다. 검찰에 들어온 지 20년 만이었다. 오는 4월 총선 출마가 사직의 직접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검찰의 수사행태를 고민한 결과이기도 했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진 가장 큰 원인은 몇 가지 정치적인 사건 처리에 있어서 검찰권이 무리하게 남용되고 무엇보다 중요한 형평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멀리 볼 것도 없습니다. 현 정부 들어 축소·부실·봐주기 수사라고 거명되거나 반대로 과잉·표적·보복수사라는 국민의 호된 비판을 받고 있는 사건들이 참으로 적지 않았습니다."(박 전 부장검사가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린 '사퇴의 변' 중에서)

▲ 박성수(아랫줄 왼쪽에서 세번째) 전 부장검사는 참여정부 마지막 법무비서관을 지냈다. ⓒ 박성수 제공


박 전 부장검사는 "검찰에 남아 민주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을 때 내부에서 개혁을 추동하는 힘이 되는 것도 의미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치인이 되면 더 빠르고 힘있게 검찰개혁을 추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 사표를 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부장검사는 2년 6개월간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권력기관 개혁작업'의 핵심이었던 검찰개혁 과제를 다루었다. 여기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 특별검찰청 설치문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검찰개혁에 가장 적극적인 참여정부조차 이러한 개혁과제들을 완수하지 못했다. 

"청와대라는 권력을 갖고 있었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는 소수정부였다. 제도개혁은 입법부인 국회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적도 있었지만 그 안에 노 대통령의 지지세력이 많다고 할 수도 없었다. 당에서도 국회에서도 뒷받침이 안된 것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도 검찰개혁과 관련해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 게다가 집권 초기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대검 중수부가 뜨면서 대검 중수부 폐지도 추진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검찰개혁 시기를 놓쳐 버렸다."

이날 인터뷰에 동석했던 참여정부의 한 인사도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여야 안 가리는 대선자금수사로 박수를 받아 대검 중수부 폐지, 공수처 신설, 특검 상설화 등을 추진하기 어려웠다"며 "그런 제도개혁을 추진하면 '대선자금 수사하는 검찰을 제어하려는 것 아니냐?'고 오해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전 부장검사는 "노 대통령도 참여정부 시절 추진했던 사법개혁에 아쉬움을 나타냈다"며 노 대통령의 발언(2008년 7월)을 소개했다.  

"재임시절에 검찰이든 법원이든 인사를 통해 사법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사보다는 제도개혁에 치중했다. 사람을 한둘 써서 바꾸는 것은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또 인사를 통해 바꿔 나가기에는 재임기간이 너무 짧다. 그래서 제도개혁에 방점을 두었다. 하지만 힘에 부쳤다. 결과적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 

검찰은 노무현 정부에서 보장해준 '독립성'을 역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더욱 키웠다. 이에 따라 선출되지 않은 검찰권력의 민주적 통제가 더욱 어려워졌다. '민주화의 역설'이다. 

박 전 부장검사는 "노무현 정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등을 확실하게 보장해줬다"며 "이것은 검찰이 자신의 수사권(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절제해야 좋은 효과가 나는데 (이명박 정부)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언급한 참여정부 인사는 "노 대통령은 검찰을 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사권 행사보다는 제도개혁 추진으로 갔다"며 이렇게 말했다.

"검찰권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제도개혁만큼은 검찰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검찰권을 체크하는 권력기구가 생기는 제도개혁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이렇게 제도개혁이 무산되면서 (검찰권력이 커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생긴 것이다."

박 전 부장검사는 "지나고 보니 참여정부는 제도개혁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인사를 통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구현할 사람을 키우지도 못했다"며 "민주적 통제도 안돼 검찰권만 강화되면서 검찰은 스스로 권력화됐다"고 토로했다. 

"권위주의 정부 못지않게 과잉·표적수사 많이 이루어져"

▲ 박성수 전 울산지검 형사1부장. ⓒ 권우성


박 전 부장검사는 지난 2008년 2월 검찰로 복귀했다. 변호사 개업이나 정치권 진출 등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미완으로 그친 검찰개혁을 내부에서 추진해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탓에 애시당초 그가 갈 수 있는 '적당한 보직'이란 없었다. 결국 서울고검을 거쳐 사법연수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수사일선에서는 멀어졌지만 참여정부에서 검찰개혁과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검찰을 꼼꼼하게 대비시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참여정부 검찰이나 이명박 정부 검찰이나 검찰의 본류, 주류가 변한 것은 없다. 보수성향의 엘리트들이 계속 검찰을 이끌어왔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참여정부에서는 '검찰수사 불개입-불간섭'이라는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무리한 검찰권 남용이 비교적 적었다. 반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무리한 수사(검찰권 행사)가 많았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검찰권이 더 절제되고 공정하게 행사되느냐에서 차이가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

박 전 부장검사는 "참여정부는 검찰 처지에서 보면 어려운 시절이었다"며 "상설특검, 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정부에서 강도높게 사법개혁을 추진하면서 검찰이 그것을 방어하느라 힘든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당시 검찰 안에서는 참여정부나 노 대통령에게 반감을 보이거나 좋지 않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로 바뀌자 분위기도 바뀌었다. (검찰로서는) 한시름 놓게 된 것이다. 위축된 검찰권을 다시 마음껏 행사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물론 그런 분위기는 검찰 전체가 아니라 지휘부를 중심으로 하는 검찰 주류층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박 전 부장검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검찰수사 행태를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노무현-한명숙-미네르바-정연주-PD수첩' 사건 등에서 보여준 과잉·표적·보복수사이고, 다른 하나는 축소·부실·봐주기수사로서 민간인 불법사찰, 한상률-천신일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법률가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수사였다"며 "검사가 과연 법률가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공정성과 형평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검사들이 법리적용에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 자신감있게 처리했을 수도 있다. 물론 공명심도 작용했을 수 있다. 특히 총리 등 사회고위층 인사 수사에서 검사의 공명심이 작용해 검사가 섣부르게 판단했을 수 있다. 또 그러한 수사를 높게 평가하는 정권이나 검찰 지휘부의 분위기에 부응하려는 측면도 있다. 정치적 고려에 의해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다."    

박 전 부장검사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못지않게 과잉·표적수사가 많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며 "명확한 증거가 없어서 추정하는 것이지만 청와대와 검찰수뇌부, 정치권의 고려와 조율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사들 사이에서 '업폭절'이라는 말이 있다. '업무상 과실치상, 폭력, 절도'를 가리키는데 검사의 90%가 이런 사건에 매달려 있다. 요즘에는 '빽'(배경)도 안 통할 정도로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검찰이 과잉수사나 표적수사를 통해 말도 안되는 무리한 사건을 기소해 무죄를 받는 일이 많아졌다. 일부 정치검사들이 처리하는 사건들이 공정성과 형평성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많은 검사들이 억울하고 허탈해한다. 기를 못펴고 있다."

박 전 부장검사는 최근 펴낸 자신의 저서 <검찰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모하비커뮤니케이션)에서도 "실제 대다수의 검사는 사건에 파묻혀 야근을 반복하면서 불의와 싸우고 있음에도 그동안 일부 정치적인 사건 처리에서의 편파시비 등으로 그 비난을 전부 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박 전 부장검사는 "모든 수사가 청와대의 지시 등 정치적 고려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며 "해당 주임검사들이 소신있게 윗사람을 설득해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참여정부 인사는 "김대중 정부 때까지는 검찰과 청와대(권력)가 사건조율을 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는 그게 안됐다"며 "사후 조율만 가능했다"고 전했다. 다시 박 전 부장검사의 증언이 이어졌다.

"참여정부에서 두산그룹 배임사건과 정몽구 현대차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이 부담스러우니까 청와대의 의견을 물어왔다. 재벌을 구속시키거나 불구속시키기 부담스러우니까 그렇게 의견을 물어온 것이다. 검찰이 자신의 책임을 면해보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청와대에서 '알아서 해라'고 했다. 이것은 책임 방기가 아니라 수사는 검찰에서 책임지고 하라는 것이었다."

"국민에게 고통준 수사의 경우 인사 통해 시정해야"

▲ 박성수 전 울산지검 형사1부장. ⓒ 권우성

박 전 부장검사는 '사퇴의 변'에서 검찰의 공과 평가와 반성, 인사와 제도 개혁,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조직문화 조성 등을 '검찰 3대 개선과제'로 내놓았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사와 제도 개혁, 특히 검찰인사라는 것이 그의 일관된 생각이다. 

"검찰개혁 차원에서 보면 검찰권을 남용해 무리한 수사를 벌여 국민과 검찰에 고통을 준 사건의 경우 인사를 통해 시정해야 한다. 그동안 특정지역, 특정대학 중심의 인사를 개선해 균형있는 인사를 실시해야 한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인물들만으로 구성하기보다는 최소한 가치중립적이거나 개혁적 성향의 검사들을 발탁해서 그들이 검찰을 이끌어갈 기회를 줘야 한다. 능력은 충분한데 한직에서 빛을 발휘하지 못한 검사들이 많다."

"국민과 검찰에 고통을 준 사건의 경우 인사를 통해 시정해야 한다는"는 주장은 백혜련 전 검사의 문제의식과도 통한다. 지난해 11월 '정치검찰'을 비판하며 사표를 냈던 백 전 검사는 최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인사가 검사들을 통제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라며 "지금까지 무죄가 난 큰 사건 중에서 수사검사를 문제삼은 적은 없는데 그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앞서 언급한 참여정부의 한 인사는 "참여정부 시절에는 특정지역이나 특정대학 사람을 챙기는 경우에도 눈치를 봤는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눈치도 안 보고 노골적으로 챙기는 경향이 있다"며 "(그렇게 인사를 하다 보니) 각 지검에서 특수수사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모두 저쪽 선수(친정권 성향 인사)들"이라고 꼬집었다.

박 전 부장검사는 "참여정부에서 '검찰수사 불개입' 원칙을 지킨 것처럼 인사에서도 검사장급 이상만 챙기고 그 외에는 법무부장관에게 일임했다"며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검찰의 주요보직 인선에서 민정수석 등을 통해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말이 많이 들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검찰인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려면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제 '노무현의 검사'를 자처하며 '정치권 진출'의 출사표를 던진 박 전 부장검사는 자신의 저서 머릿말에서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한때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치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고, 그래야만 검찰도 바로 설 수 있겠지요. 올바른 역사인식과 민주적 소양을 갖춘 검사들이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더 나아가 모든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도록,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새로운 시대를 다시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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