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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흡연자 김씨, 숨만 쉬었는데 폐가 굳었다

제천 시멘트공장, 배상결정 났는데도 "자체 조사결과 따르겠다"

등록|2012.01.15 10:11 수정|2012.01.15 12:59
"물로도 씻을 수 없는 새카만 먼지가 숨길 막았다"

▲ 아세아시멘트공장이 준공된 이래, 인근 주민들은 45년 넘게 분진으로 인한 환경건강 피해를 받고 있다. ⓒ 진희정

제천은 원래 청풍명월의 고장이었다. 송학산 자락과 평창강 지류가 만나는 아름다운 땅에서 팔십 넘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김종을(85·제천시 송학면 장곡리)씨는 2010년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주민건강역학조사에서 만성폐쇄성폐질환 중등증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중등증은 중증 아래지만 더 진행되면 매우 위험해지는 단계다.

COPD(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라 불리는 이 폐질환은 사망률이 국내에서 7번째, 세계적으로는 4번째로 높다. 또한,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환자들 사이에 암보다 더 무섭다고 알려졌다. 천식과 비슷하게 만성기침과 가래 증상이 나타나지만, 어떤 원인 물질이 쌓여 좁아진 기도가 호흡을 어렵게 만들고 폐기능이 떨어져 끝내 사망에 이르는 질병이다.

발병원인의 90% 이상이 흡연 때문이라고 알려졌지만 김씨는 평생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 김씨의 아내 역시 짧은 거리를 걷고도 심하게 숨이 가쁘고 호흡 측정기를 제대로 불지 못해 검사가 안 될 정도로 폐기능이 나쁘다. 김씨 말고도 송학면에 사는 40대 이상 주민 70명이 이 폐질환 판정을 받았다. 주민 10명은 폐 섬유화, 즉 폐가 점점 굳어지는 진폐증을 앓고 있다.

"공장 들어 설 때 사람들이 공기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당시엔 뭐 별수 있나. 나라에서 세우라고 하면 세워야지. 농사짓던 고추에 먼지가 잔뜩 묻었어. 농약 친 것보다 심해서 물로 씻어내도 잘 안 떨어진다니까."

김씨 말대로 이들의 생활권 내에는 지역 향토기업으로 꼽히는 아세아시멘트공장이 있다. 인접한 영월군에는 현대시멘트, 쌍용시멘트공장이 있다. 공장 인근 주민들에게 호흡기 질환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은 영월과 또 다른 시멘트공장 밀집지역인 단양군에서도 마찬가지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국립환경과학원이 실시한 주민건강조사 결과, 영월은 진폐와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가 각각 14명, 216명이었다. 단양은 각각 24명, 146명이었다.

'불통' 시멘트공장에 공해병 유발 최초로 인정

▲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고 있는 김종을씨. 호흡이 불편하거나 숨이 찰 때마다 기관지질환 치료에 쓰이는 작은 기구에 약을 넣고 공기를 몇 번 들이마셔 진정시킨다. ⓒ 진희정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2일 제천시 시멘트공장 지역주민들이 호소한 환경·건강피해에 대해 아세아시멘트공장은 피해배상금 1억20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피해신청 주민 144명 가운데 16명만 해당되고, 전체 요구액의 8%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멘트공장 주민의 공해 피해 사실을 최초로 인정한 재정 결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80년대 서울 상봉동 연탄공장 인근 주민들이 진폐증에 걸려 박길래씨가 첫 공해병피해자로 인정된 이래, 공해에 따른 환경성질환이 보고된 적은 없었다. 환경적 노출에 따른 피해는 상관관계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환경과학원이 실시한 이번 건강조사에서는 김씨처럼 시멘트공장에 근무한 적이 없는 주민들도 진폐증(영월 3명, 제천 단양 8명) 진단이 나왔다. 또 주민 600명을 대상으로 한 송학면의 만성폐쇄성폐질환 유병률(인구대비 발병률)은 대조지역보다 4%P 높은 12.5%였고, 진폐증 역시 대조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환경분쟁조정위는 이러한 점을 들어, 시멘트공장 때문에 주민들의 먼지 관련 질환이 발생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배상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반면, 한국시멘트협회는 지난해 12월 29일 '주민들의 건강 이상 호소에 대한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재조사를 통해 환경성 인과관계를 규명하고 시멘트 공정이 환경적으로 유해하지 않음을 드러내겠다'고 밝혔다. 손해배상을 할 경우 다른 지역 시멘트회사들도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환경분쟁조정위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석회석을 주 원료로 콘크리트를 만드는 양회협회가 이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시멘트 공장, 고충 참아낸 지역민을 외면하다

▲ 피해배상 결정과 관련한 아세아시멘트공장의 계획을 듣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방문했지만, 회사는 '외부세력'의 출입을 막았다. ⓒ 진희정


위원회 결정은 60일 안에 별다른 법적 소송이 없을 경우 재판과 동일한 효력을 갖기 때문에 공장은 배상을 해야 한다. 아세아시멘트의 향후 계획을 듣기 위해 지난 5일 피해주민들과 마을 환경대책위, 제천환경운동연합이 함께 공장을 방문했지만 사측 견해를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공장 측이 이날 면담에 배상 당사자만 참여할 것을 요구하며 이른바 '외부세력'의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결국, 귀가 어두운 고령의 피해주민 9명이 대동인 없이 불편한 걸음을 옮겨 면담에 참석했다. 이들이 15분 가량 듣고 나온 내용은 '자체 용역을 들여 피해조사를 다시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주민들이 3년 넘는 민원 끝에 밝혀낸 환경부 공식 피해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피해에 대해 주민들과 의견을 나누고 방안을 찾으려는 소통의지가 부족함을 드러낸 대목이다. 시멘트공장은 폐질환의 직접적 원인 물질을 규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 석회가루와 분진이 날리는 고충을 참아낸 지역민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쓰레기시멘트 만드는 게 폐기물 재활용?

▲ 주민들은 마을에 날리는 분진의 양을 파악하기 위해 집집마다 대야를 높이 설치했다. 오른쪽은 쌓여있는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는 박광호씨. ⓒ 박광호 제공


"공장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집집마다 높은 곳에 작은 대야를 설치했습니다. 보름, 한 달, 시간이 지날수록 대야에 새카만 분진들이 쌓였습니다. 마을 곳곳의 울퉁불퉁한 슬레이트지붕도 시멘트분진이 오랫동안 쌓이고 굳어서 굴곡이 평평해질 정도입니다."

1996년 송학면 입석리로 이사 온 충주 출신 박광호(50)씨는 마을의 환경·건강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현재 우리지역환경살리기 주민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가 환경·건강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결정적 계기는 산업폐기물을 처리해 만든 이른바 '쓰레기시멘트' 논란이었다. 2005년 마을총회에서 주민 추천으로 공해피해조사 관련 업무를 맡은 박씨가 '아세아시멘트공장의 폐기물처리 덕에 제천시는 예산을 매년 23억 원, 환경부는 연간 수천억 원을 절약한다'는 홍보내용을 접한 것이다.

▲ 마을의 울퉁불퉁한 슬레이트지붕은 분진이 오랫동안 쌓이고 굳어서, 굴곡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두꺼운 층을 형성하고 있다. ⓒ 박광호 제공


시멘트는 주재료 석회석에 규사·점토 등을 섞어 고온에서 태운 뒤, 녹은 물질을 덩어리로 만들어 냉각시켜 가루로 만든 것이다. 시멘트를 구워내는 가마인 소성로의 주 연료로 사용하던 벙커씨유가 1990년대 들어 폐타이어 등 폐기물을 소각해 열을 내는 방식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일본 시멘트회사의 고온소각 방식 소성로가 도입된 것으로, 타고 남은 폐기물 재까지 시멘트 원료에 섞으면서 원료와 연료 양쪽에서 생산 비용을 절감했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현재 시멘트회사들의 폐기물 재활용신고 소각이 허용되며, 소성로 역시 재활용소각시설로 인정받고 있다.

환경오염 막기 위한 규제? 그건 다른 나라 얘기

▲ 폐기물을 '재활용' 해 시멘트 제조에 활용하는 시멘트공장은 에너지절약 사업장이 된다. ⓒ 진희정

실제로 아세아시멘트공장 입구에는 '에너지절약 및 온실가스배출 감소를 위한 자발적 협력 사업장'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시멘트소성로 민관협의회는 2006년 기준으로 국내 10개 회사 19개 시멘트공장이 270만 톤의 폐기물을 소각 처리했다고 밝혔다. 2005년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기준치 이상의 6가크롬이 포함된 중금속 시멘트 문제 역시 시멘트공장의 폐기물 '재활용'에서 비롯됐다.

다른 나라에서도 시멘트 제조에 산업페기물을 사용한다. 특히 일본은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유해성 높은 특별폐기물은 시멘트 제조에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용 폐기물의 선별과 관리가 철저하다. 유해성이 높을수록 시멘트공장이 받는 쓰레기 처리 단가가 높아 처리비를 벌기 위해 유해성 쓰레기를 더 사용하는 한국과 확실히 비교된다.

시멘트제품의 안전을 확보하고, 공장 주변의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배출가스 규제를 강하게 적용하고, 철저한 방제설비를 갖춘 것 역시 다른 나라 이야기다.

병명조차 모르는 사이에 주민들은 죽어간다

피해주민의 입장에서 환경분쟁조정위의 결정이 아쉬운 것은 배출가스의 오염물질 농도를 측정하는 TMS와 개선된 집진시설을 굴뚝에 설치했다는 이유로 거주 경력 10년 미만 주민들이 배상에서 제외된 점이다. 배출가스 규제항목이 생활폐기물을 처리하는 도시 소각로에 비해 현저하게 적어 있으나 마나 했던 집진시설을 2003년 여과집진시설로 바꿨다는 명목으로 제한적 피해보상이 나온 셈이다. 이로써 2003년 이전 피해는 논외대상이 됐다. 지난해 2월 20일에는 이 집진시설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유연탄이 온 마을을 덮치기도 했다.

▲ 지난 2월 굴뚝을 통해 배출되는 물질 일부를 정화시키는 집진시설에 불이 나면서, 아세아시멘트공장 일대 마을이 온통 유연탄으로 뒤덮혔다. ⓒ 제천환경운동연합, 박광호 제공


행정구역상 쌍용시멘트 영향권으로 분류되는 영월군 후탄리에서 5년 전 장곡리로 이사 온 김길수(77)씨는 10년 미만 거주자로 이번 배상판결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이는 충북과 강원도의 경계선에 있는 송학면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현재 김씨의 집과 과거 후탄리 집은 도보로 불과 몇 분 거리에 있다. 오랫동안 살아온 후탄리 역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이 바뀌었지만, 환경상으로는 오히려 아세아시멘트 영향권에 더 가깝다. 행정편의적이고 소극적인 배상이 결정되는 동안 만성폐쇄성폐질환 판정을 받았던 김씨는 지난 11월 사망했다.

지난해 6월 환경부가 발표한 대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피해주민은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경제적 소외계층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 자녀들이 타지에 나가 돌보지 못하는 독거노인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검진 결과는 80대 이상 고연령 문맹자에게도 전문의학용어가 난무한 채 개별통보서의 형태로 전달됐다. 병명에 대한 어떠한 설명이나 상담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방치된 검사 결과서를 주민들이 태우는 등 다수가 분실되기도 했다.

피해주민 사후관리 예산으로 중앙정부가 제천·단양지역을 합쳐 1억8천여만 원을 배정했지만, 구제대책은 환경보건센터 지정을 통한 관리가 전부다. 주민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지자체나 보건소가 연계된 보건 서비스, 진료 이동성, 치료기간의 생계보전 등 보건외적 부분의 구제책도 마련돼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진행될 사후관리는 유명무실할 게 뻔하다.

원인과 피해 상관관계 모르면 사전에 주의해야

주민이 겪고 있는 피해의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길 바라는 것은 비단 시멘트공장만이 아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오랫동안 활동해 온 제천환경운동연합 김진우 사무국장은 "제대로 된 사후대책을 위해서라도 원인물질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 폐질환을 앓다 사망한 한 주민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마을 주민. ⓒ 진희정

"사전예방적 차원에서라도 정확한 원인물질 규명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진폐와 만성폐쇄성폐질환이 분진 때문이라면 그 분진의 원인물질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밝혀야 하는데, 그런 것은 빼놓고 '그냥 분진 때문이다'라고 정리하면 이후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추가적인 피해를 막지 못합니다."

'환경유해인자와 수용체의 피해 사이에 과학적 상관성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더라도 그 유해인자의 무해성이 최종 증명될 때까지 경제적·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수용체에 미칠 영향을 예방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와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

환경보건법이 채택하고 있는 사전주의(precautionary) 원칙이다. 잘 모르면 미리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인데, 아직까지 빛을 본 적이 없는 법전 속 규정일 뿐이다.

시멘트공장은 석회석이라는 자연의 양분이 소실되고, 지역민의 숨길이 막히는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도 뿌연 가스를 내뿜으면서도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향토기업과 향토민이 상생하기 위해 사전주의 원칙을 실천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진희정 기자는 1월 5일부터 현장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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