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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0건'... 이런 통계를 믿으라고

[주장] 독버섯 같은 학교폭력 공개가 퇴치의 시작이다

등록|2012.01.13 17:36 수정|2012.01.13 17:43

▲ 서울 어느 고등학교의 학교폭력 관련 정보 공시 현황. 그나마 이 학교는 5건의 학교폭력 사례에 대한 처리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지난 1년간 한 학교당 학교폭력 건수가 초등학교 0.06건, 중학교 2.26건, 고등학교는 1.32건으로 되어 있다. 이런 통계수치를 어느 국민이 믿을까? ⓒ 인터넷캡처


12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는 이주호 교과부 장관과 16개 시·도교육감이 출석한 가운데 학교폭력 사태에 대한 긴급 현안보고가 진행되었다. 이주호 장관은 사과를 연발했고, 시·도교육감들 역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학교폭력 문제는 단연 최고의 교육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날 보고에 인용된 자료에 의하면 2006년 학교폭력 건수가 4000여 건에서 올해 1만 건이 넘었다고 한다. 정반대로 광주교육청에서는 2008년 이후 계속 학교폭력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자료가 공개되었고, 대구교육청의 우동기 교육감은 학교 경찰(스쿨 폴리스)에 의해서 학교 폭력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교과부 자료대로라면, 학교폭력 건수 1만 건은 전국의 초중등 학교가 1만1000여 개이니 학교당 채 1건 정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 정도의 학교폭력을 갖고 온 사회가 호들갑을 떤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에 동의하는 국민은 없을 듯하다.

학교폭력 건수의 폭증이라는 자료에 놀라고 있을 게 아니라 오히려 지금이라도, 이 정도라도 공개된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다행으로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학교폭력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폭력 사실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다. 그리고 학교폭력은 우리나라에만 있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이것이 더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숫자가 많아졌고, 양상도 과격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독버섯은 햇빛이 들지 않는 음지에서 자란다. 학교 폭력이라는 독버섯 역시 세상에 더 많이 공개될수록 점점 더 자리를 잃고, 해결책도 나올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학교폭력이 지금까지 축소·은폐되어 온 이유를 따져보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

착한 교사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은폐한다?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찾아내 마치 '학교폭력 배틀'을 하듯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학교폭력 사건이 이 지경이 되도록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아마 "교사들이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일 것이다.

교사들은 생활기록부에 아이들의 단점 적기를 꺼린다. 생활기록부만 보면 학업 성적이 높든 낮든 상관없이 모두가 착한 학생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면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다"라고, 공부를 잘 못하는 친구면 "학업성적은 낮으나 품행이 방정하다"는 식이다. 징계기록도 생활기록부에 적지 않는다.

품행이 문제 있다는 식으로 기록된 생활기록부는 아마 대한민국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는 생각으로 웬만한 사건은 징계위원회나 폭력자치위원회에 넘기지 않고 담임이, 교과 교사가 자기 선에서 처리해온 게 사실이다. 학생 징계기록을 성인의 범죄 전과 같은 것으로 여겨 학생의 미래에 굉장한 불이익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공식화하지 못하는 것이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학생에 대해서 대체로 담임교사들은 "학생의 미래를 위하여 선처해 달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교사들은 이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교사들을 비난할 수 없는 없지만, 개인적 온정주의가 학교폭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 은폐하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 것도 부정하기 쉽지 않다.

현재 교육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에 의하여 학교폭력 관련 자료가 학교알리미에 공시되고 있다. 이 자료를 근거로 하여 언론들은 "서울에서 학교 폭력이 가장 많은 학교는? 00교!"라는 식으로 학교 실명을 보도하기도 했다.

2011년 공시된 자료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학교폭력사건은1년에 한 학교당 초등학교 0.06건, 중학교 2.26건, 고등학교는 1.32건으로 되어 있다. 전국 1만1000여개의 학교 중 20% 정도는 학교폭력 사건이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교과부의 방침대로 학생을 위해 폭력사건에 적극, 원칙대로 대응한 학교가 오히려 '폭력학교'로 낙인 찍히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런 통계를 어느 국민이 믿을 것이며, 이런 현실에서 어느 학교가 학교폭력을 제대로 처리하고 공개할까 의문이다.

학교폭력 사건 심의 건수를 '폭력학교' 선별기준으로 삼고, 학교평가 또는 교원평가의 잣대가 되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교원평가의 역설... 원칙대로 하면 평가에 불이익?

교사들이 착해서 아이들의 미래에 불이익을 줄까봐 학교폭력 사건을 제대로 공론화하지 않는 것과 별도로, 또 다른 이유는 불이익에 대한 우려다.

자기 선에서 적당하게 처리하여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괜히 학교에 알리면 무능하다는 소리 듣고, 징계위원회나 폭력자치위원회에 출석해야 하고, 진술서 써야 하는 등 귀찮아진다는 것이다.

게다라 교장이나 교감 등 학교의 관리자들에게 유형, 무형의 압력도 있다. 교사가 알아서 처리하면 될 것을 괜히 일을 키운다는 것이다. 징계받게 해서 아이에게 좋을 것이 없고, 학교에도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장경영평가니 학교성과급 평가니 하는 것에서 불이익을 받아 교사 전체에게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고 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한다. 학교평가뿐 아니라 교사 개인에 대한 교원평가에서도 징계 받거나 심하게 꾸지람을 들은 학생들이 낮은 평가를 줄 것이라는 걱정도 든다. 실제로 생활지도 교사들의 교원평가 점수가 낮게 나오는 것도 현실이다.

생활지도 제대로 하라고 도입한 교원평가가 생활지도를 제대로 못하게 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학교경영 제대로 하라고 도입한 학교장경영평가가 학교폭력을 축소하는 부작용을 가져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교원평가 폐지를 심각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학교폭력 사건이 지금까지 은폐·축소된 더 큰 이유는 신고해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학생들의 불신과 보복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고 자체를 꺼리는 것이다. 이런 보복은 최근 대구, 광주의 자살사건이나 충남의 테이프 감금 폭행 사건처럼 실제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많은 부정과 비리에도 내부고발이 드문 이유와 유사하다.

학교폭력 사건은 알려지는 동시에 신고자가 공개되는 특수성이 있다. 학교폭력 신고자는 피해자, 목격자, 또는 피해자의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으로 특정되기 때문이다. 어렵게 결심하여 학교폭력을 신고했는데, 교사나 학교가 제대로 해결해주기는커녕 신고자의 신원이 가해자에게 알려져 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신고된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해결하고 신고자의 신원이 절대로 공개되지 않으며,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믿음을 학생들에게 주지 못하면 학교폭력 사건 공론화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주호 장관은 왜 계속 버티나

학교폭력 관련 기초 자료가 엉터리이니 처방이 제대로일 리가 없다. 당연히 축소 또는 은폐되었다는 의미인데, 이것이 학교폭력을 현재 상황까지 몰고온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독버섯은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자라고, 세균의 99%는 햇빛에 노출되면 죽는다. 학교폭력에 대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밝혀내는 것이 학교폭력을 없애는, 최소한 줄이는 시초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최근 학생들이 자살을 하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학교폭력 사건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만약에 이 정도 사건이 학교가 아니라 군대나 경찰서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났다면 아마 당장 경찰청장이나 국방장관 퇴진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면서도 퇴진은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학교폭력 관련하여 교육당국이 서둘러서 해야 하는 일은 학교폭력 사건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것이다. 학교폭력이 더 이상 축소·은폐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위한 첫 번째 단계가 정확한 실태 파악일 것이다.

중병일수록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치료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학교폭력 사건 역시 은폐·축소 없이 그대로 세상에 드러내도록 하는 게 퇴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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