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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명에 포위된 공장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현장] 쌍용자동차 2차 희망텐트... 김진숙 "또 한 번 연대의 승리 만들자"

등록|2012.01.14 17:21 수정|2012.01.14 21:28

▲ 지난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희망텐트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 최지용



"어렸을 때 이렇게 추운 날이면 엄마는 잘 구운 차돌멩이를 아궁이에서 꺼내 주머니에 넣어주곤 하셨습니다. 손난로도 핫팩도 장갑도 없던 시절, 그 작은 차돌은 손만 아니라 온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저는 쌍용자동차 동지들을 보면 그 차돌멩이가 생각납니다. 그 춥던 크레인에 차돌멩이 같은 온기와 용기를 전하던 동지들. 희망버스를 단단히 버티던 초석 같은 동지들. 이제 그들이 네 번째 겨울을 길에서 맞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말이다. 그녀는 14일 자정을 넘겨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 희망텐트촌에 도착했다. 크레인에서 내려올 때만 해도 허연 새치가 많던 머리는 검정으로 물들였다. 아직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지만 볼 살도 오르고 혈색도 좋다. 눈빛은 여전히 스무 살 청년이다.

13일 오후부터 공장 앞에 100여 동의 텐트를 친 희망텐트촌 입주자들의 눈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본다. 곳곳에 세워진 드럼통에 연신 땔감을 집어넣는 쌍용자동차 조합원들도 무대에 꽂힌 시선을 떼지 못한다.

정비지회 소속 징계해고자 서른아홉 살 원상연씨도 그 무대를 바라봤다. 평소 쌍용자동차 투쟁에는 '85호 크레인'이라는 상징과 '김진숙'이라는 영웅이 없음을 아쉬워하던 그다. 그래서 그는 쌍용자동차 공장 안에 있는 100m는 족히 돼 보이는 굴뚝 위에 올라갈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도 했었다. 이런 원씨의 마음을 아는지, 김 지도위원의 연설이 계속된다.

김진숙의 외침... "쌍용차 동지들을 살려냅시다"

▲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개최된 2차 희망텐트에서 한 참가자가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 최지용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배고픔이나 추위나 더위보다 외로움이라는 걸 싸워본 사람들은 압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에서 가장 두려운 건 벌판에 알몸으로 버려진 듯한 고립감이란 걸 오래 싸워본 사람은 눈물겹게 압니다. 그래서 희망버스가 한진으로 올 때마다 쌍차 동지들에게, 재능교육 동지들에게, 전북고속버스 동지들께, 전국에서 싸우는 모든 동지들에게 미안하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우리에게도 희망버스가 와 달라고, 제발 우리도 한 번 봐달라고 말해야 하는 동지들이 희망버스를 만들었고 그 버스를 영도까지 운전했습니다. 희망버스는 그래서 눈물겨웠고 그래서 기적이었습니다. 우리가 단결하면 이길 수 있다. 우리가 하나 된다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질긴 놈이 결국 이긴다' 그 원칙을 우리는 마침내 실천했고,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김 지도위원의 말을 듣고 있던 원씨의 마음이 울컥했다. 정리해고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해 한진중공업 투쟁에 몸을 던졌다. 2차 희망버스를 앞두고는 평택 공장 앞에서 부산 영도 조선소까지 도보 순례를 하기도 했다.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원씨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때맞춰 사람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총자본 대 총노동이 첨예하게 맞붙었던 전선, 그래서 이 승리는 우리 모두의 승리였습니다. 동지들, 그러나 자만하지도 말고 위축되지도 말고 의연하게 담대하게 끝까지 쌍차 동지들 지켜냅시다. '해고는 살인이다.' 그 마음으로 영도까지 달려와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차벽에 막히면서도, 연행되면서도 의연했던 여러분. 그 간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함께 했던 동지여러분.

쌍용자동차 동지들을 살려냅시다. 19번째 살인을 저지른 저놈들로 부터 20번째 살인은 우리 손으로 막아냅시다. 차돌이 뜨거워지도록 우리가 아궁이가 돼 줍시다. 뜨거운 마음으로 또 한 번 승리하는 연대로 정리해고 비정규직 반드시 막아냅시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원씨는 사실 이 구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 심각하게 싸워도 될지 안 될지 모르는 판에 자꾸 웃자고 하니까.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또 웃자고 하니까 처음에는 열불이 나기도 했다. 여전히 그런 생각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오죽 힘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할까' 자조 섞인 마음으로 그 구호를 함께 따라 외친다. 그는 쌍용차 해고자라면 누구든 마음속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준비한 연설문을 읽고 곧바로 내려왔다. 그녀는 크레인에서 내려온 이후 "내가 주인공이 돼서는 안 된다"며 쏟아지는 강연과 인터뷰 요청을 거절해 왔다. 하지만 쌍용차 희망텐트촌을 두고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아직 체력적으로 완전히 회복이 안 된 그녀는 올라오는 중간 중간 쉬느라 텐트촌에 늦게 도착한 것을 미안해했다. 그렇게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가 다시 만났다.

공장 앞 재래시장... 5000여명 입주한 희망텐트촌

▲ 13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개최된 2차 희망텐트. 천막이 처진 공간 한편에서 저녁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 최지용



원씨는 13일 아침부터 하루종일 희망텐트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해고 전 서울 구로에 있는 정비소에서 일했던 그의 집은 평택이 아니라 서울에 있다. 노조는 19번째 희생자가 나온 후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한겨울 혹한의 날씨에 희망텐트를 쳤고, 원씨는 그 뒤로 주말에만 한 번씩 서울에 올라간다.

집에 가도 기다리는 가족은 없다. 해고된 이후 부인과 헤어졌고 아들과 딸도 아내와 함께 있다. 정리해고 대상자는 아니었지만, 77일 동안의 옥쇄 파업을 벌인 이유로 회사는 그를 징계해고했다. 예전에는 집안 이야기를 하는 게 불편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것도 무덤덤해진 그다.

그와 조합원들은 지난달 성탄절 즈음에 1차 희망텐트를 치르고 약간은 지치기도 했다. 이 혹한의 날씨에 밖에서 노숙 생활을 한다는 건 어쩌면 공장을 점거하고 싸웠던 2009년 여름보다 더 힘든 투쟁이라고 원씨는 생각한다. 추운 날씨 탓에 근처에 있는 모든 수도가 얼어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들은 매일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옛 동료들의 출근길에 선전전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2차 희망텐트를 준비했다.

원씨는 1차 희망텐트 이후 어깨가 무거워 지는 걸 느꼈다. 다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이 싸움을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다. 반면에 19번의 죽음은 막지 못했지만 20번째 죽음은 자신들의 손으로 막아내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어쩌면 내 옆에, 어쩌면 이 희망텐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가운데 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오후 4시쯤 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관광버스 수십대가 공장 앞에 도착했고 개인차량을 이용해 온 사람들까지 더해져 공장 앞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공장 주변 여기저기에 천막과 텐트가 쳐지고 사람들은 불을 피웠다. 알록달록한 천막이 모인 곳은 꼭 재래시장과 비슷했고, 저녁 준비를 하는 한켠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공장 정문 앞 대로변으로 나오니 시장 분위기가 제대로 난다. 길 건너편에는 시민들의 기증품을 판매하는 바자회가 펼쳐졌다. 김여진, 김제동, 공지영 등 유명인들이 기증한 물건도 보인다. 공지영씨는 책과 옷, 방송인 김제동씨는 옷 등의 물품을 내놓았다.

그 옆에는 노점상 연합이 차려 놓은 천막이 있다. 빨갛게 양념을 한 돼지껍데기와 수북이 쌓인 어묵탕이 사람들을 붙잡았다. 전국 팔도에서 올라온 막걸리와 김치전도 인기 만점. 몸을 녹이려는 사람들이 천막 안 백열등 밑으로 모여들었다.

원씨도 이런 모습을 한참 구경하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자리를 잡았다. 곧 행사가 시작될 참이었다. 그는 꿀벌 모양의 머리띠를 한 쌍용차 조합원들 사이에 앉았다. 그 뒤로 5000여명의 희망텐트촌 입주자들이 공장 앞을 가득 채웠다.

"'함께 살자'는 조끼 벗을 수 있는 날 오길"

▲ 희망텐트 5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 ⓒ 최지용



문화제가 시작됐다. 일일 촌장을 맡은 김영훈 민주노총위원장과 쌍용차 가족대책위 이정화씨가 희망텐트촌 입주자들에게 인사를 하러 무대에 올랐다.

"촌장으로서 1박 2일 동안 입주자들의 민원을 잘 처리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가장 큰 민원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입니다. 모든 조합원과 함께 이 큰 민원을 받들어서 2012년 함께 투쟁하고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김영훈)

"남편이 공장에서 농성할 때 날씨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비가 와야 빗물을 받아 씻기도 하고 마실 수도 있으니까요. 요즘도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를 제일 먼저 봅니다. 얼마나 추운지, 바람은 안 부는지, 눈이 내리지는 않는지. 저 가여운 남자들. '함께 살자'라고 쓰인 아빠들이 입은 조끼를 벗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이정화)

원씨도 이정화씨의 인사말을 듣고 가족을 떠올린다. 쌍용차 해고자들과 그의 가족들을 위해 문을 연 심리치유센터 '와락'과 가족대책위를 볼 때마다 그는 '무엇보다 지켜야 할 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자신은 지키지 못했지만 여전히 가족들과 문제로 힘들어 하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이야기 하곤 했다.

희망텐트에 참석한 정치인들의 연설도 이어졌다. 원씨는 솔직히 정치인들에게 기대가 크지 않다. 2009년 파업 당시에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공장을 찾아왔고 그 뒤로도 이런저런 말은 많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찾아와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아쉽고, 또 총선이든 대선이든 뭔가 달라지면 문제가 해결 될 것도 같고, 별반 다르지 않을 것도 같은 애매한 마음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안효상 사회당 대표가 나란히 섰다. 그 가운데 원씨의 애매한 감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정 최고위원이다. 한진중공업 사태와 쌍용자동차 문제에 가장 열심이었던 그였지만, 쌍용차 문제의 시작이었던 상하이 자동차로 매각이 그가 핵심인사로 있었던 참여정부 시절에 이뤄졌던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그의 동료들 마음 속에도 정 최고위원을 인정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여전히 공존한다.

"2012년은 희망의 해가 될 것입니다. 민주통합당과 야권이 총선과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해 쌍용차와 관련한 해외자본의 먹튀, 회계장부조작, 폭력진압의 진상을 규명하는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반드시 관철시키겠습니다."(정동영)

희망버스, 핸들 돌려 쌍용차로 올까?

▲ 13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개최된 2차 희망텐트에서 쌍용차 조합원들이 폭죽을 터트리고 있다. ⓒ 최지용



"공장을 포위하라."

문화제가 3시간을 넘겨 참가자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쯤, 무대에서 연설을 하던 박상철 금속노조위원장이 외쳤다. 그는 "죽음을 막는 위원장이 되겠다고 말했었다. 분노만 하고 있을 것인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민주노총 정치 총파업에 함께 하자. 이제 역사를 두려워 하지 않고 역사를 만드는 우리가 되어,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우리가 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위원장의 외침과 동시에 5000여명의 참가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장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손에는 긴 막대기 모양의 폭죽이 들렸다. 공장 안에는 경비용역과 경찰들이 진을 친 상태였고 사람들은 정문과 담벼락을 따라 늘어섰다. 한 개당 30발이 터지는 폭죽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펑펑! 펑펑!". '절망의 공장' 위로 불꽃이 피어올랐고 이내 화약 냄새가 공장 주변을 휘감았다.

원씨는 14년을 일했지만 들어갈 수 없는 공장 위에서 터지는 불꽃들을 보며 생각했다. 다시 일하게 되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다시 차를 고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고. 오색으로 터지는 불꽃 앞에서 그는 한진중공업으로 향했던 희망버스가 핸들을 돌려 쌍용차로 와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5000명이 쏘아 올린 15만 발의 불꽃이 공장으로 돌아가는 그날 축제의 불꽃이 되길.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설이 끝나고 새벽이 되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텐트로 들어갔다. 밤새 무대에서는 각종 공연이 계속됐지만 추운 날씨에 고단한 몸을 끌고 온 노동자들은 휴식이 필요했다.

원씨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천막 안에서 지친 몸을 뉘였을 것이다. 그가 무슨 꿈을 꾸고 있을지 생각해 본다. 조만간 또 있을 3차 희망텐트 준비로 분주할까? 아니면 기름때 묻은 장갑을 끼고 공장에서 땀 흘리는 자신을 보고 있을까? 일을 마친 그가 좋아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작업복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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