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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셔틀' 당한 학생의 분노,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전국참교육실천대회를 다녀와서

등록|2012.01.17 09:20 수정|2012.01.17 09:20

전국참교육실천대회 문예통합분과 수업장면지난 11일부터 2박3일 동안 광주 조선대학교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주최한 전국참교육실천대회가 열렸다. 문예통합분과에서는 '교실에서 몸 움직이기' '빵셔틀, 포럼연극놀이로 풀다!'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수업이 진행되었다. ⓒ 안준철


진 선생님!

잘 올라가셨는지요? 함께 보낸 시간들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네요. 전국참교육실천대회 문예통합분과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낯선 선생님들과 첫인사를 나눌 때만 해도 남의 옷을 입을 것처럼 어딘지 어색하기만 했는데 그곳에서 진 선생님을 만나 모든 것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답니다. 감사드려요.

첫날 사례발표에서 혁신학교에 근무하시는 선생님께서 "혁신학교는 교육과 생활이 하나다" "불필요한 것을 가지치기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요즘 학교 폭력 문제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데 그것은 교육과 생활이 하나가 아닌 데서 비롯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언론에서 요란하게 떠들어 대는 것이 학교 변화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겠고요.

대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어떻게 하면 교육과 생활이 하나가 되게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또 한 가지 제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 있어요. 힘센 급우의 심부름을 해주는 이른바 '빵셔틀' 학생과 관련된 상황극에서 '가해자 학생을 죽이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과 전화 상담을 하는 역이 우리에게 주어졌지요. 우린 결국 그 학생을 설득하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고요. 학생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했지요.

상담소에 전화를 걸어놓고 "죽이고 싶어요" "전화 끊을래요" "무슨 도움을 주실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런 말을 되풀이하거나,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는 학생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고, 교사로서 무력감까지 느껴졌는데 강사님은 우리에게 그 답을 숙제로 남겨두셨지요. 어떤 명쾌한 답을 기대하고 있던 저는 사뭇 실망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명쾌한 답이라는 것이 있을까 싶네요. 

뒤풀이 자리에서 선생님이 물으셨지요? 저라면 그 애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요. 아마도 선생님은 제가 앞에 나서기가 쑥스러워서 주저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신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집에 와서도 그 생각에 줄곧 몰두해 있다가 문득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됐어요. 그러자 상상 속에서 이런 대화들이 풀려 나오기 시작했지요. 말이 되든지 안 되든지 한 번 들어보세요.

"저 정말 죽이고 싶어요. 이제 전화 끊을래요. 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잖아요?"
"너, 혹시 누구 사랑하니?"
"예?"
"내 말은…. 누구 사랑해본 적 있냐고?"
"그런 건 왜 물어요?"
"그냥 묻는 거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를 사랑하거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어?"
"그런 거 없어요. 전화 끊을래요. 전화 끊고 그 놈 죽이러 갈 거예요. 정말 죽이고 싶어    요."


"넌 너를 사랑하니?"
"그게 무슨 말이예요?"
"넌 네가 좋으냐고?"
"난 내가 싫어요. 근데 그건 왜 물어요?"
"내 생각엔 아닌 것 같은데? 넌 너를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같은데?"
"아저씨가 제 마음을 어떻게 알아요?"
"네가 널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 애를 죽일 생각을 못했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예요?"
"그 애가 널 못살게 구는 것이 싫잖아?"
"그래요. 싫어요. 그 자식 죽이고 싶도록 싫어요."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니까 그 애가 싫은 거야."
"예?"

"넌 네가 소중하잖아. 그렇지?"
"그런 거 몰라요."
"소중하니까 널 함부로 대하는 그 애가 미운 거고."
"…."


"널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사랑인 거야. 널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니까 너에게 심부름이나 시키고 아무 죄 없는 너에게 폭력을 일삼는 그 애들이 죽도록 싫은 거고. 그러니까 네가 너를 사랑하는 것이 맞잖아?"
"그래서 어쨌단 말이예요? 학교 가면 또 나를 괴롭힐 텐데. 그 자식 죽이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 애를 죽이면 네가 사랑하는 너는?"
"예?"


"또 너를 사랑하는 나는?"
"예?"
"나 너 사랑해."

"말도 안 돼요. 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잖아요?"
"지금 만나고 있잖아."
"저하고 장난하는 거예요?"
"아니. 나 정말 너 사랑해. 그리고 내가 널 사랑하는 것보다 넌 너를 더 많이 사랑하고 있   어."


"그래서요?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요?"
"넌 그 애 때문에 너무 힘들었잖아. 억울하지?"
"그래요. 정말 억울해요. 더 이상 이대로 두지는 않을 거예요. 오늘 당장 가서 죽일 거예요."
"그럼 너는? 그동안 그 애 때문에 많이 힘들었는데 그래서 억울하고 죽이고 싶은데 그 애 죽이고 나면 너는?"
"내가 뭐요?"


"그 애 죽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그런 거 생각 안 해요. 어차피 그 애 죽이지 않으면 전 불행해져요."
"지금 몇 학년이지?"
"그런 건 왜 물어요?"
"만약 네가 중2라면 그 애 볼 날이 1년 조금 더 남았겠지? 그때까지만 불행하면 되잖아. 평생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는. 그리고 그 애를 사랑할 수는 없겠니?"
"예? 아저씨 미쳤어요?"
"널 위해서 그 애를 사랑하라고 하는 거야."


"그게 말이 돼요?"
"그래. 그 말은 취소하마. 그런데 말이야. 내 생각에 그 애가 너보다 더 불쌍한 것 같아."
"그건 왜요?"
"그 앤 나쁜 애잖아. 널 괴롭히고도 그것이 나쁜 짓인지도 모르니 더 나쁜 애고."
"맞아요. 그 놈은 나쁜 자식이에요. 정말 죽이고 싶어요."
"그러니까 불쌍하다는 거지."
"제가 불쌍하지 왜 그 자식이 불쌍해요?"
"그 앤 나쁜 애니까. 넌 나쁜 애가 아니잖아. 그것은 감사할 일이잖아."
"…."
    

진 선생님!

이런 대화들이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엔 도움이 될 것도 같아요. 우선 사랑이라는 화두가 아이의 삶 속으로 들어갔잖아요. 아마도 전화를 끊고 나면 그 애는 저울질을 할 수도 있겠지요.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그 애를 미워하는 것, 어느 쪽으로 저울이 기울까요? 그건 알 수 없지만, 그 애는 전화를 끊고 난 뒤 그 숙제를 푸느라 자기를 괴롭힌 아이를 죽일 생각을 잠시나마 보류할 수도 있겠지요.

선생님은 아니겠지만, 이런 사랑 타령이 너무 낭만적이라거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과연 사랑이 비현실적인 개념일까요? 제 경험으로 미뤄보자면 사랑만큼 현실적인 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사랑이 아니면 어떻게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학교폭력 문제도 학교나 아이들의 마음에 사랑과 평화의 마음이 깃들지 않으면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아요.  

언론에서도 학교폭력에만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학교의 순기능들을 하나씩 살려내는데 더 힘을 모아야 할 것 같아요. 학교문화를 개선해서 폭력을 줄여가는 구체적인 학교 현장의 사례들을 발굴해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요. 지금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혁신학교 운동도 학교의 순기능을 살리려는 몸부림 같은 것으로 이해가 되요.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아이들을 사랑받을 만한 아름다운 존재로 대접해 주는 그런 행복한 학교 만들기랄까요? 많은 학교들이 그런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여기서 줄일게요. 선생님 때문에 즐거운 시간 보낸 거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교육공동체 벗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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