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13년, 뻥튀기부장님의 '숨 막히는 뒤태'
군산에 남은 마지막 5일장, 대야장 설 맞이 스케치
▲ 담소를 나누며 버스를 기다리는 마을 어르신들 ⓒ 조종안
어제(16일)는 지인과 약속이 있어 오전 10시에 집을 나섰다. 군산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소로 가는데 사거리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등에 배낭을 짊어지고 소풍 가는 학생처럼 즐거워하는 할머니도 보였다.
"오늘이 지경(대야) 장날이잖유. 군산보다 싼 것은 없지만, 그냥 구경하러 가보는 거쥬. 그 전이는 소시장도 서고, 약장사도 들어오고 혀서 구경꺼리가 많았는디···. 그려도 호박이랑, 미나리랑 나왔는가 가보는 거쥬. 맛있는 거 나왔으면 사먹기도 허고.(웃음)"
할머니는 참기름, 들기름, 나물, 떡쌀 등 설음식 재료는 준비됐지만, 혹시 빠진 게 없는지 확인하러 간다고 덧붙였다. 시장에 들렀다가 계모임에 간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귀가 솔깃했다. 매월 1과 6이 들어가는 날 대야에 장(5일장)이 선다는 것은 알았으나 둘러본 경험은 없기 때문이었다.
▲ 장에 가는 손님으로 빈자리가 없는 시내버스. 아직도 시골은 만나는 사람 모두가 친구요 이웃이었다. ⓒ 조종안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할 때마다 노인 승객들이 올라왔다. 왕골 돗자리로 이름났던 '원주곡(뜰아름 마을)'에 도착해서는 뒷자리로 밀려났다. 힘겨워하며 서 있는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양심불량아처럼 모르는 체하면서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고맙고 맛있게 얻어먹은 생강차와 빈대떡
▲ 자원봉사자들에게 빈대떡과 생강차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 조종안
큰 들판이 펼쳐지는 지역이어서 불리게 된 대야(大野). 대야면은 군산시 남동쪽에 위치하며 옛날에는 '배달뫼'라 하였고, 만경강 변 거주지 한계에 이르러 지경(地境)으로도 불린다. 군산시에 속한 기차역(옥구, 상평, 개정, 대야, 임피) 중 유일하게 승객이 타고 내린다.
버스는 20분쯤 달려 대야장터 입구에 도착했다.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람의 물결이 너울대는 시장으로 걸어갔다. 1톤 트럭에 장치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뽕짝 메들리'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가 사이좋게 뒤섞이며 시골장 분위기를 돋우었다.
어른들과 헤어져 혼자 걷는데 열댓 명이 고개를 맞대고 모여 있었다. 사람들 어깨너머로 "어마, 어마 다 쏟아지네!" 소리가 들렸다. 무슨 재미있는 굿이 벌어졌는지 다가가니까 붉은 조끼를 입은 여성들이 "저희는 ○○교회에서 나왔습니다"라며 따끈한 생강차와 금방 부쳐낸 빈대떡을 나눠주고 있었다.
어디서 부치는지 20대로 보이는 몇 사람은 빈대떡을 계속 날랐다. 장터를 찾아온 손님은 물론, 좌판을 벌여놓은 노점상들에게 배달도 했다. 바람 끝이 차갑고 출출할 때 빈대떡과 생강차는 건강식. 안 먹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빈대떡 두 장과 생강차 한 잔을 얻어 마셨다.
먹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젊은 아낙이 한 장 더 드시라고 권했다. 하지만 고맙다며 사양했다. 생각지 않은 생강차와 빈대떡을 맛있게 먹고, 시장기까지 가시니까 추위가 도망가면서 몸도 유연해졌다. 흐뭇한 마음으로 먹어서 그런지 기분도 상쾌했다.
"한 마리 더 얹어 드릴팅게 사가셔유"
▲ 아직 오전이어서 그런지 반응이 냉랭한 생선전 풍경. ⓒ 조종안
1톤 트럭에서는 "냉동 꽃게 한 마리에 천 원~" 하고 녹음된 음성이 안내 방송처럼 흘러나왔다. 생선장수 아저씨가 "자~ 싱싱한 참조기 스무 마리에 만 원!"이라고 외치며 손님을 불러 모았으나 사람들은 바라만 볼 뿐 반응은 냉랭했다. 시세를 묻기가 미안해서 발길을 돌렸다.
▲ 1톤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건어물 가게. 가격표가 8천 원에서 1만 원으로 올랐음을 말해주고 있다. ⓒ 조종안
구경만 하고 오려니까 서운했다. 해서 저만큼 떨어진 아주머니에게 박대는 어떻게 파느냐고 물으니까 수입 박대라며 작은 것은 다섯 마리 1만 원, 큰 것은 2만 원이라고 했다. 아귀는 작은 거 세 마리 2만 원, 수입 홍어는 두 마리 1만 원으로 1년 전 대목장 시세와 비슷했다.
진지하게 귀담아들으니까 장 보러 나온 사람으로 보였는지 아주머니가 "국산 박대 생물은 여섯 마리에 2만 원씩 파는디 한 마리 더 얹어 드릴팅게 사가셔유"라며 사정하듯 권했다. 구경 나왔다고 하기 미안해서 조금 더 돌아보고 오겠다며 도망치듯 생선전을 빠져나왔다.
의류가게 골목은 썰렁하기가 구경하기 미안할 정도
▲ 다른 가게에서 흥정하는 모습을 한가롭게 바라보는 의류가게 주인아저씨. ⓒ 조종안
예나 지금이나 설이 가까워지면 어른들은 이런저런 상심으로 하루를 보냈다. '설날이 빚쟁이보다 무섭다!'는 어른도 있었다. 그러나 철부지 아이들은 달랐다. 새 옷, 새 고무신, 세뱃돈 등 생각만 해도 1년 중 가장 좋은 날인데, 걱정하는 부모를 이해할 수 없었다.
▲ 한산한 과일가게. 손님은 없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주머니의 여유가 넘쳤다. ⓒ 조종안
시골 장터 구경의 '백미'는 역시 방앗간
▲ 방앗간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아주머니들. 앞에는 참깨, 들깨, 강냉이 등이 놓여 있었다. ⓒ 조종안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데 10여 명의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양지바른 방앗간 입구 평상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니까 들기름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기분까지 고소해지는 것 같았다.
방앗간 안으로 들어가니까 기계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제법 웅장했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방앗소리는 장단과 음률이 고른 악기 연주처럼 느껴졌다. 고향동네에 있던 방앗간에 비하면 소규모였지만, 기름도 짜고, 떡쌀, 고추 등도 빻고, 튀밥도 튀기는 만능 방앗간이었다.
▲ 방앗간 풍경. 젊은 아낙이 기계에 담은 밤이 잘 빻아지도록 막대기로 고르고 있다. ⓒ 조종안
"햇밤을 쪄서 단단하게 말렸다가 방앗간 기계에 빻으면 잘게 부서지요. 그러면 채로 까불러서 알맹이만 골라내 떡이나 찰밥을 찔 때 넣으면 맛이 그만이에요. 기계에 빻은 밤 가루는 약밥도 만들고 미숫가루도 해먹고 묵도 만들어 먹죠. 아저씨도 만들어 잡숴보세요."
불에 구워먹기만 해도 먹는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햇밤. 그 가루를 찰밥에 넣고 쪄먹다니 아주머니 설명은 듣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족히 한 말은 될 것 같았는데 방아 찧는 비용도 3000원으로 생각보다 저렴했다.
▲ 방앗간 주인 아들 문병일씨가 튀밥을 튀겨내고 있다. ⓒ 조종안
문씨는 자신의 아버지(74)가 1950년대에 개업한 방앗간의 '뻥튀기부(部)' 책임자로 경력 13년째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 달 수입은 적지만 노력한 만큼 벌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며 다음 뻥튀기를 준비했다. 시골 장터의 '백미'는 역시 방앗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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