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설 준비는 다 했소?"...할머니들의 수다

남녘 끝 전남 강진 마량오일장

등록|2012.01.17 16:46 수정|2012.01.17 16:48

▲ 강진 마량항 전경. 오래 전 흥청거리던 포구였지만 고금도와 잇는 연륙교가 개통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더불어 포구의 활성화를 위한 상인과 주민들의 노력도 펼쳐지고 있다. ⓒ 이돈삼


장터를 찾으면 언제나 설렌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 장터의 옛 풍경이 사라져 아쉽다고들 하지만 넉넉함과 흥겨움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남도의 오일장. 우리 어머니 삶의 모습과 인정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어 좋다.

강진 마량장(3·8일)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지난 13일 새벽, 그 설렘을 안고 마량으로 향했다. 어둠이 아직 물러나지 않은 마량항이 여명을 받아 매혹적이다. 그 앞으로 펼쳐진 까막섬과 어우러진 바다도 한 폭의 수채화다. 까막섬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이 일대를 '한국의 나폴리'라 부른다.

항구 뒤로 자리한 장터는 갯내음으로 가득하다. 갓 잡아 온 갯것들이 바다내음을 잔뜩 머금고 있다. 추위를 녹이려 곳곳에 지핀 모닥불이 바람에 춤을 춘다. 모닥불을 찾아 할머니들이 모여 앉았다. 옷 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피하기 위해 저마다 두툼한 겉옷으로 무장을 했다.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흑염소 무리도 추위에 잔뜩 움츠린 모습이다. 시금치를 다듬어 파는 김정자 할머니와 오리를 손질해 파는 유복자 할머니, 그리고 최정례 할머니가 시린 손을 연방 호호 불어댄다.

▲ 마량장에 나온 한 상인이 모닥불에 언 손을 녹이고 있다. 그 뒤로 염소 몇 마리가 보인다. ⓒ 이돈삼


▲ 마량장에 나온 한 할머니가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장갑을 하나 더 끼고 있다. ⓒ 이돈삼


남쪽 끝 마량장에서 벌어진 할머니들의 수다

"설 쇨 준비는 다 했소?"
"벌써 한당가. 시간이 쬐끔 있응께. 다음 장날에 맞춰서 찬찬히 할라네."

"그래라우. 짐장은 했소?"
"많이 해서 아들들도 줬네. 무시도 누가 줘서 많이 했어. 오늘처럼 바람 불고 (속이)울렁이는 날엔 짐치 하나만 집어 먹어도 금방 낫제."

"그것을 말이라고 하요. 많이 담어 놓고 여름에 대아지 고기에다 볶아 먹어도 좋아라. 옛날에 영감 모르게 대아지 고기를 떠다 먹었는디. 이제는 알아 부러갖고  민망하당께."

손님을 기다리며 주고받는 수다가 즐겁다. 남쪽 끝 바닷가에 서는 마량장은 단출하다. 아담하고 소박하다. 장돌뱅이 외지 상인들이 많지 않다. 난장을 펼친 할머니 대부분이 부근에서 산다.

멀다 싶으면 다리 건너 고금도(완도)다. 장이 열리는 날이면 직접 지은 농산물이며 바다에서 잡은 갯것들을 바리바리 싸서 장을 찾는다. 북적거림은 없으나 손님의 발자국은 심심찮게 찾는다.

▲ 겨울에 더 맛있는 굴. 한편으로 저 많은 굴을 언제 다 쪼았을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 이돈삼


▲ 마량장에 나온 감태, 매생이 등 수산물은 모두 주민들이 바다에서 직접 채취한 것이다. 그만큼 싱싱하다. ⓒ 이돈삼


마량장은 예부터 낙지, 우럭, 문어로 유명했다. 자타가 인정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낙지는 찾아볼 수 없다. 날씨가 추운 탓이란다. 그 자리를 매생이와 감태, 파래가 메웠다. 고금도 뻘에서 막 매온 것들이 짙푸른 비단결 같다.

"감티가 연하디 연해 갖고 맛이 끝내줘. 쩍 하나씩 있을지 모릉게 막 물에다 넣지 말고 한번만 추려서 묵어야 돼. 요새는 감티 매기가 힘들어. 해서 굴을 많이 까제."

할머니들 앞자리는 굴을 담은 그릇이 점령하고 있다. 토실토실한 게 실하다. 굴 하나에 유독 눈길이 간다. 크기가 손톱만 하다. 갯바위에서 일삼아 조새로 깐 굴이란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던진다.

"이 추운 날 저 자잘한 굴을 언제 다 쪼았을까."
"굴이라고 다 같은 굴이 아니지라. 김장 때는 잘 팔렸는디 김장이 끝나고 나니 잘 안 팔려. 그렁께 많이씩 담았지라. 다른 사람 것하고 비교해 봐. 남들은 물을 많이 넣어 파는디, 나야 그럴 수 없제. 얼매나 깨끗한지. 자연산잉께 초장에 찍어 잡수믄 좋아."

장터 선술집은 추위를 녹이려는 이들로 왁시글덕시글하다.

"옛날에는 참 대단했제. 저기 고금, 약산, 생일, 금일, 신지도 사람들이 잡은 괴기하고 짐(김), 미역이 이짝으로 다 몰렸제. 섬사람들이 배타고 와서 쌀도 사고 옷도 사입고 했제. 여그가 중심이었당께."

김갑돌 할아버지의 말이다. 그이의 말처럼 인근 섬의 경제는 이곳 마량항에서 시작됐다. 섬 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자가 이곳을 통해 오갔다. 덩달아 마량장이 번성했고, 지역도 활기 넘쳤다.

▲ 강진 마량장 입구. 대목을 앞둔 오일장이지만 아직은 한산하다. ⓒ 이돈삼


▲ 고금대교 전경. 강진 마량과 완도 고금도를 잇는 연륙교다. ⓒ 이돈삼


3월이 되면, 마량장을 다시 찾아야겠다

그러던 지난 2007년 강진 마량과 완도 고금을 잇는 고금대교가 놓였다. 마량항의 역할이 위축됐다. 마량항의 영화도 시나브로 옛 이야기가 되어 갔다. 섬을 오가던 철선도 끊겼다. 마량장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제. 마량항을 살리기 위해서 얼매나 노력했는지 몰라. 시장 상인들하고 횟집 주인들이 마량항을 살려볼라고 발버둥쳤제. 아 그 비싼 회를 반값에 팔고, 봄부터서는 요앞 방파제에서 음악회도 연다니께. 3월에 다시 한 번 와봐. 장구도 치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얼매나 재밌는디. 볼만혀"

한산한 마량장을 나오면서 3월을 떠올려본다. 장구도 치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게다가 회도 반값에 싸게 판다는데. 어서 빨리 꽃피는 삼월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 마량항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 마량항의 열린음악회. 노래도 하고 장구도 치는 재밌는 무대다. 언 날씨가 풀리는 봄부터 다시 시작된다. ⓒ 이돈삼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