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의 계절..."교회나 절이라도 다닐걸"
[요즘 이렇다] '13월의 월급', 연말정산의 추억... "대출이자 몇백 환급, 부러워마라"
▲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서비스 누리집 ⓒ 국세청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생전 접속하지 않던 국세청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그리곤 올해도 예외 없이 아이디, 패스워드 찾기를 한다. 바로 연말정산 관련 증빙자료를 얻기 위해서다.
같은 팀에 속한 연말정산 담당자가 매년 이맘때면 두 달 동안 야근을 하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는데 요즘은 전산화 덕분에 야근도 점점 줄고 있다. 신고하는 직원들도 일일이 수십 장에 달하는 서류를 준비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국세청에서 대부분 받을 수 있다.
말이 좋아 흥정이지 엄밀히 말하면 세금을 부정하게 받아내는 일이다만, 국세청에 낸 세금은 약간의 편법을 써서라도 받을 수 있을 만큼 받아내는 게 큰 죄가 된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무용담처럼 전해졌다.
의사 대신 처방전 써서 동료들에게 인심... '불법의 추억'
10년 전만 해도 주변에 의사들이 있는 직원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간이영수증이 인정되는 때라 소위 '가라' 영수증을 얻어오곤 했기 때문이다. 어떤 직원은 간이영수증을 백지로 얻어와서 예전 영수증을 보고 의사 대신 처방전을 써서 동료들에게 인심까지 썼다는 말도 들렸다.
뿐만 아니라 교회나 절에 다니는 직원들도 이때만큼은 부럽기 짝이 없었다. 평소 교회나 절에 다닌다는 걸 전혀 몰랐던 동료가 거액의 기부금 영수증을 제출해서 환급을 왕창 받았다는 소문을 들을 땐 부러운 기분도 들었다.
"저러니 교회가, 절이 욕을 먹지. 저 인간이 설마 다녔더라도 그렇게 많이 헌금을 냈을까? 그랬다면 더 재수 없다. 밥값 한번 제대로 낸 기억이 없는데" 또는, "아, 부모님이 헌금을 많이 해서 그렇단다. 울 부모님은 교회나 절에도 안 나가시나…" 하게 되는 거다.
하지만 이런 '불법의 추억'은 이젠 턱도 없는 안줏거리일 뿐이다. 거의 99% 에누리 없는 세금 정산 시스템이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13월의 월급'을 '딴 주머니'에 넣기 위해 매년 이맘때 급여 담당자에게 "제발 연말정산 환급액을 받는 이체통장을 변경하게 해달라"고 전화하는 선배들을 보며 '나는 결혼하면 저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점점 그 결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연말정산은 초보 가장들에 대한 '위로금'
같은 회사원이라도 연말정산 환급을 많이 받는 계층이 대략 정해져 있다. 바로 중간 계층이다. 결혼을 해서 만 20세 미만의 자녀가 있고 아직 부모님이 생존해 있는 사람. 이른바 부양가족이 많으면 일단 기본 공제액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모님이 70세 이상의 고령이거나 장애인이면 더 공제액이 커진다.
이와는 반대로 갓 입사한 미혼의 말단 사원들은 월급이 적으니 세금도 적게 내서 받을 것도 별로 없고, 이미 자녀를 대학에 보낸 부장님들은 오히려 더 세금이 부족했다고 몇 십만원을 더 내는 경우도 있으니 연말정산은 초보 가장들에 대한 위로금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가장들을 그야말로 위로하는 추가 공제 항목도 있다. '장기주택저당차입금 이자상환액 공제'와 '월세자금 공제'가 그렇다. 각종 재개발 사업이 대통령 공약이 될 만큼 거세게 일었던 부동산 투기 바람이 된서리를 맞았다. 겨우 집 한 채를 빚내서 산 사람은 집값은 떨어지고 원금상환은 고사하고 대출이자만 높아진다. 이런 공제 항목들은 그야말로 '하우스 푸어'로 전락한 가장들을 그나마 달래주는 항목이 아닐 수 없다.
"난 연말정산 서류 이것저것 뗄 거 없어. 집 담보 대출이자 낸 거만으로도 몇 백만 원 받아. 그렇다고 부러워하진 마"라며 같은 팀 동료가 자조적인 푸념을 내뱉는데, 참 다행이라고 위로를 하기도 그렇고 그저 같이 쓴웃음을 지어줄 수밖에 없다. 요즘 사는 게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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