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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저 애를 누가 돌봐줄까"

[4.11총선 인터뷰] '삼세판' 도전하는 안양동안을 이정국 예비후보

등록|2012.01.21 21:20 수정|2012.01.21 21:24

▲ 이정국 ⓒ 이민선


안양 만안뉴타운 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2010년 10월, 뉴타운 개발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따끔하게 지적할 만한 상징적인 인물이 필요했다. 누가 있을까 고민 고민 끝에 떠올린 인물이 바로 '이정국' 박사다.

뉴타운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감정평가법인 대표였고, 경제학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는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발언을 해줘야 했다. 그가 지역신문 <안양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읽어 보니, 다행히 그는 뉴타운 개발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바로 내가 찾던 인물이었다.

"이 박사님, 어려운 부탁 드려야겠습니다."
"무슨 부탁이시기에…."
"뉴타운 관련 토론회인데 박사님 사업하고는 좀 배치되는 발언이 필요해서…."
"음~. 소신껏 발언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업에 피해가 갈지도 모르는데, 뉴타운 개발을 해야 감정평가도 많이 할 테고. 괜찮겠어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토론회에 참석했고, 내가 원하는 발언을 해줬다. 그는 "뉴타운 사업 같은 도시 정비 사업을 사업성 위주로 추진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지금은 주거 복지 중심으로 도시 재정비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소유자 중심정비'보다는 세입자를 포함한 '거주자 중심' 개발이 이루어 져야하고 주민 참여를 보장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토론회는 성공적이었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했던 주민들은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그에게 박수를 보냈고, 덩달아 사회를 본 나도 분에 넘치는 박수를 받았다. 다음해 4월, 만안뉴타운 개발 계획은 많은 주민들의 소원대로 취소됐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이정국 박사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주말(21일) 에 만나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엔 사회자와 토론자가 아닌 인터뷰어(interviewer) 와 인터뷰이(interviwee) 관계였다. 그는 4.11총선 민주통합당 안양 동안을 예비후보자다.

"뉴타운은 시대착오적 발상"

▲ 토론회, 왼쪽 두번째가 이정국 예비후보 ⓒ 이민선


그가 출마한 동안을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예비후보자가 난립하고 있다. 한나라당 2명, 민주통합당 5명, 통합진보당 1명이 예비후보자로 등록했다. 거기에 현 한나라당 심재철 국회의원까지 합하면 총 9명이 후보자인 셈이다.

이정국 후보는 '삼수생'이다. 지난 2004년, 2008년에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에게 연거푸 패했다. 선거는 전쟁과 같아서,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한 진실', 그래서 우선 심재철 의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물었다. 단점을 먼저 들춰 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칭찬부터 해서 기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부지런하다 몸이 불편한데도. 그 부분 인정한다. 그래서 그런지 지역구 관리도 아주 잘한다."

이 대답을 듣고 곧바로 "칭찬은 잘 들었다. 이번엔 심재철 의원이 잘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해달라"고 추궁하듯 재촉했다.

"부지런하게 지역구는 잘 관리하는 것 같은데, 정작 중요한 지역 사업은 등한시했다. 3선, 12년 동안 안양 주민을 위해서 별로 한 게 없다는 말이다. 주민들은 도심에 있는 호계동 교도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하는데 심 의원은 엉뚱하게도 그 자리에 재건축하자고 한다. 작년 가을에 이런 취지의 간담회도 했다. 또 평촌동 농수산물 시장 현대화 사업도 하지 않아 계속 낙후되고 있고…. 재개발 재건축 문제도 등한시하고 있다."

- 본인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지난 10년 동안 끈기 있게 준비했다. 선거 3수하는 것만 봐도 끈기는 인정할 만하지 않은가? 하하."

- 진작 끈기 있게 준비했으면 재수에 성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두 번씩이나 떨어졌나?
"일단 나의 준비 부족이었다. 2004년 총선은 7개월 준비해서 나왔다. 그러다 보니 의욕만 강했지 제대로 된 선거운동을 하지 못했다.

2008년에는 전국적으로 한나라당 잔치 같은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이 지역(평촌)은 버블세븐 지역이다.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확률이 거의 제로였다.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많았다. 그러다가 정치인은 의리가 있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출마를 결심했다. 한마디로 장렬히 전사할 것을 각오하고 나간 선거였고, 실제로 장렬히 전사했다."

- 그렇다면 이번엔 어떤 각오인가? 민주통합당 후보가 장렬히 전사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
"죽기 아니면 살기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짜내서 싸울 각오로 나왔다. 예전엔 준비 부족으로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그동안 절치부심하며 준비했다. 또 그동안 지역을 위해 각종 활동도 했다. '한국청소년운동연합 안양지회'를 설립해서 활동했고, 장애인인라인협회도 만들어 활동했다. 또 파키스탄 가서 사랑의 집 짓기 운동도 했다. 그러면서 섬김과 봉사라는 게 무엇인지도 알았다."

2008년, 장렬히 전사할 각오로 출마

▲ 이정국 ⓒ 이민선

- 이력을 보니 이른바 '성공한 남자'다. 감정평가법인 대표고 경제학 박사, 그리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정치만 하지 않으면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두 번씩이나 떨어지고 또 출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딸 때문이다.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들 가장 큰 고민은, '내가 죽으면 누가 저 애를 돌봐줄까' 하는 것이다. 장애인 돌보는 일은 부모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다. 형제자매도 못한다. 결국 내가 죽으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죽기 전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나를 정치계로 오게 했다."

- 처음 듣는 이야기다. 딸이 장애인인가?
"그렇다. 뇌성마비 일종. 그러니까 뇌에서 아무것도 판독을 못한다. 22살이지만 지능은 4~5개월 된 갓난아이와 같다. 목도 못 가누고, 눈은 뜨고 있지만 보지도 못한다."

- 그밖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정치를 하지는 않을 텐데?
"있다. 내가 정치를 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사건이 있다. 난 국립세무대학을 나왔다. 전액 국비로 다니는 학교다. 아마 전액 국비가 아니었으면 난 돈이 없어서 대학 문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내 모교인 세무대학이 지난 1998년, 세무대학 설치 폐지법이 통과되면서 없어졌다. 그때 동문들과 함께 국회의원들 찾아다니며 사정도 하고, 국회 앞에서 집회도 했지만 모교가 사라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배우려는 열망은 있지만 돈이 없는 아이들이 가는 대학이 세무대학인데, 그걸 왜 없애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가슴도 아팠다. 그때 정치적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 라이벌 심재철 의원을 만나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듯한데?
"시민이 선택한 국회의원 이니까 어쨌든, 시민을 위해서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달라고 하고 싶다. 단 나머지 임기 동안이다. 그리고 나머지 일, 이루지 못한 일은 내가 총대를 메고 19대 국회에서 꼭 하겠다고 말하겠다."

-유권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세 번 도전해서 성공했다. 삼세판이다. 이번에 나도 세 번째 도전이다. 내가 펼치고자 하는 정치, 이루고 싶은 사회 만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부자를 위한 세법을 서민을 위한 세법으로 바꾸고, 사회복지세 신설해서 골고루 잘 사는 사회 만들겠다. 또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들이 좀 더 편히 살다가 맘 편히 국가에 자식을 맡길 수 있는 시스템 분명히 만들겠다. 도와달라."

- 심 의원과 다시 맞붙으려면 우선 민주통합당 공천을 받아야 할 텐데, 자신 있나?
"난 다른 후보에 비해서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10년 동안 지역활동을 했다는 점이다. 이게 내 힘이다. 난 그동안 이곳 주민들과 함께 했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이다. 다른 분들 모두 훌륭한 분들이지만 나처럼 이곳에 뼈를 묻을 분들은 아니다. 시민들이 이 점을 모두 알고 있고 현명한 판단을 해주리라 믿는다."

-마지막 질문이다. 가슴에 새기고 있는 좌우명이 있다면 말해달라.
"흔한 말이다. '성실' 이다. 아버지가 남겨준 유품이다. 아버지는 늘 '내가 가난해서 네게 줄 게 없으니 성실하게 살라는 말밖에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아버지 말을 잊지 않고 성실하게 살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내 고향은 고 김대중 대통령 고향인 '하의도' 옆에 있는 '우의도'다. 섬에서 올라온 촌놈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성실'밖에 없었다.

아버지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만 더 말하겠다. 아버지는 내게 '대기만성' 형이란 말을 자주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점을 한번 치셨단다. 그때 점괘가…. 하하, 그래서 이번에 기대를 하고 있다. 삼세판에 꼭 성공하리란 기대를."
덧붙이는 글 안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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