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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 정치 감각, 팝아트 그릇에 담다

'천민정의 폴리팝(Polipop)'전 성곡미술관에서 3월 11일까지

등록|2012.01.23 17:37 수정|2012.01.25 21:05

▲ 성곡미술관 입구 '천민정작가전' 포스터로 폴리팝을 상징하는 그의 대표작 ⓒ 김형순


중견 중진작가를 집중조명해온 성곡미술관에서는 2012년 새해맞이 첫 전시로 '천민정의 폴리팝(Polipop)'展을 3월 11일까지 연다. '폴리팝'은 '정치적 팝아트(Political Pop Art)'의 줄임말로 세계를 무대로 15년간 활동해온 소장급 천민정 작가의 화풍에 붙은 별칭이다.

천민정(1973-) 작가는 부친이 해외 문공관으로 어려서부터 외국생활을 접하면서 자랐다.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가 메릴랜드주와 뉴욕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디지털 유목시대에 가공할만한 정치문화와 선동적 대중문화에 대한 철학적 견해를 담고 있다.

1전시실 오바마의 방, 이미지폭력과 싸우다

▲ 천민정 I '오바마처럼 나도 할 수 있어(Yes We Can Obama & Me)' Polipop Digital Painting 152×244cm. 이 포스터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공장에서 일하는 미국여성의 아이콘이 된 밀러의 포스터를 차용한 것이다 ⓒ 김형순


21세기의 하루는 쏟아지는 이미지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허구까지도 진실로 뒤바꾸는 이미지시대라 사람들이 가상폭력을 또한 감당하기 힘들다. 날마다 쏟아지는 이런 정치 프로퍼갠더나 상업적 대중문화를 분별한 필요가 요구된다.

이런 이미지폭력과 싸우기 위해 작가는 또한 진공청소기 같은 흡입력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 이미지를 걸려내고 자기만 콜라주방식으로 재해석하고 그걸 팝아트에 주서 담는다. 위에서 보듯 밀러의 포스터를 차용한 '나도 할 수 있어'에서는 미국에 흑인대통령은 있어도 여성대통령이 없음을 비꼰다.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은 그의 전시 머리말에서 "천민정 작가의 이번 폴리팝은 가히 시각이미지의 융단포격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공을 넘나들며 동서남북의 문제를 시각적으로 제고하고 있다. 작가의 왕성한 이미지 소화력이 압권이다"고 평한다.

정치발언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

▲ 천민정 I '무서워요(The Scariest)' Polipop Digital Painting 152×244cm. 오바마가 터빈을 쓰고 있어 오사마 같이 보인다. 오사마나 오바마 이름도 비슷하고 얼굴이 비슷한데 누구는 죽고 누구는 죽이는지 모르겠다고 희화한다 ⓒ 김형순


작가의 정치의식이 시발점은 우리에겐 생활화되지 않은 시민권에서 시작한다. '시민권(市民權 Civil Rights)'은 국가에 의하여 방해받지 않는 사적 자유는 물론, 국가에 대한 청구권과 정권 등을 말한다. 한 시민으로서 작가는 정치에 관여하고 발언하는 건 너무나 정당한 권리로 본다. 터번을 쓴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작품 속에서 놀림감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는 뉴욕에서 백남준의 조수도 했는데 그의 정치 감각을 빼닮은 것인가. 백남준의 키워드 '참여와 소통'을 정치적 문맥으로 해석하면 "참여야말로 독재를 막는 최선의 방안이고 소통이야말로 전쟁을 막는 최선의 방책이다"라고 재해석할 수 있는데 바로 그런 맥락이다.

복제를 거부한 디지털페인팅 창안

▲ '천민정 작가의 다양한 디지털 페인팅(Polipop Digital Painting) 시리즈' ⓒ 김형순


그가 이화여대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그 전공을 살려 전자 붓을 이용한 디지털페인팅을 개발한다. 이 페인팅도 고전회화처럼 복제가 안 된다. 고흐의 작품처럼 딱 한 점밖에 없다. 그 비법은 비공개다. 복제미학의 시대에 복제를 거부하니 그 발상이 신선하다.

천민정 작가는 사실 매우 지적인 작가다.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미학자로 미국의 메릴랜드대학 교수이고 지금은 이화여대 교환교수로 와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학구적 깊이보다 작품을 더 중시한다. 왜냐하면 지성이란 예술의 그릇에 담기지 않으면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지성을 버리고(Non knowledge) 예술을 취한다. 그의 작품은 그래서 유쾌하고 코믹하다.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 만화처럼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가 생각하는 미디어 철학은 확고하고 시대를 꿰뚫어보는 그의 안목 또한 높고 깊고 넓다.

2전시실 독도의 방, 골치 아픈 정치를 유쾌한 팝으로

▲ 천민정 I '포케맨(Pokeman)' Polipop Digital Painting 152×244cm. 2004년 금강산 방문이후 권력자를 풍자한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영화 '세계경찰(2004)'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 김형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천 작가는 무거운 정치쟁점을 가볍게 팝아트로 바꾼다. 거기다 대중문화와 버무려 관객에게 맛있는 비빔밥을 제공한다. 4대강국에 끼여 사는 한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이 한데 잘 뒤섞는다. 그래서 매우 중립적이다. 그런 관점이 있었기에 북한기를 배경으로 한 김정일을 너무나 귀여운 포케맨으로 변신시킬 수 있었다.

여성의 정치 상상력으로 가부장제 풍자

▲ 천민정 I '슈퍼우먼 콤플렉스(Superwoman Complex)' Polipop Digital Painting 152×244cm. 예쁘고, 겸손하고, 헌신적이고, 수입도 많이 내고, 애도 잘 낳고, 교육도 잘 시키고, 살림 잘 하고, 부모 잘 모시고, 잠자리까지 끝이 없다 ⓒ 김형순


북한기에 태극기가 들어간 이 작품의 제목은 '슈퍼우먼 콤플렉스', 그의 폴리팝은 페미니즘과 불가분관계가 있다. 남녀차별을 주제로 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사실 정치에서 최대이슈다. 사회가 여성에게 너무 과다한 걸 요구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을지대 병원 정신과 김영돈 교수는 이 콤플렉스를 "어진 어머니로서의 신사임당, 재테크도 잘하는 평강공주, 노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는 심청이, 제2의 사춘기에 뜨거운 사랑을 바치는 황진이 같은 슈퍼우먼이 돼야 한다는 중압감이 주부우울증의 원인이 된다"고 진단한다.

북한의 군인여성은 과격한 섹시함을 보이고 남한의 직장여성은 얌전을 빼는데 그 대조미가 기막히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남북한 여성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유교적인 가치관에 따라 가부장제에 복종하며 아들을 낳고 김치를 담그고 국가에 헌신하는 면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작가는 일러준다.

일본식민지 청산 안 된 '독도' 조명

▲ 천민정 I '독도여행(Traveling to Dokdo)' Three-Channel Video Installation. 2009년 독도를 직접 방문하고 사진도 촬영하다 ⓒ 김형순


천 작가가 정치적인 건 앞에서 밝혔듯 어려서 외국생활을 체험했고 다양한 나라의 관점을 미디어로 통해 보면서 정보가 얼마나 왜곡되고 굴절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이 낳는 폐해인 미디어폭력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그가 어려서 산 덴마크에서 친구들에게 에스키모인 같다는 놀림을 당하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이런저런 인종차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일본의 한류 혐오만화를 보고 크게 충격을 받는다. 이런 것이 그에게 정치적 자각과 의식을 낳게 하는데 일조했으리라.

천 작가의 이런 경험이 우리에게 약간 식상한 문제이기도한 독도문제를 꺼낸다. 이 섬은 누가 봐도 한국 거다. 그럼에도 강대국논리로 복잡하게 꼬였다. 우리가 1945년 일본에서 해방됐다고 하나 우린 아직도 독립국이 아니다. 천 작가가 바로 이점을 '정치 팝'으로 이슈화한다. 이 독도전은 뉴욕 화이트박스(white box www.whiteboxny.org)로 이어진다.

3전시실 다이아몬드 방, 자본주의 꼬집기

▲ 천민정 I '4개의 영원한 다이아몬드(Diamond 4 Ever)' Light Installation 2012. '점령 2011(Image a day_Occupy 2011)' Digital Photo Frame Installation 2012 ⓒ 김형순


천 작가는 또한 자본주의의 여러 강점에도 지나친 경쟁과 양극화, 승자독식 등을 풀어내어 보다 행복한 사회에 대한 열망을 작품에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남녀차별, 인종차별이 없고 소수자도 배려가 되는 평화공존 사회를 염원한다. 왜냐하면 작가자신이 그런 경험을 뼈아프게 맛봤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자본주의의 그늘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화려한 다이아몬드 방을 만든다. 다이아몬드의 영원함과 물질이 주는 공허함을 대조시킨 것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소비중독, 콘텐츠 없는 TV매체,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과다경쟁 등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천 작가는 2011년 365일 인터넷 매체에 뜨는 이미지 중 가장 주목 받은 사건을 52개의 작은 TV화면에 디지털일기형식으로 담는다. 제목은 '점령 2011'이다. 관객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는 작년 한해를 정치평론가처럼 '이집트의 민주화시위로 시작해 뉴욕 월스트리트 점령으로 끝나다'라고 요약한다.

이미지전성시대, 사이버 판타지 만들기

▲ 천민정 I '자본주의와 경쟁(Capitalism and Contest)' Polipop Digital Painting 152×244cm. 이 작품은 2011년도 미국 리얼리티 쇼 참가자, 욕심 많은 신부들이 화면에 그득 넘친다 ⓒ 김형순


천 작가의 주제는 아주 뚜렷하다. 소비주의와 경쟁주의와 상업주의로만 치닫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려를 언급한다. 그는 이런 것보다 차원 높은 신명나는 미디어세상 즉 문화적 가치가 인정받고 평화공존과 사회 공익성이 넘치는 세계를 꿈꾼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백남준의 랜덤 액세스나 샤머니즘의 노이지(noisy) 풍이다.

이제 천 작가의 미디어세계를 요약해보자. 그는 진짜미디어와 그와 유사한 가짜미디어를 분별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인간이 진정 행복하고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려면 이미지폭력을 방어할 눈과 능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는 사이버 판타지와 유토피아는 악도 선으로 뒤바뀌는 전복의 미학이다. 하긴 이런 엑스터시 없이 어찌 예술을 하랴.
덧붙이는 글 성곡미술관 종로구 신문로2가 1-101호 02)737-7650
www.sungkokmuseum.com 입장료 성인 3000원 중고생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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