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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팔아 쌀 샀는데... 이젠 패딩 두고 딸과 전쟁

[2012 고물가를 말하다③] 아이들 먹을거리 입을거리, 장난 아니네

등록|2012.02.02 16:10 수정|2012.02.0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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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쓰던 자취방 전화번호다. 20만 원쯤의 보증금을 내고 가입한 번호였다. 아주 외우기 좋아 자랑스러워 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가 끊기고 헌책방에 책 몇 권을 팔아 쌀을 사야 할 정도가 되자 사모하던 전화를 팔 수밖에 없었다.
전화까지 끊어야 할 정도로 궁핍했던 그 시절, '나는 잘 해 낼 거고 앞으로 이보다 더 어려운 시절은 없을 거야'라며 마음 모질게 먹고 악착같이 살았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오늘 난 20~30대를 숨가쁘게 지나 어느덧 두 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그동안 전화를 끊어야 했던 대학생 시절 만큼 곤란한 처지에 몰린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리 여유있게 살지도 못했다. 항상 빠듯한 살림살이에 허덕여야 했다. 그래도 '나는 잘 해 낼 것'이라는 믿음은 지금도 그대로다.

아이들의 왕성한 식욕... 대책이 필요해!

▲ 한번 먹었다 하면 그릇을 싹 비우는 우리집 아이들. 빈 그릇을 찍으려는 찰나 마지막 남은 꽃빵 하나를 놓고 둘 사이에 쟁탈전이 벌어졌다. ⓒ 김미란


그런데 최근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가 다시 한 번 이 믿음을 시험하고 있다. 수입은 그대로인데 거의 모든 생활비가 오르니 가계부에 빨간 불이 켜졌다. 사실, 켜진 지 오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왕성한 식욕은 끝이 없는데 식품비는 계속 오른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 집은 작은애 큰애가 12살, 16살이다. 아들은 학교 다닐 때는 12시 10분에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와서는 오후 2시에 간식을 달란다. 빵과 사과를 먹고 태권도에 갔다 오고 나서 오후 4시가 되면 또 먹을거리를 찾는다. 아들 왈 "한 시간 반이면 소화가 다 되잖아."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다고 한다더니 딱 그 말대로다. 지금은 방학이니 더 하다. 집에서 뒹굴뒹굴거리며 틈만 나면 먹을 거 없나 기웃거린다.

올해 중3이 되는 딸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 입이 심심하다며 자꾸 냉장고를 여닫는다. 특히 딸은 합기도를 하고 자정 넘어야 오는데, 그 시간에도 부엌을 들락날락한다.

아이들에게 해먹이는 간식은 주로 떡볶이, 빵, 고구마, 만두, 계란이다. 빵은 예전에는 집에서 만들어 먹었는데, 요즘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사먹는다. 주로 용인생협 매장을 이용하고 가끔 집 근처 빵집을 이용하는데 생협의 유기농 빵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대신 값이 일반 빵집보다 600원가량 비싸다. 근처 빵집은 눈에 띄게는 아니지만 가격이 조금씩 올라 요즘은 3000~4000원 정도 돈이 더 들어간다.

떡볶이를 만드는 데에도 요즘은 2000~3000원 정도 더 들어가고, 만두나 계란도 사정은 비슷하다. 고구마는 거창에서 농사짓는 친정엄마가 보내주시기에 돈은 안 들어간다.

우리 집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외식은 되도록 피해왔다. 그렇다 해도 계속 집에서만 먹을 수는 없다. 나물 반찬에 김치, 된장국, 김칫국을 며칠동안 내놓으면 애들한테 정말 인기가 없어진다. 나를 보는 시선이 이상야릇하고 표정도 무뚝뚝해진다. 이럴 때 스파게티 집에라도 가자고 하면 애들 목소리가 맑고 높은 톤으로 '급' 바뀌고 신이 난 듯 팔짝팔짝 뛰며 나를 꼭 껴안는다. 그러나, 이렇게 외식 한 번 하고 나면 엥겔 지수가 팍! 올라간다.

나눠라 그러면 얻을 것이니...

▲ 지난 달 우리집 지출 내역 ⓒ 김미란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처에 사는 시누이들이나 지인들이 음식을 줄 때가 제일 반갑다.

우리 집은 다들 가까운 곳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데, 시누이들이 정이 많아 식품을 살 때 여유있게 산 뒤 우리에게 나눠 줄 때가 종종 있다. 이게 정말이지 도움이 많이 된다. 지난 설만 해도 작은 시누이가 과일, 굴비, 떡 이것저것 많이 줘 10만 원으로도 넉넉하게 차례상을 차렸다. (갈비는 내 남동생이 보내줬다.)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 봉사 활동하고 남은 음식이나 아이들 친구 엄마들에게서 가끔 받는 이런저런 음식도 도움이 많이 된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너무 얻어먹는 것 같은데, 나도 음식이 많을 때 시누이들이나 이웃에게 나눠준다. 서로 음식을 나누는 것, 이것이 고물가 시대를 헤쳐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 하나의 방법은 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하는 것이다. 생협에 대해 말하자면 따로 글 한 편을 써야 할 정도로 할 말이 많은 만큼 이 글에서는 짧게 한마디만 하겠다. 저렴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유기농 식품은 일반 마트보다 생협에서 구입하면 훨씬 경제적이다. 얼마 전 국산 콩두부를 2300원에 생협에서 샀는데 일반 마트에서 3000원이 넘는 걸 보고 놀랐다. 생협 조합원이 되면 한달 10000원 정도 조합비를 내긴 하지만 모든 식품을 30% 할인 받아 살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이익이다.

웬만한 패딩 잠바는 20만 원이 '훌쩍'... 살 엄두가 안 나

식품비와 함께 가계에 부담을 주는 지출항목이 의복비다.

요즘 중고등생 사이에서 제2의 교복에 해당하는 '북쪽면'이라는 상표의 패딩은 25만 원에서 80만 원에 달한다. 그것도 인도의 카스트 제도의 이름을 따 별명까지 붙어있다.

그런 유행의 틈바구니에서 나도 딸 아이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펴야 했다. 지난해 12월에 접어들어 날씨가 추워지자 패딩을 갖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기에 아이가 다니는 합기도 도장에서 공동 구매로 산 패딩을 입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구슬렀다.

그런데 웬걸, 빨간색이 섞여 있어서 교복 위에 입으면 모양이 안 난단다. '폼생폼사'(폼에 살고 폼에 죽는)라고 '모양'을 중시하는 나이 때라 어쩔 수 없나 보다. 딸은 추운날, 아빠의 봄가을용 얇은 바람막이 점퍼(이 점퍼에도 '북쪽면' 마크가 있다)를 입고 다니며 은근한 압력을 넣었다. 

할 수 없이 패딩 잠바를 사기로 하고 몇 군데 옷가게를 다녔는데 딸은 맘에 드는 걸 찾지 못했다. 내가 친구의 추천을 받아 거위털 패딩을 사다 주었더니 디자인이 별로라며 반품을 하란다. 그러고 나서 오픈 마켓에서 7만 원대 옷을 샀는데 딸은 마음에 들어했으나 이번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다. 바느질이며 솜 상태가 나쁜 데다가 크기도 작은 게 배달된 것이다. 할 수 없이 또 반품할 수밖에 없었다.

▲ 딸 아이 방에 걸려있는 패딩 잠바. 딸은 이 옷을 사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 김미란


그렇게 패딩과 씨름한 지 한달 반이 지나서야 간신히 하나 살 수 있었다. 고르다가 나도 지친 것이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옷을 약간 할인받아 20만 원에 샀다. 정말 나로서는 큰 맘 먹고 사준 옷이다. 딸은 너무 좋단다. 손수 세탁하고 때 탈까 봐 조마조마하는 모습이 어린애 같다.

딸에게 패딩을 사주었더니 이번엔 아들이 투덜댄다. 사촌형에게서 물려 받은 오리털 파카가 무겁고 콕콕 찌른다나. 그러더니 누나가 잘 안 입는 큼직한 체육관 패딩을 입고 다니며 시위를 한다. 아, 이번 전투는 내년으로 미루어야 할 텐데….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의복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겉옷은 물론이고 양말, 속옷, 신발, 모자, 장갑, 벨트까지 물려 받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옷을 달라고 공표해 놓으면 친척, 친구, 친구의 친척 등등에게서 옷이 들어왔다.

앞서 말한 음식처럼 지금도 옷을 이렇게 주고받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애들이 크니까 마냥 얻어 입힐 수는 없다. 애들이 원하는 옷을 사줘야 할 때가 잦은데 그러다 보니 의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진다.

나는 세상에 넘쳐나는 옷을 내 손으로 사고 싶지는 않다. 이건 내 독특한 취향이자 주관이다. 너무 많은 옷이 있고 그걸 다 소비하지도 못하는데 계절별로 재질별로 디자인별로 만들고 또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니 나 하나라도 남들이 안 입는 옷을 입어 덜 소비하면 덜 만들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에서 옷을 사지 않으려 한다.

이건 고기를 덜 먹는 사람이 늘면 열대림을 덜 불태우고 목축업을 줄일 것이며 그만큼 아프리카도 덜 메마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같은 발상이다. 옷을 과잉 생산하기 위해 동물들을 학대하고 석유를 더 소비해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겉모습에 지나친 관심을 쏟으며 과잉 소비하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내 주장만 너무 펴다 보니 아이들과 종종 부딪힌다. 옷을 얻어 입고, 집에서 만들어 입는 게 내 방식인데 아이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면서도 가끔은 사입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요즘은 한도를 정해 그 안에서 애들에게 옷을 사준다. 그렇지만 내 생각이 바뀐 건 아니다. 사는 옷은 최소한으로, 나머지 옷은 얻어 입거나 만들어 입는 것, 앞으로도 쭉 그리 할 거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일수록 더욱 내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식품비도, 의류비도 나누고 직접 만들고 하면 줄일 수 있다. 돈을 아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이렇게 사는 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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