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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지킨 공약, 제대로만 적용했으면...

울산국립대 설립 취지는 지방분권... 현실은 엘리트 교육기관

등록|2012.01.25 20:26 수정|2012.01.25 20:26

▲ 2005년 9월 16일 울산국립대 설립이 확정되자, 울산시청 정문에 환영 설치문이 달렸다 ⓒ 박석철


졸업과 입학의 시즌이 돌아왔다.

희망차고 가슴 부풀어야 계절,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우울하다.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벅찬 연간 1000만 원 대학등록금의 첫 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특히 울산의 경우 우울함은 가중된다. 대학입학생 중 절반을 차지하는 6000여 명이 자의든 타의든 외지 대학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1000만 원 등록금은 그렇다치더라도, 그 금액만큼의 하숙비와 생활비가 더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실제 당사자들의 경험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2012 대학 합격자 발표와 등록금 마감시한이 채 한달도 남지 않았다. 지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을 가정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필자 또한 그 중 하나다. 문득 "노무현 대통령이 어렵사리 성사시킨 공약이 제대로만 지켜졌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한편으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어렵사리 공약을 성사시켰지만...

전국 최고 부자도시로 불리는 산업수도 울산. 인구 115만 명 도시 규모에 걸맞지 않게 울산은 4년제 종합대학(울산대)이 한 곳 밖에 없다. 전문대(울산과학대, 춘해대, 폴리텍7대학)와 2009년 개교한 울산과기대를 모두 합쳐도 정원이 채 6000명을 넘지 못한다.

인구 30만여 명인 인근 경주시와 진주시에 각각 7~8개의 대학이 있다는 사실과 견주어도 뭔가 잘못된 일이다. 특히 고교 졸업생 중 80~90%가 대학에 진학하는 사회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그 절반은 더 엄청난 교육비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울산에 대학을 설립해 달라는 시민들의 요구는 오랜동안 이어져 왔다. 인구 100만 명이 넘어 광역시로 승격되던 1997년 전 후에도 그랬고, 인구가 15만여 명이 더 늘어난 최근까지도 그랬다.

이같은 울산의 열악한 고등교육환경을 개선할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2002년 3월,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노무현 후보는 울산에서 연설을 하며 "울산에 꼭 국립대를 설립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몇년간의 진통끝에 그 약속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그해 12월 19일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울산시민이 확수고대하던 이 공약은 지연돼 시민들은 3년간 애간장을 태워야 했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 "교육관료들의 반대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5년 9월 16일 교육부와 울산시는 '울산국립대설립을 위한 양해 각서(MOU)를 체결함으로써 마침내 울산국립대 신설이 확정됐다. 그리고 울산시와 울주군에서 매년 1500억 원의 지원금을 주는 조건으로 울산과학기술대라는 이름의 울산국립대가 2009년 3월 개교했다.

하지만 울산과기대는 문을 연 이후 세계적인 대학을 육성한다는 미명아래 전국의 상위권 학생들의 기회의 땅이 되었다. 그마나 시민들의 요구로 한 해 50명의 울산지역 학생들이 겨우 입학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이같은 울산과기대의 기능은, 오랫동안 국립대 설립을 요구해 온 시민들의 염원과는 상반된 것으로, 결국 지역민의 혈세가 투입돼 전국의 우수학생에게 문호를 넓혀준 꼴이 됐다.

대학등록금과 하숙비를 고민해야 하는 울산시민으로서는 화가날 일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가슴에 엉어리만 져 있을 뿐, 그 어떤 정치인이나 사회단체도 이 문제를 공론화 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 대학 육성이라는 분위기에 역풍을 우려한 탓일까?

노 대통령이 약속 지킨 취지는 울산시민 고충 해소

2003~2004년, 울산국립대 설립을 위한 60만 시민서명운동이 벌어질 당시 필자는 '울산국립대 설립 범시민추진단' 사무국장으로 있었다.

노 대통령이 '울산국립대 설립' 공약을 관철하기까지에는 숱한 난관이 있었다. 당시는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하던 시기로, 교육관료들은 "전국에 대학이 넘쳐 나는데 공약이라도 울산만 대학을 설립할 수는 없다"고 반대하고 나섰다.

필자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고위 당직자에게 수차례 확인한 바로는 노 대통령의 울산국립대 설립 검토 지시에 교육부 관료들이 매번 반대 논리를 폈다는 것.

노 대통령은 "대학구조조정을 똑같은 틀로 봐서는 안된다. 진정한 구조조정이란 없는 곳에는 만들어 주고, 넘치는 곳에는 줄이는 것이다. 울산에 꼭 국립대를 설립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었다.

노 대통령과 교육부 관료들의 줄다리기는 수년간 계속됐다. 당시 필자는 울산시청 기획관실 울산국립대 유치 담당자와 함께 울산국립대에 관련한 노 대통령의 행보를 일일이 체크해 문서화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인 2003년초, 취임후인 그해 4월 11일 울산 방문에서도 "울산 대학문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지방분권 중 하나로 울산국립대 문제를 들여다 봤다.

2004년 1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방분권 및 국가균형발전시대 선포식에서 "교육부 장관은 국립대 설립 불허방침에 따라 절대 불허한다고 하지만 대통령은 울산에 국립대를 설립하겠다"고 선언했다. 교육부의 반대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대통령이 직접 확인해 준 것이다.

대통령의 논리는 이랬다 "농촌이 폐교한다고 도시에 학교를 새로 안 지을 수 있나"는 것과, "110만 도시 울산에는 국립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노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이 사실을 시민에게 알려도 좋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교육부와 대통령의 줄다리기는 이어진 듯 하다. 2004년 7월 노 전 대통령은 인천지역혁신발전 5개년 토론회에 참석해 "(교육부 관료가) 전국적으로 대학생 수가 줄어 정원이 축소되고 있는 데 어떻게 대학을 늘리느냐고 하길래 지역마다 수요가 다른 데 국가라는 한 통속에 넣고 지역사정을 무시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후 교육부는 한발짝 물러나 "그렇다면 신설은 불가하고 대학 이전을 하라"는 의견을 울산시에 전달했다. 울며겨자 먹기로 울산시는 이후 부산의 부경대, 한국해양대와 대학 이전을 추진했지만 부산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울산국립대 설립을 요구하는 서명인수가 60만명을 돌파하던 2004년 6월, 범시민추진단은 버스를 동원해 라면박스로 15개 분량의 서명용지를 싣고 청와대와 교육부, 국회로 향했다. 청원을 위해서다. 시민들이 대통령의 공약 추진을 응원하기 위한 특이한 형태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5년 9월 16일 교육부와 울산시는 '울산국립대설립을 위한 양해 각서(MOU)를 체결함으로써 마침내 울산국립대 신설이 확정됐다. 그리고 2009년 3월 드디어 울산국립대는 개교하게 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울산국립대의 모습은 어떠한가. "수요가 필요한 곳에 공급하라"는 대통령의 취지나, 자녀를 외지 대학에 보내면서 발생하는 교육비 부담을 개선해 달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엘리트만을 위한 대학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만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이 취지에 맞게 제대로 추진되었다면, 대학등록금과 하숙비를 걱정해야 하는 이 계절에 울산시민들의 어깨는 한층 가벼워져 있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울산국립대 발언들은 울산시청 기획관실에 문서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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