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 동국대, 건학이념 버렸나
[주장] 초유의 학생 징계사태, 건학이념 훼손 논란...소통과 지혜로 풀어야
▲ 2012년 "더 큰 희망이 되겠습니다"라는 동국대 모토가 진정성을 담을 수 있을까?(동국대학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이정민
#. 본 학교는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학술과 인격을 연마하고 민족과 인류사회 및 자연에 이르기까지 지혜와 자비를 충만케하여 서로 신뢰하고 공경하는 이상 세계의 구현을 건학이념으로 한다.
동국대학교(이하 동국대)의 건학 이념이다. 그럼 이 학교는 이 교칙대로 지혜와 자비를 구현하고 있나?
동국대는 지난 2011년 12월 30일 오전, 학과구조조정에 반대하여 총장실을 점거했던 학생들을 무더기 징계 처리했다. 징계근거로 지난해 12월 5일부터 13일까지 총장실 점거와 12월 17일 입학설명회 등의 방해 사유를 들었다.
2012년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된 최모씨외 3명의 학생을 퇴학으로 처리했다. 이어 무기정학 2명, 유기정학 6주 5명, 50시간·100시간 사회봉사 20명 등으로 무거운 처벌을 내렸다.
최근 반값 등록금, 20대 선거 참여 등 대학생들이 주요 이슈로 등장하는 가운데 벌어진 이 사건으로 인해 사회 안팎으로 동국대가 '사면초가'로 몰리는 형국이다. 이는 (대학 측의) 학과구조조정이 학생자치권을 심각하게 훼손했으며, 소통이 중요시되는 이 시기에 일방적 조치였다는 점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20여년 만에 최고 징계사태...자비와 지혜는 어디에?
동국대 44대 총학생회(이하 총학)가 최근 한국대학생연합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대학 측은 정당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부당한)징계로만 억누르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총학은 2012년 총·부총학생회장을 퇴학 처리함으로써 사실상 동국대 학생들의 자치권을 상실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총학은 이번 징계가 1988년 이후 최고수위의 징계이자 최다인원의 징계조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총학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지혜와 자비를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라는 곳에서 현재 통보된 징계는 단순한 사실만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여론형성에도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그는 "부디 동국대학교가 학교의 본분을 잊지 않고 불교적 건학이념에 충실하여 현명한 판단을 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학과구조조정을 학생과의 소통 없이 암암리에 진행?
"학교 평가를 올리기 위한 노력이다"
"59개 학과를 모두 운영할 재정이 부족하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학문연구를 실시해야 한다"-(대학 측이 밝힌 구조조정 취지)
현재 대학 측은 일부 학과를 구조조정 재편, 학습 능률을 올리며 학문구조개편을 통해 경영혁신을 꾀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학 측은 지난 2011년 4월 학문구조개편위원회를 발족, '미래지향적 학문구조개편(안)'을 연구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위원회는 학술부총장, 학사지원본부장, 교무팀 직원, 각 단과대 교수 등 12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총학 측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학생들이 (대학 측의) 학문구조개편안을 알게 된 시점은 지난해 10월 4일이었다. 이는 그간 대학 측이 학생과의 소통 과정을 생략한 채 단순한 설명회 형식으로 암암리에 진행됐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젠 교육마저도 시장에서 책임진다?
"학문이 상품이 되어가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학문이 상품이 된다는 것은 대학이 기업화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등교육이 정부와 사회가 아닌 시장에서 책임진다는 것이다"
총학 관계자는 최근 블로그 기고를 통해 "대학이 교육이 목적이 아닌 이윤추구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총학 관계자는 ▲ 2013년도 학문구조개편안, 학과구조조정 전면 철회 ▲ 학생과 학교 인사 각각 4인씩 논의 테이블 구성 ▲ 학과 발전에 대한 관련 자료 모두 공개 ▲ 투표를 통해 의결, 표가 동수를 이루면 안건이 부결됨을 원칙 등으로 하는 요청문을 대학 측에 제시했다.
한편 동국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도 1월 16일 성명서를 통해 "우리 학교에서 가혹한 매질이 아닌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이 울려 퍼지기를 기대합니다"라며 김희옥 총장에게 올리는 서신을 발표했다.
정치권도 문제제기...신자유주의 대학구조조정 철회
한편 이번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시민단체(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등)와 정치권도 가세하며 대학 측의 징계를 철회하라고 압박하고 있어 향배가 주목된다.
사회당은 지난 2일 보도 자료를 통해 학생자치권 탄압, 학생의견 무시 등의 이유를 들며 즉각 징계조치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사회당은 "학교의 주요 구성원인 학생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권위적인 태도로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은 올바른 교육적 태도도 아니다"라며 "즉각 징계를 철회하고 학과통폐합을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이어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이하 진보신당)도 "동국대는 부당징계 철회하라"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2일 발표했다.
진보신당은 "학과구조조정은 학문의 상품화, 대학의 기업화를 가속화할 뿐 아니라, 학생을 단지 사학의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몰상식한 행각"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이들은 "이번 구조조정 문제에 있어서 처음부터 폭력과 불통으로 일관하는 동국대 본부는 자신들의 건학이념을 되돌아보고 다른 누가 아니라 스스로를 징계함이 온당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사회적 통합차원에서 대승적 입장 견지해야
한편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배병태 사무국장은 25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 연구소 차원에서 사안을 정리하고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인 전제로 볼 때, 부당한 처사임에는 틀림 없다"고 운을 뗐다.
그러며 배 국장은 "사회적 통합 차원에서 (징계조치는)거리감이 있고 대승적 차원에서 끌어안아야 할 것"이라고 한 뒤 "사회적 약자계층인 학생들의 입장을 존중하고 불교인권 차원에서 (대학 측이)합리적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고 종용했다.
불교인권선언문에 따르면, 국가·언어·인종·종교·나이·성별·경제·정치·지위·결혼유무·신체장애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될 수 없다는 보편적 인권개념을 선포하고 있다.
이어 불교인권은 부처님의 평등사상과 자비사상을 널리 홍포하여 지난 세기 동안 특정집단의 지배이익을 대변하여 만들어진 악법과 관습을 철폐한다고 밝혔다. 또 선언문은 개인의 행복과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려는 순수한 인간적 노력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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