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정월 초하루의 아름다운 풍습이 사라졌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마음까지 변해서야...

등록|2012.01.26 15:50 수정|2012.01.26 15:50

금줄마을주민들이 모여 동제를 올릴 때는 제장에 금줄을 쳐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킨다.(2005년 2월 9일 한국민속촌) ⓒ 하주성


그리고 보면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도 그렇고 심지어는 어른들까지도 달라진 세상에 순응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멋을 느낄 수 있는 풍물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다문화'란 말이 실감이 난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진다고 해도, 그래도 우리의 정서가 바뀔 수는 없는 것이란 생각이다. 그저 바뀐 세상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것을 지켜가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것이 비록 구태란 모습이긴 해도, 살가운 정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정월 초사흘이 되면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금줄제에 이용할 우물에는 금줄을 쳐서 사용을 금지시킨다. 모든 것이 제의식을 정갈하게 치루기 위해서이다.(2005년 2월 9일 민속촌) ⓒ 하주성


초사흘에 정성을 드리던 마을주민들

요즈음은 마을에서 지내는 '동제(洞祭)'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20~30년 전만 해도 마을마다 정월 초나 10월, 혹은 정월 열나흩날이 되면 마을에 있는 고목이나, 장승, 성황, 탑 등에 모여 마을의 안녕과 가내의 안과태평, 그리고 풍농이나 풍어 등을 위한 제를 올렸다. 마을마다 산신제, 거리제, 장승제, 목신제, 서낭제 등 그 모시는 신위에 따라 명칭도 다양했다.

정월 초에 동제를 올리는 이유는, 새해가 시작되는 음력 정월 초에 제를 올려야 그 해를 잘 보낼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이다. 즉 정초에 마을에 드는 액이나, 집안에 들어오는 잡귀들을 막아낼 수 있다는 사고에서 정초에 마을제를 지낸다.

초사흘부터 시작되는 지신밟기

정월 초사흘에는 하늘에서 평신이 내려오는 날이라고 한다. 평신은 토지신(土地神)을 말하는 것으로, 이때부터 마을의 풍장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의 기원은 삼극이전 부터라고 한다. 정확한 고증은 어려우나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에서 보이는 '답지저앙(踏地低仰)'의 유풍일 것으로 본다.

풍물정월 초 사흘이 되면 마을의 풍장패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한다.(2003년 7월 2일 민속촌 농악대) ⓒ 하주성


답지저앙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나오는데, 중국의 시각에서 바라본 독특한 한민족 문화에 대한 설명이다. 즉 부여의 영고 등 축제에서는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남녀 군취가무'를 한다고 했다. 즉 '단체로 모여 노래와 춤을 즐긴다'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서로가 '수족상응(手足相應)'하며, '답지저앙'을 한다고 했다.

수족상응이란 팔 다리를 절주에 맞추어 서로가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뜻이고, 답지저앙이란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뛴다'고 본다. 즉 절주에 맞추어 모든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했다는 뜻이다. 하기에 이런 수족상응이나 답지저앙을 지금의 풍장패들이 하는 동작의 시원으로 보기도 한다.

수족상응 답지저앙수족상응과 답지저앙은 풍물에서 볼 수 있는 동작이다. ⓒ 하주성


풍장패들은 마을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마을 주민들은 서로가 먼저 지신밟기를 하려고 한다. 그냥 지나치기라도 하면 난리가 난다. 지신밟기는 집안의 터를 잘 밟아 일 년 동안 집안에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문, 우물, 마구간, 부엌, 장독대, 측간 등을 다 돌고난 후, 대청마루에 놓은 고사상 앞에서 소리를 한다.

초사흘부터 시작되는 홍수막이

수원은 예부터 무자(巫子)들이 많던 곳이다. 아무래도 화성이 건립된 전후로 팔달문 앞에 장이 형성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권이 형성되었다는 소리는 그만큼 재물이 풍부했다는 이야기이다. 하기에 도성에서 쫓겨난 많은 무격(巫覡)들이 수원을 생활 근거지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사상고사상은 쌀말에 북어를 꽂고, 실타래를 걸어 놓는다.(2004년 9월 26일 한국민속촌) ⓒ 하주성


정월 초사흘(음력 1월 3일) 이 되면, 무자의 집에서는 일 년의 액을 막는 '홍수막이'를 시작한다. '홍수'란 '횡수(橫數)'를 말하는 것이다. 즉 나쁜 일이 닥치는 운세를 '횡래지액(橫來之厄)'이라 하였는데, 그것을 홍수라고 표현을 한 것이다. 홍수막이는 전문적인 무격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즉 무격의 힘을 빌려 정월 초사흘부터 보름까지 일 년 간의 나쁜 수를 막아내는 것이다.

홍수막이를 정월 초사흘부터 정월 보름까지 하는 것도, 지신밟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날 시작해서 같은 날 끝나는 것을 보면, 이 두 가지가 모두 일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정월에 이루어지는 우리네의 모습. 이런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쉽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네 마음까지 달라진다고 해서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수원인터넷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쓴 기사에 대해서는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