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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사업유치라는 이름아래 무너지는 민주주의

삼척 핵 반대 투쟁의 사례

등록|2012.01.26 18:42 수정|2012.01.26 18:42
지방권력과 맞서는 싸움이 시작되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지방권력은 해방이후 자유당과 박정희 독재를 거치면서 대단히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1995년부터 시작된 지방자치제 하에서의 자치단체장의 권력은 토착세력과 결탁되어 공직사회는 물론 지방사회 전반에 걸쳐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공무원들에 대한 전횡적인 인사권과 사소한 계약에서부터 자치단체장과 토호세력들의 지배개입으로 인한 것들은 잘못 행사되었을 때는 전제 군주시대를 방불케 한다. 그래서 지역에서의 싸움은 대단한 권력에 대한 저항이며 투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상황에서 투쟁의 조직체를 건설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자기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삼척은 이미 2번에 걸친 핵 반대 투쟁이 있었던 곳이다. 그 이전의 싸움과 이번 신규핵발전소 건설을 위한 신규부지선정 반대 투쟁은 엄청나게 양상이 다르다. 이전의 90년대 근덕(덕산)핵발전소 반대투쟁과 2004년과 2005년의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반대 투쟁은 주민들의 손으로 선출한 자치단체장이 직접 유치에 나서지 않고 반대하거나 중립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해당 지역 주민이 직접 나서서 싸움의 주체로 섰던 것이다.

그러나 금번 신규부지 반대 투쟁은 시장이 직접 나서면서 온갖 이권과 연관된 관변단체들과 지역업체 특히, 건설업을 중심으로 한 시청에 납품하는 상인들이 주축이 되어 시장권력과 함께 유치 분위기를 강압적이고 억압적으로 조성하는 상황들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정부와 사업자인 한수원은 그야말로 가만히 앉아서 떡 먹게 생긴 것이다. 그들의 막대한 조직력과 자금력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회유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천주교 박홍표신부(원주교구 도계성당)와  천주교신자들의 용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지방권력에 맞서는 투쟁체를 건설한 것이다. 2010년 12월 4일 덕산 원전 백지화 기념탑 앞에서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이다. 본격적인 반대 투쟁은 허약한 조직력과 미약한 자금력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이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싸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창기는 핵발전소유치에 따른 지역의 이득이 얼마인가를 알리는 지방권력과 정부, 한수원의 일방적인 그릇된 정보를 차단하는 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들의 공식적인 조직력(행정력)과 동원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차별적으로 투하되고 있는 실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선전물을 만들어서 우편으로 집집마다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마저도 선전물을 제작할 인력도 변변치 않았다. 해가 바뀌면서 그들의 물량공세는 더욱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온 삼척지역 전반에 걸쳐서 유치지지 현수막이 본격적으로 내걸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고민은 깊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물량공세에 맞서기 위한 대응은 별의미가 없어 보였다. 차라리 현수막에 대응하는 반대 현수막은 단 한 장도 달지 않고 대응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시하는 전략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2011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우리에게도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조직을 어떻게 하면 확대시키는가 하는 고민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진보적인 운동을 하는 당과 단체들의 반성적인 토론이 있으면서 결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에 대해 이견들도 존재했다. 다소 설득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나로 만들어 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합의를 했다.

"삼척 핵발전소 유치에 반대하는 개인이든 단체든 정당, 종교계를 막론하고 누구든 함께한다."

그래서 지금 삼척핵백지화투쟁위원회는 진보와 보수를 가름하지 않는다.

절차적 민주주의마저도 부정하는 지방권력

삼척시장과 삼척시의회는 그들의 자신감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들은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주민투표 합의였다. 물론 이 또한 투쟁의 성과이기도 했다. 투쟁위원회의 강변과 설득으로 삼척시의회가 핵발전소유치동의안을 가결시키면서 삼척시에 주민투표를 요구하고 시의원 전원 주민투표에 합의하는 서명부를 작성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삼척시장은 이를 뛰어 넘는 논리와 명분을 만들기 위하여 유치찬성 서명작업에 들어가서 주민찬성 96.9%라는 서명부를 관권과 억압으로 만들어 냈다.

이에 대해 우리 위원회에서는 삼척시장과 관계공무원을 고발했다. 갈등을 지속시켜 내는 일은 힘없는 우리에게는 법률적 대응이 효과적이었다. 그러한 대응 내용을 언론에 배포하고 시민들에게 알려내는 일은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좋은 것이었다. 그들의 부도덕성과 잘못된 내용을 알려내는 다양한 방법 중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었다.

후쿠시마의 교훈

불행하게도 지난해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했다. 우리는 교훈을 얻었다.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핵은 없다.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반투위 사무실로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매일 기자들이 우리 사무실을 찾기 시작했다. 삼척에는 지금도 두개의 이데올로기가 상존한다.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지역경제가 조금 나아지겠지'라는 경제 이데올로기와 미래에 대한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생명 이데올로기가 있다. 후쿠시마 이전에는 전자의 이데올로기가 더 많아 보였지만 지금은 확연이 후자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한다.

시민들은 투쟁체가 끊임없이 무엇인가 활동하는 점에서 자신감을 얻는다. 미사는 매주 수요일에 2010년 12월 29일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안 빠지고 봉헌되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천주교 신자들의 헌신성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드디어 지난해 4월 4일 1000여명의 천주교신자와 일반시민, 전국의 환경단체들, 민주당 최고위원, 민주노동당 대표, 진보신당 대표 등이 참여한 합동미사와 촛불문화제가 핵 반대의 열기가 넘치는 가운데 대학로 공원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후 촛불집회는 매주 수요일 미사 후에 삼척 시내 한가운데인 삼척우체국 앞에서 열리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17년 만에 그린피스의 레인보우워리호의 삼척항 입항과 시내 행진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을 벌리면서 시민들에게 중단 없이 활동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정부에게는 목소리를 높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의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 자치단체장과 지방토호 세력(시의회 포함)은 언제든지 자기들의 이익이 있는 곳이면 시민들의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자기들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헌신짝 버리듯이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으로 핵 반대 운동을 넘어서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일이 가장 핵심적인 과제이다. 두 번의 핵 반대 투쟁에서 현재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 한계였던 것이다. 또한 지방권력과 국가권력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 핵발전소는 양심의 문제

핵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다. 생명에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없다. 바로 생명의 존엄성이 그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지금 삼척에서는 함께 싸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반핵을 위한 여러 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탈핵을 위한 교수모임, 탈핵을 위한 의사모임, 변호사 모임 등 전문가 집단이 나서고 있고 지난 1월16일에는 대구에서 천주교 대구대교구를 중심으로 부산교구, 안동교구, 원주교구가 참여하는 '동해안 탈핵천주교연대'가 발족 미사를 가지고 출범했다.

핵발전소는 이제 양심의 문제이다. 사람의 생명권, 재산권, 건강권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핵정책은 즉각적으로 탈핵으로 가기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일본에서는 54기의 핵발전소 중에서 6기만 가동되고 있다. 일본이 정전 되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이광우 님은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기획홍보실장입니다. 이 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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