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박근혜 비상대책위...'비상사태'
'한나라당 비대위' 출범 한달, 성과는 미흡... '재벌개혁'이 돌파구 될까
▲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대표실에서 열린 비대위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달 27일 출범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의 핵심은 김종인(71)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보수-기득권' 대표정당인 한나라당에 헌법 경제민주화조항(119조 2항)을 만든 대표적인 '반재벌론자'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도 공공연히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말하는 상황과 겹치면서 그의 결합은 더욱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민주통합당에서도 "박근혜가 대어를 낚았다"는 말이 나왔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강도 비판을 해온 '정통보수'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무료과외 대학생 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배나사)과 벤처기업 (주)클라세 스튜디오를 창업한 26세 '엄친아' 이준석씨까지 등장했다. 곧바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 선언과 디도스 사건과 관련해 최구식 의원 자진 탈당 권유가 이어지면서 한나라당 비대위는 괜찮은 출발을 했다.
그러나 크게 보면 거기까지였다. 비대위 출범 때 제기된 "비대위에 정치판을 아는 사람이 없다" "사실상 '박근혜 1인체제'다" "박근혜 뜻대로 되고 말 것이다"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보수표현 삭제문제' 'MB정부 핵심실세 용퇴론' 'MB탈당 문제' 등의 논쟁이 계속 이어지면서 '비상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들이 연출됐다. 친이(이명박계)의 비대위 견제가 본격화한 것이었다.
현역의원 25% 공천배제나 신용카드 수수료·학자금 대출금리 인하 등이 나오기도 했으나, 공천물갈이는 예정된 수순이었고, 카드 수수료 인하 등은 평시 정책위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정도였다.
▲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대표실에서 열린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우리가 하려는 쇄신도 국민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며 "국민이 힘들어하는 것과 마음에 응어리진 것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유성호
박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시간만 가고 있다"는 불만을 표했지만, 4월 총선을 3개월 앞둔 설 민심에 파장을 줄 만한 카드는 나오지 않았다. '민족 대이동'을 통해 전국의 민심이 크게 한 번 뒤섞이는 한국 특수성상, 구정 설 민심은 여론을 조성하고 확인하는 중요한 무대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야권의 '통합'에 대응하는 '쇄신'을 내놓지 못했다.
그 결과는 설 직후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의 24일 조사결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근혜 위원장의 양자 대결에서 박 위원장은 39.0%에 그친 반면, 안 원장은 그보다 12.8%P 앞선 51.8%를 기록했다. 이는 한 달 전 같은 조사 때보다 격차가 3.3%P 더 벌어진 것이다. 박 위원장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의 양자대결에서는 앞섰으나 한 달 전 16.0%P 격차가 8.3%P 차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설 직후 여론조사 안철수와 격차 더 커져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도 안 원장 지지율은 56.4%로 지난주보다 3.1%P 오른 반면 박 비대위원장은 34.9%로 2.0%P가 떨어졌다. 이같은 결과는 그동안 박 위원장을 전폭 지원했던 충청권과 부산·경남지역이 흔들리면서 나타난 양상이다.
당 지지율도 마찬가지다. <동아일보>의 4월 총선 지지정당을 묻는 질문에 한나라당 26.3%, 민주통합당(민주당)이 27.3%로 나타났다. 오차범위 안이지만 한달 전에 비하면 한나라당은 5.6%P가 줄었고 민주당은 4.1%P 늘었다. 리얼미터의 1월 셋째 주 주간 정례조사에서는 민주당 39.7%, 한나라당이 29.1%로 10.6%P 격차를 보였다. 이 기관 조사에서 현 정부 들어 야당이 여당을 10%P 앞선 것은 처음이다.
'디도스 사건'이나 '박희태 돈봉투'는 이미 오래된 이슈라는 점에서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박근혜 비대위'에 대한 평가로 풀이된다. 이 모든 상황은 결국 '대선 주자' 박 위원장의 리더십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 비대위원은 "박 위원장이 의원들이 탈당해 박세일 신당으로 결합할 것을 걱정해 과감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종인 위원의 결합 등 비대위 출범에 기대를 나타냈던 한 수도권 의원도 "대선주자로서 좋게 좋게 가야하는 박 위원장은 혼란속에서 길을 만들어 낼 생각은 없는 것 같다"며 "길을 뚫으려면 잘 안 보이는 길을 볼 수 있는 안목과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점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 돌파책임을 맡은 대책위원회가 비상 상황에 처했다는 지적이다. 박 위원장 쪽은 아직은 '박근혜 리더십'을 갖고 말할 상황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 한나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이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민희망찾기 시리즈-1탄 보육.교육편 정책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목을 축이고 있다. ⓒ 남소연
이런 가운데 비대위가 내놓은 카드가 경제민주화, 즉 재벌개혁 이슈다. 비대위 산하 정책쇄신분과(위원장 김종인)가 경제민주화 조항을 당 정강·정책 전면에 내세우기로 한 것이다. 박 위원장 쪽도 "정책 쇄신과 관련해 여러가지를 준비하고 있다" "비대위에서 구체적인 재벌개혁 얘기를 꺼낼 것"이라고 말하면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박 위원장은 "대기업과 재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비대위 전체회의와 의원총회를 거쳐서 결정해야 한다"며 "공동체 아닌가.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고 힘을 실어줬다.
김종인 사퇴 고심... 윤여준 전 장관과 상의
그러나 이 카드가 어느 정도 구체적 성과를 낳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경제민주화' 조항의 정강삽입을 주도한 김종인 위원이 사퇴를 고심하고 있다. 김 위원은 설 이전부터 "정해진 틀 외에 다른 일은 할 수가 없다" "말이 물을 안 먹겠다고 하니 어떻게 하느냐"고 불편함을 나타냈다. 김 위원은 친분이 깊은 윤여준 전 장관에게 사퇴고민을 토로했으나 윤 전 장관이 만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박근혜 비대위'의 핵심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퇴진은 '비대위의 실패'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박 위원장의 재벌개혁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도 불투명하다. 지난달 말 소득세법 개정을 통한 '부자증세'를 주도한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과 정태근 무소속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 다수가 동의했음에도 박 위원장이 이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애초 생각과는 달리 과세표준 3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야 했다"고 말했다(박 위원장은 본회의장에 있다가 이 법안 통과 때 밖으로 나와 표결에 불참했다).
박 위원장이 여전히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라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재벌과 당내 우파들의 반발이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그가 적당히 절충하지 않고 이를 관철시킬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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