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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터널 통과하기? 남한강에선 어렵지 않아요

[겨울여행] 옛 기차길 따라 달려간 남한강 자전거 여행

등록|2012.01.31 10:09 수정|2012.01.31 10:24
서울의 이번 겨울은 2011년 처럼 눈폭탄에 가까운 폭설은 없는 대신 영하 10도의 맹추위가 자주 찾아온 듯하다. 덕택에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집 앞에 하릴없이 대기 중인 애마 자전거를 볼 때마다 페달을 신나게 밟으며 달리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동장군의 잦은 출몰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날씨가 풀리기라도 하면 너무 반갑다. 자전거를 탈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1월 28일, 바로 그런 날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해가 일찍 저무는 겨울이라 어디 멀리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집에서 가까이에 있는 자전거 코스를 찾다가 발견한 곳이 경기도 남양주와 양평을 지나는 남한강 자전거길. 오랜 세월 중앙선 기차가 달렸던 옛 기차길 위에 만들어 놓은 자전거 도로라는 것이 눈길을 끈다.

매 3일과 8일에 열리는 양평 오일장터도 자전거길 가까이에 있어 여러모로 풍성한 자전거 여행이 될 수 있다. 중앙선 전철 팔당역에서 다산 유적지와 두물머리, 시골 마을길을 지나 양평역까지의 약 30km 정도의 코스로, 돌아올 때는 양평역에서 전철을 타면 되니 누구나 부담이 없이 즐길 수 있는 자전거 코스다.

등산하러 온 사람들이 산행대신 산책하는 길

▲ 중앙선 전철 팔당역에서 내려 팔당호를 눈 아래로 내려다 보며 달려간다. ⓒ 김종성


▲ 폐차된 기차 한 량을 갖다 놓았을 뿐인데 자전거도로가 여행을 부르는 낭만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 김종성


애마 자전거와 함께 중앙선 전철을 타고 팔당역에 내려 남한강을 향해 강변을 달린다. 이게 얼마만이냐는 듯 '촤르륵 촤르륵' 애마의 체인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우렁찬 목소리에 예쁘고 우아한 자태의 흰고니들이 노니는 팔당댐 아래 한강을 내려다보니, 강물에 반짝반짝 비치는 겨울 햇살이 따사롭고 눈부시다.

자전거도로 옆에 붙어있는 보행로에 등산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열심히 걷고 있다. 팔당역에서 내려 예봉산에 오르려고 왔다가 이 길이 더 좋아 보여 산행 대신 산책을 택한 듯하다. 하긴 눈도 없는 삭막한 산보다 강을 바라보며 걷는 강변길이 더 나을 것도 같다. 코스 중간 중간에 남한강 자전거길 안내 표지판이 잘 설치돼 있어 지도 없어도 안심하고 걷거나 달릴 수 있다.

지난해 10월, 새로 닦은 남한강 자전거길은 기차가 달리던 중앙선을 복선으로 만들면서 쓸모 없게 된 옛 기찻길을 그대로 활용해 만들었다. 자연을 덜 해치면서 만든 길이다. 덕분에 보기도 좋다. 기차가 지나가던 강변과 터널, 시골마을 등 다양한 풍경을 고스란히 눈과 마음속에 담을 수 있어서 더 좋다.

이채롭게도 수십 년간 중앙선 기차길을 달렸던 실제 기차가 자전거길 옆에 놓여 있다. 기차 한 량이 덩그러니 서있을 뿐인데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여행하고픈 마음을 부르는 것이어서 그런지 기차와 자전거가 왠지 잘 어울린다. 곳곳이 녹슬고 칠이 벗겨진 열차의 모습은 산전수전 다 겪고 퇴역한 군인같다.

공포의 터널이 여덟 개나 나타나지만...

▲ 자전거 여행자에게 공포의 존재였던 터널을 이렇게 편안하게 지나가다니... ⓒ 김종성


▲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고향 동네는 어느 계절에 와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참 좋다. ⓒ 김종성


팔당댐과 팔당호를 지나 눈내린 겨울 강변의 쓸쓸하고도 고요한 정취를 보여 주던 자전거길. 갑자기 산허리를 뚫은 시커먼 터널이 나타나 나도 모르게 숨이 턱 막힌다. 예전에 자전거 여행 중에 마주친 터널을 지나가다 겪은 고통이 트라우마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터널 속에서 귀청을 찢을 듯 울려 퍼지던 자동차들의 굉음소리 대신 따뜻한 조명 불빛이 나를 맞아준다. 이런 터널이 양평역까지 여덟 개나 있지만, 이제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 됐다.

남한강으로 가까이 갈수록 강변에 쌓인 눈이 두터워지더니 다산 유적지가 있는 정약용 선생님의 고향 마을 부근에 도착하자 강은 아예 하얀 얼음판이 돼 여행자를 맞이한다. 강 위에 붙어있는 나룻배 한 척 주위로 사람들이 눈썰매를 타고 신기한 듯 멀리까지 얼음 위를 걸어가 보기도 한다.

내가 사는 동네의 한강은 물론 4대강 개발 사업 때문에 사람과 강이 서로 멀어지고 있는 요즘, 강이 땅과 사람 곁에서 흐르고 있는 이곳은 고즈넉하고, 소중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얼음 위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보기 좋았는지 지나가던 방송사 헬기가 하늘을 낮게 빙빙 돌며 촬영한다.

소박한 간이역, 그리고 정겨운 오일장

▲ 멈춘 듯 흐르는 남한강 위로 풍경화처럼 흰 눈이 덮여있다. ⓒ 김종성


▲ 아담한 무인 간이역이었던 능내역, 이젠 자전거 도로 옆에서 라이더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 김종성


언제봐도 작고 소박해 정이 가는 간이역 능내역이 잠시 쉬었다 가라는 듯이 나타난다. 역 앞 매점에 들어가 간단한 간식과 함께 뜨끈한 오뎅과 국물을 호호 불으며 먹으니 겨울 여행의 즐거움이 더해 진다. 능내역은 작은 갤러리가 돼 오래전의 역 주변과 주민들을 찍은 흑백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쿠궁쿠궁' 기차가 특유의 소리를 내며 건너갔을 북한강 철교 위를 되도록 천천히 달려간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북한강이 저 앞의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나는 시원한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요즘 흔히 말하는 '안구 정화'가 되는 기분. 겨울 바람이 불지만, 빨리 지나가기가 아까워 자꾸 페달을 멈추게 된다.

그동안 흉물스런 고철에서 이젠 보행자용 혹은 자전거용 다리가 된 북한강 철교를 건너면 잠시 자전거길에서 벗어나 소읍의 정겨움이 묻어나는 동네 양수리와 유명한 명소가 된 두물머리에 꼭 들려볼 것을 추천한다(양수리에서는 매 1일과 6일 오일장이 열린다).

구수한 이 동네... 변하지 않았으면

▲ 양평오일장터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게 해주는 뻥튀기 아저씨의 화려한 퍼포먼스. ⓒ 김종성


자전거는 과거 중앙선 기차가 서고 달렸던 신원역, 국수역, 아신역 등을 지나 농촌 풍경이 완연한 시골 마을 사이를 달려간다. 기차역은 세련되고 깔끔한 전철역으로 탈바꿈했지만 역 주변의 동네는 예전과 크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쓸쓸했을 겨울 논밭 위에 커다랗고 하얀 바둑알처럼 생긴 볏단들이 모여 있어 이채롭다.

그동안 종종 마주치던 산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 여행자들이 어디로 종적을 감췄는지 보이지 않는다. 축축한 동굴같은 터널을 혼자 통과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친구삼아 달리는 자전거 여행자만의 홀가분하고, 쌉싸름한 감흥을 오랜만에 맛본다. 열심히 페달질을 하느라 하얀 입김을 뿜으며 '헉, 헉' 가뿐 숨을 내쉬는 내 모습도 반갑다.

아신역 앞 동네에 모여 있는 할머니들에게 겨울이라 오일장이 일찍 파한다는 얘기를 듣고 부지런히 양평역을 향해 페달을 밟는다. 양평에 들어서자 자전거 길바닥에 화살표와 함께 '충주댐'이라고 써있는 글자가 눈에 띈다. 사업초기 본격적인 4대강 개발이 이뤄졌던 여주를 지나 충주까지 길이 연결돼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양평역 앞에 넓게 펼쳐진 양평 오일장터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구수한 곡물 냄새가 폴폴 풍겨온다. 오일장터에 구경가면 꼭 나타나는 뻥튀기 장수 아저씨가 가까이에 있는 듯. 쇠철통 속에서 갓 튀겨낸 뻥튀기가 먹고 싶어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하니 웃으시며 기꺼이 사진 모델도 해주신다. 현대 문명은 언제나 변화를 통해 발전을 추구한다지만, 양평 오일장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는 그런 동네에서 자전거 여행을 갈무리한다.

▲ 중앙선 전철 팔당역에서 내려 양평오일장터가 있는 양평역까지 달려간 약 30km의 자전거 여행길 ⓒ N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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