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좌파든 우파든 20대 욕하는 건 똑같다"

[인터뷰] '외계인' 20대를 위한 항변, <잘한다 청춘> 박연주씨

등록|2012.01.31 10:34 수정|2012.01.31 10:47
"'취직해라-좀 잘해라-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내'는 결국 같은 소리다. 거기에 일부 어른이란 작자들은 이해해주는 척 혹은 20대를 제대로 아는 척하며 돈벌이에 청춘을 이용했다."
- <잘한다 청춘> 6쪽

<88만원 세대> 이래로 최근 몇 년 동안 출판계를 휩쓴 키워드 중 하나는 '청춘'이었다. 그 정점에 있던 것은 단연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백만 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에세이 부문으로는 최단 기간 100만 부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밖에도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자기 혁명> 등 수많은 책이 '청춘'을 앞세워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청춘을 이야기한 책들은 대개 기성세대 시각에서 20대를 바라본다. <잘한다 청춘>이 기존의 청춘도서와 구별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제 막 20대를 지나온 박연주(30)씨는 청춘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기죽지 말라고 격려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책을 통해 청춘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 좋은 감성적 책 읽기의 공간'이라는 책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이기도 한 박씨는 책에서 청춘을 읽었고, 다시 책으로 청춘을 이야기했다.

지난 1월 25일 저녁 기자는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박씨를 만나 <잘한다 청춘>을 중심으로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청춘의 한가운데를 건너온, 혹은 건너고 있는 두 청춘의 대화였다.

"좌파든 우파든 20대를 욕하는 건 똑같았다"

▲ 25일 서울 신촌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잘한다 청춘>의 저자 박연주씨 ⓒ 김경훈

그녀는 "어른들을 만날 때면 항상 신기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내가 만난 어른들은 정치적 색깔이 어떻든 20대를 욕했다. 욕하는 내용도 똑같았다. 깊이가 없다, 패기가 없다, 도전 정신이 없다 등. 전혀 다른 사람인데 20대 문제에서는 똑같았다. 그게 무척 신기했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그녀는 기성세대의 비판에 맞서 20대를 위한 항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하지만 그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책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받은 메일이었다. 20대가 보낸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인생에 자신감이 없는데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추천해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몇 차례 받으며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방황하는 이들을 위해 20대가 읽으면 좋은 책을 추천하고 싶었다."

여느 청춘이 모두 그렇겠지만, 그녀의 20대 역시 녹녹지 않았다. 대학원을 가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목표를 잃으면서 뒤늦게 불안감을 느꼈다. 그때 그녀를 위로해 준 게 책이었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에 매달렸다. 우습게도 그러면서 천천히 불안에서 벗어났다. 나 자신을 거리를 두고 보고 보면서 '인생이 길다'는 생각도 했고, '느긋하게 쉬어도 된다', '잠깐 돌아가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책으로 도망쳤고 거기서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자신이 얻은 위안을 함께 나누기 위해 다시 책을 썼다. 본격적으로 책을 빌미로 그녀가 바라본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성세대가 보는 청춘, 청춘이 보는 청춘

- 기성세대가 청춘을 바라보는 시각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
"20대를 위한 청춘콘서트 같은 데 가보면 항상 '해라'라는 이야기로 끝난다. '20대는 정말 아름다운 시기예요. 그러니 헛되이 보내지 말고 뭔가 하세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어른들이 '학생 때가 제일 좋아'라고 말하는 걸 듣는 기분이다. 반감만 생긴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그리움을 듣자고 거기까지 가는 것은 아니잖은가."

- 처음으로 세대 문제를 제기한 <88만원 세대>에서 '꼰대스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88만원 세대>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름이 없던 세대에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준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꼰대스러움'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석훈씨가 '왜 20대가 힘든가'까지는 분석을 했는데, '왜 20대가 집회에 안 나갈까' 하는 고민 없이 그냥 짱돌을 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게 지금은 안 맞는 방식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말에 동의하나.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5년쯤 대학에서 비운동권 학생회가 등장했는데, 정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회가 꼭 운동권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비운동권 학생회에 부정적인 면이 있더라도 대학생의 생각이 넓어진 것이라 보고 싶다."

- 그러면 저자가 보는 20대는 어떤 세대인가.
"과도기적 세대다. 2.0세대라는 10대와 생활인이 된 30대 사이에 끼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그러나 알고 보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세대. 하지만 누구도 20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촛불집회를 이끈 10대도 20대에게 받은 영향이 분명히 있을 텐데 누구도 그런 것은 이야기하지 않고 486세대에게 받은 영향만 이야기한다. 모두가 20대에게 '변해라'고만 한다."

진영을 가리지 않는 권위주의

- 책에서 '좌우 양쪽 모두에 냉소적이고 양쪽 모두를 객관적으로 보는 20대에게는 좌우 이념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좌우 모두에 냉소적이라는 느낌이다.
"나도 좌파지만 좌파든 우파든 권위적인 것은 똑같다. 1학년 때 총여학생회를 했는데, 아르바이트 때문에 집회를 못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선배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찾아와서 무조건 같이 가야 한다고 손목을 잡아 끌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네 아르바이트가 집회 나가는 것보다 중요하냐? 집회 나가는 게 대의다. 네가 지금 하는 건 아주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데서 운동권 문화에 많은 회의를 느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때 그 선배가 내 손목을 끌지 않았다면 미안해서라도 다음 집회는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았을까?(웃음)"

-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예전에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집회에 간 적이 있다. 눈에 띌까 싶어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선배가 '깃발은 1, 2학년에게 맡길 수 없다'며 억지로 깃발을 들게 했다. 확실히 거절하지 못한 나 자신도 한심했지만, 억지로 시킨 선배는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온다.
"20대는 수평적인 문화가 어울린다. 그런데 좌파든 우파든 기성세대에는 수직적인 문화가 있다. 내가 아는 운동권 친구들 중에서도 거기서 떨어져 나간 친구들이 있다. 그런 방식은 잘못된 거고, 시대에 맞지 않는 방식이다. 좌파든 우파든 우리랑 안 맞는데 뭘 해야 할지는 모르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 둘 다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양비론일 수도 있다. 좌파든 우파든 다 문제가 있으니 누구도 지지할 수 없다고 하면, 현실에서 강자의 편을 드는 논리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스스로 충분히 고민하고 부딪혀볼 시간을 주지 않는 게 문제다. 투표가 있으면 '양쪽 다 잘 모르니까 안 찍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양쪽 다 알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식이 부족한 걸로 몰아붙인다. 좌파의 문제점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파도 똑같다.(웃음)"

-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는 저자나 기자 같은 사람도 설득시키지 못하고, 거부감이 들게 만드는 방식은 곤란하다. 
"20대들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방식을 바꿔야 한다. 20대 초반에는 집회에 가기가 두려웠다.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뭔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처럼 행동할 때, 그런 게 무서웠다. 그런데 젊은 세대가 나오면서 집회 문화가 많이 즐거운 쪽으로 변했다. 그런 점에서 20대들의 몫이 분명히 있다.

또 최근에 생긴 변화들이 있다. 예전에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를 하고 총장실을 점거하면 시끄럽다고 욕먹었지만,(웃음) 지금은 등록금 문제만큼은 당연한 거라는 인식이 있다. 각하도 20대의 정치의식을 일깨우는 데 큰 공헌을 하셨다.(웃음) 미세한 변화일 수도 있지만, 지금 할 일은 20대를 탓하는 게 아니라 그런 변화를 잘 이끌어가는 것이다. 20대가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한 지금 시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잘한다 청춘> 표지 ⓒ 리더북스

20대는 외계인이 아니다

- 하지만 20대가 얼마나 정치적인지는 조금 회의적이다. 내 주변의 친구들을 봐도 집회 한번 나가보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다. 집회에 가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20대 자신의 문제는 없을까?
"20대가 다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20대를 너무 쉽게 단정 짓는다. 20대의 다양성을 인정해줬으면 한다. 기성세대도 모두 시위만 했던 것은 아니다. 시위 안 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걸 인정해주고 다독여줬던 게 정치 투쟁에 나설 수 있던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486세대도 별 수 없었을 것 같다.(웃음)"

- 486세대는 독재정권 하에서 성장한 세대다. 권위주의를 배우고 싶어서 배운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는 486세대도 피해자라고 볼 수 있지 않나.
"그럴 수도 있다. 다만 그들이 20대 문제를 좀 더 폭넓게 봤으면 좋겠다. 김예슬 선언이 나왔을 때, 기성세대는 김예슬을 영웅시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닐 거다. 대학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고, 그런 분위기가 쌓여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김예슬 선언이 일으킨 반향이 대학 내에서 고민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런 영웅적인 아이가 있구나. 저 친구 책 사줘야지'라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게 문제다.

486 입맛에 맞지 않겠지만 영웅이 아닌 아이들, 행동하지 않거나 투표를 하지 않는 아이들까지 봐주면 좋겠다. '걔들 왜 저래? 원래 그래'가 아니라 '걔들 왜 저래?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생각해줘도 뭔가 달라질 거다."

- 20대 한 명 한 명이 아니라 세대 전체를 놓고 보자는 것인가.
"그렇다. 20대란 세대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의 준말)한 세대는 아니다. 앞의 세대에게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나온 세대고, 그러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문제로 봐야 하는데 '앞의 세대도 괜찮고, 이 밑의 세대도 괜찮은데 얘들만 이상해'라고 한다.

전체적인 문제로 본다면 20대에 대한 책이 그렇게 많이 나올 리 없다. 20대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외계인, 도저히 이해 못할 애들로 보는 것 같다. 한 명이 그럴 수는 있지만, 모든 20대가 외계인일 수는 없다.(웃음)"

- 20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에서 한 이야기지만 20대는 '하지 마라'와 '해라' 사이에 있는 세대다. 그게 맞든 틀리든 누군가는 '너희는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고 '반성한다'고 말한 20대가 많았다. '20대가 뭘 그리 잘못해서 반성까지 해야 하냐'고, '어쨌든 열심히 하고 있고,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고민하고 있는 중이니까 잘 하고 있는 거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20대가 문제를 정의한다면...

박연주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게 맞든 틀리든 누군가는 20대를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에서 20대를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20대가 문제라는 수많은 비판도 조금만 시각을 바꾸면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문제를 정의할 때는 항상 특정 집단의 시각이 들어간다. 똑같은 학교폭력 문제를 두고도 한 쪽에서는 학교에 여교사가 너무 많아서 생활지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라고 보고, 다른 한 편에서는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몰아넣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한다.

20대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돌이켜 보면 20대를 문제 집단으로 규정해온 것은 항상 기성세대였다. 그러나 20대가 세대 문제를 정의한다면 이제까지 기성세대의 목소리 속에 가려졌던 새로운 문제의식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무언가 변하지 않을까.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
- 존 맥나이트
덧붙이는 글 김경훈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대학생 인턴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