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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심부름 시키면 도랑물로 채워갔었지"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113] 강원도 영월 마차리 탄광문화촌①

등록|2012.01.31 17:31 수정|2012.01.31 17:31

막걸리 심부름어릴 적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러 가본 적 있나요? 울 남편은 막걸리 심부름 갔다가 홀짝홀짝 마셔버리고는 대신 도랑물을 채워갔다고 하던데... ⓒ 손현희


"하하하, 저것 좀 봐! 나도 옛날에 막걸리 심부름 꽤나 했었는데…."
"으하하하! 진짜 재밌다. 어렸을 때 남자들은 그런 추억이 많다며?"

"아버지가 막걸리 심부름 시키면, 대폿집에 가서 노란 주전자에다가 한 되 받아오잖아, 그러면 집에 오는 동안 홀짝홀짝 입대고 마시곤 했어."
"쬐그만 게 그래 마시믄 안 취하나?"

"왜 안 취해 알딸딸해지지. 그런데 그렇게 먹고 나면, 주전자가 헐빈해여. 그럼 아버지한테 혼날까봐 물 타가지고 갔지. 그것도 도랑물을 뚜껑으로 퍼 담아서 갔어."
"하하하 시~기 웃기여, 그런다고 아버지가 그걸 모르나?"

"처음엔 몰랐어. 아니, 오늘따라 이 집 막걸리가 와이리 싱겁노? 카곤 했어. 그러다가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나중에는 아버지한테 들켜서 지게작대기로 시~기(세게) 맞았다."
"하하하! 진짜 재밌다."

노동 이발관영월 광업소 사람들이 가던 이발관이에요. 그 시절에는 광부들이 주 손님이고요. 따로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광부들의 사번만 알려주면 머리를 깎을 수 있었다고 해요. ⓒ 손현희


어렸을 적 참 많이 봐왔던 낯익은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1960~70년대 영월광업소가 있던 탄광촌 마을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강원도 영월군 북면 마차리, 탄광문화촌 안, 생활관에는 지난날 탄광촌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그대로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답니다. 6~70년대 마을의 모습이지만, 어렸을 적 흔히 봐왔던 고향풍경과도 같아서 보는 것 마다 무척이나 신이 나고 재미납니다.

광부들의 사택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 방안 모습과도 매우 닮아 있어요. 옷가지를 넣는 궤짝위에다가 솜이불을 얹어놓은 모습까지도... ⓒ 손현희


부엌부엌도 내 어릴 적 '정지'라고 했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실겅 위에다가 사기 밥주발을 올려놓은 모습이 퍽이나 정겹네요. ⓒ 손현희


선술집인 마차집과 양조장, 공동변소, 그 옛날 광부들이 살던 사택의 안 모습까지 밀랍인형과 함께 그 시절 그 모습을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어요. 구석구석 돌아보는 곳마다 키득키득 웃음이 먼저 새어나옵니다.

"이야, 진짜 옛날 그대로다. 우리도 옛날에 저렇게 살았는데, 벽 위에는 어느 집이고 할 것 없이 저렇게 큰 액자에 사진을 빽빽하게 꽂아놓았잖아. 여기처럼 신문지로 덕지덕지 발라서 도배를 해놨는데, 옛날 생각 많이 난다. 저기도 봐봐. 달력종이 붙은 거, 국회의원 사진 들어간 거 말이라 너도 저런 거 많이 봤지?"
"맞아 맞아. 옛날에는 방안에 온통 신문지로 도배를 했었어. 그것도 벽이 매끈한 게 아니라서 맨날 저 밑에는 붕 떠 있었어. 어, 저기 좀 봐봐 우리 태어났을 때 달력도 있다."

골목길 모퉁이를 하나 돌아서니, 아저씨 둘이서 방바닥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어요. 방 안에는 지난날 옷가지를 넣어두던 궤짝이 있고 그 위에 빨간 천에다가 흰 호청을 둘러싼 솜이불이 올려져있어요.

선술집영월광업소가 있던 이 마을 마차리에는 광부들의 고된 일상을 마감하고 피로를 풀던 마차집이 있었답니다. 그 옛날에는 무척이나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하더군요. ⓒ 손현희


마차집 안 풍경아저씨가 술상을 받아놨네요. 광부들의 고된 시름을 탁배기 한 잔에 잊어봅니다. ⓒ 손현희


광부들이 고된 일을 마치고 나서 자주 가던 선술집인 마차집에는 술상을 받아놓은 아저씨도 있어요. 그 시절에는 탄광에서는 갑방(08:00~16:00), 을방(16:00~24:00), 병방(24:00~08:00)이라고 해서, 3교대로 1주일마다 바꿔서 근무를 했다고 해요. 때때로 병방꾼들(24:00~08:00 까지 밤샘 일을 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사람)이 일을 마치고 한 잔 해,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는 이들이 많았답니다. 이런 모습을 다른 지역에선 비난하기도 했다지만, 밤샘 일을 한 그들한테는 훤한 대낮이 밤과 같았기에 너끈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배급소가 따로 있는데, 광부들이 그날 그날 일한 시간을 계산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작업 일수대로 배급표로 나눠줬다고 하네요. 그 배급표를 쌀이나 여러 가지 식료품으로 바꾸어서 생활을 했답니다.

마차 상회영월 광업소 사람들이 이용하던 마차 상회, 우리네 고향 마을 '점빵'과도 닮았어요. 가게 옆에 뻥튀기 아저씨도 매우 인상 깊습니다. ⓒ 손현희


모퉁이 하나를 또 돌아서니, 이번에는 양조장이 나옵니다. 그 앞에 작은 사내아이가 노란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받으러 나온 모습이 보여요. 그걸 보자, 남편이 자기 어렸을 때도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을 많이 다녔다면서, 마치 자기를 보는 것 같다고 웃어댑니다. 막걸리를 사가지고 오다가 홀짝 홀짝 마시고는 주전자가 가벼워져 그냥 갈 수 없으니까 도랑물을 채워서 갖다드리곤 했다네요. 그 얘기가 어찌나 재밌던지, 어릴 적 추억 속 이야기로 한바탕 웃기도 했지요.

마차리 문화관광부들이 유일하게 문화생활을 할 수 있었던 곳이에요. 영화를 상영해주기도 하고, 노래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했답니다. 60년대 초에 세운 것인데, 좌석수가 418석이나 되었답니다. 서로 어깨가 부딪힐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문화관이에요. ⓒ 손현희


마차리 버스정류장그 옛날 마차리를 오고 가던 버스에요. 무척이나 정겹지요. ⓒ 손현희


지금은 사라져버린 추억, 강원도 영월의 영월광업소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전시해놓은 것을 들여다보면서, 그 시절 탄광촌 사람들의 고된 삶과 어렵게 살아왔던 역사를 온몸으로 느껴봅니다.

몇 달 앞서, 문경 석탄박물관에 갔을 때, 보고 느꼈던 마음보다 더 애잔하게 다가오는 건 아마도 우리가 어렸을 때 모습과도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슴 짠한 마음을 안고 이번에는 막장인생,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탄광사람들이 일하던 갱도로 들어가 봅니다. 이곳은 또 어떤 이야기가 숨 쉬고 있을지 기대하면서….
덧붙이는 글 다음 편에서는 탄광촌 사람들이 일하던 갱도의 모습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갈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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