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미국의 <뉴욕타임스>에는 'In China, Human Costs Are Built Into an iPad'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중국에서는 사람의 희생으로 아이패드를 만든다' 정도로 해석될만한 이 기사는 애플의 아이패드를 만드는 대만 기업 폭스콘의 중국 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노동자들의 희생을 심층 보도했다.

다음 날, 한국의 대부분의 신문들은 인터넷 판에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인용한 보도를 쏟아냈다. 아래는 각 언론사의 기사 제목이다.

애플의 경이적 영업이익 뒤에는 충격적인 사실이… - <조선일보>
애플 성공 이면에 숨은 열악한 노동 환경 – <중앙일보>
애플은 中 근로자의 눈물을 먹고 자란다 – <동아일보>
中노동자엔 나쁜 기업, 애플- <한국일보>
노동자 피눈물로 만드는 아이폰 – <한겨레>
애플 하청 중국노동자의 고통 – <경향신문>

<연합뉴스> 기사를 그대로 받은 <중앙일보>를 제외한 나머지 신문들은 자사 기자의 이름으로 기사를 새로 작성해 올렸지만, 내용은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요약한 것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폭스콘의 노동자들이 "과중한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심각한 안전 문제로 생명을 잃거나 부상" 당하는 "열악한 노동 환경을 소개"했다. 더불어 애플이 매년 "수백 건의 규약 위반 사실을 적발하고" 있지만 "사후 조처에는 그다지 열성적이지 못하다"는 내용까지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꼼꼼하게 분석해 보도했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해야 주목할 만한 죽음인가?


열악한 노동조건,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이 과연 중국의 폭스콘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1월 31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쌍용차 희망 퇴직 노동자 강아무개(52)씨가 지난 20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스무 번째 죽음이다.

이번에 숨진 강씨의 경우, 퇴직 후 장비를 다룰 사람이 없어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면 회사는 강씨를 불러 고치게 했고 후임 사원들을 위한 장비 교육도 맡겼다고 한다. 강씨는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일을 했지만,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애플의 하청업체인 중국의 폭스콘 공장에서 벌어진 노동착취에 대해 크게 보도했던 신문들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발생한 이 사건을 어떻게 보도했을까. 아래는 강씨의 죽음을 보도한 기사들의 제목이다.

쌍용차 희망퇴직자 또… 20번째 죽음 – <한국일보>
"죽음 막기 위해 희망텐트까지 쳤는데…" – <한겨레신문>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2년 만에 노동자·가족 20명 사망 - <경향신문>

애플의 하청공장 폭스콘의 "충격적"(<조선일보>)으로 "열악한 노동 환경"(<중앙일보>)에 시달리는 "中 근로자의 눈물"(<동아일보>)을 적극 보도했던 이른바 조중동은 한국 쌍용차 노동자 강씨의 죽음에는 침묵했다.

중국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한국 노동자의 노동환경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여긴 것일까? 아니면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 <뉴욕타임스>가 먼저 기사를 써 주기를 기다린 것일까?

2009년 이후 폭스콘 중국 공장에서는 최소 18명의 노동자들이 자살을 시도했고, 그 중 13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폭스콘에는 '자살 공장'이란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붙었고, 애플 역시 중국 노동자의 죽음을 팔아 돈을 버는 악덕 기업이라는 소릴 듣기도 한다.

2009년 이후 쌍용차에서는 노동자 7명과 가족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퇴직 노동자 10명이 심근경색 뇌출혈 등 스트레스 질환으로 숨졌다. 중국의 폭스콘을 '자살 공장'이라 부른다면 쌍용차는 '죽음의 공장'이라 불러도 넘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언론을 필두로 세계의 언론이 폭스콘의 '자살 신드롬'을 보도한 이후 폭스콘은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확대했으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프로그램도 만들었다고 한다. 애플 역시 폭스콘에 대한 외부감시를 강화했고, 세계의 인권단체들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고 있다.

하지만 2년 사이에 20명이나 죽어간 쌍용차는 한국 언론의 무관심에 의해 아무런 개선 없이 또 다른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뉴욕타임스>에 가서 기사 하나만 써 달라고 읍소해야 하나? 한국의 언론 환경이 너무도 참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