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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 관광객들, 폭포에 몸 담아 자연을 품다

태국 자동차 여행 (6) 콰이강의 물줄기를 따라서

등록|2012.02.03 11:53 수정|2012.02.03 11:53

▲ 숙소 바로 앞에서 떨어지는 폭포. ⓒ 이강진


깐짜나부리(Kanchanburi)라는 도시에서 콰이강 다리와 박물관을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와 흙먼지를 뒤집어쓴 차를 닦으며 떠날 준비를 한다.

세차하고 있는데 어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던 젊은 주인이 다음 목적지를 묻는다. 북쪽으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던 우리는 대답 대신 갈 만한 곳을 되물었다. 젊은 주인은 한 장짜리 지도를 펴들고 버마 국경 쪽에 있는 국립공원들이 좋다고 추천한다. 지도를 보니 큰 호수와 폭포가 있는 국립공원이 서너 개 있다.

우리는 북쪽으로 계속 올라갈 생각인데 국립공원으로 가면 미얀마 국경에서 되돌아와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콰이강 물줄기를 따라 올라간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미얀마와 국경을 마주한 국립공원이 있는 곳을 목적지로 정하고 길을 떠난다.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르는 길손에게 도움을 준 젊은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가는 도로는 잘 뻗어 있다. 자동차도 많지 않아 과속으로 달린다. 중간에 폭포가 있다는 도로 표지판을 무시하고 계속 운전하니 큰 호텔이 나온다. 벼랑 아래로 강이 흐르는 숲 속에 있는 괜찮은 호텔이다. 숙박료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그러나 관광버스가 3대나 주차해 있는, 단체 관광객으로 붐비는 호텔이다. 러시아어로 호텔 라운지는 떠들썩하다. 너무 혼잡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호텔에서 나와 국립공원 안내소를 찾아 다시 달린다. 국립공원 입구가 보인다. 사이옥 국립공원 (Sai Yoknational park) 이다. 공원 입구에서 조금 더 운전하니 안내소가 나온다. 공원이 넓다. 공원에는 텐트 치는 장소와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다.

숙소를 알아보니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숙소는 강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고 한다. 숙소 가격도 웬만한 호텔보다 비싸다. 강 가까운 곳에 있는 개인이 경영하는 숙소가 있다는 귀띔을 안내원으로부터 받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주차장 옆으로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에 동감하면서 줄지어 서 있는 식당 중에서 조금은 깨끗해 보이는 탁자에 앉는다. 바로 옆에서 숯불에 굽고 있는 통닭 중 한 마리를 주문하니, 무식하게 생긴 칼로 토막을 내 식탁에 올려놓는다.

푸짐한 점심이다. 우리 식탁 옆에는 태국 젊은이들이 단체로 들어와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서 먹고, 떠들썩하게 웃음꽃을 피우며 지나다가 나간다. 단체로 놀러 온 태국 청년들의 꾸밈없는 웃음이 보기 좋다.

수상 숙소, 하룻밤에 3만 원으로 흥정

▲ 콰이강을 가로 지르는 국립 공원에 세워진 현수교 ⓒ 이강진


식사를 끝내고 강 쪽으로 걸으니 멋있는 현수교가 나온다. 다리에 올라서니 폭포도 보인다. 물줄기가 시원하다. 이곳 강은 내가 한동안 살았던 경기도 운천에 있는 한탄강을 생각나게 한다. 절벽이 가파르고 높아서 강 바로 옆까지 가야만 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리에서 내려 보이는 강물에 집이 나란히 있다.

숙소라 짐작을 하고 찾아간다. 널빤지 한 장 걸어놓은 다리를 건너니, 상의를 벗은 히피 비슷한 차림의 젊은 청년이 우리를 맞는다. 방이 있느냐고 물으니 있다고 하면서 4만 원을 요구한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흥정을 한 끝에 하룻밤 3만 원에 이틀 머물기로 하고 열쇠를 넘겨받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깎아줬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하면서 숙박료를 깎아주었을 것이다.

▲ 정글 사이를 흐르는 콰이강에 관광객을 위한 숙소 ⓒ 이강진


물 위에 떠 있는 숙소는 방에 침대 하나, 화장실 하나 덩그러니 있다.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는다. 화장실도 변기가 있지만 물을 내리면 강물로 곧장 떨어진다. 전기도 발전기를 돌리기 때문에 전기 들어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인터넷이 안 되는 것은 물론 텔레비전도 없다.

숙소 바로 앞 에서는 팔뚝만한 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강 건너편에서 쏟아지는 폭포 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가본다. 이곳에서 살고 싶을 정도로 좋은 곳이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없어서인지 문명과 떨어진 '깡촌'에 온 기분이다.

숙소를 나와 국립공원 주위를 걷는다. 넓고 쾌적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공원이다. 숲으로 들어가는 산책로가 있지만, 오늘은 사람이 걷기 좋도록 포장된 곳을 걸으며 시간을 보낸다. 공원 주위에 맑은 물이 흘러 산책하기에도 좋다. 바위 속에서 흘러나와 흐르는 청록색 물줄기가 사람을 유혹한다. 물 색깔에 마음을 빼앗긴다.

물줄기를 따라 걸으니, 음식을 만들던 화덕들이 있는 전시관(?)이 보인다. 안내문을 읽으니 2차 대전 때 미얀마 침략을 준비하던 일본군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쓰던 화덕이라고 한다. 이 산 중에도 일본군이 저지른 전쟁 냄새가 물씬 풍긴다. 무엇을, 누구를 위해 사람을 죽이려 했을까? 일본군에 끌려온 한국인들도 이곳에서 있었으리라.

중국계 관광객들과 함께 한 선상 파티

▲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음식을 만들던 곳 ⓒ 이강진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식당을 찾아 나서는데, 숙소 앞에 보트를 묶어 놓고 저녁 준비가 한창이다. 이곳에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함께 먹자고 한다. 방콕에서 법률가로 일하는 사람이 말레이시아에 사는 친구들을 불러 함께 놀러 왔다고 한다.

배를 한 척 빌리고, 식당에서 일할 사람까지 데리고 와서 3박 4일 지내는 중이다. 식탁 위에는 먹고 남은 양주 2병과 맥주가 담겨 있는 상자가 널려있다. 풍경 좋은 곳에서 먹고 마시는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하나가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커피를 가공해 수출하는 사람을 비롯해 말레이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중국계 사람들이다.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김정일 사후의 북한에 관한 질문을 한다.

그중에 한 사람은 "평양에서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며 공연에 관한 이야기가 끝이 없다. 말레이시아 국적을 가지고도 북한에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내가 만약 북한에서 아리랑 공연을 보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아온 나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돈 있는 사람들의 식사답게 푸짐한 해산물이 나온다. 나도 좋은 안주를 핑계로 공짜 술에 취해본다. 북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인지 만약 내가 북한 사람을 만나도 지금처럼 격의 없이 마음껏 떠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국토만이 아니라 생각까지도 둘로 나누어진 조국의 현실을 다시 생각한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찾아가 해물이 듬뿍 들어간 죽으로 해장한다. 식사비를 지불하려고 하니 받지 않는다며 요리사에게 팁 정도 주면 된다고 한다. 오늘 떠난다는 그들과 명함을 주고받으며 아쉬움을 달랜다. 방콕에서 법률가로 일한다는 사람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항상 연락하라고 하며 악수를 청한다.

작별 인사를 하고 동굴을 찾아 나선다. 동굴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에는 대나무가 우거져 있다. 이렇게 대나무가 많은 산 속을 걷는 것은 처음이다. 대나무가 바람에 휘둘리며 내는 소리는 함석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흡사하다. 생각 없이 걷다 보면 비가 오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대나무 숲에서 빗소리가 흘러나온다. 바람이 많이 부는 모양이다.

▲ 정글의 바위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물, 온천물을 연상시킨다. ⓒ 이강진


동굴 구경 겸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다시 강물에 산책으로 피곤한 발을 담근다. 시원하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배가 오간다. 관광객들은 강 상류에서 구명조끼를 타고 내려와 폭포에 도착한다. 그리고는 폭포에 몸을 담근다. 자연에 몸을 맡기며 즐기는 관광객 모습이 장난꾸러기 어린이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어린이 같아야 천당에 갈 수 있다는 예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콰이강에서 수영을 하며 즐기는 관광객. 러시아 관광객이 많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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