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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에 죽은 드라큘라... 아직 살아있다?

[리뷰]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히스토리언>

등록|2012.02.06 12:18 수정|2012.02.06 13:58

<히스토리언>겉표지 ⓒ 랜덤하우스

브램 스토커가 쓴 <드라큘라>의 실제 모델은 15세기 루마니아의 영주이자 '말뚝왕 블라드'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블라드 3세다.

블라드 3세는 오스만 제국의 침입에 맞서 싸우며 자신의 영토를 지켰지만, 전쟁포로와 가신들까지 너무나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서 유명해졌다. 그가 주로 사용한 방법은 길고 날카로운 말뚝으로 온몸을 꿰뚫는 말뚝형이었다.

이 형을 당한 사람은 말뚝에 몸이 관통당한 채로 며칠동안 고통에 시달리면서 천천히 죽어갔다. 블라드 3세는 이 방법으로 2만 명 이상을 죽였고, 희생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명이 '말뚝왕'이다.

동서고금을 통털어서 세상에는 수많은 사형방법이 있겠지만, 이 말뚝형이야 말로 정말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방법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가급적 짧은 시간 안에 죽이는 것이 좋다. 무엇이건 간에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하물며 죽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그 심정이 과연 어떨까.

500년 전 유럽의 전제군주

블라드 3세는 이렇게 잔혹한 인물이었지만 흡혈귀는 아니었다. 브램 스토커는 여기에 상상력을 덧붙여서 죽지 않는 불사귀이자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로 '드라큘라'를 창조한 것이다.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코스토바의 2005년 작품 <히스토리언>은 바로 이 드라큘라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블라드 3세가 살던 중세 유럽이 무대는 아니다. 블라드 3세는 1476년 오스만 제국과의 전투 도중 전사해서 루마니아에 있는 스나고프 호수 주변 수도원에 묻혔다고 한다. <히스토리언>은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후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16세 소녀는 어느날 역사학자인 아버지의 서재에서 이상한 편지 한 통과 책 한 권을 발견한다.

편지는 '이 편지를 읽을 불행한 이에게…'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낡은 책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용이 인쇄돼 있다. 소녀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죄의식 때문에 황급히 책과 편지를 덮어둔다. 어쩌면 책과 편지의 기이한 분위기 때문에 스스로 피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아버지 폴에게 자신의 발견에 대해서 묻게 된다. 폴은 주저하면서도 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학시절에 그 책을 이상한 경로를 통해서 입수하게 됐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지도교수와 함께 그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등을 말해준다. 폴의 지도교수는 그 책을 보고 기괴한 이야기를 한다. 드라큘라 블라드 3세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코웃음을 치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정신나간 사람 취급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학자인 폴에게 이 이야기는 커다란 관심거리다. 이때부터 소녀와 폴은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한 두 사람은 터키와 프랑스,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를 누비면서 드라큘라의 행방을 추적해간다.

흡혈귀를 추적하는 사람들

라틴어로 드라쿨(Drakul)은 '용'을 뜻한다. 드라쿨리아(Drakulya)는 용의 후손을 말한다. 블라드 3세의 아버지가 오스만 제국에 대항했던 '용 기사단'의 단원이었기 때문에 블라드 3세에게 이런 호칭이 붙여진 것이다.

블라드 3세가 통치하던 지역에는 카르파티아 산맥이 있다. 야생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카르파티아 산맥. 그 곳에는 고대 성, 늑대 인간, 마녀, 신비한 어둠의 땅 같은 단어들이 어울린다. 그러니 거기에 흡혈귀가 한둘 더 더해진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그래도 호기심은 생겨난다. 드라큘라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왜 아직까지 살아있는지 그 이유가 더 궁금해진다. 죽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살아있는 것은 아닐테고, 분명히 뭔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서 지금까지 삶을 이어왔을 것이다. 드라큘라가 500년 동안이나 죽지 못하고 집착해왔던 그 일은 과연 무엇일까.

작품 속에서 폴은 말한다. '죽은 자는 죽은 자여야 한다'고.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미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세상을 돌아다닌다면, 포기하지 못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희생시킨다면 그거야 말로 진짜 공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다고해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형벌에 가깝다.
덧붙이는 글 <히스토리언>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씀 |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 | 2012.01 | 1만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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