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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부터 명품까지, 실물 경제의 큰 손 중국인

[한중수교 20주년] 중국을 알아야 미래사회를 대비할 수 있다

등록|2012.02.07 19:03 수정|2012.02.07 19:03
G2(Group of 2)라고 특별하게 불리는 나라가 있다. 초강대국인 미국과 200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나라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흔히 우방으로 불리는 미국이야 세계 경제와 안보를 좌우해온,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초강대국이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에게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역사적으로 숱한 세월 침략과 방어를 반복한 탓이다. 중국은 지금도 고구려가 중국의 동북변방 역사 중 일부라는 '동북공정'을 비롯해, 한글이 중국의 글자라며 지하에 계신 성군 세종대왕을 통곡하게 만들 '한글공정' 등 역사 왜곡 작업을 추진하며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고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감정적으로 맞설 수만은 없다. 중국의 고사 성어를 빌리자면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의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과 중국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알고 슬기롭게 중국에 대처해야 한다.

지난 1월 16일, 영국의 BBC 방송은 미래학자 이안 피어슨과 패트릭 터커의 조언을 받아 2112년까지 일어날 스무 가지 일들을 예측, 보도했다. 그중 주목할 부분은 언어다. 100년 후에는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만 남게 된다는 것. 안타까운 가정이기는 하지만 중국어가 가진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이래저래 중국은 주목할 수밖에 없는 국가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공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은 지 20주년이 된다. 지난 1992년 8월 24일 역사적인 교류의 첫 발을 떼고 강산이 두 번 변했다. 그간 중국에서는 드라마 <대장금>이 1995년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후 <꽃보다 남자>, <베토벤 바이러스> 등 한국의 드라마가 연이어 주목을 받았다. 또한 에이치오티(HOT), 엔알지(NRG), 동방신기 등 가수그룹을 비롯해 최근에는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 아이돌그룹이 한류 열풍을 지속시키고 있다.

▲ 지난해 9월, 방문했던 중국 랴오닝(요녕)성 진저우(금주)시. 인력거, 자전거, 택시, 버스 등이 보인다. ⓒ 최육상



지난해 9월, 업무와 고구려 역사답사를 함께 할 요량으로 중국 랴오닝(요녕)성 진저우(금주)시와 가이저우(개주)시를 둘러본 적이 있다. 인구 470만 명의 진저우시는 인구 13억 여 명의 중국에서는 조그만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도시의 광경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벤츠와 인력거가 도로를 함께 달리는 것도 그렇고, 초고층 건물들이 쉼 없이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의 1960년대와 2000년대가 뒤섞여 있는 듯했다. TV에서는 한국의 여러 드라마들이 중국어가 덧입혀져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다. 국내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던 탤런트 채림을 질리도록 봤던 기억이 새롭다.

재래시장 상인 "조선족들이 제일 큰 손님이야"

지난해 9월, 대규모 중국 여행단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종업원 1000명 이상의 기업체들로 구성된 '인센티브 여행단' 1만2000여 명이 제주도를 방문한 것이다. 당시 제주도 관광 업계는 숙소와 음식점 마련을 위해 한바탕 소동을 겪었고, 결국 순서를 나눠서 관광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관광공사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이번 설 연휴 기간에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5만 명을 넘어섰다. 통계 결과, 설 연휴에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2008년 2만 9864명, 2009년 3만592명, 2010년 4만331명, 2011년 3만3118명이었다.

지난해 중국 진저우시를 방문했을 때 만났던, 아무개 국영기업의 사장 부인은 한국으로 관광을 다녀온 소감을 묻자 "가이드가 영등포에 있는 백화점으로 안내했는데 저렴한 물건 일색이라 살 만한 게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자리를 함께 했던 지인은 "가이드가 강남의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에 있는 백화점으로 안내했어야 했는데, 거리가 복잡한 영등포로 안내하는 바람에 아마도 신경에 거슬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중국의 부유층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소비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얼마 전 찾은 서울 구로동에 있는 재래시장 좌판의 주인 아주머니도 한국인보다 조선족(재중동포)을 받는 것이 장사에 이익이라고 말을 보탰다. 주인 아주머니는 워낙 저렴한 가격이라 "한국 사람은 2만 원 아래 매출이지만 조선족 두어 명만 와도 3만 원은 기본, 5만 원을 넘길 때도 있다"며 "조선족들이 제일 큰 손님"이라고 말했다. 민족 특유의 성격이 먹고 마시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 중국 랴오닝(요녕)성 진저우(금주)시에 위치한 진저우항구, 바다 쪽에서 바찍은 사진. 입구에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가 새겨져 있다. 이곳 진저우항은 중국의 발해만에 자리하고 있다. ⓒ 최육상


해외유학에도 그대로 반영된, 명문대 고집의 비틀린 현실

한편, 지난해에는 한국으로 유학을 온 중국인 유학생의 숫자가 처음으로 8만 명을 넘어섰다.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기는 했지만 한국과 중국의 환율 차이를 감안하면 중국유학생의 숫자는 놀라울 정도이다. 이는 한류 열풍 탓도 있지만, 그만큼 중국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조만간 한국을 앞서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중국으로 유학을 가는 숫자는 수십만 명에 달한다. 특히 한중수교를 맺었던 1992년 이후에는 중국 유학이 가히 열풍과도 같았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 초중반, 중어중문학과 학생들은 물론이고 많은 학생들이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러나 '중국을 알자'는 열풍은 잠잠해지고 말았다.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막무가내로 중국으로 떠난 탓에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중국어를 공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베이징대, 칭화대 등 대도시에 자리한 이름난 대학교만을 고집하는 평판 중심의 유학은 결국 한국 유학생끼리만 어울리게 만들었다. '언어는 현지인들과 부대껴야 는다'는 진리의 통설을 중국 유학까지 가서 거스른 것이다. 그것도 베이징(북경)이라는 중국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곳에서 말이다. 국부유출이 별다른 게 아니다.

중국의 대학교는 중국학생이 공부하는 '중국인본과'와 외국학생이 공부하는 '대외본과'로 나누어져 있다. 중국인본과와 대외본과의 수준 차이는 상당하다. 그러나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중국의 명문대 중국인본과로만 유학을 권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 학생이 베이징대나 칭화대 등의 중국인본과에 입학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입시 준비하듯 최소 1년 이상 공부해야 한다. 학생들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명문대를 고집하는 것은 중국 유학을 실패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지인 중에 나이 오십 줄에 들어 중국 유학을 다녀온 분이 계신다. 그는 유학할 대학교로 중국의 동북 3성 중 하나인 랴오닝성 진저우시에 위치한, 이름도 생소한 보하이(발해)대학교를 선택했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의 대학을 선택한 이유를 몇 가지 꼽았다. 우선, 중국인본과에서 중국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학생들과 자연스레 학연으로 끈끈해진 것이 큰 장점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이 학교가 중국 표준어를 연구, 보급하는 대학이었다는 점이다. 기왕에 중국어를 공부하려면 표준어를 구사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셋째, 베이징 등 대도시에 비해 물가가 싸서 학비가 저렴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함께 어울릴 한국 학생이 전혀 없어서 오로지 중국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교육 환경을 강조했다. 결국 그는 이 대학 한국인 졸업생 1호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됐다.

▲ 중국의 '오성홍기'와 한국의 '태극기' ⓒ 최육상


한국과 중국. 누군가는 가깝고도 먼 두 나라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두 나라 사이의 경제와 정치 문제는 해법이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한중수교 20주년을 맞는 올해, 많은 학생들이 중국을 알고 배우길 희망한다. 나 역시 기회를 만들어 반드시 중국어를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지난해 9월, 생전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니 하오(안녕하세요)', '쉐쉐(고맙습니다)'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던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중국을 강타한 한류 열풍이 그동안 문화의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학문의 영역에서 그 열풍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국이 추진해 온 동북공정도 한글공정도 결국은 학문의 영역에서 끝맺어야 하기에 그렇다. 중국을 알고 배우는 건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지 않을까. 아무쪼록, 한중수교 20주년인 올해를 기점으로 문화와 학문으로서 한국과 중국을 잇는 다리를 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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