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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된 수삼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구나

금산 오일장을 찾아서

등록|2012.02.08 09:11 수정|2012.02.08 10:36
지난 2011년 여름, 대전에 이사 온 후로 시골의 오일장을 탐방하는 버릇이 생겼다. 서울에서는 찾기 힘든 5일장, 이곳 충남에서는 무려 77개나 있다. 논산, 부여, 공주 천안, 금산, 보령 등 내가 사는 북 대전에서는 한두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지역들이라서 한가한 휴일이나 여유 있는 날이면 오일장을 찾곤 했다.

입춘이 지나고 날씨가 제법 봄기운이 드는가 싶더니 또다시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다. 아! 아직도 봄은 먼 것일까? 이번 감기는 특히 지독한지 내 친구는 벌써 한 달 째 감기를 털어내지 못하고 힘들어 하고 있다. 고등학생인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문득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힘들어 할까봐 걱정이다.

뭔가 몸을 보하고 따뜻한 차라도 먹어야 할텐데... 늦게까지 일에 매달리는 남편과 아이들을 생각하다가 문득 홍삼 생각이 간절해졌다.

공산품으로 제조된 홍삼 말린 것들은 몇십만 원을 호가한다. 이럴 땐 수삼을 숙성시켜 홍삼을 만들고 이를 다시 끓여서 홍삼을 달여 먹는 게 최고다.

나는 친구와 우리나라 최고의 인삼 생산지인 금산 오일장을 찾기로 했다. 우선 인터넷으로 장날을 확인해보니 금산 장날은 마침 2일과 7일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는 말처럼 나는 가는 날이 7일임을 확인하고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장날에 왔으니 일단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곳의 식당은 백반이 유명한데, 금산인삼센터 옆 골목 2층에 나란히 정돈된 세 군데의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6000원짜리 백반이지만 청국장과 된장찌개 그리고 생선조림도 나왔다. 따뜻한 누릉지를 후식으로 한 잔 들이키고 나니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졌다. 마음 좋은 주인 아주머니는 누룽지를 비닐에 싸주시며 "심심할 때 먹어"라고 하신다. 따뜻한 시골인심을 보여준다.

나란히 줄 선 식당백반맛이 일품인 금산 인삼센터 옆의 식당들 ⓒ 송춘희


백반 한 상청국장, 각종 나물과 생선 조림 ⓒ 송춘희


누룽지식당 주인아주머니께서 주신 누룽지 ⓒ 송춘희


식사를 마치고 거리에 나왔지만, 워낙 추운 날씨 탓인지 길거리 장터에는 상인들과 행인이 거의 없었다. 우선 50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금산 수삼센터에 들러 하나 하나 정돈된 수삼들을 둘러 보았다. 인삼의 모양은 사람 모양이라고들 하지만, 저마다 미끈한 다리와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수삼들이 어찌나 우습던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금산 수삼센터앞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금산 수삼센터 ⓒ 송춘희


수삼을 고르는 사람들금산 수삼센터안의 수삼을 고르는 사람들 ⓒ 송춘희


주인을 기다리는 수삼들가지런히 정돈된 수삼들 ⓒ 송춘희


내가 이렇게 시골 장날을 좋아하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우선 마음이 울적하거나 하는 일이 잘 안 풀릴 때, 시장에 오면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함이 느껴진다. 시린 손을 불어가며 이른 새벽에 아침을 여는 이들, 코 묻은 작은 돈 하나 하나 세어가며 삶의 기쁨을 느끼는 소박한 시골장에서는 도시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서민들의 노력과 행복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어릴 시절의 행복했던 추억이 장터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할머니 손을 잡고 장에 가면 언제나 어른들은 나를 반겨주셨다. "아무개 손녀 딸 이리와 보라!" 하시며 사탕하나 과자 하나 쥐어 주시던 그 투박하고 거친 손길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어서다. 그들은 부자도 아니고 넉넉한 살림들도 아니었지만, 욕심이 없으니 늘 마음만은 부자인분들이셨다. 그들이 이 장터에 늘 계시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자라고 살아가면서 잊었던 내 복잡하고 끝없던 욕심들이 어느새 시골장에 들어서면 꼬리를 내리게 된다. 시골장의 소박한 국밥, 눈깔 사탕하나는 일류 호텔의 스테이크보다 커피전문점의 캐러멜 마끼야또 보다 달콤하다.

친구와 나는 수삼 한 채 씩을 사서 손에 쥐고 종종 걸음으로 차에 올랐다. 수삼을 달여 홍삼차 한잔을 만들어 가족들과 때로는 이웃의 친구와 나눠 마실 생각을 하니 어느새 가슴이 훈훈해졌다. 난방이 잘 된 차창 밖으로 떨어지는 햇살이 너무나 포근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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