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 2000', 정말 한국 경제 현주소일까
[홍기빈의 신자유주의와 한국정치경제를 말한다 ②] 금융위기와 자본시장 신화의 파산
▲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신년강좌 '신자유주의 그리고 한국의 정치경제를 말한다'가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선원들에게는 '쥐떼가 배에서 내리면 배가 난파한다'는 속설이 있다. 태풍우가 오는 등 기상이 변할 때는 변하기 전에 어떤 조짐이 있고 배에 살던 쥐는 본능적으로 그 조짐을 빨리 느끼기 때문에 미리 대피한다는 얘기다. 사회 변화도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어떤 조짐들이 있었을까.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지난 7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신자유주의 그리고 한국의 정치경제를 말한다' 두 번째 수업에서 2000년 이후 자본시장 자본주의(신자유주의)의 구조가 언제, 어떻게 한계에 부딪혔고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강의했다.
"주식시장, 2000년 이후로 미래 예측력 잃어"
홍 소장은 강의를 시작하며 "누가 뭐라고 하든 지금 주식시장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위기는 그 구조 내부에 원인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왜 완벽하게 모든 가치를 계산해 낸다는 금융시장에 불완전성이 나타나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미국 500개 대기업의 주가와 주당 수익의 추이를 비교할 수 있는 그래프를 예로 들었다.
신자유주의 금융시장에서 주식시장은 기업의 가치를 주가로 정확히 환산하고 미래를 예측해 산업경제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모든 산업의 중심이 된다. 그런데 실제 수집된 자료들은 그 같은 통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이 미래를 강력하게 예측하고 산업경제 전체를 선도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면 주가와 주당 수익은 거의 일치하지 않는 게 정상입니다. 만약 기업의 미래 가치가 정확히 계산된다면 미래에 수익을 낼 수 있는 어떤 기업이 당장 수익을 못 내고 죽을 쑤고 있다고 해서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일은 없게 됩니다. 오히려 미래가치가 반영돼서 오를 수도 있는 것이지요."
홍 소장은 "실제로 1970년대에서 90년대까지의 자료를 보면 이 두 가지 값이 상당히 괴리하며 흘러가지만 미국 인터넷 기업들의 거품이 꺼졌던 2000년이 지나면서부터는 희한할 정도로 함께 가는 모양새를 보인다"며 "주가하고 주당 수익이 붙어 다닌다는 건 투자자들이 미래를 예측하기를 포기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가와 주당수익이 함께 움직였던 때가 한 번 더 있는데 바로 대공황 직후인 1930년대 10년"이라며 "지금 금융위기가 2008년에 시작된 것처럼 얘기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주식시장이 모든 가치를 정확하게 계산한다는 믿음을 상실한 시기인 2000년 즈음부터 시작되었다는 얘기다.
그린스펀의 사과와 '신자유주의의 파산'
▲ 수강생들이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 권우성
홍 소장은 200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로 2001년 9·11 테러와 그 뒤이어진 테러와의 전쟁,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오일피크 담론과 온난화 위기 담론을 꼽았다. 이 사건들은 모두 기업 활동의 경제적인 위험도를 높이지만 그 위험의 정도를 완벽히 계산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홍 소장은 "카트리나 재해 같은 대형 자연재해는 금융공학이나 자본시장의 여러 기법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라며 "그런데 오히려 대형 투자은행이나 금융가들은 더 일을 크게 벌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종류의 정치경제체제 안에서 지휘를 내리는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할 때 지배계급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물러나기보다는 권력을 절대 놓으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형 투자은행과 금융가들이 지배하는 자본시장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2년 무렵부터 이들을 중심으로 갖가지 파생상품들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금융투기가 시작됩니다. 국가의 정치경제 구조도 투기를 조장하는 쪽으로 바뀌어갑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계속 이자율을 낮추면서 파생상품 시장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압박했지요."
홍 소장은 "그린스펀은 '금융시장은 완벽한 수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거품이 생기거나 할 걱정은 전혀 없으며 그러므로 탈규제를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덕분에 지금 와서 보면 완벽히 금융 투기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 조치들도 모두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린스펀 전 의장은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미국 하원 청문회에 불려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미안하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했다"며 "바로 이때가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이 파산선고를 받은 순간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2008년 2월 베어스턴스라는 은행이 파산을 선언합니다. 저는 그때 신자유주의가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요제프 아커만 이라는 도이치방크 총재가 <파이낸셜 타임스>에 "이제 더 이상 시장을 믿을 수 없다"고 했거든요. 금융공학의 첨단을 달리는 투자은행은 자본시장 자본주의의 규칙상 망할 수가 없어요. 자산의 가치를 가장 잘 계산하는 사람들이니까요. 투자은행이 망했다는 것은 금융공학의 첨단을 달리는 이들이 자산 가치와 위험도 측정을 제대로 못 했다는 얘기고, 금융시장이 더 이상 사람들이 믿어왔던 자본주의의 신과 같은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자본시장 자본주의에서 자본시장을 믿을 수 없다고 그러면 산업은 조직할 방법이 없어지게 됩니다."
홍 소장은 "2008년에 가시화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위기는 자본시장에 절대적 믿음을 가져서 일어나게 된 제도적 위기"라며 "자본시장이 사람들의 기대만큼 완벽하게 미래를 예측하고 이끌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2000년대 초반에 드러났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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