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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걸으니, 시 한 수 저절로 읊조려지네!

[대관령 옛길은 따뜻했네 ①] 대관령휴게소에서 반정까지

등록|2012.02.14 08:44 수정|2012.02.14 16:05

▲ 대관령의 풍력발전기 ⓒ 이상기


아침 5시 45분에 일어난다. 7시에 대관령을 향해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밥도 먹고 도시락도 싸고, 모이는 장소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서니 6시 20분이다. 버스가 떠나는 구 시청까지는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온도를 재보니 영하 10도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오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2월 중순이 시작되었지만 아침 기온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약속 시간보다 5분 늦게 도착했다. 함께 할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모두 14명이다. 차는 중간에 횡성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내쳐 옛날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로 향한다. 그곳으로 가려면 횡계 나들목에서 나와 456번 지방도를 따라 강릉방면으로 가야 한다. 이곳은 현재 평창군 대관령면 지역으로 용평리조트, 알펜시 아리조트 등으로 유명하다.

대관령, 문학과 미술 그리고 음악으로 표현되다

2007년 9월 1일 면 이름을 도암면에서 대관령면으로 바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대관령이라는 명칭은 면 차원의 이름으로 쓰기에는 너무 아깝다. 지역성과 역사성을 대표하는 이름을 일개 면 이름으로 쓴다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그럼에도 일부 지역에서 그런 일들을 하고 있다. 지나치게 근시안적이고 지나치게 이기적이다.

▲ 대관령 옛길 표지판 ⓒ 이상기


대관령은 관동지방의 관문이다. 우리는 그 관문을 넘어 강릉으로 이어지는 옛길을 탐사하기 위해 대관령 고갯마루로 간다. 대관령 옛길은 최근에 만들어진 강릉 바우길의 일부 구간이다. 대관령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옛길을 바우길로 개발했으며, 그중 제2구간이 대관령 옛길이다. 대관령휴게소에서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까지 이어지는 14.2㎞ 구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대관령(신재생에너지전시관) → 1구간 분기점 → 국사성황당 → 반정 → 옛주막터 → 우주선화장실 → 대관령 야생화마을 → 대관령 산채잡곡마을 → 바우길 게스트 하우스다. 이 길 굽이굽이에는 옛 사람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신사임당이 아들인 율곡의 손을 잡고 친정에 간 길이다.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간 길이 또 이 길이다. 송강 정철은 그때의 느낌을 <관동별곡>으로 풀어냈다.

그런가 하면 김시습도 이 길을 걸었고, 한원진도 이 길을 걸었다. 어디 그뿐인가? 단원 김홍도는 대관령에서 동해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옛길을 유장하게 표현했다. 최근에는 신봉승이 시를 쓰고 박경규가 곡을 붙인 대관령이 불리기도 한다. 그동안 대관령은 문학과 미술 그리고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음악의 차원이 커져, 매년 여름이면 이곳 대관령면에서 '대관령음악제'가 열린다. 

양떼목장을 따라 선자령 방향으로

▲ 양떼목장길: 선자령 가는 길 ⓒ 이상기


9시 20분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몸을 푼다. 아직 바람이 차다. 주변에는 산불 조심이라고 쓴 풍차가 있고, 신재생에너지 관이 있다. 그리고 한 쪽으로는 고속도로 준공기념탑이 보인다. 이곳에서 우리는 선자령 풍차길로 들어선다. 선자령 가는 길은 양떼목장 길과 국사성황당 길 두 가지가 있다. 그러므로 선자령을 오르는 사람들은 이들 두 길 중 한 길로 오르고 다른 길로 내려온다.

우리는 양떼목장 길을 따라 2㎞를 올라간 다음,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국사성황당 방향으로 계속 걸어갈 것이다. 산으로 오르니 눈이 많이 쌓였다. 모두 아이젠을 착용한다. 아침에 서두르다 보니 아이젠도 잃어버리고 왔다. 오르막길에서는 견딜만하다. 오히려 내리막길이 더 조심스럽다. 산에는 항상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대로 나타난다. 오늘 고생 좀 하게 생겼다.

▲ 선자령 가는 길 ⓒ 노영섭


양떼목장 언덕길에는 나무들이 북서풍을 피하느라 고생한 흔적이 보인다. 가지가 동남쪽으로 향하고 있음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멀리 북쪽 선자령 쪽으로는 풍력발전기들이 돌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잠시 전나무 숲길을 걷는다. 인공으로 조림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전나무 숲길을 지나면 1구간과 2구간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은 1구간을 따라 선자령으로 오르지만, 우리는 대관령 옛길로 가야 하기 때문에 국사성황당을 지나 반정(半程)으로 갈 것이다.

이번 탐사를 하기 전에 나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한편으로는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웠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폭설과 강풍 등 악천후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씨가 아주 맑고 청명해 답사 일은 정말 잘 잡은 것 같다. 파란 하늘과 흰 눈 그리고 생각보다 춥지 않은 현장이 우릴 기분 좋게 한다. 분기점에서 국사성황당까지는 400m로 내리막길이다.

국사성황당에서 만난 세 신

▲ 국사성황당 ⓒ 이상기


국사성황당은 대관령 옛길에서 만나는 유일한 문화유산이다. 대개 명산이나 고갯마루 주변에는 절터나 마애불 또는 주막 등이 있는데, 대관령이 너무 높아선지 고갯마루 주변에는 이런 것들이 없는 편이다. 그나마 성황당이 있어 산길을 여행하는 나그네의 마음을 달래준다. 성황당은 이제 등산객이나 우리 같은 옛길 탐사 객이 찾는 문화유산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대관령을 넘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무사안녕을 기원했을 것이다.

국사성황당에는 세 개의 기도처가 있다. 성황사가 있고, 산신당이 있고, 칠성단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 성황사다. 세 칸짜리 집에 국사성황신(國師城隍神)을 모셨다. 그럼 국사성황신이 누굴까? 신라의 고승 범일(梵日: 810-889) 국사라고 한다. 범일 국사는 통일신라시대 선승으로 사굴산문(闍崛山門)의 개조다. 그는 836년 당나라로 가서 842년까지 제안(濟安) 대사로부터 심인을 전수받았다.

그 후 중국 각지를 편력하며 선정을 닦고, 소주에 있는 혜능조사탑에 참배한 후 847년 귀국하였다. 851년 명주도독의 청으로 굴산사에 주석하였고, 40년 가까이 관동지방에서 불법을 전파했다. 시호는 통효(通曉)고 탑호는 연휘(延徽)이나, 탑과 탑비가 남아있지 않아 그의 사상과 인생역정을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 산신당 ⓒ 이상기


범일은 죽은 후 대관령 성황신으로 신격화되었다. 그는 현재까지도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범일 국사에게는 신비로운 출생신화가 있다. 처녀가 우물에서 해가 들어있는 물을 마신 후 범일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처녀의 어머니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아이를 버렸지만, 학이 주는 열매를 먹으며 살아남았다. 이에 처녀는 하늘의 계시로 알고 아이를 데려다 길렀다고 한다. 그가 15세가 되어 출가, 스님이 되었으니 바로 범일 국사다. 성황당에 모셔져 있는 국사성황신은 말을 탄 사냥꾼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산신당에는 대관령 산신이 모셔져 있다. 산신은 대관령 주변의 산을 지키는 신으로 호랑이를 탄 모습으로 나타난다. 산신당은 한 칸 건물로 성황당에 비해 규모가 작다. 성황당과 산신당 사이를 난 길을 따라 가면 바로 칠성단을 볼 수 있다. 강원도 아리랑에서 '팔자에 없는 아들·딸 달라고' 빌던 그 칠성단이다. 이곳에 우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한수를 떠 소원을 비는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칠성신앙과 연결되어 칠성당(七星堂)이라는 표지석까지 만들어지게 되었다.

▲ 칠성단의 샘물 ⓒ 이상기


이곳 성황당 주변은 양쪽 능선 사이 계곡에 있기 때문에 눈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 성황당과 산신당 위의 눈이 무겁게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4월 보름에 국사성황제를 지낸다. 전통적으로 강릉의 호장이 무당을 거느리고 행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강릉단오제 위원회가 강릉시장을 헌관으로 해서 제례를 주관한다.

시비 3행 중 한자 눈 설(雪)자를, 구름 운(雲)자로 오타... 안타깝군

국사성황당에서 길은 잠깐 오르막이다. 능선으로 올라서면 길가에 한국통신 통신탑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선자령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대관령 옛길로 내려갈 수도 있다. 우리는 대관령 옛길을 탐사하는 게 목적인지라 반정(半程)과 주막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택한다. 여기서 반정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정(程)이 리(里)의 다른 표현이니 한자를 풀이해 보면 고갯마루에서 2㎞쯤 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 한원진의 시 '대관령에 올라' ⓒ 이상기


우리는 이제 구불구불 내리막길을 따라 반정으로 내려간다. 길가에는 이곳 대관령을 지나간 사람들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매월당 김시습의 시와 남당 한원진의 시가 대표적이다. 그 중 남당의 시 '대관령에 올라(登大關嶺)'가 현재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대관령을 내려간 남당은 강릉의 오죽헌을 거쳐 해안을 따라 낙산사와 청간정으로 간다. 그리고는 최종목적지인 금강산으로 향한다. 그의 문집 '남당집'에 보면 삼일포와 유점사를 읊은 시가 나온다. 

새가 넘는 험한 길에 하늘이 걸렸고      鳥道懸天去
이 길 가는 나도 반공중 걷고 있네.       我行在半空
연이은 산 바위에는 흰 눈이 쌓여있고   山連雪岳白
물에는 붉은 해 씻기며 굴러간다.         水盪火輪紅
고개 넘어 바다는 천리 멀리 뻗어 있고  關海千重遠
구름이 한 눈에 시원히 트였구나.         雲烟一望通
평생 사방을 다니려는 꿈이                 平生四方志
오늘에야 긴 바람을 타는구나.             今日駕長風

▲ 반정에서 바라 본 동해 바다: 왼쪽으로 영동고속도로와 터널이 보인다. ⓒ 이상기


시비에 쓰인 한문 원문을 보니 글자가 하나 틀렸다. 3행에 눈 설(雪)자를, 구름 운(雲)자로 잘못 적어 놓았다. 사소한 실수지만 안타깝다. 길을 내려가면서 보니 정말로 동해와 바닷가를 따라 형성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영동고속도로 옛길이 아래로 지나간다. 이 길을 건너면 바로 반정이 있다. 국사성황당에서 반정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겨울눈이 쌓여 있어 빨리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정에서 보면 바닷가 쪽으로의 전망이 참 좋다. 지금까지는 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였는데, 이곳에서는 일망무제로 앞이 탁 트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솔향 강릉이라는 정자에 앉아 잠시 대관령과 동해를 조망한다. 대관령으로 오르는 영동고속도로 옛길은 구불구불 이어지고, 저 아래로 새로 난 영동고속도로가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바다 쪽으로는 저 멀리 수평선이 하늘과 바다를 가르고 있다.
덧붙이는 글 2월 11일(土) 대관령 옛길을 탐사했다. 대관령 옛길은 강릉 바우길의 제2구간이다. 이곳을 탐사하며 보고 느낀 자연과 사람 이야기를 2회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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