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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산차 만드는 스님의 연애편지

[서평] 파계 아니면 무애의 경지, <마른 똥막대기에 번개 쳤다>

등록|2012.02.16 13:59 수정|2012.02.16 13:59

▲ 차를 만들기 위해 가을 햇살에 말리고 있는 산국화 ⓒ 임윤수



남이하면 불륜이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인 게 세속에서의 남녀관계입니다. 출가수행자의 세계에서도 남이하면 파계가 되고, 내가 하면 도의 경지를 뛰어넘은 무애한 행동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지리산에서 산차 만들며 수행생활을 하고 있다는 홍일 스님이 쓰고 자연과 인문에서 출판한 <마른 똥막대기에 번개 쳤다>야 말로 어찌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듯 합니다.

무애와 파계를 넘나드는 출가수행자의 사는 이야기

어찌 보면 위선을 벗어버린 선지자의 일갈이고, 어찌 보면 출가수행자를 가장한 파계승의 푸념일 뿐이니 말입니다. 책 표지에 커다랗게 써진 '똥냄새가 작렬하는 세상 지랄발광하는 인간들에게 지리산 수행자가 내리치는 마른 똥막대기의 통쾌한 맛!'이란 글이 어떤 입장에서는 정말 똥냄새가 작렬하는 세상을 후려치는 후련한 일갈일지 모르지만 어떤 입장에서는 걸쩍지근할 수도 있을 겁니다.

▲ <마른 똥막대기에 번개 쳤다> 표지 ⓒ 자연과 인문



황소야. 빼앗긴 들판에도 봄이 온다. 맛있는 풀들이 파릇해 졌더라. 나랑 지리산으로 풀 뜯으러 가보지 않을래.

아니, 싫어요. 미제 사료에 입맛이 깃들여져 생풀은 풋내 나고 맛이 없는걸요. 시님이나 많이 뜯어 잡수시구려. -본문 93쪽-

'스님요 제가 출가할 때 우리 모친이요 세 가지를 당부하데요. 하나는 절대 부처님 법 공부 외엔 하지 말고 정법 수행해라. 둘째는 이 어미가 죽기 전에는 고향땅 밟을 생각마라. 셋째는 신도들 등골 빼는 절을 갖지 마라. 그리 당부하데요'

스님 모친이 바로 관세음보살이고 큰 스승이네요 라고 건네면서 진정 그 스님의 모친이 존경스러웠었다. 지금 그 스님의 얘기가 내 마음 속에 피어오르고 있다. -본문 139쪽-

어떤 꼭지의 글은 연애편지 같고, 어떤 꼭지의 글은 비밀을 농축해 놓은 일기 같습니다. 어떤 꼭지의 글에서는 술잔이 아른거리고, 어떤 꼭지의 글에서는 여인의 냄새가 어른댑니다. 어떤 꼭지의 글에서는 고깃덩이가 어른거리고, 어떤 꼭지의 글에서는 카메라 앵글이 빙글댑니다.

찻물을 끓이는 소리도 들리고, 보글거리며 끓는 찻물 소리가 일탈한 세속을 야단치는 일갈로 쓰였습니다. 무심한 마음으로 새기면 경지를 뛰어넘은 무애한 일상이고, 조붓한 관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계율을 넘나드는 파계의 일탈입니다.  

개자식들 공교육이 저러니 부모들이 사설 학원에 돈 바치러 가지. 내가 산에 살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세속에 나가 살면 내 명대로 못살지. 그래 개자식들아 니들은 이런데 와서 개기 꾸 먹고 물쳐 마시고 목욕하고 지랄 다 하더마. 지 제자들한테는 조리 가르치나 보네. -본문 148쪽-

한 손은 핸들을 잡고 또 한 손은 창문 버튼을 눌러 조수석 창을 내렸다. 동시에 크락션을 빵빵 눌러댔다.

-야. 이 十不랄 빠가야로야. 갓뎀!

욕을 한바탕 퍼 붓고 신나게 달려 중산리에 왔다. 촌구석에는 짭새들도 없어서 더 신나게 달렸다. 혹여 짭새한테 잡히면 누구누구 집 시다림 간다고 하면 통한다. 죽은 놈 염불해주러 가는 시다림에 경관 양반인들 뭐라 하겠는가. 지금 막 죽어 체온이 남아 있고 더 굳어지기 전에 염불 돌려야 효과 있는기라 하면서 말이다. -본문 171-

육두문자 속에 세상 걱정이 들어있고, 쌍시옷으로 들이 붓는 시쳇말속에 승속이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글 속에 녹아있는 사투리는 집간장 만큼이나 짭쪼롬하고, 활자 속에 감춰진 의미는 뇌성벽력의 일갈입니다.

한 꼭지 한 꼭지를 읽어가다 보면 답답한 마음에 구멍하나 '뻥'

그것은 불륜이고 저것은 로맨스인지는 나도 아니고 남도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보고 판단할 때 가장 진실에 가깝습니다. <마른 똥막대기에 번개 쳤다>에 비친 홍일 스님의 일상이 위선을 벗어버린 선지자의 일갈인지, 아니면 출가수행자를 가장한 파계승의 푸념인지는 골똘히 읽어가며 찻물을 우려내듯 새기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홍일 스님이 지리산에서 산차를 덖듯이 썼을 <마른 똥막대기에 번개 쳤다>가 '똥냄새가 작렬하는 세상 지랄발광하는 인간들에게 지리산 수행자가 내리치는 마른 똥막대기의 통쾌한 맛!'인지 아닌지는 읽는 이의 판단에 맡기렵니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내듯 한 꼭지 한 꼭지를 읽어가다 보면 답답한 마음에 구멍하나 뻥 뚫립니다. 뻥 뚫린 구멍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부처님 콧바람이고, 구멍 난 구멍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요지경 속 고해입니다.
덧붙이는 글 <마른 똥막대기에 번개 쳤다> / 지은이 홍일 / 펴낸곳 자연과 인문 / 2012. 01. 20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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