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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집이 약해? 아이 셋을 낳았습니다

<인서체의 육아일기>-3

등록|2012.02.20 09:58 수정|2012.02.20 09:58
손가락 빠는 모습이 체 게바라를 닮았던 큰 아이. 지난 번까지는 육아일기를 간략하게 적었습니다. 아내가 육아일기를 처음 쓴 때가 1997년 10월 2일(목요일)입니다. 육아일기를 적지 않았다면 언제 처음 병원에 갔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역시 '기록'은 중요합니다.

남편과 '00병원' 산부인과 방문. 임신 한 달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문을 들어서는 순간 혹시 임신이 아니면 어떡하나 하는 떨림도 있었다. 임신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너무나 기뻤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초음파를 통하여 작은 점이 보였다.  검정색이었는데 아기집이 건강하단다.

아기집이 약해? 아이 셋을 낳았습니다

'아기집이 건강하단다'라는 내용이 눈에 띈 이유가 있습니다. 아내를 두 번째 만났을 때, 대뜸하는 말이 자신은 아기를 잘 가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두 번 만남 사람에게 아기를 잘 가질 수 없다는 말을 왜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한의사가 허리가 약하고, 아기집도 약해 아기를 가질 수 있어도 낳기 힘들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알고 보면 그 한의사 의술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내는 건강하게 셋을 낳았습니다. 그것도 3번 다 '자연분만'을 했기 때문입니다.

▲ 1997년 10월 2일, 아내는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 김동수


내 소화불량에다 몸은 부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 이 느낌들이 싫었고 신체의 변화가 부담스러웠지만  내 몸속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비하다. 몸무게 50kg 한 달 후에 오라 하신다. 한 달 후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아이야 반갑다. 건강하고 튼튼하게 엄마 배 속에서 자라거라. 엄마와 아빠는 널 위해 항상 하나님께 기도드릴거야. 너는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주신 최초의 생명이란다. 널 사랑한다.

엄마는 손으로, 아들은 노트북으로 쓴 '육아일기'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괜한 질투심이 생겼습니다. 성격 참 좁고 좁은 사람임이 들통났습니다. 큰 아이가 첫 육아일기를 보면서 자신이 직접 타이핑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15년 전 엄마는 손 글로 육아일기를 썼고, 15년 후 아들은 엄마가 직접 손으로 쓴 자신의 육아일기를 노트북으로 타이핑합니다.

"인헌아 15년 전 엄마가 쓴 육아일기."
"내가 직접 타이핑 하고 싶어요."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
"……"
"엄마가 너를 젖을 먹이는데 젖꼭지가 찢어져 피가 섞인 젖까지 먹었단다. 네가 엄마 사랑을 알기는 알까."

▲ 큰 아이는 자신의 첫 육아일기를 직접 타이핑 했다. 15년 전 엄마는 손 글로, 아들은 15년 후 노트북으로 육아일기를 썼다. ⓒ 김동수


엄마가 손으로 쓴 자신의 육아일기를 보면서 큰 아이는 많은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지금도 그 사랑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다 자랐으면 모르겠지만 갓 태어난 아이가 있다면 육아일기를 써 나중에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내는 육아일기를 아이들이 결혼하면 혼수품으로 줄 것이라고 합니다. 10월 3일, 아내는 배 속에 싹튼 생명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아기야 모든 행동이 조심되는구나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조심스러울 수가 없구나. 많이 먹게 되고 걸으면 피곤하고 졸음이 쏟아지고 숨이 가프고 소변이 많이 나오지만 신체적 변화에도 적응해 가고 있단다. '하나님 아기집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있도록 인도하시고 음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하옵소서.'

붕어빵 먹지 못하게 한 남편, 쌀죽을 끓여주었어요

임신한 아내에게 잘해 준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집에서 교회가는 길목에 붕어빵을 팔았는데 볼 때마다 "여보 붕어빵이 먹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아이에게 좋지 않아요. 길 거리 음식을 어떻게 먹어요"하면서 사주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서 타박을 합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죽을 끓여주었다는 글을 읽고 어깨에 힘이 갑자기 들어갔습니다.

새벽기도회 참석하지 못했다. 어제 하루가 너무 힘들었나보다. 남편 깨우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을 잤다. 교회에서 돌아 온 남편은 날 위해 쌀을 갈아 죽을 만들어 주었다. 아기야 엄마는 많이 먹게되고 가슴이 답답하고 피로함과 잠이 자꾸오는구나. 엄마의 이런 변화를 통하여 너는 얼마 만큼 자랐니? 빨리 너를 만나고 싶구나. 사랑한다.(10월 3일, 토요일)

아내는 점점 임신을 실감하는 것 같았습니다. "몸이 변화가 왔는데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뒤돌아 서면 배가 고프다"고 아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해가 바뀌고 어느덧 아내에게 다시 한 번 '무즙'을 만들어 주었고, 아내와 아이는 움직임을 통하여 교감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픈 날 위해 남편은 무즙을 만들어 주었다. 당신의 따뜻한 손길로 인해 제 마음이 너무나도 포근해집니다. 사랑해요. 영헌아 아빠 사랑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너도 닮았으면 좋겠다."(2008년 1월 29일)

1월 12일부터 뱃 속에서 공기 움직임 같은 것을 느꼈다. 공기방울이 좌우로 움직여 배가 출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즐겨 먹은 음식은 오이, 배, 사과, 귤, 모든 과일. 오이는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가 않았다.(1월 31일)

▲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초음파 사진이 없어 안타깝다. 할머니집에서 목욕을 한 후 울부짖고 있는 모습 ⓒ 김동수


2월 14일 육아일기를 보니 "아랫배가 끊어질듯 아팠다. 설거지를 멈추고 잠깐 휴식을 취했다. 영헌이가 숨 쉬듯 움직이는 것과는 많이 달랐고, 아파 울었다. 종일 배가 아프고 허리에 통증이 심했다"고 적었습니다.

읽고보니 아내에게 따뜻하게 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아픕니다. 더 잘해주고, 힘을 보태야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 때 제가 아내에게 유일하게 해준 것은 일주일 한 번씩 손글 편지를 쓰는 것뿐이었습니다. 참 후회가 많습니다.

기록은 위대한 유산

2월 23일에는 "3시경 남편이 배를 두드렸다. 영헌이가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1번 두르리면 1번 움직이고 여러번 두드리면 여러번 움직였다. 영헌아 너로 인해 엄마와 아빠가 많이 웃었단다"고 적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그 때 그 감동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아직도 손 끝으로 전해지는듯합니다. 육아일가 없었다면 잊어버렸을 것인데. 다시 떠올려 주었습니다. 역시 기록은 위대한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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