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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8학군 자살 학생...마지막 소원은 머리염색

[주장] 학교폭력 진짜 주범은 성적 강요 사회

등록|2012.02.21 12:14 수정|2012.02.21 16:06

▲ 2월 16일 조현오 경찰청장이 울산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열린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울산시민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과 국무총리, 교과부장관과 경찰청장, 각 시도교육청까지 나서서 학교폭력 대책을 말한다. 특히 경찰에선 거의 매일 소탕(?) 작전을 벌이듯 일진 관련 사건이 터져 나오고, 교사를 직무유기로 수사면서 교육계의 거의 모든 이슈를 학교폭력 문제가 집어 삼킨 형국이다.

학교폭력 문제는 교육·사회 문제다. 그러나 과연 사회 분위기가 몰아가는 것처럼 우리 교육의 유일한, 아니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학교폭력 문제를 '요즘 아이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학생 탓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어쩌면 학교폭력 문제에 몰입하면서 정작 더 중요한 교육의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부의 교육정책 실패의 책임을 이 문제로 덮으려는 시도는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통계로 본 청소년 자살... 성적 문제가 주원인

통계청은 해마다 연도별 사망원인통계연보라는 것을 발표한다. 특히 2011년에는 '2011 청소년 통계'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이 통계는 우리 청소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 아동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1999년 이후 모든 사망 원인이 줄거나 같았는데 유일하게 자살에 의한 아동청소년 사망만 증가하고 있다. ⓒ 김행수


1999년, 아동청소년 사망률 1위는 교통 사고로 13.1명으로 자살 5.0명의 두 배가 넘었다. 그러나 2008년에는 자살이 6.4명으로 늘었고 교통사고가 5.5명으로 줄어들어 자살이 아동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됐다(인구 만 명당 사망자 수).

2009년에는 자살 청소년이 7.5명으로 더 늘었고, 교통사고는 5.1명으로 줄었다. 교통사고, 암, 익사사고, 추락사고 등은 모두 줄거나 같았고, 오로지 자살에 의한 아동청소년 사망률만 높아졌다. 우리 사회의 청소년 자살 문제가 갈수록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실증이다.

▲ 2006년 이후 청소년 자살 현황에 의하면, 꾸준히 자살자 수가 증가하고 있고, 학교급별로는 급별이 높아질 수록 자살 학생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고등학교가 압도적으로 많다. ⓒ 김행수


연도별 자살 현황을 살펴보자. 2003년 100명을 시작으로 2004년 101명, 2005년 135명, 2006년 108명, 2007년 142명, 2008년 137명, 2009년 202명, 2010년 146명으로 매년 100명 이상이고, 2009년에는 200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학교 급별로 보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학교폭력 문제는 중학교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고등학생의 자살 학생 수는 중학교의 2배가 넘는다.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2006년 이후 청소년 자살 원인 중 1위는 표면상 '가정불화'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청소년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

▲ 2006년 이후 청소년 자살 현황에 따르면, 가정불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가정불화는 학생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 염세 비관 역시 다른 요인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고 볼 때 사실 상 성적 문제가 가장 많은 자살의 원인이다. ⓒ 김행수


두 번째로 많은 청소년 자살원인은 '염세, 비관'인데, 사실 이것의 진짜 원인은 따로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나 같이 공부도 못하는 놈이…' 또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이런 세상에서 차라리…' 등과 같은 생각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다른 구체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다음이 성적 문제다. 총 90명으로 전체의 12.2%로 나타났다. 이성문제 때문에 자살한 학생도 52명(7.1%)나 된다. 더 가슴 아픈 것이 있다. 신체결함이나 질병으로 19명, 가정 형편(가난, 궁핍 등) 때문에 자살한 학생도 15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없어 청소년이 질병과 가난 때문에 자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교폭력이나 집단괴롭힘 때문에 자살한 학생은 최근 5년간 8명으로 전체의 1.1%였다. 이밖에 원인불명, 기타 사유로 자살한 학생이 204명으로 전체의 17.7%에 이르렀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자살 청소년 중에도 상당수가 성적 문제가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자살청소년만 따로 집계한 현황에 의하더라도 146명 중 가정불화 46명(31.5%), 염세·비관 28명(19.2%), 성적 비관 18명(12.3%), 이성관계 10명(6.8%), 실직·부도 등 가정형편 5명(3.4%) 순으로 전체적인 수치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와 달리 통계 상으로는 청소년 자살에 이를 정도의 학교 폭력은 별로 없었다. 반면, 가정불화 같은 학생 외적인 요인을 제외하면 성적 문제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의 수가 가장 많았다. 수치 오류인지, 아니면 정확한 현실 반영인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청소년 자살 충동 이유 1위도 성적 문제

통계청의 '사회조사 2010'에 의하면, 15~19세 청소년(중고생) 중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대답한 학생 중 가장 많은 학생이 자살 충동의 이유로 성적문제(진학 포함, 53.4%)를 꼽았다.

▲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는 청소년 중 그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이 성적 문제이다. 과반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 김행수


적어도 2010년에는 학교폭력 문제로 자살을 고민하는 학생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기타'에 학교폭력이 포함돼 있을 수 있으며, 별도 항목으로 분류되지 않아 응답자가 적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자살 충동을 느끼는 학생들 중 이유는 성적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다.

자살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우리 청소년들은 평소에 무슨 문제로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을까?

▲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문제 중 1등도 공부(성적, 진학) 문제이다. 학교 폭력은 의외로 1%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 김행수



'사회조사 2010'에 의하면 우리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문제는 공부(성적, 적성 포함) 문제였다. 2002년도에는 48.9%로 압도적 1위였고, 2010년에는 55.3%로 비율이 더 높아졌다.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음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학교폭력 문제로 고민한다는 학생은 2002년에도 미미했고, 2010년에는 더 미미해졌다. 이 수치가 학교폭력으로 고민하는 학생을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 중고생들이 성적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1월 청소년 구속률 증가... 그들은 '화성인'인가?

경찰은 대구의 중학생이 집단괴롭힘 때문에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일진회 소탕에 나섰다. 연일 일진에 의한 학교 폭력범을 적발하였다는 기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20일, 대구 학교폭력 사건의 가해 학생들은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 2012년 1월의 청소년 학교폭력 구속률이 2011년 대비 3.7배로 늘었다. 그런데, 경찰이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일진 소탕(?)에 나선 것 치고는 오히려 월평균 적발 건수가 줄어들었다. 1월만 대비하면 늘었다고 우길까? ⓒ 김행수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학교폭력 및 금품갈취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청소년은 1만8739명이고, 이중 52명이 구속됐다. 구속률은 0.27%였다. 하지만 올해 1월에 1193명이 검거돼 지난해 1월 949명보다 26% 늘었고(월 평균보다는 370여 건 감소), 이 중 12명이 구속됐다. 구속률은 지난해 평균의 3.7배인 1%에 이르렀다.

경찰이 특진을 내걸고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호기에 비하면 검거 건수는 작년 월 평균보다 줄었고 구속률만 높아진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2012년 초에 갑자기 포악해져 학교폭력을 일삼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미 학교폭력 문제는 학교에 상존해 있었고, 우리 사회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최근에 폐해가 바깥으로 터져 나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쁜 놈들이야. 처벌을 강화하고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해'라는 처방이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더 많은 학생들이,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자살하고 있는 문제는 성적으로 대표되는 '경쟁만능'의 교육정책인데, 왜 이 문제에는 대통령부터 총리, 장관이 나서지 않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청소년들이 1년 사이에 학교폭력으로 인한 구속률이 4배 가까이 높아져야 할 정도로 포악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폭력이 미화되고, 숫자로만 평가되는 경쟁만능 사회의 피해자들이다. 2012년 우리 청소년들은 화성에서 온 '나쁜 놈'들이 아니라 '불쌍(?)한 놈'들이다.

주목받지 못한 강남 8학군 학생의 자살

최근 강남 '8학군' 대치동에서 유명 자율형사립고의 공부도 꽤 잘하는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부가 어렵다. 학원 다니기가 힘들다"는 유서 내용에서 보듯 학업 성적에 대한 부담이 원인이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교육열이 뜨겁다는 동네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만 다니는 명문 자사고 학생이 성적 부담 때문에 자살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

특히 이 학생이 자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머리를, 그것도 회청색으로 염색한 것이었다. 이 사실은 학생답지 못하다고 염색도 마음대로 못하고, 공부에 방해된다고 머리 모양도 마음대로 못하는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언론은, 교육계는, 나아가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학교에 대한 언론 보도는 온통 학교폭력 문제다. 그러나 2012년 대한민국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성적 스트레스는 학교폭력의 그것보다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계 일각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단편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입시지옥으로 대표되는 경쟁교육의 전환과 인권과 평화를 존중하는 학교 분위기 쇄신 등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이유이다.

학교폭력 진짜 주범은 학생 아니라 성적 강요 사회

▲ 김황식 국무총리가 6일 오전 정부중앙청사에서 관계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2월 15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1년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들 중 지난 1년 동안 정신질환을 경험한 비율이 16%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6년 조사 당시 8.3%의 거의 2배에 달하는 것. 이 중 15%만 정신과 상담 등 치료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신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급속한 사회 변화와 무한 경쟁을 들고 있다.

성인들이 이 정도 정신질환을 앓고, 치료를 받고 있는데 훨씬 더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청소년들은 얼마나 정신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을까? 보건복지부는 정신질환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세부 지침을 마련하고, 내년부터는 전 국민 정신질환 검사를 실시한다고 한다.

청소년 자살은 어느 한 요인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요인과 개인적 성향, 친구와 가족, 학교 같은 주위 환경, 그리고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것이다. 청소년 자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학교폭력이지만 유일하거나 가장 큰 원인은 아니다.

청소년 자살 문제를 학교폭력으로 단순하게 진단하는 지금의 분위기. 이는 문제의 원인을 가해 학생의 개인적 성향 문제로 축소시켜서, 성적과 공부로 대표되는 경쟁적 교육정책 문제라는 더 크고 중요한 원인을 감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1990년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던 여고생, 2000년대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던 초등학생, 그리고 2010년대 "공부가 어렵다, 학원 다니기가 힘들다"는 강남 자율형사립고 학생의 판박이 같은 유서에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깨달은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학생들에게 성적 스트레스는 학교폭력 문제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것이 여러 통계 자료를 통해 증명됐다. 학교폭력의 더 큰 주범은 학생 또래 간의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경쟁 만능 사회의 성적 스트레스라는 추상적 폭력일 수 있다.

우리 사회, 특히 MB정부가 학교폭력 대책과 더불어 성적 스트레스에서 우리 아이들을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서라도 경쟁 위주 교육정책의 전면 방향 전환이라는 큰 밑그림을 지금 당장 그려야 한다.
덧붙이는 글 교육희망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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