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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긋한 부자'는 존재할 수 없다

등록|2012.02.22 10:53 수정|2012.02.22 10:53

▲ 깨끗한 부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 김동수


1997년 IMF는 '1%와 99%'를 가르는 서막이었다. 한 때 "사장님" 소리를 듣던 이들은 '노숙인'이 되었고, 어느 직업군보다 젊은이들이 되고 싶었던 은행원들은 구조조정 앞에 가을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자본은 이들을 향해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문구로 유혹했다. 그때를 2001년 12월 29일로 기억한다. 당시 BC카드는 연예인 김정은씨를 앞세워 "여러분, 여러분, 모두 부자되세요, 꼭이요!"라고 했다. 광구 문구를 본 이들은 너도 나도 부자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부자가 아니라 '카드 돌려막기'서막이었다.

'부자' 과연 이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1%을 넘어 0.1%가 자본을 탐식하는 사회로 점점 접어들고 있다. 재벌들 탐욕은 끝이 없다. 얼마나 탐심이 극에 달했으면 동네빵집 점령하려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겠는가. 하지만 아직도 재벌들은 탐욕 블랙홀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재벌만 모든 것을 다 끌여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이른바 성도들도 탐심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은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도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디모데전서> 6장 9~10절)

과연 깨끗한 부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기독 성도라면 한번 정도는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몇해 전 한국교회에서는 '청부론'(淸富論)이라는 주제로 논쟁이 붙었다. "예수 잘 믿고 복 받자"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벌어도 십일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한국교회에는 신성한 충격이었다.

깨끗한 부자. 얼마나 멋진 말인가? '더러운 부자'보다는 훨씬 낫다. 재벌가 딸들의 동네빵집 논란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자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혐오'에 가깝다. 다들 부자되기를 바라지만 남이 부자라는 것은 싫은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교회 장로로서 '부자감세'로 부자들 주머니에 돈을 투툭하게 챙겨주면서 반감은 더 강해졌다.

이와 맞물려 교회가 예배당을 2000억 원을 들여 짖고, 목사들이 헌금을 횡령하는 일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먹사'소리까지 듣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일반 사회보다 한국교회가 더 돈에 목말라했다는 비판이요, 조롱이다.

이런 점에서 '청부론'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한국교회가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논거였다. 그럼 청부론은 해결책일까? 앞에서 인용한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청부론을 주장했던 이들은 "물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물질을 대하는 사람의 자세와 가치관이 문제"라고 말했다. 즉 돈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 돈을 정직하게 벌고, 바르게 쓰면 된다는 주장이다. 듣다보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인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한국교회와 신자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경제관이다. 청부론을 주장한 이 중에 김동호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 믿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욕심내고 도전해야 할 것은 우리가 부자가 되고 강한 자가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사는 일이다. … 좋은 차를 타고 넓은 집에서 사는 것을 무조건 비판적으로 보는 세상을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 부함과 강함에 대해 좀더 긍정적인 눈을 가져라, 부함과 강함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버려라, 할 수 있는 대로 강한 자가 되라, 부한 자가 되라, 뛰어난 사람이 되라, 그렇게 되기를 힘쓰라, 바울이 하나님을 위해 로마 시민권을 쓴 것처럼 부함과 강함을 주님을 위해 선용하라."(<깨끗한 부자> 규장, 196쪽)

책이 2001년 11월 5일에 나온 책이니 BC카드의 광고 문구 "여러분 부자되세요"와 겹친다. 11년 전 이 책을 읽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할 수 있는 대로 강한 자가 되라. 부한 자가 되라, 뛰어난 사람이 되라"는 내용을 읽고 읽었다. 하지만 '동의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결국 하나님을 위해서는 강자가 되어야만, 부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논리로 '신자유주의'와 별 다르지 않다.

'깨끗한 부자'라는 말 속에는 결국 부자가 가난한 자보다 낫다는 것이고, 가난한 자는 부자보다 못하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런 논리가 돈만 벌면 된다는 주장보다 더 교묘하게 사람을 돈의 노예로 만들 수 있다.

조폐공사에서 돈을 찍어낼 때까지는'무생물'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을 거치고 사람 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무생물(무인격)에서 '인격'이 된다. 그러므로 돈은 사람 의식을 지배하게 된다. 돈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벌들이 왜, 가진 자들이 왜 더 가질려고 할까? 양 백 마리를 가진 자가 왜 한 마리를 가진 자의 것을 빼앗려고 할까? 돈이 그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욕심내고 도전해야 할 것은 우리가 부자가 되고 강한 자가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사는 일'을 단호히 배격하지 않는 한 한국교회 앞날은 희망이 없다. 깨끗한 부자는 존재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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