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으로 시골 인심 맛봐요
충북선 기차여행하며 추억과 낭만 찾기
수많은 사연과 애환이 담겨있는 기차. 누구는 떠나고, 누군가는 보내야 했던 기차역. 기차여행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칙칙폭폭' 수증기를 내뿜거나 '삐익~' 기적 소리를 울리지 않으면 어떤가. 기차통학을 경험했던 나에게는 기차여행 그 자체가 '추억과 낭만 찾기'이다. 2월 19일, 충북선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삼탄역으로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열차 시간에 늦을까 봐 부지런을 떨며 청주국제공항 가는 길에 있는 상당구 외남동의 오근장역으로 갔다. 현대식 건물이지만 오가는 사람이 적은 역이라 정이 느껴진다. '덜커덩' 소리를 크게 내던 옛날 열차가 아니다. 무궁화호 열차가 몸집을 키우며 미끄러지듯 조용히 오근장역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열차에 올라 9시 11분 청주역을 출발한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합류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의 고향 음성역과 2013년 탄금호국제조정경기장에서 세계조정선수권대회가 열리는 사과의 고장 충주역을 지난다. 전철이라 빠르게 달리지만 기차 여행은 여유가 느껴진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산과 들판, 마을과 도회지를 구경하는 것도 기차 여행의 별미다.
조치원 방면 오송역에서 제천방면 봉양역 사이의 미호역, 정봉역, 송정역(서청주역), 청주역, 정하역, 오근장역, 청주공항역, 내수역, 금암역, 증평역, 도안역, 문암역, 보천역, 상당역, 음성역, 소이역, 주덕역, 달천역, 충주역, 목행역, 동량역, 산척역(독동역), 삼탄역, 공전역, 원박역 등 충북선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동안 철길도 많이 바뀌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역도 여럿이다.
여행객들의 여유로움과는 무관하게 부지런히 달려온 무궁화호 열차가 삼탄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을 내려놓은 열차가 꽁무니를 보인 채 줄행랑치듯 멀어져 간다. 환경과 분위기에 따라 행동이 바뀐다. 가끔은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하는 날도 있다. 몇 명의 회원이 철길 위에서 개구쟁이가 되었다.
때로는 이야기가 있어 여행이 즐겁다. 여행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하나 되며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역사 안에 임보 시인이 쓴 '삼탄역장'이 걸려있다.
산이 산들을 업고 겹겹이 누운⁄ 깊은 산골 삼탄역 빈 대합실⁄ 다람쥐 한 놈 기웃거리고 있다⁄ 역 앞은 푸른 계곡⁄ 여울 소리만이 가득할 뿐⁄ 가끔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가⁄ 거대한 공룡의 유령처럼⁄ 산허리를 뚫고 지나갈 뿐⁄ 이 산골에 내리는 사람은 없어⁄ 역장은 늘 역사에 없다.⁄ 열대여섯 되는 동자놈 하나⁄ 여울에 그물을 던져⁄ 제 팔목만한 치리를 끌어올리기에⁄ 그가 어디 있는 가고 물었더니⁄ 감자밭에 없으면⁄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갔으리라 한다.⁄ 여울엔 푸른 오동꽃이 떨어져⁄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예전에는 생활 자체가 느림과 여유, 배려와 너그러움이었다. 역장이 늘 역사를 비워두고 감자밭을 매거나 산에서 고사리를 꺾어도 탓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시에 그 당시의 한가하고 여유로운 풍경이 담겨있어 몇 번을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역사를 나서면 원주 치악산이 발원지인 제천천을 만난다. 물가에 펼쳐진 멋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삼탄역이 왜 충북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꼽히는지를 안다. 겨울이라 두껍게 얼어붙었지만 여름이면 이곳으로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른다.
삼탄역에서 서쪽으로 200여m 지점의 물가에 삼탄유원지가 있다. 삼탄은 여울이 셋이라는 뜻으로 관청소여울, 소나무여울, 따개비여울이 있다. 맑고, 깨끗한 물이 기암절벽 아래로 명서리를 휘감고 돌아 충주호로 흘러간다. 한때는 인적이 드물었던 피난처가 1959년 간이역으로 삼탄역이 들어서면서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 받고 있다. 충주댐 완공으로 삼탄유원지의 명돌마을 59가구가 수몰된 아픔도 가지고 있다.
길가에 500여 년 된 느티나무(충주보호수 68호)가 서 있는 명돌마을의 풍경이 멋지다. 노거수를 돌아서 뒷산으로 오르면 삼탄역과 충북선 철길, 제천천과 천등산 방향의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천등산 산줄기에 불이 난 현장을 목격했다. 여행길에서도 직업은 못 속인다. <충청일보> 박광호 국장이 재빠르게 119에 신고를 한다.
삼탄유원지 물가에 깨끗하고 넓은 체육공원이 있어 각종 여가를 즐기기에 좋다. 삼탄소운동장에서 점심을 먹은 후 편을 나눠 축구 경기를 했다. 나이 먹으면 마음과 몸이 따로 논다는 것을 확인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입구에 명돌마을 표석이 서 있는 명서리의 마을 풍경을 구경하며 삼탄역으로 향했다.
삼탄역에 도착하자 나이 지긋한 역무원이 사무실에 들어와 커피 한 잔 마시며 추위를 녹이란다. 오랜만에 느끼는 시골인심이라 모두 '싱글벙글'이다. 이곳에서 제천 쪽으로 한 정거장 더 가면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 공전역이다. 시간이 되자 공전역 방향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들어온다.
삼탄역을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청주역을 향해 부지런히 왔던 길을 달린다. 오근장역과 청주역 사이의 철길 옆에 고향마을 소래울(내곡동)이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집을 지날 때는 무임승차로 기차 통학을 했던 철부지 시절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가난한 학생들이 무임승차를 해도 눈감아 주던 그 시절이 인생살이는 무임승차하지 않도록 나를 키워줬다.
추억과 낭만과 여유가 가득한 게 기차 여행의 매력이다. 당일치기 여행이었지만 옛 정취에 빠져 낭만을 즐기고 추억거리를 많이 남긴 시간이었다. 그 열기가 저녁 식사자리까지 이어졌다.
▲ 오근장역 ⓒ 변종만
열차 시간에 늦을까 봐 부지런을 떨며 청주국제공항 가는 길에 있는 상당구 외남동의 오근장역으로 갔다. 현대식 건물이지만 오가는 사람이 적은 역이라 정이 느껴진다. '덜커덩' 소리를 크게 내던 옛날 열차가 아니다. 무궁화호 열차가 몸집을 키우며 미끄러지듯 조용히 오근장역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열차에 올라 9시 11분 청주역을 출발한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합류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의 고향 음성역과 2013년 탄금호국제조정경기장에서 세계조정선수권대회가 열리는 사과의 고장 충주역을 지난다. 전철이라 빠르게 달리지만 기차 여행은 여유가 느껴진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산과 들판, 마을과 도회지를 구경하는 것도 기차 여행의 별미다.
조치원 방면 오송역에서 제천방면 봉양역 사이의 미호역, 정봉역, 송정역(서청주역), 청주역, 정하역, 오근장역, 청주공항역, 내수역, 금암역, 증평역, 도안역, 문암역, 보천역, 상당역, 음성역, 소이역, 주덕역, 달천역, 충주역, 목행역, 동량역, 산척역(독동역), 삼탄역, 공전역, 원박역 등 충북선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동안 철길도 많이 바뀌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역도 여럿이다.
▲ 주변 경치가 아름다운 삼탄역 ⓒ 변종만
여행객들의 여유로움과는 무관하게 부지런히 달려온 무궁화호 열차가 삼탄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을 내려놓은 열차가 꽁무니를 보인 채 줄행랑치듯 멀어져 간다. 환경과 분위기에 따라 행동이 바뀐다. 가끔은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하는 날도 있다. 몇 명의 회원이 철길 위에서 개구쟁이가 되었다.
때로는 이야기가 있어 여행이 즐겁다. 여행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하나 되며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역사 안에 임보 시인이 쓴 '삼탄역장'이 걸려있다.
산이 산들을 업고 겹겹이 누운⁄ 깊은 산골 삼탄역 빈 대합실⁄ 다람쥐 한 놈 기웃거리고 있다⁄ 역 앞은 푸른 계곡⁄ 여울 소리만이 가득할 뿐⁄ 가끔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가⁄ 거대한 공룡의 유령처럼⁄ 산허리를 뚫고 지나갈 뿐⁄ 이 산골에 내리는 사람은 없어⁄ 역장은 늘 역사에 없다.⁄ 열대여섯 되는 동자놈 하나⁄ 여울에 그물을 던져⁄ 제 팔목만한 치리를 끌어올리기에⁄ 그가 어디 있는 가고 물었더니⁄ 감자밭에 없으면⁄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갔으리라 한다.⁄ 여울엔 푸른 오동꽃이 떨어져⁄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예전에는 생활 자체가 느림과 여유, 배려와 너그러움이었다. 역장이 늘 역사를 비워두고 감자밭을 매거나 산에서 고사리를 꺾어도 탓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시에 그 당시의 한가하고 여유로운 풍경이 담겨있어 몇 번을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역사를 나서면 원주 치악산이 발원지인 제천천을 만난다. 물가에 펼쳐진 멋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삼탄역이 왜 충북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꼽히는지를 안다. 겨울이라 두껍게 얼어붙었지만 여름이면 이곳으로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른다.
삼탄역에서 서쪽으로 200여m 지점의 물가에 삼탄유원지가 있다. 삼탄은 여울이 셋이라는 뜻으로 관청소여울, 소나무여울, 따개비여울이 있다. 맑고, 깨끗한 물이 기암절벽 아래로 명서리를 휘감고 돌아 충주호로 흘러간다. 한때는 인적이 드물었던 피난처가 1959년 간이역으로 삼탄역이 들어서면서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 받고 있다. 충주댐 완공으로 삼탄유원지의 명돌마을 59가구가 수몰된 아픔도 가지고 있다.
▲ 길가에 500여년 된 느티나무가 서있는 명돌마을 풍경 ⓒ 변종만
길가에 500여 년 된 느티나무(충주보호수 68호)가 서 있는 명돌마을의 풍경이 멋지다. 노거수를 돌아서 뒷산으로 오르면 삼탄역과 충북선 철길, 제천천과 천등산 방향의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천등산 산줄기에 불이 난 현장을 목격했다. 여행길에서도 직업은 못 속인다. <충청일보> 박광호 국장이 재빠르게 119에 신고를 한다.
▲ 각종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삼탄소운동장 ⓒ 변종만
삼탄유원지 물가에 깨끗하고 넓은 체육공원이 있어 각종 여가를 즐기기에 좋다. 삼탄소운동장에서 점심을 먹은 후 편을 나눠 축구 경기를 했다. 나이 먹으면 마음과 몸이 따로 논다는 것을 확인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입구에 명돌마을 표석이 서 있는 명서리의 마을 풍경을 구경하며 삼탄역으로 향했다.
▲ 삼탄역 풍경 ⓒ 변종만
삼탄역에 도착하자 나이 지긋한 역무원이 사무실에 들어와 커피 한 잔 마시며 추위를 녹이란다. 오랜만에 느끼는 시골인심이라 모두 '싱글벙글'이다. 이곳에서 제천 쪽으로 한 정거장 더 가면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 공전역이다. 시간이 되자 공전역 방향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들어온다.
삼탄역을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청주역을 향해 부지런히 왔던 길을 달린다. 오근장역과 청주역 사이의 철길 옆에 고향마을 소래울(내곡동)이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집을 지날 때는 무임승차로 기차 통학을 했던 철부지 시절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가난한 학생들이 무임승차를 해도 눈감아 주던 그 시절이 인생살이는 무임승차하지 않도록 나를 키워줬다.
추억과 낭만과 여유가 가득한 게 기차 여행의 매력이다. 당일치기 여행이었지만 옛 정취에 빠져 낭만을 즐기고 추억거리를 많이 남긴 시간이었다. 그 열기가 저녁 식사자리까지 이어졌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그 '추억과 낭만 찾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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